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마음 울적한 날엔”
[이 영화를 보라!] “마음 울적한 날엔”
  • 김상목
  • 승인 2020.09.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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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미래 앞에 선 청년세대의 초상

 

"마음 울적한 날엔" 포스터 이미지


1_ 세대갈등과 “00세대”론의 전성시대


세대갈등은 기원전 고대 벽화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인 문제이다. 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그 레퍼토리 또한 지금과 구도상 큰 차이는 없었다. 세대갈등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속도로 사회 변화는 진행되는데 사회 구성원 중 기성세대의 인식 변화가 뒤처지는 데서 오는 ‘문화 지체’ 현상이 원인이다. 사회 내 자원 배분에서 기득권에 서기 쉬운 기성세대와 새롭게 분배를 원하는 청년세대 간의 ‘자원 분쟁’이 이를 심화시킨다.

수천 년 이어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보기엔 현대사회 세대갈등은 좀 더 긴장도가 높아지고 대립 양상이 첨예화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과거보다 사회 변화가 급격하게 빨라졌다. 한 세대를 30년 주기로 잡게 마련인데 지금과 30년 전, 1990년을 비교해 본다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많은 면이 달라져 있음을 새삼 느낄 것이다. 변화는 다방면으로 현기증이 날 만큼 빨라지지만, 사람의 인식은 그 속도에 대응하기 어렵다.

또한 ‘100세 시대’라 칭할 만큼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후속 세대가 기대하는 세대교체 또한 정체 현상이 심화한다. 과거보다 적체된 일자리와 사회적 입지 등에 대한 불만은 과거의 주요 대립 항인 노동 vs 자본, 지역 vs 수도권, 비정규직 vs 정규직 문제들과 뒤섞이면서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를 더욱 복잡계로 몰고 가는 중이다.

하지만 ‘00세대’로 지칭되는, 언론이 즐겨 언급하는 세대-론은 허점도 만만찮다. 엄밀하게 정치사회적 검증 속에서 사후평가로 명명되는, 실체가 명확한 세대 구분이 아니라 그저 흥미나 연령대, 혹은 상업적 수요를 위해 억지로 가져다 놓는 세대 구분은 인위적인 유행어로 소비되기에 십상이다. 무엇보다 그 규정의 주체가 당사자가 아닌, 기성세대의 언론이나 광고 문구라는 게 그 허위성을 드러낸다. 엄밀한 조사와 검증을 거치지 않는 “00년생의 특징!”이라는 게 갈수록 개별화되는 요즘 세대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지 조금만 따져 봐도 그 빈약한 논리를 간파할 수 있다.

요즘에 핫한 세대 논의는 ‘90년대 생’이다. 연령대로는 대학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는 세대이고 현재 ‘헬-조선’ 담론의 총아다. 인터넷에서 자학 개그로 종종 올라오는 ‘사상 최악의 세대, 00년생’의 단골 세대다. 기성세대는 대개 이를 보고 혀를 찬다. 무슨 고생을 해봤냐고. 반면 해당 연령대의 청년세대는 정작 그런 유의 도매금 규정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기성세대의 인식 또한 부정하고 분개한다. 억지 설정된 세대 규정 사이 어딘가에서 청년세대는 부유하고 있다.

 

2_ 청년세대 현주소의 지극한 일부, <마음 울적한 날엔>

 

“평소와 똑같은 하루, 하지만 유난히 마음 울적한 그런 날이 있다.”

청년세대에게 <마음 울적한 날엔>의 홍보 카피는 꽤 감각적으로 다가갈 것 같다. 과거 산업 일꾼으로, 민주화 주역으로 숨가쁘게 달려와 이제는 사회 주류가 된 기성세대들의 무용담을 시도할 기회가 부여되기는커녕, 앞 세대가 만들어놓은 틀에 짜인 구조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가파르고 좁은 문턱 주위를 떠도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으니. 집단으로 뭉쳐 저항하거나 투쟁해서 뭔가를 쟁취하는 체험 또한 경험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저 하루하루를 ‘카르페 디엠!’이나 ‘욜로!’로 자위하며 견딜 뿐이다. 이런 이들에게 <마음 울적한 날엔>의 카피는 세대적 공감을 얻기 충분해 보인다.

