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다. 3월과 4월, 밖은 위험했다. 갑자기 시간들이 집안에 갇혀 뒹굴었다. 여러 날 밤을 새우며 드라마와 영화를 눈이 빠지게 봤다. 아, 이 얼마나 기다리던 시간이냐! 이렇게 늘어져 있는 것이….

눈이 휑해지고 허리가 아프도록, 그간 보고 싶었으나 읽지 못했던 소설을 꺼냈다, 이 시절에 떠올림 직한 소설 <페스트>와 <영혼의 자서전>을. 그리고 17살에 내 영혼에 접속했던 만화책 <유리가면>. 10년 전쯤 동네 비디오 가게가 문을 닫을 때 마흔아홉 권 전집을 샀으나 읽지 못한 채,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이 50이 넘어 지금 보아도 울림을 주는 책이다. 소녀 시절 10권짜리 유리가면은 <모모>와 함께 내게 ‘몰입’에 대해 일깨워주었다. ‘연극’을 처음 만난 것도 이 책을 통해서다. 그 후 어쩌다 연극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에서 연극이론을 공부했고 한때는 연극평론가로 지금은 사이코드라마를 하고 있으니 유리가면이 갖는 힘은 내게서 어마어마한 것이다!

여유로운 시간은 세상으로 향해 있던 시선을 나로 돌아오게 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존재하는지, 나의 자서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고양되었다. 그 사이 문밖에서 서성이던 두려움은 달아나버렸다.

 

#살아남는 법1. 나를 바라보라.

몰입과 성장은 두려움을 쫓아낸다.

책을 보는 틈틈이 봄 쑥이 돋아나 산천을 덮었다. 나는 친구가 사는 청도 오봉리 아지매들과 들과 밭으로 나가 쑥을 뜯었다. 어린 새싹들이 자라는 결들 사이로 바람과 함께 다녔다. 머위가 자라고 꽃이 피고 피어, 청도 들산은 복숭아꽃 자두꽃이 만발하여 분홍 꽃대궐이었다. 비탈진 밭허리에 앉아 소리 한 자락 내기도 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은 잘도 흘렀다. 집으로 데려온 쑥으로 국을 끓이고 떡을 해 먹는 일은 내 생에 처음 해보는 일이다. 별이 억산 위에서 돋고 달이 동에서 서로 지나가는 동안 아궁이에 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낮의 빛과 밤의 어둠을 이리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니! 초롱한 별빛과 깊은 고요와 평화가 우리 곁에 머물렀다.

수입이 줄었다. 3월과 4월은 수입이 ‘0’이었고 그래서 지출 규모를 줄였다. 월 지출이 많은 사무실을 이전했다. 힐링드라마아트센터도 경산여성회도 사무실 이사를 했고, 그렇게 비용을 절반 이상 줄였다. 인정으로 들었던 보험들도 정리했다. 이자가 나가는 할부금을 없애고, 매달 나가는 수신료를 줄였다. 밥 잘 사는 누나로 소문난 내가 밥을 사는 대신 밥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고립과 한갓진 시간은 부모님에게 밥을 지어드릴 수 있게 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90이 되어가는 부모님께 처음으로 밥을 해드렸으니. 솜씨가 좋으신 엄마의 밥을 지금도 얻어먹으니…. 목욕탕에 가지 못하게 되자 욕조를 핑계로 우리 집으로 오셔서 목욕을 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별 요리랄 것도 없지만 금방 지어 함께 먹는 밥은 맛있었고, 쓴 커피도 달다 하셨다. 덕분에 나의 음식 레퍼토리가 몇 가지 늘었다, 일주일마다 오던 행복했던 시간은 7월까지 이어졌다.

5월엔 황차를 만들고, 6월엔 복숭아 열매를 추려내고, 9월엔 홍차를 만드는 하동에서 찻잎을 따고, 새벽별이 질 때까지 생태적 삶과 학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텔레비전엔 날마다 확진자를 발표하고 사람 사리의 거리 두기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고립은 사람과 문명이 아닌 자연으로 나를 데려갔다.

 

#살아남는 법2. 자연과 더 가까이.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자연에서 나는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먹는 삶!

이웃과 나누고 바꾸어 먹을 수도 있겠지.

