이야기 간식 3편에서 이어집니다.

 

‘이것은 아주 귀한 거니까 잘 간수해라’라는 시아버지의 대사를 할 때마다, 아이들 손바닥에 뭔가 주는 시늉을 합니다.

빈손인 줄 알면서도 아이들은 그 손을 또 바라봐요.

저도 괜히 진짜 귀한 것 전하듯이 진지하게 아이들 손바닥을 한 손으로 받치면서, 다른 손 엄지 검지를 모아 집게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해봅니다.

귀하고 좋은 것을 아이들에게 늘 주고픈 마음입니다….

그런데 자꾸 잔소리만 주는 현실 ㅜㅜ

 

​그래서, 막내며느리는 뭐라고 했게요?

 

“막내며느리는 말이야, 던지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해.

‘이것을 주실 때는 무슨 생각이 있나 본데, 이걸 어디에 쓰지?’

궁리하다가 말총을 하나 뽑아.

말총은 말 꼬리털인데. 집에 말이 있었나 봐.

역시 부자는 부자다잉. 그지?

그걸로 올가미를 만들어.

마당 구석에 시아버지가 주신 볍씨 한 톨을 갖다 놓고 그 옆에 자기가 만든 올가미를 두고는 기다리지.”

 

하는데, 또 멀리서 스쿨버스가 옵니다.

스쿨버스를 타기 전에 첫째가 

“참새를 잡겠지! 그리고 이웃이 그걸 돌라 하겠지!”하고 말해버립니다.

스포를 해도, 둘째 셋째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어요.

저는 첫째가 너무 웃겨요, 이야기 들려주는 동안 첫째는 계속 폰을 하거든요.

핸드폰 하면서 이렇게 가로챌 순간을 노리는 것이… 귀엽고 웃겨요.

 

그리고 밤이 되어, 이부자리를 깔고, ‘참새’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래 그 올가미에 참새가 딱

잡힌다고.

요즘 우리집 고양이들이 쥐랑 새를 덜 잡드라, 그쟈?

대신 벌레를 자꾸 잡아먹는 것 같아.

참새를 잡았는데, 우짜꼬 할 새도 없이, 옆집에서 약에 쓴다고 참새를 좀 달라잖아.

참새는 어디에 좋은 걸까?

하여간 참새를 주고 달걀을 받아.

그 달걀을 암탉이 알 품는 둥지에 넣어.

우리 암탉은 자기가 낳은 알만 품던데, 막내며느리네 닭은 같이 다 품었대.

그래서 한 보름이 지나서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왔네! 볍씨 한 톨이 병아리가 된 거지!”

 

▲ 콩밭 배경 부추꽃. ⓒ내리리 영주

그 병아리를 고이고이 잘 길렀더니 자라서 암탉이 되고

그 암탉이 또 알을 낳아 병아리가 많아지고

또 그 병아리들이 자라서 암탉 수탉이 되어 또 알을 낳고

많아진 닭을 좀 팔아서 아기 돼지를 사고

그 돼지가 자라자 새끼를 쳐서 돼지 식구가 늘고

또 돼지를 팔아서 송아지를 사고

그 송아지가 자라자 암소가 되어 또 송아지를 낳고

소를 팔아 논을 사고…

그렇게 삼 년을 보내고 나니 

막내며느리는 논 서 마지기를 사게 됩니다.

 

너무 부러운 재테크 이야기 아닙니까!

이 이야기를 책으로 처음 읽었을 때, 또 살림 걱정을 한창 하고 있었거든요.

늘 하는 거지만, 왜 어쩌다가 더 심각하게 현실이 막막할 때 있잖아요.

그래서 이 옛이야기를 진짜 그냥 살림을 일궈 낸 이야기로 읽고는, 같이 이야기 공부하는 모임에 그 후기를 올리고서야…

이야기 아래에 흐르는 속뜻을 헤아려보지 않고 

‘돈 생각’만 했다는 걸 알아채서 좀 부끄러웠어요. ㅎㅎ.

