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간식 6] 무수옹 이야기
[이야기 간식 6] 무수옹 이야기
  • 내리리 영주
  • 승인 2020.09.23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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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비가 억수로 오네요.

오늘도 오전에는 비가 안 오더니 점심 지나고 비 님이 오시네요.

다들 별 피해는 없으신가, 걱정이 됩니다.

우리 동네는 작은 개울이 있거든요, 작년에 한 번 넘쳐 놀란 적이 있어서, 이렇게 비가 계속, 또 많이 오면 괜히 두근두근해요.

교통사고 이후에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중인데, 병원까지 한 20분 운전을 해서 나가야 해서, 비가 오니까 두 배로 긴장이 되는 거예요.

물리치료로 풀린 근육이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면서 다시 뻣뻣해지는 기분이에요.

투덜거리고만 있을 수 없어서 여느 여름처럼 햇볕이 쨍쨍하면 어떨까, 잠깐 생각해봤는데, 더워도 또 힘들잖아요.

나란 사람 이렇게 걱정과 불안과 불만 속에 사는구나, 싶어요.

엄마야 그러든지 말든지, 삼 남매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볕이 쨍쨍하면 쨍쨍한 대로, 해맑게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없는, 또는 내 보기에 잔걱정만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무수옹(걱정 없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황금들판으로 익어 가는 논. ⓒ내리리 영주.

얘들아, 걱정 없는 할배 이야기해 줄까?

“왜 걱정이 없어? 부자야?”

“좋겠다, 집이 커?”

부자는 집이 크고 걱정이 없겠어?

이 할배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야.

이 할배는 하는 일마다 잘 되고 걱정이 없어서, 사람들이 ‘무수옹’이라고 불렀대.

무(無)가 ‘없다’는 뜻이고, 수(愁)가 ‘근심·걱정’이고, 옹(翁)이 할아버지라는 말이거든.

그래서 무수옹.

이 무수옹 할배는 자식이 열셋이야.

자식이 많으면 걱정도 많은데, 어째서 걱정이 없는 걸까?

“헐… 왜 이렇게 아이가 많아?” (셋 다 깜놀)

가끔 그렇게 식구가 많은 집이 있어.

아들이 열둘이고 딸이 하나였는데, 자식들이 서로 아버지를 모셔가겠다는 거야.

그래서, 열두 아들은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시고, 윤달이면 딸이 모셔갔대.

“윤달이 뭐야?”

그런 게 있어.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이 무수옹이 어느 집에 가든지 가는 곳마다 웃음이 넘치고 행복했대.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듣지만, 저의 내면에서는, 아니 무슨 한 달씩 떠돌이 생활하는 게 뭐가 좋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났어요.

게다가 시아버지건 친정아버지건 우리 집에 한 달 같이 사는 상상을 해보면!

웃음이 넘치고 행복할 일은 ‘1도’ 없을 것 같은! 비관적인 감정은 뭐랍니까. ㅎㅎㅎ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전에 무수옹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거 어느 가부장 나부랭이가 작정하고 만든 이야기 아니야? 하는 반감이 막 치고 올라오는 겁니다.

 

​이 걱정 없는 할배 소문이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갔어.

임금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행복한 줄 알았는데, 걱정 없는 사람이 있다니까 궁금했던 거야.

그래서 궁으로 불러.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까, 진짜 세상 편한 마음을 가진 거라.

임금이 상을 줘.

반짝반짝하는 구슬 보석을 주면서, 다음에 올 때 꼭 가지고 오라 해.

이제 무수옹이 집에 가려고 배를 탔는데, 뱃사공이 그 구슬 좀 보여달라는 거라.

그래서 보여줘. 그런데, 뱃사공이 그 구슬을 놓쳐. 어떻게 되었겠어?

뱃사공이 ‘아이고 이거를 우짭니까? 미안합니대이. 귀한 거로…!’

하니까 무수옹이 ‘어쩌겠습니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걸요.’ 이래.

엄마라면 경찰 불렀을 거야.

 

강에 빠진 구슬은 당연히 되찾을 수 없고, 무수옹은 집에 와서 자식들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걱정들마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래요. 자식들은 모두 모여 걱정을 하고 위로하고요.