 

"마음 울적한 날엔" 스틸 이미지
영화 <마음 울적한 날엔> 스틸 이미지

단편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 <필름다빈>이 2019년 가을 <내일, 우리>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단편영화 옴니버스 기획 이후, 1년 만에 두 번째로 시도하는 프로젝트 역시 3편의 단편영화를 묶어내는 옴니버스 영화다.

스토리가 연결되지는 않지만 90년대 전후 출생 세대들의 공통적 특질을 통해 하나의 느슨한 풍경화 같은 심상을 조성하는 구조다. 유사한 주제 혹은 소재를 통해 장편과는 차별화된 단편영화의 맛을 극장에서 체험하는 실험인 셈이다.

일관된 이야기 구조로 1시간 30분을 관통하는 장편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3~4편의 독립된 이야기 구조가 원심력으로 연결되는 이런 단편 옴니버스 연작이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는 아직 지켜봐야겠지만, 일회성이 아닌 이런 도전은 지켜볼 가치가 충분하다.

 

2_1.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

세 편의 단편 옴니버스 연작의 첫 번째 이야기는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다. 꽤 긴 제목인데 세 편 중 상영시간도 거의 중편 분량인 40분 가깝게 제일 길다. 과거에 배우였으나 지금은 연기를 중단하고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연우와 동업자인 작가 성준은 좋은 콤비이지만 뭔가 과거의 사연이 있는 모양새다.

성준의 소개로 영화감독인 산수의 작품 상영회가 가게에서 열리고, 뒤풀이 자리에서 연우는 취중에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실수를 산수의 영화 출연 배우에게 저지른다. 그 이후로 셋은 계속 만남을 이어간다. 연우와 성준의 가게에 드나드는 손님들 또한 주인공들처럼 가난한 예술인들이 대부분이다. 전직 배우, 뜨지 못한 작가, (상업영화로 진출 못 한) 독립영화 감독인 주인공들은 악의는 없지만, 서로에게 참 서툴다. 그러다 보니 그냥 입 밖으로 꺼내면 될 것을 배배 꼬고 변죽만 울리곤 한다. 그런 세대적 특성이 장면마다 잘 녹아 있다.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 스틸 이미지
영화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 스틸 이미지

영화는 뚜렷한 전개와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는 대신, 한국뿐 아니라 당대 청년문화의 아지트로 배경만 조금 바꾸면 영국 맨체스터건 미국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 일본 도쿄나 오사카 클럽 골목이나 프랑스 파리 카바레 구석 모두 어울릴 법한 그런 독립문화 공간에 모인 젊은 예술가들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설익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예찬과 빈한한 처지에 관한 자조, 젠체하며 현학적 태도를 과시하는 위악, 아직 대인관계에 서툰 좌충우돌 우정들이 감각적이고 ‘힙’한 배경음악처럼 넘실거린다. 악의는 없지만 삐걱거리는 ‘세 친구’-상처를 안고 방황하며 그런 자신을 숨기려는 연우, 친구에 대한 미안함으로 안쓰러워 보일 만큼 주눅 들어 있는 성준, 그리고 연우의 재기를 도우면서 캐스팅 욕심도 내는 산수 역을 나눠 맡은 강길우, 오동민, 이태경 배우의 안정감 있고 캐릭터 확실한 연기도 신뢰할 만하다.

 

2_2. 두 번째 이야기, <이무기여도 괜찮아>

두 번째 이야기는 청년세대 이야기와 직접 맞닿은 주제의식을 가진, <이무기여도 괜찮아>이다.

