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세대의 시선에 비친 명절과 제사, 가족이란?

 

명절이 괴로운 청년 세대들

음력설과 함께 한 해의 양대 명절인 추석이 곧 다가온다. 하지만 올해 구정을 넘기자마자 창궐한 코로나19의 여파로 근래 보기 드물게 사람들의 이동이 적은 명절이 될 듯하다. 용돈만 보내라는 전갈이 시작되고, 코로나 이후 온라인을 이용한 택배는 오히려 늘어가니 사람 대신 금전과 재화만 오가는 명절이 될 것도 같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며 고립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추석 귀성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음을 반기는 속내도 젊은 층에서는 만만치 않다. 그만큼 가족과 만나 즐거워야 할 명절이 청년 세대에 부담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과 친지는 멀리 있을수록, 자주 안 볼수록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호한 유머가 있다. 안 보이면 추억을 회상하며 그리워하지만 보는 순간 우리네 가족이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닌 현실 세태의 반영인 것처럼, 그 안에서의 위계와 서열, 불합리가 곧바로 작동하게 마련.

특히 젊은 세대에게 능동적으로는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에 대한 가족의 걱정과 염려가 불편한 참견과 훈수로, 수동적으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안정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명절이 괴로워지곤 한다. 오랜만에 가족과 재회하는 순간까지가 반가울 뿐, 큰집 작은집, 형 누나 언니 오빠 동생 간 비교가 시작되면 지옥문이 열린다. 누군가는 적당히 타협하며 눈치를 보고 다른 누군가는 격렬하게 세대 간 갈등의 당사자가 된다. 아마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훗날을 기약할 것이다.

청년 세대들의 이야기는 독립단편영화를 통해 시대의 초상과 기억으로 기록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명절을 둘러싼 애환 또한 그러할 터. 몇 편의 독립 단편영화를 통해 청년 세대의 시선으로 본 명절의 풍경과 각자의 대응 방식에 대해 스케치해보려 한다.

 

첫 번째 시선 : <삼겹살>이 들려주는 갈등과 타협


임혜영 감독의 2017년 단편 <삼겹살>은 모부 세대의 시각으론 혼기를 한참 놓친 외동딸과 연로한 아버지가 추석 명절 뒤 끝에 벌이는 슬랩스틱 코미디 군상 극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가고, 뜸하게 시골 고향에 들렀던 비혼의 딸은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터미널로 향하는 중이다.

 

"삼겹살"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삼겹살> 스틸 이미지

부녀는 마치 티격태격 개그 만담을 벌이듯 말싸움을 해댄다. 아버지는 외동딸이 ‘결혼적령기’ 한참 넘긴 채 홀로 직장 생활을 하는 게 여간 미운 게 아니다. 딸은 비혼주의 소신을 가진 듯 보인다. 아마 두 사람은 추석 연휴 내내 티격태격했을 테다. 둘은 죽어라 싸워대지만, 근본적으로 사이가 나쁘진 않아 보인다. 정말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이라면 대화는커녕 얼굴도 안 보고 살게 마련인데 속사포처럼 대화를 이어가니깐. <삼겹살> 속 부녀는 기본적인 정은 유지되지만 세대 간의 일치할 수 없는 고정관념 싸움에 가깝게 청년 세대의 명절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식이다.

미운 정으로 서로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더라도 적당한 간격을 띄워두면 가족 간 기본 관계는 유지할 수 있지 않겠냐는 감독의 태도가 느껴지는 <삼겹살>은 가족끼리 낄낄대면서 볼 수 있는 독립영화일 것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저 정도면 사이좋네!’ 하며 부러운 시선으로 영화를 보지 않을까? 그러다 제목처럼 느닷없이 삼겹살이 동하면 불판 꺼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쌈 사 먹는 그림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두 번째 시선 : <김장>이 보여주는 억압과 폭력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다나 감독의 <김장>은 앞서와는 정반대의 기운을 가진 작품이다. 친척 집은 그렇게 편하고 즐거운 공간이 못 되는 경우가 흔하다. 단순한 낯섦을 지나 친족이란 이유로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않고, 집안의 안녕을 위해 억지로 참거나 오히려 피해를 본 이가 감내해야 하는 적반하장의 일도 흔하다.

