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필사하기를 시작해 100일이 되었다. 지난여름 즈음부터 하루에 한 번, 책을 읽고 인상 깊은 문장들을 손으로 옮겨 적는 일이 100일을 맞이한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도 뿌듯한 일이었지만, 그동안 북스타그램 스토리에도 업로드를 해왔기에 100일을 맞이하여 북스타그램 유저들과 함께 기념하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나름대로 필사를 올려놓으면 매일 30~40명 정도가 읽었고 종종 필사 내용에 대한 메시지나 이모티콘을 받았기 때문이다.

함께 10일 필사해보기를 할까, 그래서 미션을 완수하면 선물을 보내줄까. 아니면 내가 쓴 필사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꼽아 보라 할까.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흘러 함께 필사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내가 쓴 필사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 무엇이었는지 설문을 받기로 했다.

100일째가 되는 아침. 필사한 이미지를 올리고 난 뒤 지금까지 올라온 필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나 책은 무엇이었는지를 메시지로 보내 달라고 적었다. 두근두근. 지금까지 적은 책만 해도 족히 30~40권은 될 텐데. 사람들은 과연 어떤 메시지를 보내올까. 몇 명이나 보내올까. 그 결과는 맨 마지막에 적도록 하겠다.

 

ⓒ이숲.

필사. 붓 필(筆), 베낄 사(寫). 베끼어 쓴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진 멋이 좔좔 흐르는 글을 만나면 수첩을 꺼내 베껴 적었고, 그걸 읽고 또 읽으며 마음에 새겼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어서는 ‘읽어야 할 책’을 위주로 읽다 보니, 그것도 많이 읽어야 하니 중요해 보이는 문장을 보면 신속하게 밑줄을 좍좍 긋는 게 최선이었다. 게다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을 읽고 있으니 문장을 옮겨 적고 싶단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던 게 컸다. 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더는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그냥 눈으로 휙휙 읽어 내려가며 읽었다. 그렇게 필사와 멀어졌던 것 같다. 당시에는 옮겨 적을만큼 마음에 남는 문장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문장에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필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작년에 했던 책 읽기 온라인 모임을 통해서다. 각자 같은 책을 구매한 뒤 일주일에 한 번씩 책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골라 필사해 SNS에 인증하는 모임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참여하게 되었고 곧 죽어도 숙제는 해야 하는 성격이라 매주 마감일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아 필사를 했다. 필사를 위해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읽다 보면 한 문장 정도는 발견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휙휙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읽어야 할 분량을 다 읽었음에도 도통 필사할만한 문장을 정할 수 없어 결국 필사할 문장을 찾기 위해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어야 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찾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덕분에 이번에는 한 줄이라도 꼭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문장을 유심히 살피며 읽다 보니 글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문장들 사이에서 내 마음에 닿는 문장을 열심히 찾아 헤맸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문장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물었다. 이 문장을 필사하면 어떨까, 이 문장은 어떤 의미로 적혀있는 것일까, 나는 왜 이 문장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일까. 이 질문들에도 살아남은 문장들은 따로 체크해두었다. 그렇게 체크를 해놓은 부분들을 보니 처음 읽을 때 그냥 지나친 것과 달리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에서 필사할 문장들을 다시 추리려고 했는데 꽤 어려울 정도로 하나같이 마음에 닿는 문장들이었다. 겨우 선택한 문장은 문장이 아니라 문단 수준이었다. 그것도 두 문단. 당시 읽었던 책은 프랑스로 입양된 여성이 임신 후 배 속의 아이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자신에게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기억의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는데 한 문장으로 담기엔 그 감정 선의 깊이가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땐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들을 필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읽었을 때 이렇게나 많이 발견하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경험은 이제 책을 읽을 때 습관이 되어 나타난다. 처음 매일 필사하기를 시작했을 땐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있으면 필사를 해서 올려보자는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필사에 쓸 문장들을 염두에 두면서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초기에는 도저히 매일 새로운 글을 읽으며 필사할 문장을 찾는 속도를 맞출 수 없어 전에 읽었던 책들을 쓱 훑어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적기도 했다. 다행히 한 달 정도가 넘어가니 습관이 되어 이제는 매일 새로운 글을 읽고, 읽었던 글 중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아 필사한다. 어떨 때는 필사를 하기 위해 매일 책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객이 전도된 걸까. 어찌 되었든 매일 책을 읽고, 매일 필사를 한다는 자체는 좋은 습관이니 더는 묻지 않는 것으로 하자.

 

ⓒ이숲.

필사를 하며 느꼈던 감정이나 좋은 점, 어려웠던 점 등을 더 쓰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다음으로 넘기려 한다. 매일 필사 100일 이벤트, 지금까지 올라온 필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나 책을 묻는 설문 결과도 발표해야 하니 말이다. 매일 필사를 올리면 적어도 30~40명은 읽는다고 미리 말씀드렸고 종종 필사를 보고 메시지를 보내주시거나 이모티콘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말씀드렸다. 그 결과, 설문을 보내주신 분은… 총 세 분이었다.

아침 일찍 설문을 올렸다. 아침엔 아침이라서, 점심때까지는 오전이었으니까, 저녁 6시까지는 일하시는 중이실 테니까, 이런 마음으로 밤 12시까지 기다렸는데 최종적으로 세 분이 보내주셨다. 심지어 그중 한 분은 질문을 잘못 이해하셔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 주시는 메시지를 보내셨다. 엄밀히 따지면 두 분만이 내가 쓴 필사에 대해 답변해 주신 거다. 함께 10일 필사하기 이벤트를 진행하면 어쩔 뻔했나. 설문을 댓글로 진행하면 어쩔 뻔했나.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었으니 총 세 분만 답변하셨다는 사실은 나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만 아는 것이다. 나름 400여 명에 달하는 팔로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는 연구가 좀 필요할듯싶다. 그래도 한 분이 남겨주신 메시지는 마음 깊이 남았다. 그분의 답변 덕분에 매일 필사하는 데 꾀병을 부릴 수 없을 것 같다.

 

“<방랑자들> 필사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그때 좀 울고 싶었는데 필사 문구 읽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숲.

그래서 오늘도 매일 필사를 한다. 매일 필사를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매일 필사 200일 기념에는 더 많은 반응을 기대해보며 오늘도 북스타그램 태그를 건다.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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