식구들이 모이자 자식들이 아버지 몸보신시켜드리려고 장에 가서 물고기를 사 왔어요. 요리하려고 물고기 배를 가르니 거기서 바로 그 구슬이 나옵니다. 무수옹이 보더니, 임금님께 받은 그 구슬이라고 했고, 집안에는 다시 즐거운 웃음꽃이 폈지요.

 

임금님이 어느 날 다시 무수옹을 불렀어. 임금이 부르는데 가야지. 무수옹은 구슬을 잘 챙겨서 임금님께 갔더니, 임금님이 구슬 좀 보자 하셔.

그래서 품속에서 구슬을 꺼내니까, 임금님이 깜짝 놀라.

왜 놀라냐면, 그 뱃사공 말이야.

그 뱃사공이 구슬을 일부러 떨어뜨린 거였어. 임금님이 무수옹을 시험해 보려고, 뱃사공한테 명령한 거야.

“헐! 임금님 왜 그래?” (둘째)

그러게 말이야. 요즘 세상이면 임금 탄핵이지. 그런데 왕이나 임금은 탄핵이 안 돼.

아무튼, 무수옹이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하니까, 임금님은 ‘하늘이 내린 복은 어쩔 수 없군요. 과연 무수옹이십니다!’ 그랬대.

임금님한테도 인정받은 무수옹은 남은 평생을 아무 걱정 근심 없이 잘 살았대. 그 자손들이 저기 불로리 옆에 무성리(실제 있는 동네 이름)라고 있어. 거기 모여 살아.

‘무성’이 무수옹 무수옹… 빠르게 발음해서 무성리야.

“엄마, 거짓말이지?” (첫째)

그 마을 가서 물어보든가.

 

무수옹 이야기는 아이들이 디게 재미있어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좀 울림이 남더라고요.

사고 후에 보험처리와 치료 문제로 안 겪어본 일을 하나씩 경험해보는 중이라 마음이 좀 복잡하기도 했거든요.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일어나니까 화나고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렁이더라고요.

실제로 손해가 되기도 했고, 일상을 회복하려니 힘이 들기도 하고요. 

통증 때문에 감정이 널뛰는 건지, 감정 때문에 통증이 더 크게 느껴지는지 헷갈릴 즈음, 무수옹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었어요.

…저 노인은 늘 거칠 것이 없고 막힐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무엇에 연연하지 않고 바람처럼 햇살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사람, 생각해 보면 한 달에 한 번씩 아들 집을 옮겨 다니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번거롭고 괴로운 일일 수 있다.

(중략)

하지만 저 노인한테는 그것이 즐거운 일이었다.

다른 자식의 집에 갈 때마다 늘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다.

당사자가 그러하니 자식들 또한 그러하다.

늘 즐겁고 쾌활하게 움직이니 집에 모시면 생기가 넘친다.

그러니 기꺼이 노인과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려 한다.

저 노인은 이렇게 스스로 복을 만들어 갔던 게 아닐까?


-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신동흔, 우리교육, 328쪽

 

▲팔공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군위 하늘정원 방향. ⓒ내리리 영주.
▲팔공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군위 하늘정원 방향. ⓒ내리리 영주.

신동흔 선생님의 풀이를 보고, 다시 ‘무수옹’ 이야기를 곱씹어 봅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끝없이 이어지는 젠더 이슈, 정말 22세기가 안 올지 모르겠다 싶은 기후의 변화… 너무 거대해서 내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일들부터, 앞으로 차는 어찌해야 할지, 밤마다 욱신거리는 목과 허리와 팔다리는 어찌해야 할지… 걱정거리가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지만, 남은 시간 벌벌 떨며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무수옹은 아주 깊은 체념을 한 번 한 사람은 아닐까도 생각해봤어요.

어떨 도리가 없는 상황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

남은 삶은 걱정 없이 살겠노라 작정한 사람.

저는 뭐 아직 욕심도 많고 걱정도 많은, 아주 그냥 보통의 엄마 사람이지만, 가끔 비타민처럼, ‘무수옹 이야기’를 꺼내 먹으면서, 열린 마음으로 살아볼까 싶어요.

일단, 지금은 그렇다고요. ^^




 

* 무수옹 이야기,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신동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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