 

"김장"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김장> 스틸 이미지

가을 김장에 합류하려는 어머니를 태워주기 위해 주인공은 10년 만에 시골 외갓집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외갓집에 가는 게 내키지 않는다. 그녀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외가 친지들은 아무렇지 않고, 주인공은 어머니를 생각해 꾹꾹 눌러 담은 분노와 함께 김장에 참여한다. 그리고 10년 만에 그곳에서 이모의 남편과 만난다.

그녀에게 이모의 남편은 외갓집 친척 모두가 쉬쉬하는 나쁜 짓을 저질렀었다. 하지만 외가 누구도 그것을 쉬쉬할 뿐이다. 자신은 어릴 적 그 상처로 10년 내내 고통받았는데도. 집안의 체면을 위한다며 친척들은 그저 뒷짐을 지고 어물쩍 구렁이 담 넘어가려 하거나 피해자인 그녀에게 너만 참으면 모두 평온하다는 압력을 가할 따름이다.

훈훈한 김장의 풍경은 배추의 숨을 죽이고 양념에 버무리는 과정의 연속이다. ‘Me, Too’의 전선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다 사라지곤 하는 언론방송 뉴스뿐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깜빡이고 있음을 <김장>은 이야기하려 한다. 거짓 평화를 위해 김장독과 함께 파묻어버리려는 부당함과 누군가는 잊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진실들은 묻어둔 김장독 꺼내듯 드러내고 치유해야 함을.


세 번째 시선 :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의 일탈이 주는 판타지


<김장>이 여전히 잔존한 가족의 구습에 상처받는 청년 세대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면, 이나연 감독의 2018년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판타지 요소를 가미해 상당히 전복적인 설정을 선보인다. 불과 1~2년 사이에 세상이 확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스틸 이미지

연말이 다가오고 세 남매는 옛날에 가족이 함께 살던 변두리 집에 모인다. 동네 곳곳은 철거와 재개발이 한창이고 남매들은 오랜만에 들른 집에서 부재 상태인 어머니의 옷을 입고 김장을 한다. 이 남매들은 어느 순간부터 매년 마지막 날은 모여서 함께 김장하며 보내기로 한 모양이다. 각자 따로 사는 세 남매는 이사를 갓 마쳤거나 준비하는 중이다. 통상 김장 풍경을 진두지휘하는 어머니는 통 보이지를 않는데 자녀들은 어머니 이야기를 섞어가며 현실 남매처럼 다투기도 하고 구박을 주고받으며 김장을 이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단순하지만, 전복적인 상황이 관객에게 밝혀진다.

자매들이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종종 가출을 감행해왔고(!) 아버지도 공백 상태인 이 가족 구성원들은 속 편하게 하고픈 대로 사는 어머니 덕분에 고생이 여간 아니었던 것 같다. 남매들은 어머니의 온갖 만행(?)을 폭로하며 다시 우애를 다진다. 그 순간 어머니에게서 뜬금없이 소포가 도착한다. 그리고 말문이 막힌 남매들이 툭 내뱉는 대사가 이 영화의 제목이다.

후반을 장식하는 비현실적인 순간들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전복적인’ 설정의 가족을 잘 표현한다. 어머니와 세 자녀는 함께 어울려 이국의 춤사위를 환상 속에서 신명 나게 펼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새로운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일터로, 어렵게 장만한 자신의 보금자리로 별 미련 없이 떠나는 남매의 순간은 미래의 한국 가족에게 남는 관계란 이런 것이라는 소리 없는 선언처럼 비친다.

 

네 번째 시선 : <추석 연휴 쉽니다>, 단절 혹은 독립된 일인 세대


영화계 내에서 성평등 활동에 앞장서는 활동가이기도 한 남순아 감독의 2020년 신작 <추석 연휴 쉽니다>는 전복적인 판타지를 선보인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보다는 좀 더 현실에 내려앉은 모양새지만, 명절에 대한 변화된 세태가 잘 반영된 작품이다.