유튜브 채널에 올릴 동영상 촬영을 하러 영노와 광철이 산에 오른다. 영노는 스타 유튜버가 되겠다고 하지만 그의 과거를 돌아보면 쉽게 끓어올랐다 금세 식어 버리는, 제대로 꿈이나 목적을 잡고 실행해본 적이 없는 청춘이다. 그를 도우러 촬영을 맡은 광철 또한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늘 말하지만, 영화는 나올 생각을 않는다. 둘은 미스터리한 사건을 주제로 영상을 제작하려 하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들의 어설픔과 알력을 시작부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선후배의 엎치락뒤치락은 그렇게 유쾌하지도 못하다. 서로 충고나 조언을 해준다지만 감정이 섞여 있다 보니 듣던 상대는 화만 난다. 그러다 인적 없는 산속에서 뭔가를 찾는 심희를 만나고, 영화는 느닷없이 좀 깊은 동네 뒷산을 판타지의 공간으로 설정하기 시작한다.

 

"이무기여도 괜찮아" 스틸 이미지
영화 <이무기여도 괜찮아> 스틸 이미지

등장인물 셋 다 각자의 목표는 있지만, 그 실천을 위한 ‘한방’이 없다, 유튜브 스타, 폼 나는 영화감독, 승천해서 용이 되기를 각각 꿈꾸지만 정작 왜 그 목표를 이뤄야 하는지 동기는 딱히 없다. 그저 남들에게 대접받는 성공을 하고 싶을 뿐. 기성세대로선 노력도 하지 않고 패기도 없고 독기도 찾기 힘든 세대의 초상이 썰렁한 영화 속 상황들에서 쭉 진열된다.

감독은 자기 세대의 허술한 빈틈을 포장하거나 억지로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저 이들이 좀 자유롭게,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길과 목적을 찾도록 내버려 두길 희망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당대 청춘의 초상을 독립영화가 묘사할 때는 대개 두 방향으로 나뉘는 편이다. 극단적인 잔혹도 아니면 소확행. 두 유형 중 <이무기여도 괜찮아>는 기본적으로 후자에 속하겠지만, 시니컬한 코미디 정서는 다른 ‘욜로 풍’의 작업과는 달리 쌉쌀한 색깔이 진한 편이다.

요즘 언론에서 종종 등장하는 기사, 청년세대가 소확행을 외치다 어느 순간 주식에 몰입한다는 부류의 기사들은 <이무기여도 괜찮아> 두 주인공의 전반부 행태와 무섭도록 매치된다. 본 작품은 관객의 세대와 조건에 따라 꽤 상이한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다. 하지만 감독이 자기 세대를 관객으로 우선 설정해 만든 작업임은 명백해 보인다. 심희 역 김예은 배우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능력, 감독의 대표작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의 주연 배우 곽민규·김시은의 특별출연도 소소한 재미를 주는 중간 계투 격의 작품.

 

2_3. 세 번째 이야기, <마음 울적한 날엔>

옴니버스의 마무리를 차지한 작품은 영화 제목과 같은 이름의 단편 <마음 울적한 날엔>이다. 앞의 두 편이 독립된 단편으로 소개된 후 옴니버스 장편에 결합했지만, 표제작이라 할 본 작품은 별도 공개 없이 옴니버스 영화로 처음 소개된다.

 

"마음 울적한 날엔" 스틸 이미지
영화 <마음 울적한 날엔> 스틸 이미지

비 오는 어느 날, 헤어진 연인 인규와 나연은 은행에서 고객과 직원으로 마주한다. 대출 연장을 위해 사정하러 온 최악의 순간이라 인규는 나연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둘은 그리 좋지 않게 헤어진 사이인지 얼음장 같은 시간만 흘러가고, 인규는 변죽만 울리며 나연의 질타를 묵묵히 듣기만 한다. 퇴근 시간까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인규는 나연에게 밥이나 먹자며 기회를 엿보지만, 나연의 핵심을 찌르는 일갈에 변명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연속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부드러운 말은 할 줄 모르는 나연에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녀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인규의 갑갑한 행태에 혀를 차게 되곤 한다. 영화는 극적 화해 같은 억지 설정 없이 담백하게, 마치 현실 일상에서 우연히 옆 테이블의 커플 간 언쟁을 지켜보는 듯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마음 울적한 날엔>은 자기 본심을 솔직히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꿍하게 묻어두고만 있는 요즘 세대의 이미지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이것저것 귀가 얇아 관심은 두지만 제대로 자기 주관과 목적을 강하게 갖지 못한 채 한 귀로 듣고 흘리거나, 정작 중요한 검증을 객관적으로 잘 해내지 못한다. 은행에 근무하며 산전수전 겪은 나연의 눈에 인규는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남 좋은 일만 해주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것처럼 단호하거나 계산적이지 못하다. 그녀가 그를 떠난 것도 그런 우유부단함 때문일 것이다.



