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님~ 집에 어린 것들이 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애들을 봐서 저 좀 살려주세요. 대신 이걸 드릴 테니 길을 비켜주세요.’

오누이의 엄마는 떡을 줬어. 호랑이가 그걸 받고 길을 비켜줘. 그런데, 한 고개 넘으니 또 호랑이야. ​

‘호랑이님~ 집에 어린 것들이 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애들을 봐서 저 좀 살려주세요. 대신 이걸 드릴 테니 길을 비켜주세요.’

오누이의 엄마는 치마를 벗어줘. 호랑이는 길을 비켜줘. 그런데, 한 고개 넘으니 또 호랑이야. ​

‘호랑이님~ 집에 어린 것들이 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애들을 봐서 저 좀 살려주세요. 대신 이걸 드릴 테니 길을 비켜주세요.’

오누이의 엄마는 왼팔을 던져줘. 호랑이는 길을 비켜줘. 그런데, 한 고개 넘으니 또 호랑이야.​

(*이야기 출처 :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 3>, 임석재, 한림출판사)

 

저놈의 호랑이 때문에요.

호랑이가 오누이의 어미가 가진 떡을 가져가더니 나중엔 팔다리도 가져가고는 결국 잡아먹고, 거기서도 멈추지 않고 엄마 시늉을 자식들까지 잡아먹으러 가잖아요.

오누이의 엄마가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을 들려주는데, 어찌나 속상하던지요.

이야기에 들어가서, ‘이 어마이야 정신 차리고 도망을 가라!!! 저 호랑이 결국 니 잡아먹는다!!!’고 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몰입이 되어서 혼이 났답니다.

제가 몰입되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동작을 멈추고 눈 똥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봤어요.

그 눈을 보니 또 덩달아 저의 긴장도 높아지고. ㅎㅎㅎ

적고 보니 우습지만, 진지했습니다. 그 순간.

반복되니까, 확실히 더 쪼는 느낌!

​이야기 속 호랑이처럼 일상을 야금야금 파먹어가고 있는 것들이 여러 가지 떠오릅니다.

나도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고 잡아먹히는 게 아닌가 두렵습니다.

그 마음을 안고 또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눈으로 글씨를 읽을 때보다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 더 감정이 강렬하게 드는 게 참 신기해요.

 

가을이 깊어지니 하얗게 드러나는 거미줄. ⓒ내리리 영주.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가 왔는데, 엄마가 좀 이상했대. 그래서 손을 보여 달라 한 거라. 

‘엄마 손이 왜 이리 꺼칠꺼칠해?’ 하니까 엄마로 변장한 호랑이가 ‘부잣집에서 하루 종일 베를 매어 주느라 풀을 만졌더니 그 풀이 말라붙어서 그르네.’하고 답을 해. 일리가 있잖아?

- (둘째) 엄마 그런데 베가 뭐야?

……

일단 그거는… 나중에 안동에 베 짜는 거 볼 수 있는 데가 있거든, 나중에 코로나 지나가면 가서 직접 보자. 일단, 호랑이가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이여! 사실 엄마도 풀이 뭐 어떻게 손에 붙었다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애들이 듣기에 그 목소리가 또 좀 달랐나 봐.

‘엄마 목소리가 왜 그래?’하고 물었대. 엄마가 진짜 보고 싶었을 텐데, 그래서 막 달려나갔을 텐데, 이 아이들은 되게 조심조심한다 그렇지?

호랑이가 ‘니들 보고 싶어 찬바람 쐬면서 달려왔더니 그런갑다.’하니, 그제야 아이들도 문고리를 벗겨줬대. 지금으로 치면 잠금 해제한 거지! 우짜노… 큰일 났다, 이제! ​

- (첫째) 괜찮아, 애들 도망가. 

 

아이들이 이야기를 이미 아는 게 이럴 때는 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겁에 질린 막내를 보면서 이야기 수위를 조절해야 하나 어쩌나 하는데, 첫째가 저렇게 김을 딱 빼주니까, 여유가 생기고, 저는 다시 용기를 내서 호랑이가 막내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이 나오는 장면으로 옮겨가 봅니다.

 

​엄마로 변장한 호랑이가 방에 들어오더니, 막내한테 젖을 먹인다면서 아기를 안고 부엌에 불때러 간다고 하고 갔대.

- (첫째) 막내가 있었어?

응. 막내가 있는 버전이 있어. 지금 그거를 들려주는 거야. 들어봐.