 

​앞글에서 언급한, ‘음양’이라는 잣대를 대어보면, 막내며느리는 시아버지가(양) 준 볍씨 한 톨(양)을 기꺼이 받고, 궁리해서 어떤 행동을 하고, 이어지는 변화를 잘라먹지 않고(중간에 돼지쯤에서 돼지를 잡아서 그냥 식구들 잔치하고 끝낼 수도 있는데^^;), 파도를 타듯 계속 확장해 나가지요.

그 사이에 하필이면 그 달걀에서 태어난 병아리가 암탉이 되었고, 닭들이 병에도 걸리지 않았고, 돼지와 소들도 건강하고, 마침 논 서 마지기가 매물로 나오고! 온 우주가 막내며느리를 돕지요.​

사실, 서열로 보면 막내며느리라는 자리는 얼마나 짜져서 지내야 하는 자리예요?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할 수 있지만, 막내며느리 아닌데, 막내며느리 같은 마음이 드는 자리들 있잖아요? 선택권도 발언권도 없는 그런 자리.


그런 자리에서 획득한 논 서 마지기!

이런 게 바로 대박!

존재감이 확 달라졌죠…!


​아이들이 살다가 어느 날은 그런 자리에 설 거 아니에요.

그랬을 때도 자신의 가능성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애들한테 이런 말은 안 합니다.

어쩌면 한 번 재미있게 전해볼까, 그 궁리만 해보려고요.

 

▲ 비눗방울 아이들. ⓒ내리리 영주

“삼 년이 지나서 시아버지가 세 며느리를 불러.”

“같이 안 살았어? 왜 삼 년 만에 불러?” (둘째)

“같이 살아도 대화가 없을 수는 있어.” (나)

“크크크” (첫째)

“뭐 알고 웃냐?” (나)

​“하여간 불러서는, ‘너 삼 년 전에 내가 준 볍씨 어쨌냐?’ 그래. 그랬더니, 첫째 며느리는 버렸잖아. 그러니까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고 아무 말도 못 해.”

​“삼 년이나 지난 일을 묻는 게 너무한 거 아니야?” (첫째)

“그르네! 간간이 카톡이라도 하고 그르지 그렇지?” (나)

“엄마, 옛날에도 카톡 있었어?” (셋째)

“​일단 둘째 며느리는 어쨌나 들어봐. 둘째는 자기는 버리지는 않았으니까, 당당하게 버리기 아까워서 제가 먹었습니다, 그래.

그리고 두구 두구.

막내며느리는 ‘여기 있습니다’하고, 논 문서를 딱 내놓는 거라. 그러면서, 볍씨 한 톨이 논 서 마지기가 된 이야기(다시 길게 풀어서 들려줌)를 줄줄 하니까, 시아버지가

‘이러니 내가 누구를 믿어야겠느냐? 이 집 살림은 이제부터 막내가 맡고 맏이와 둘째는 식구들 데리고 집을 나가라. 나가서 재주껏 벌어 먹고살다가 십 년 후에 돌아오너라.’ 하는 거라.”

 

하는 수없이 맏이네 와 둘째네는 집을 나가서 고생고생해서 살아나가고, 그 과정에서 쌀 한 톨도 소중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10년 뒤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먼저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어요.

유언이 막내가 가진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서로 우애 있게 살라는 거라서 삼 형제네 식구들은 그렇게 했대요.

현실에서는 유산 싸움 각인데, 우애 있게 살았다니!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습니다. ㅎㅎ.

​얼마 전 서정오 선생님은 강연에서 ‘옛이야기는 어느 인물 편에 서느냐에 따라 내 마음을 치유하고 돌볼 수 있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첫째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자리에 공감이 가요.

있는 재산 그냥 뚝 잘라 나눠주지, 뭘 고생을 시키나… 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시아버지 자리에 나를 세워봅니다.

죽을 날에 자식들을 보지 못하더라도, 자식들이 똑바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막내며느리 자리는 사실… 못 서겠어요. 

이것은 인간계의 캐릭터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내가 불린 재산을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나눈다니요! 불공정 아닙니까?

 

실제로는 나눌 게 없어서, 천만다행입니다.

생기면 나눌게요.

천상계 인간 해보고파요~.

우주야, 나도 좀 도와라!!!

 

▲ 분홍 봉숭아. ⓒ내리리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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