3_ ‘매너리즘’의 기원 탐구와 <마음 울적한 날엔>의 풍경


세 편의 단편은 뚜렷하게 연결되거나 공통의 소재로 묶이지 않는다. 작품마다 요즘 청년세대의 어떤 단면 혹은 초상을 그려낸다.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는 요즘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립문화 공간 한구석에 진을 치고 있는 성공하지 못한 청년 예술가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어떤 고민을 할까에 대한 영상 보고서 같은 느낌을 주며, <이무기여도 괜찮아>는 가장 대중적으로 본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비교적 밝은 톤의 기조로 다가온다. 표제작이기도 한 <마음 울적한 날엔>은 현실에서 아직 길을 찾지 못한 주인공들의 세대 행보처럼 어슴푸레하다. 만약 두 번째와 세 번째 단편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본 옴니버스 영화의 색깔도 달라졌을 만큼 세 편의 작업을 배열하는데 적지 않은 고심과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매너리즘’이란 단어는 답습과 반복의 이미지로 굳어졌지만, 의외로 그 유래가 단순하지 않다. 미술사에서 매너리즘은 바로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 사조에 해당한다. 중세에서 근현대 미술로 전환되는 획기적 전환점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는 천재들이 넘쳐났다.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 스틸 이미지
영화 <나는 사람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 스틸 이미지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그 이름은 들어봤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세대 바로 다음 세대는 유행을 다 뒤엎어버린 이들 거장과 늘 비교당하며 열패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천재들이 확 바꿔놓은 새로운 사조를 제대로 따라가기도 힘겨운데 그걸 해내더라도 그저 답습과 모방으로 대우받을 뿐.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려 하면 이미 눈높이가 잔뜩 올라간 당대 세간의 눈에 인정받기도 힘든 이중의 고충에 처했고, 그렇게 미술사의 한 시절은 도매금으로 ‘매너리즘’이라는 부정적 개념으로 기록되어버렸다.

하지만 현대 미술사 연구가 거듭 이어지면서 근래 들어 이 ‘매너리즘’의 시기를 재평가하려는 흐름이 적지 않다. 르네상스의 시기에서 근대 미술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이들은 앞선 선배 거장들이 확립해놓은 고전주의와의 결합을 통한 완벽한 균형 추구에서 길을 약간 틀어 좀 더 자유롭고 비균형적인 실험과 모색을 거듭했다. 그 결과는 당대를 지나 바로크-로코코로 이어지는 미술 사조에서 꽃을 피웠다.

문득 매너리즘의 기원을 떠올린 건,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후 ‘경제개발-산업화 세대(조부모)’와 ‘민주화-고도성장 세대(부모)’에 위축된 현재 청년세대의 처지가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 사조의 형편과 공통점이 있어 보여서다. 아직 뭔가 해낸 게 없으니 자기주장을 강하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위 세대의 고리타분한 노력 드립이나 대의명분에 찬동할 수도 없는 후발주자의 고뇌라는 면에서 비교할 거리가 꽤 있을 테다. 어느 개그맨의 일갈처럼, ‘누구나 경력직을 찾으면 나는 어디에서 경력을 쌓나?’ 좀 당분간은 지켜보면서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형성할 때까지 놔두면 될 테다. 아니 지켜보고 자시고가 아니라 당장 기성세대도 간섭받고 훈수 듣기 싫어하지 않았는가.

 


작품 정보


마음 울적한 날엔 One blue rainy day


한국, 드라마, 2020

2020.09.24. 개봉, 81분, 12세 관람가

감독 한유원, 강동완, 김남석

주연 오동민, 강길우, 이태경, 정도원, 박성준, 윤혜리

배급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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