​호랑이는 아기를 안고 나가면서 밖에서 문을 잠가 버렸고,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아기를 잡아먹었대. 오도독오도독 소리가 나니까 애들이 방에서 ‘엄마 뭐 먹어?’ 묻는 거라. 엄마로 변장한 호랑이가 ‘일해 준 집에서 콩 볶은 걸 주드라. 그거 먹는다.’ 하니까 애들이 ‘우리도 좀 줘!’ 한 거라.

호랑이가 뭘 줬는데, 아이들이 보니까 아기 뼈야. 그때 아이들이 알아채지. 저거는 엄마가 아니구나. 호랑이구나. 이러다 우리도 죽겠다. 그래서 연기를 시작하지.

‘엄마 똥 마려워 똥똥!!!’​

 

막내 이야기가 들어가니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올 이야기로 급변신하죠? 이 부분을 들려줄 땐 이야기 공부를 한 게 무척 도움이 되었어요.

 

예천 그루작 식물원에서. ⓒ내리리 영주.

 

잔혹한 이야기도 아이들에게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 아이는 엄마가 필요합니다.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엄마 없이 혼자서 듣는다는 건 아이 마음속 우주에 아주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엄마가 아이를 안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때는 괜찮습니다.

​아이의 마음속 우주에는 온갖 정령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이는 커가면서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이 아이만 고생하지 않고 살도록 특별히 예쁜 운명을 주셨을 리가 없습니다. 잔혹한 이야기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그러한 극한의 인물이나 상황을 경험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는 자기 마음속 우주에 사는 어두운 정령들을 만나고 그들과 맞서고 대결하는 정신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 <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 이재복, 문학동네, 21쪽

 

좀 무서운 이야기~ 들려줄 필요도 있대요. 단, 품어주는 어른이 곁에 있어야 한다고 이재복 선생님은 말씀하시네요. 제 경우는, 현실의 무섭고 잔혹하고 갑갑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사람이 엄마였어요. 온 삶으로….

우리 집 아이들에게 제 삶의 이야기는 어떻게 비칠까요? 확신하건대… 세 아이 모두 저를 다르게 떠올릴 거예요! 그건 또 아이들 영역이니까, 패스~!

 

​저 호랑이는 우리가 앞에서 많이 이야기해 본 것처럼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산속 깊은 곳에서 왔다고 먼저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 산속 깊은 곳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상징하는 겁니까?

그 산속 깊은 곳은 바로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고향 같은 곳이고, 무의식이 깊은 영역이라 할 수도 있지요. 호랑이는 그곳에서 왔습니다. 또 달리 말하면 호랑이는 어디서 갑자기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고, 바로 엄마의 마음속 우주에서 나온 그림자 괴물이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엄마에게는 일종의 관문 수호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엄마라면 엄마가 중심이 되어 자기의 자리에서 옛이야기를 즐기면 좋겠어요. 엄마는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호랑이에게 먹혔습니다. [눈 찔린 동생] 이야기나 [학교에 간 사자] 이야기에서는 주인공들이 먹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친구가 되어 같이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옛이야기에서는 엄마가 호랑이에게 먹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살다 보면 사람은 내면의 그림자 괴물에게 완전히 먹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물론 위험한 순간이고 또한 그 위험한 순간도 누구나 성장을 하면서 거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오는 하나의 시련입니다. 사람은 고난 극복의 리듬을 타고 사는 것이지요.

 - <아이들은 이야기 밥을 먹는다>, 이재복, 문학동네, 140쪽 


아이들과는 재미있게 나누었지만, 글로 풀어내기 어려웠던 이유는 저 호랑이에 대해서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자꾸만 화가 나서였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도 서울 집회를 많이 다녀왔다고 합니다. 오가는 길에는 마주치는 어르신 중에 누가 광화문 집회에 다녀왔는지, 검사는 받았는지…. 이런 의심을 하게 된 이 상황이 너무 속상해요. 익숙한 일상을 야금야금 삼켜버리는 코로나 시국이라는 이 시기 전체가 ‘엄마를 삼킨 호랑이’처럼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호랑이를 통쾌하게 골려주지요.^^ 아이들은 뒷부분 이야기를 훨씬 더 좋아했어요. 늘 핸드폰을 하며 반만 듣는 듯 듣고 있는 첫째가 그림도 그려줬답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예고로 아이의 그림을 남겨봅니다. 

 

ⓒ내리리 영주.

계시는 곳에서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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