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고 이준서 학생의 아버지 이진섭 씨가 발언하는 모습.<br>
사진 고이준서학생사망사건공대위

노동자와 기업 간 근로계약은 대등한 입장에서 맺는 약속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개인 간 거래로만 맡기지 않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일정한 틀의 갖추는 ‘표준 근로계약서’를 권장한다. 노동자 대부분이 회사에 과정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노동 관련 법률에 따라 보호받는다. ‘대부분’에 속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아직도 많은 것이 우리 사회다. 현장실습생도 그랬다. ‘일과 학습’을 병행한다고 하여, 작년에 8월에 관련 법이 제정되었고 지난 8월에 시행령이 마련되었다. 이 법의 기본 골격은 학생 신분에서 임금노동을 하는데 ‘학습노동자’를 그동안 노동법을 준용하던 것에서 직접 적용 대상자로 포함하는 것이다.

이 법률 두고 일각에서 ‘중소기업 인력양성과 청소년 일자리 문제 해소’라며 한껏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일학습병행법)’은 97년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이어 또다시 우리 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첫째, 개인과 기업이 대등한 조건이 아니다. 일학습병행법에서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은 학습 기업참여”를 제한한다고 한다. 이런 규제 조치가 우리나라 법률체계에 새롭게 등장했다고 말은 노동 후진국이라 인정하는 것이다. 본질은 우리 법에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사문화되었던 것이 문제이다. 부당노동행위를 반복하여 발생하는 기업이 다수가 존재하는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기업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생계에 내몰린 노동자가 눈앞에 있는 일자리를 거부할 수 없다. 한 달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수 없다. 안전한 일터에서 모든 노동자가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야지 학습노동자를 위험한 일터를 회피하는 것으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둘째, 노동조합의 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청소년노동자를 저임금 시장으로 진입하라는 말과 같다. 노조가 있어도 산업재해 인정받기 힘든데, ‘단체협약’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작동하지 않는 빈약한 노조 협상력으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없다. ‘근로자의 결합노동시장지위가 임금 분포에 미친 효과(정준호, 남종석, 2019)’에 따르면 대기업 노동자는 노동조합 여부와 관계없이 비슷한 임금을 받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는 조합 존재 여부에 따라서 노동조합이 없는 정규직은 69%, 비정규직은 58%로 수준을 받고 있다고 한다.

셋째, 일학습병행법은 “능력이 있고 경험이 풍부한 직원을 기업현장교사로 지정해 기업 주도로 현장훈련이 이뤄지도록 한다”고 한다. 기업의 훈련체제를 정비하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라 ‘기업현장교사 지정’ 방식은 개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정책은 그 사회의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기업직업훈련실태 기초분석 보고서(고용노동부 2015.12)’에 따르면 교육훈련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은 전체 1%이며, 교육훈련을 전담하는 부서는 전체 기업의 4.9%(2014년 7.8%)이다. 1995년 고용보험 교육훈련 분담금 정책 시행 이후 기업은 직업훈련에 직접 투자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장기간 지속하고 있다. 실정이 이렇다. 생존경쟁에 내몰린 중소기업은 더욱 훈련체제가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실태를 봤을 때 사실상 ‘중소기업 인재 양성’체제라는 일학습병행법의 설명은 허구일 뿐이다.

넷째, 청소년기에 학생이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지 따져보자. 기업에서 물건 만드는 노동자의 생산 활동을 학습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일학습병행법은 학생이 임금노동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모든 활동은 임금노동의 대상이다. 기업에 입사 후 노동자는 생산 활동 참여 기간에 더 높은 노동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훈련과정을 거친다. 이런 차원에서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노동능력을 함양에 매진해야 할 학생이 기업 입사 전에 임금노동을 하게 만드는 법률이다. 노동자가 노동생산 전 기간에 걸쳐서 높은 수준의 숙련노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입사 전에 일정 수준에 개인의 발달이 있어야 한다. 최고 수준의 노동능력도 겸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금노동은 일과 학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고등학교는 공공재로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데 기본 운영의 목적을 두고 있다. 교육기관과 훈련기관을 구별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문제 해결책을 법률화했다. 일터기반 학습 제도는 교육적으로 인간 발달에 정점에 이르지 않는 노동자를 산업현장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학습근로자 보호 조치가 현실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훈련과정이 체계화되지 못한 공간에서 임금노동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몇 년이 지나면 노동생산성은 떨어진다. 졸속 병행법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97년 촉진법이 그랬듯이 우리는 또 다른 희생자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과 학습을 병행할 시기는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 아니라 기업의 노동자일 때 성립하는 것이다. 일학습병행제 법률은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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