나는 남은 생의 방향을 정했고, 더 빨리 당겨야 함을 깨달았다. 자급자족 공동체를 향하여 집을 지을 터를 보러 다녔다. 물려받은 유산도 없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연극을 하고 여성인권운동가로 살면서 지금까지 공부하는 내게 돈이 있을 리 없다. 러시아문학을 하는 시인이 내게 물었다. “어떤 집을 원하느냐?”면서 “나는 공짜로 쓰는 집이 좋아요” 라는 그의 말에 우리는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그렇지, 내가 땅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지. 주위를 살피면 노는 공간들은 널려있기도 하다.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사용할 수 있는 공간. 그곳을 찾아 봉무동에도 청도에도 하동에도 마산에도 마음을 두어본다. 그러는 사이, ‘영혼의 집’과 ‘치유센터–평화의 집’의 모습도 구체적이고 좀 더 선명해졌다. 내가 가는 곳 어디나 치유의 공간임을 알게도 되었다.

 

#살아남는 법3. 자신의 비전(Vision)에 다가가라.

언제나 어디서나 그 길 위에 있도록….

사진 이은주.

6월이 지나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었다. 조금씩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미뤄두었던 평화학교 강사과정을 시작했다. 불특정 다수, 대중을 만나는 일은 이제 ‘위험’하다. 소수가 만나 깊은 나눔을 하는 것이 자타가 공인하는 지혜로운 방식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소수를 늘 만나왔던 나로서는 새로울 것이 없이,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소수가 만나 고립을 벗어나고, 깊이 상호작용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맞춤한 때이다. 우리는 5명 캠프를 하기로 했다. 마음의 치유와 의식의 성장을 위한 배움의 장인 5명 캠프. 5명이면 다양한 경험을 나누며 서로 투사하기 좋다. 깊이 신뢰하고 나눌 수 있어, 깨달음을 얻기에 매우 좋다. 네 번의 1박 2일의 캠프는 좋았다. 소수의 안전한 공간은 내밀한 즐거움을 누리고, 자유와 풍요를 경험하게 한다.

 

#살아남는 법4. 내밀한 즐거움을 나누는

소수의 만남을 가져라!

고립은 새로운 연결을 시도한다. 우리 마을의 문제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관계로 나는 그 손을 잡았다. 17살에 의료공백으로 억울한 죽음에 이른 정유엽 군 사고 관련 대책위와 함께 거리 서명을 받고,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교사들을 인제 와서 징계한 문명고등학교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무엇보다 경산여성회 책 모임이 이루어졌다. 성폭력 피해자의 억울한 사연과 가정폭력을 겪은 젊은 여성들을 만났다. 정치적 폭력과 차별이 없는, 새판을 짜는 물결 속에서 함께 삶을 나누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경산으로 이사 온 지 13년째이지만 지금처럼 깊이 마을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언제나 떠날 마음으로 살았는데, 코로나19가 ‘지금 니가 사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연대하고 뿌리를 내리’라고 기회를 주었다. 지지와 연대가 필요한 비혼 여성들의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예전보다 더 다정하게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마을의 고통에 손을 잡으며 내 손도 따뜻해졌다.

 

#살아남는 법5. 

마을과 연대하고, 지지체계를 만들어라!

고통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고 대면의 위험이 강조되면서 비대면 상담과 모임들이 이루어졌다. 온라인 강의와 회의가 이루어지고, 사이코드라마도 드디어 온라인으로 하기 시작했다. 사이코드라마의 정신은 만남과 생명력의 회복이다. 온라인 드라마는 컴퓨터 앞에 몸을 고정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3시간을 하고 나면 몸이 굳어간다. 그리고 감각, 감정, 깊은 무의식과의 만남은 불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 위험하다. 격정이 솟아오를 때 옆에 돌볼 사람이 없다면, 전문가의 안내가 없다면 위험해질 수 있다. 온라인드라마가 사이코드라마의 정신에 맞지 않으나 그렇게라도 만나고 연결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인류는 온라인 접속을 통해, 또 다른 방식을 통해 연결을 시도할 것이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들이 탄생하겠지. 두 팔로 껴안을 때의 가슴 깊이 따듯함과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추기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아주 싫어하지만 거부할 수 없어 ‘줌(ZOOM)’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느새… 이번 일요일 저녁 텔레 드라마를 하기로 이미 했으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보기로 한다.

 

#살아남는 법6. 변화를 즐겨라!

 

2020. 10. 3. 새벽에

 

글 / 이은주 경산여성회 회장. 

1965년 성주 생. 여성주의 사이코드라마티스트, 동화작가, 이은주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 이 글은 시인보호구역과 함께하는 “코로나 뚝 심리 똑똑” 출판물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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