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간식 5] 선택의 순간
[이야기 간식 5] 선택의 순간
  • 내리리 영주
  • 승인 2020.09.03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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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밟은 아이들의 발자국 ⓒ내리리 영주. 
진흙 밟은 아이들의 발자국 ⓒ내리리 영주. 

 

어떤 아저씨가 있었어.

원래는 돈을 잘 벌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돈을 못 벌게 된 거야.

있던 돈 다 쓰고, 있던 쌀도 다 먹어서 끼니도 못 이을 정도가 됐어.

처자식도 배고프다고 난리인데 어째?

해결할 길이 없는 거라.

우리 동네면 우리가 좀 나눠 먹을 건데 그지?

이렇게 걱정이 너무 커져서 가슴이 답답할 때는 누구한테라도 말을 해야 도움도 받고 그러는 거야.

일단 어디라도 기대서 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 아저씨는 그만, 처자식도 못 먹여 살리고 이렇게 살아 뭐하나 하면서 스스로 죽기로 결심하고 섣달그믐에 산을 올라가.

-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신동흔, 73쪽 (※입말로 좀 바꾸었습니다!)

 

옛이야기는 결론이 언제나 해피엔딩이기 때문에, ‘죽으러 가는 이야기’라 해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나 듣는 아이들 모두 큰 긴장은 없어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내는 산에서 한 여인을 만나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처자식이 굶고 있어 걱정이라고 하니 그 여인이 그것도 해결해 줄 테니 걱정 말라 하고, 자기 집으로 사내를 데려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 줍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한 사내는 떠나온 집이 걱정되고, 여인은 이를 알고 집에 다녀오라고 보내줍니다.

사내가 집에 가보니 여인이 처자식도 돌봐줘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여인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이 있어 건너려고 하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요.

 

“야야~ 야야~ 내 말 좀 들어보래이~

라는 목소리가 들려.

그래서 보니까 돌아가신 아버지야!

니가 걱정돼서 왔대이.

그 여자는 구렁이라.

뒷문으로 가서 살짝 한 번 보그래이.

밥을 씹는 척하다 그 여자한테 뱉어야, 그 구렁이가 죽고 니가 산대이.

안그라모 니가 죽는대이.

아들아, 단디 들어래이”

 

태풍에도 지지 않는 무싹들. ⓒ내리리 영주. 

이야기에 긴장이 차오릅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그 긴장감을 와장창 깨주는 분이 계시죠?

네, 첫째가 ‘근데 사실 아빠가 아니었어!’하고 혼자 키득거려요.

분위기를 깨는 게 목적이었으나, 아직 어린 셋째는 벌써 제 곁에 와 있고, 둘째는 지난번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누나에게 영향받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첫째의 훼방도 이야기 간식 시간의 재미입니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한 달 내내 들려준다던데, 그게 가능한 시기가 있기는 한가보다… 싶어져요.

 

“아저씨가 뒷구멍으로 들어가서 보니까 방에 그 여인이 있는 게 아니고 진짜 엄청 굵고 엄청 긴 구렁이가 있는 거라.

혀를 요렇게 날름날름하면서.

어른 남자라도 구렁이는 무섭잖아.

어째? 도망갔을까?

도망을 안 가지!

다시 대문으로 가서 ‘다녀왔소!’ 하니까, 좀 전까지 구렁이였는데 자기를 구해준 그 여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까!’하고 맞이를 해.

그리고 밥상을 차려주는 거라.

마주 앉아서 밥을 먹어.

밥을 씹겠지?

여인을 빤히 보면서 밥을 먹지.

그 밥을 씹어서 두구 두구(씹는 척을 합니다.)

꿀꺽!(삼키는 척을 합니다.)

우짜노! 

뱉어야 사는데 먹었뿌네.

이 아저씨가 먹었어, 밥을!!!”

 

사내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그 여인이 두려운 구렁이라 할지라도, 그 구렁이를 살립니다.

다시 한번 죽음을 선택하지요.

그런데, 그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사내의 손을 꼭 잡습니다.

그러면서, 구렁인 줄 알면서 어찌 밥을 뱉지 않았느냐며, 그 아버지 목소리는 사실 자기와 승천 경쟁을 하는 지네였다며, 자기는 이제 승천할 거라며, 앞으로 사내가 하는 일은 다 잘 될 거라며, 용이 되어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사내는 가족 곁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잘 살고요.

(구렁이 승천 안 했으면 어쩌려고 한 거야!!!)

맨 처음 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아이들이 셋 모두 밥을 뱉는다 했거든요.

그래서 사내가 밥을 삼키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정말? 진짜? 그러면서 놀라더라고요.

어찌나 귀여운지…. ​

사내가 밥을 씹다가, 그 밥을 삼키는 대목이 저는 여러 번 읽어도 너무 스릴이 있는 거예요.

어떤 선택의 순간이잖아요.

그 선택을 기다리는 구렁이 각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그것도 두근두근.

음이 가득 차서 양이 되고, 양이 가득 차서 음이 되는!

변화의 순간!

 

죽으러 간 길이 살길이 되고, 날 살려준 이가 실은 요물인 줄 알았는데 더 두고 보니 또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중이었고!!!

믿었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짜고ㅎㅎㅎ

진짜가 뭐고 가짜는 뭘까요?

 

​가족 곁으로 돌아간 사내는 또 거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고, 용이 된 구렁이 각시도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겠죠?

 

​오늘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지으러 고고!!

 

 

익어가는 녹두. ⓒ내리리 영주.
익어가는 녹두. ⓒ내리리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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