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역사 이야기] 목화와 개미
[근현대 역사 이야기] 목화와 개미
  • 강철민
  • 승인 2020.09.12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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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율아!


언제 무더운 여름이었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귀뚜라미가 소리 내 울고, 매미 소리는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는구나. 가을이 왔어.

개구쟁이 꼬마들은 늘 심심했어. 오늘은 또 무엇을 하며 놀까. 또 누구 집에 가서 놀까. 종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 하는 생각뿐이었지.

목욕탕과 이발소, 자장면 가게가 있었던 동네 중심지에 친구가 살았어. 제법 큰 골목길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던 집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인집과 일곱 가구가 화장실 하나를 같이 썼던 셋방살이였던 것 같아.

작은 대문으로 들어가면 큰 마당이 나왔고, 왼쪽 두 번째 집에 친구가 살았어. 작은방이 두 개 있었는데 끝에는 아름드리 오동나무가 턱 하니 서 있는 부엌이었지. 천장은 하늘로 올라간 잭과 콩나무처럼 나무로 뚫려 있었어. 비만 오면 오동나무를 타고 빗물이 줄줄 내려와 부엌의 흙바닥은 온통 진흙탕이 됐고, 투명하게 삭은 하늘색 플라스틱 골 지붕으로 들어온 빛은 환했어.

배가 고플 때쯤 친구는 능숙하게 연탄아궁이 옆, 삭아서 뼈대만 남은 가스레인지에 계란 하나를 구웠어. 간장과 마가린을 한 숟갈씩 퍼 넣고 비빈, 기름진 밥 위에 정확히 계란 반을 갈라 얹어 줬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늦은 점심을 먹었어.

버터 맛 과자를 나눠 먹으며 조잘조잘 쓸데없는 이야길 하고 있었지. 작은 곤충 사체를 이리저리 나눠서 지고 가는 개미가 눈에 들어왔어. 과자 조각을 부숴 개미한테 던져줬어. 큰 과자 조각을 잘도 물어갔지.

책가방에서 돋보기를 꺼내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을 쳐다보다, 햇빛을 모아 점을 만들었어. 개미들은 교도소 탐조등 같은 불빛이 가까워지니 혼비백산 흩어졌어. 뜨겁고 강력한 불빛에 스치기만 해도 개미들은 주저앉아 엎어졌어. 그때 다시 한번 화력을 집중시켜. 동전처럼 넓적했던 빛을 최대한 모아 뾰족하게 만들고 개미의 등을 겨냥해.

총알같이 뾰족한 초점을 유지하느라 이마에는 찍 땀이 났어. 옆구리에서 터져 나오는 움처럼 온몸의 신경과 세포가 돋보기로 집중되고, 숨소리조차 가늘어져.

곧 연기가 피어오르고 개미는 타들어 가.

 

충북 영동에 노근리라는 동네가 있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삼백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굴다리를 만났는데, 그 굴다리 반대편에는 미군들이 기관총을 걸어 놓고 대기하고 있었어. 피난민들이 그 굴다리를 빠져나오는 순간 기관총은 뜨겁고 강력한 불빛을 내며 사람들을 쏘았어. 사흘 동안 이백여 명을 학살했지. 이 사건을 두고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라 불러. 전쟁이 끝나고 한 기자가 당시 미군을 찾아갔어.

“왜 쏘았나요?”

“민간인이지만 적으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상급의 지시가 있었다.”

그 인터뷰를 보고 어린 시절 장난으로 죽였던 개미가 생각났어. 타 죽은 개미 떼들.

 

한국전쟁 이전 일제강점기 때 ‘대동아전쟁’이라는 전쟁이 있었지. 보통 **‘태평양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은 일본과 미국의 전쟁이었어.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계속 전선을 확대하던 일제는 군수물자를 더 확대하기 위해 병참기지가 더 필요했고, 이를 점령하기 위해 미국을 선제공격해. 직접적인 전쟁은 피하고 동남아에서의 지배력을 확대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제의 패망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어.

다음 자료는 이러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에 발행된 자료야. ‘국민총력충청북도연맹’과 ‘충청북도농회’ 공동명의로 만들어진 리플릿인데 일어와 한글로 되어 있어. 식민지 조선 30년이 넘는 시점인데 한글을 병행한 건, 아마 지역의 촌로들과 아이들도 알아듣기 좋게 하기 위해서였겠지. 대표적 친일단체 공동명의에, 제국주의 말기 리플릿이니 그 내용도 가관이겠지?

‘국민총력조선연맹’은 1940년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제의 국가주의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뒤를 이어 지역의 부, 군, 도, 읍, 면, 정, 이, 부락, 반까지의 식민지 조선 전체에 뿌리 깊게 만들어진 단체야. ‘국민 총력’이라는 기관지도 만들어 배포했는데, 전시(戰時)에 모든 것을 총력(總力) 하자는 내용이지.

‘조선농회’ 또한 밖으로는 농업, 농촌을 기반으로 일제의 식민지 병참기지의 역할을 확대하고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했고, 안으로는 식민지 조선 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했어.

 

국민총력조선연맹 기관지 ‘국민총력 1942년 7월 호’.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 소장 자료.
국민총력충청북도연맹, 충청북도농회 발행 리플릿.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 소장 자료.

리플릿의 내용을 살펴보자!

 

알 림

목화 공동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목화를 공출합시다!!

일본은 지금 대동아전쟁이라는 세계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큰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참된 동양평화를 세우기 위하여서는 많은 물건이 필요하나, 특히 목화는 중요한 군수품입니다.

그 군수에 응하자면 재배자가 목화를 공출함으로써 참된 총후의 봉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귀중한 아들을, 내 형을 나라에 바치고 있는 여러분을 생각하면 우리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소소한 부자유나 괴로움을 참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라도 나라를 위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가소비를 하지 맙시다!!!

수확한 목화는 전부 공출하여서 훌륭히 총후국민의 책임을 다합시다.

면화보국ㆍ소비절약ㆍ책임공출ㆍ생산확충

국민총력충청북도연맹ㆍ충청북도농회

 

일제를 위해, 천황을 위해 귀중한 식구를 바친 분들을 생각하며 군수품을 더욱 잘 바치라는 저 글을 한 자 한자 읽어가면서 너무 놀랐고 마음이 아팠어.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닌지 다시 읽어 봤어.

친일파 심판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아직도 떵떵거리며 사는 당사자와 그 후손의 권력과 재산들이 식민지 조선 민중의 피와 땀, 자식과 형제, 자매의 목숨값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을까?

손바닥만 한, 한 장의 리플릿을 통해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당시의 모습에 기가 막히고 머리가 어찔하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 1950년 7월 26일 미군이 충북 노근리에서 피난민들을 학살한 사건. 미국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도 위에 한국인 양민 300여 명에게 기관총을 발사해 200여 명 이상이 숨진 사건이다. 2004년 2월에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 및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명예회복사업이 추진되었다.

**태평양전쟁 :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미국 해군 기지를 선전포고 없이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미국은 12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각각 투하했다. 1주일 뒤 일본 왕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1945년 9월 9일 일본은 중국에 대해서도 별도의 절차를 거쳐 항복했다. 

(다음백과 발췌 요약)



 

글 _ 강철민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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