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와 ‘편견’ 사이에서 공동체 역할 찾기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포스터 이미지


1_ 진화의 역사 돌아보기

인위적인 전쟁이건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이건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효율과 인권은 충돌하는 것으로 치부됐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라는 말은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항상 모든 걸 대비하거나 모든 게 갖춰져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저 문구가 ‘거짓 신화’로 치부되어야 할 당위는 충분하다. 편의주의로 효율을 운운하기 시작하는 순간 면죄부가 생긴다. 우리는 ‘가난은 나라도 구할 수 없다!’ 같은 동종의 거짓 신화를 무수히 알고 있다. 이런 ‘합리’를 빙자한 전가의 보도를 쥐여주는 순간 괴물과 야만은 봉인을 풀고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윤리와 연민을 배제한 기계적 효율이 근현대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무엇을 탄생시켰는가? 불필요하거나 적대적인 존재를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나치의 우생학과 아우슈비츠 가스실이 등장했다. 열등한 인간은 위대한 국가에 불필요하고 자원을 낭비할 뿐이니 도태시키고, 우량종만 남기는 게 진화의 귀결이라는 ‘사회진화론’과 같은 “유사과학”은 야만적 범죄에 대한 합리화와 방조를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어두운 유산은 지금도 혐오와 차별의 현장에서 곧잘 튀어나오곤 한다.

정작 생명의 진화는 달랐다. 가장 알을 많이 낳는 동물로 알려진 개복치는 한 번에 3억 개의 알을 낳지만 그중 성체로 자라는 건 한둘에 불과하다. 생물의 진화 과정은 점점 적은 수를 낳더라도 성체가 알을 품거나 기본적인 자립이 가능하기 전까지 뱃속에서 보호하거나, 낳은 뒤에라도 캥거루의 배 주머니 같은 방식을 이용해 가능한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장구한 시간 동안 지구상에 군림했던 공룡도 집단 육아의 흔적이 확인된다. 아프리카의 비비 원숭이는 버려진 강아지를 돌봐서 자신들의 부족한 시력이나 후각을 보완하는 사례가 발견된 바 있다. 이는 돌봄과 효용의 결합이다.

지능이 발달한 무리에서도 돌봄은 확인된다. 향유고래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돌고래를 무리 내에서 양육한 실례가 보고되었다. 사람의 경우 노약자를 집단이 보호하는 것은 실리인 동시에 도덕적 규범화의 길이기도 했다. 차가운 기계적 효율성과 도구적 합리성이라는 허구가 세상의 법칙인 양하는 행태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거짓 신화’에 가깝다.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스틸 이미지

2_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장애인들이 처했던 상황과 피난 과정, 그리고 이후의 어려운 삶과 그들에게 주어진 대책에 관해 조명한다. 일본의 독립 다큐/자주영화가 주로 취하는 저널리즘 계열에 속한다. 일본의 방송이나 신문 같은 주류 언론매체가 놓치거나 외면해버리는 사각지대를 끈덕지게 추적하고 알리는 데 집중한다.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기교를 발휘하기보다는 다소 지루할지언정 성실하게 조사하고 차근차근 전달하는 꼼꼼함이 미덕이다. 그렇다 보니 영화적 재미는 사실 좀 약하다.

영화는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미증유의 재난을 맞이하던 당시 장애인들이 피난하지 못한 채 겪었던 절망감, 그리고 24시간 활동 지원이 이뤄만 졌다면 살릴 수 있었던 안타까운 죽음들을 회상한다. ‘대피하라!’는 말뿐, 자력으로 대피할 수 없는 이들은 잊히거나 구조마저 가족의 몫이 되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탈출한 이들에게도 문제가 들이닥친다. 오랜 세월 장애인에게 그나마 적정 환경으로 조성되어 온 익숙한 보금자리를 벗어난 이들에겐 선택권이 없다. 피난처로 찾아간 임시 대피소는 철저하게 장애인을 배제한 채 비장애인들의 수요에만 맞춰져 있어 이들은 눕지도 화장실을 사용하지도 못한다. 대안으로 주어진 것은 피난처의 장애인 수용시설. 가족이나 활동 지원에 힘입어 자립 생활을 어렵게나마 꾸려나가던 이들에게 집단 수용은 ‘보호’인 동시에 ‘감금’과 다름없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장애인 정책은 절멸에서 은폐와 배제로, 그리고 자립과 드러내기로 확장됐는데 재난 상황은 졸지에 그런 지난한 노력을 과거로 되돌려버린다. 그 결과 대피시설 바깥에 머물거나, 심지어 피난을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한다.

장기간 형성해온 지원시설과 커뮤니티의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장애인 다수는 그저 숨만 쉬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매뉴얼대로!’를 외치며 이런 쪽으로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일본의 행정력이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도처에서 행정당국과 언쟁이 벌어진다. 여기에서 중요한 화두가 하나 등장한다. ‘장애 정도보다 더 중요한 건 지원 체제’라는 것이다.

