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stics can make it possible.’

20여 년 전 캐나다 유학 중이던 언니 자췻집에 석 달간 머무르던 당시 보았던 한 텔레비전 광고의 문구다. 액체가 든 페트병이 떨어지며 깨지지 않는 걸 보여주며 이 문구가 나오는데 특정 제품이 아닌 플라스틱 자체를 광고하는 게 특이해서, 또 ‘플라스틱’은 오래 생각해 온 주제이기도 해서 마음에 남아 있다.

당시 캐나다의 상황을 잘은 모르겠으나 이 광고로 짐작하건대 반(反) 플라스틱 정서가 있지 않았나 싶다. 환경호르몬이 알려지던 때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이에 석유에 기반을 둔 산업자본은 그런 정서에 정면으로 대응하며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냐’고 묻는다.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서, 플라스틱과 함께 인류는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애’ 드라마 <닥터 후>의 한 단편에는 전 세계의 플라스틱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인간을 공격하는 설정이 나온다. 지금 주변의 넘쳐나는 플라스틱이 나를 공격한다면 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플라스틱이 꿈틀거리며 내 목을 조르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실지로 플라스틱은 물리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환경호르몬에 더해 미세플라스틱으로 몸 안에 들어와 병을 유발하고,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으며(한겨레 기사, “플라스틱 이대로면 2050년께 온난화 주범 된다” 참조) 인류와 그 인류와 어쩔 수 없이 공동 운명체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거대 담론보단 두 개의 질문에 대해 나만이 쓸 수 있는 (정답 아닌) 체험기를 써 보고 싶다.

자유의지로 ‘플라스틱 프리’를 추구해 오다 거의 전향하게 된 개인사를.

 

사진 정연주.
사진 정연주.

사는 게(living) 사는 것(buying)의 연속이라니! 버느라 힘들고 쓰느라 힘든 돈, 돈을 벌고 쓰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은 피할 수 없다며 한 달 생활비를 30만 원에 동결한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전봇대도 없는 골짜기로 귀농했다.

비료, 농약은 물론 밭에 비닐도 덮지 않고 농사 지었지만,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피하긴 힘들었다. 일단 잠을 자야 했기에 비닐하우스를 지었고, 고추끈이나 콩이나 깨를 털 때 필요한 플라스틱 포장, 담을 자루 등도 필요했다.

비닐 덮지 않고 농사지으려면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는데, 타고난 에너지가 많은 남편이었지만 술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하며 막걸리를 요구해서 막걸리를 정기적으로 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쌓이는 페트병을 보며 한숨짓다 한때 막걸리를 떨어지지 않게 담기도 했으나, 담아 먹으니 더 많이 먹는 부작용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다.

작은 집에 식구가 느니 정리가 안 되어 리빙박스를 숱하게 사기도 한 흑역사도 있다. 없이 살다 보니 지인들이 필요할 때 쓰라며 아이들 책이나 옷 미술용품, 장난감 등을 몇 상자씩 주기도 했는데 이왕 생겨서 나에게 온 물건들 소중하게 보관했다 쓰자고 쟁여 둔 것이 많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묵은 땅 개간해서 시작한 농가 살림에, 돈이 되지 않는 농사에 빚은 점점 늘어갔다. 이렇다 할 수익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빚은 늘 목에 걸린 가시 같았다. 농사로 적은 돈이라도 벌어 보려면 어김없이 뭔가가 필요해졌고, 빚이 늘고 오염 물질이 따라붙었다. 농사로 돈 버는 걸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했지만 아르바이트가 끊길 때마다 경제적인 위기가 왔다.

지금은 안동환경운동연합 반상근을 하며 계절 별미와 농수산물을 파는 자영업을 겸직하고 있는데, 건강식 개발과 보급이란 의도는 좋은지만 이번에도 역시 포장이 문제다. 매장이 좁아 대부분 포장 판매를 해야 한다. 김밥 같은 고형식은 일회용이긴 하나 종이 포장재를 쓸 수 있는데, 팥죽 같은 유동식은 플라스틱 용기 아니면 아직 대안이 없다.

소비자는 선택할 수 있지만, 생산자는 선택할 수가 없다. 담아 갈 용기를 가져오는 사람에게만 판다고 선언하고 싶지만 그러자면 내 팥죽이 먹고 싶어 장날을, 날 새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빽빽해야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소소하게 노력하다 자영업자가 되고 보니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다. 이건 뭐 거의 전향이다.

 

안동환경운동연합에선 얼마 전에 ‘플라스틱 제로를 위한 기업문화 만들기’ 사업을 안동와룡농업과 함께 시작했다. 나 하나 바뀌는 게 뭔 도움이 되겠나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개인이 먹고 마시는 데 드는 플라스틱만 줄여도 큰 효과가 있을 것 같다. 텀블러 들고 다니기도 잘 안되는 것 같긴 하지만 텀블러를 넘어 그릇 가지고 다니기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생선이나 고기류를 사면 그 비닐이나 스티로폼 등을 냄새 안 나게 씻어 버리는 것도 일인데 용기를 가져가서 담아 오면 그 일이 줄어 든다는 장점을 널리 알리고 싶다. 물론 생선이나 고기를 안 사면 일이 더 줄어든다!

 

사진 정연주. 

시장에선 마트보다 포장재를 줄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상인들은 비닐 하나도 돈이라 보기에 용기를 가져가면 좋아한다. 물론 시장에도 다 포장해 놓고 파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그래도 더 여지가 있다.

이번 여름에 음료를 페트병에 담아 주고 페트병을 되가져오면 오백 원을 내주는 ‘페트병 보증금제’를 해 보았는데, 여러 번 써도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이라 고민이 된다. 여름은 갔고 팥죽의 계절이 오고 있으니 용기를 가져오는 사람에게만 팥죽을 파는 목표를 세워만 놓고(월세는 내야 하니 ㅜㅜ), 용기를 가져오면 오백 원 깎아 주기를 해 봐야겠다. 작년엔 덤으로 더 주는 정책을 썼었는데.

이러나저러나 오십보백보라는 자괴감을 극복해 가며 이리도 해 보고 저리도 해 본다.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 또는 ‘플라스틱과 함께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진행형이다.

빚 걱정 없이,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과도한 걱정 없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 두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슬기로운 지구 생활에 대한 답을 찾을 시간과 여유를 가진다면 한정 없이 머리가 좋은 인류는 살아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플라스틱 말고 많고 많은 생물종들과 함께.



글 _ 정연주 안동환경운동연합 사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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