 

"추석 연휴 쉽니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추석 연휴 쉽니다> 스틸 이미지

추석 연휴 혼자 사는 집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 이영은 영화 시작부터 명절이고 뭐고 없이 클라이언트의 억지 주문에 웨딩사진 수정 작업 중이다. 그런 이영에게 결혼한 친구 다정이 느닷없이 찾아오고, 이영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동년배 친구이지만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의 삶은 같을 수가 없다. 서로 달라진 환경 탓에 각자에게 ‘열폭’하던 두 친구는 이제 치졸한 폭로를 개시하고 우정이고 뭐고 다 날아갈 지경에 처한다. 그런 확전 후 그래도 친구니까 둘은 서로 사과하고 화해한다. 하지만 이제 둘 사이에 놓인 조건의 상이함은 과거에 장성한 자녀들이 출가하면 서로 멀어지던 풍경의 판박이처럼 보인다. <추석 연휴 쉽니다>는 이 영화는 1인 가구의 증대, 결혼하지 않는 청년 세대의 증가와 그 실태, 막연한 향수와 과거의 기억이 변화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독립영화로 본 추석과 명절 풍경


최근 몇 년간 등장한 네 편의 독립단편영화를 통해 나름대로 청년 세대의 눈에 비친 명절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압축 근대를 겪어 온 한국 사회는 유래를 찾기 힘든 세대 간 단절과 사회적 변화에 노출되어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정부 등 공적 영역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사회안전망과 교육책임 등이 온전히 개인, 특히 가족에 집중되어 온 현실은 ‘가족’이라는 존재를 마치 고대 원시시대의 ‘부족’ 같은 폐쇄적인 집단으로 변모시켰다. 그런 가족의 범위를 규정하고 구성원의 결속을 다지는 일종의 ‘제의’로서 명절과 제사는 하나의 성역이 되었고, 과거 실제 풍습과는 별 관계없는 “만들어진 전통”이 대거 등장한다. ‘홍동백서’라는 제사 상차림 또한 별다른 유래가 분명하지 않음이 드러남에도 인터넷 검색하면 온갖 예법들이 확인된다.

정작 그런 정체불명의 만들어진 전통과 가족의 신화가 사라진다면, 현대사회에서 원자화된 개인들이 일상에 지칠 때 찾게 될 원초적 공동체 안전망이자 정서적 유대의 틀로서 ‘가족’은 새롭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 가부장제 구습 아래 위계로 작동하며 이해관계를 감춘 채 유지되는 가족 구조로부터의 ‘탈주’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시간은 청년세대에게 유리하니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헬 조선의 청년세대에게 기성세대들이 예찬하는 ‘가족 명절’은 불편한 초대라는 것을 독립단편영화의 풍경은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작품 정보

 

김장 Gimjang

드라마, 2017, 19분

감독 이다나, 주연 한태의

3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2017) 경쟁(오감만족 국제단편경선)

43회 서울독립영화제(2017) 경쟁(단편)

19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2017) 경쟁(19+)

 

삼겹살 Porkbelly

드라마, 2017, 12분

감독 임혜영

주연 전규일, 김다인

18회 전주국제영화제(2017) 경쟁(한국단편)

9회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2017) 경쟁(국제)

4회 가톨릭영화제(2017) 경쟁(CaFF 단편)

1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2017) 경쟁(국내)

7회 충무로단편영화제(2017) 키덜트뮤지엄상(일반,비경쟁 부문)

19회 대전독립영화제(2017) 장려상(일반/대학 본선 경쟁)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Do Cabbages Grow in Africa?

드라마, 2018, 28분

감독 이나연, 주연 신지이

23회 부산국제영화제(2018) 경쟁(와이드 앵글-한국단편)

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경쟁(단편)

7회 디아스포라영화제(2019) 초청(코리안 디아스포라)

15회 인천여성영화제(2019) 초청(단편)

20회 대구단편영화제(2019) 국내 경쟁

 

추석 연휴 쉽니다 Full Moon

로맨스·멜로, 2020, 20분

감독 남순아

주연 강진아, 임성미

21회 전주국제영화제(2020) 경쟁(한국단편)

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2020) 경쟁(한국 단편)

1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2020) 경쟁(국내 경쟁-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16회 인천여성영화제(2020) 초청(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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