약간의 장애만 있어도 아무런 지원책이 없는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중증이라도 잘 정비된 지원 체계가 갖춰졌을 때 장애인의 생존은 물론 사회활동에서 더 유리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생각이란 걸 할 생각이 없었던 것뿐임을 깨닫게 된다. 여러 악조건으로 집단 수용을 포기한 이들은 정부의 구호 대책에서 소외된다. 행정 입장에선 예상하지 못한 이들의 존재는 완전히 열외 대상이다. 재난으로 유통이나 인력 모두 태부족인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와 작은 차이만으로도 외면해버리게 마련이니.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는 재난 상황에서 더욱 위험해짐을 영화는 성실히 입증한다.

그러면서 장애인 당사자와 지원 기관, 그리고 가족들이 나서기 시작한다. 이들은 ‘착한 장애인’이기를 거부한다. 민폐를 끼칠까 봐 당당히 요구하지 못한 채 자신을 스스로 가두는 게 아니라, 실랑이를 벌이면서라도 생존과 권리를 주장하고 작은 조치들을 얻어낸다. 지원 기관 종사자들은 자신의 안위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용자들과 함께 고생스러운 피난길에 오르거나 아예 행정당국을 거스르며 위험지역 접경에서 지원 활동과 시설 운영을 이어나간다.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스틸 이미지

재난 지역은 순식간에 물류와 교통에서 제외되고 모든 게 태부족하다. 이런 어려움을 전국적 장애-복지 관련 네트워크의 지원과 협력으로 이겨내려 애쓰고, 지원 근거를 만들기 위해 실태 조사에 나선다. 전국 각지에서 온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이 대책 마련을 위한 대면 조사를 하려면 장애인들의 명부가 필요한데, 행정관청에선 민간단체에 공유할 수 없다며 거부해버린다. 이런 고충을 거치며 실태 조사는 진행된다. 장애인들의 처지를 동병상련으로 이해하는 다른 지역 장애인 활동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들의 대면 방문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그저 연명하던 동북 지역 장애인들에게 심리 돌봄 효과를 선사한다.

많은 이들이 지혜를 모으고 꾸준히 실천하는 와중에 필요한 일정 부분 조치들이 불완전하게나마 집행된다. 최소한의 선택지를 두고 장애인 당사자가 주거공간을 결정하게 하는 건 별것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급박한 재난 위기 상황에서 장애인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지원인력마저 위험에 빠트리기 쉬운 긴급 피난보다, 안전이 확인된다면 가능한 현 주거에서 버틸 수 있는 응급 물자와 장비의 집적 방안이 고려된다.

 

3_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참고 효과란?

1년이 지나 감독의 카메라는 다시 동북 지역을 찾는다. 우여곡절 끝에 인터뷰하고 취재했던 장애인들은 다소나마 안정된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절박했던 현관 진출입 경사로가 마침내 생겼다. 이제 활동 지원이 없더라도 문 바깥으로 잠깐 산책을 할 수 있다. 커뮤니티 내 상호부조와 방사능 유출에 대응하는 지역 사회단체를 만들어 활동 중인 장애인 당사자는 집필과 강연으로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는 관청의 기약 없는 조치만 기다릴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그리고 더 실용적인 조치가 가능한 민관 협력의 커뮤니티 체제를 꾸리려 애쓴다.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행정이나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 재난 상황에 대한 ‘매뉴얼’을 만드는 이들이 반드시 봤으면 하는 영상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에서 허둥지둥 악전고투를 거듭하는 공무원과 복지기관 종사자들이 놓쳤을 법한 지점을 돌아보게 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하고 제기하는 요소들–장애 정도 못지않게 주변 환경에 대한 조사의 유효성, 장애인 심리 돌봄의 중요성, 행정의 부족을 보완하는 지역 공동체의 역할 등-은 다양한 형태의 재난 대응에서 참고할 가치가 차고 넘치는 필수 사항들이다.

물론 재난은 아무리 방비해도 완벽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면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관점과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자원과 역량을 분배할지에 대한 철학 기반을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을 시혜적 배려로만 한정하는 게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모든 걸 일거에 해결할 순 없을지라도, 해결을 위한 의지와 노력의 중단 없는 모색을 그저 옹색한 변명으로 땜질하려는 건 해결할 뜻이 없다는 것과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서울인권영화제 인권 아카이브 작품이다. 공동체 상영 문의는 이곳에서 가능하다.

전화 02-313-2407~8 전자우편 hrffseoul@gmail.com

홈페이지 http://hrffseoul.org/ko/archive

 

 

작품 정보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동일본 대지진과 장애인들

Left Behind: Persons with Disabilities from 3.11

逃げ遅れる人々 東日本大震災と障害者


일본, 다큐멘터리, 2012, 74분

감독 이이다 모토하루


19회 광주인권영화제(2014) 초청

20회 서울인권영화제(2015) 초청

20회 인천인권영화제(2015) 초청

1회 코로나19 인권영화제: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2020)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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