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레이와 시대의 반란”
[이 영화를 보라!] “레이와 시대의 반란”
  • 김상목
  • 승인 2020.10.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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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가즈오 감독, 레이와 신센구미를 만나다



1. 영화 대신 정치 이야기를 쓰련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아마 국내 영화제가 상영 계획을 잡지 않는 한 다시 볼 기회가 없을 작품이다. 4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상업영화 문법과 전혀 다른 내용의 작품이기에 극장에서 개봉될 리도 만무하다. 그렇기에 영화 내적 미학이나 문법보다는 영화의 배경이 된 일본 정치의 한 단면에 집중하려 한다.

본 작품은 2019년 7월 1일 실시된 제25회 일본 참의원 통상선거에 나선 신생 정당 “레이와 신센구미”의 선거운동을 중심으로, 현재 일본 사회와 정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보 정당의 생생한 선거운동 현장을 압축해 화제를 모은 <레이와 시대의 반란>이다.

하라 가즈오 감독은 故 오가와 신스케와 함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일본 다큐멘터리 거장이다. 하라 감독은 2019년 7월 일본 참의원(상원에 해당) 선거에 신생정당 “레이와 신센구미” 소속 비례대표로 나선 야스토미 아유미의 선거운동을 중심으로 이 정당 소속 후보들과 그 활동을 담아낸다. 비유하자면 정의당이나 민중당, 녹색당 같은 국내 소수 진보 정당의 총선 관련 기록영화인 셈이다.

특히나 레이와 신센구미는 선거를 앞두고 급히 창당하여 원내 의원이 단 1명뿐이다. 일본의 정당 구조 내에선 정치단체(‘제파’라고도 부른다)에 해당하는 미약하고 인지도 없는 소수세력에 불과했다. 왜 일본의 거물 감독은 이들에게 주목했을까? 영화 도입부에서 감독은 야스토미 아유미와 당 대표인 미야모토 타로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영화는 4시간 내내 재미있다. 중간에 ‘인터미션’(중간 휴식)이 1회 주어지지만 긴 시간에 비해 전혀 지루함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선거라는 정치적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레이와 신센구미의 활동과 베테랑 감독의 카메라는 종횡무진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 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 포스터 이미지

2. 일본 정치의 현주소

 

2_1. 우리는 일본 정치 구조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4.19 혁명과 87년 6월 항쟁, 2016년 촛불시위까지 정권을 끌어내리거나 항복을 받아낸 여러 차례의 민주화 투쟁 경험을 가진 우리는, 온갖 망언과 사고에도 불구하고 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경험이 없는 반쪽자리 민주주의, 심지어 우중愚衆이라 폄하하곤 한다. 일본에서 정권을 시민의 힘으로 교체해본 경험이 없음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이는 미국을 포함한 상당수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정권 자체를 뒤엎지는 못했어도 1960년대 일본의 ‘안보 투쟁’은 한국의 87년을 초월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할 정도였다. 지나친 폄하와 우월감은 유용하지 못할뿐더러 통찰력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본의 2차 대전 패망 후 전후 정치 구도는 2차례 의외를 제외하면 자민당 독주에 가깝다. 흔히 ‘1.5당’ 체제라 불리는 반세기 동안 그랬다. 만년 여당 자민당과 만년 야당 사회당이 늘 2:1로, 자민당만 집권하고 야당이 견제에 그치는 구도였다. 도쿠가와 막부가 몰락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집권한 번벌 세력의 후신이 자민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00년 넘게 집권해온 셈이다.

그러나, 선거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건 우리 또한 1997년 대선이 처음이라는 점을 자꾸 까먹곤 한다. 일본 역시 자민당 내의 분열과 야권 세력의 결집으로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 두 차례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자민당의 장기 집권 때문에 수권세력으로서의 경험이 없었던 야당 집권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다시 자민당의 천하가 이어지고 있다.


2_2. 선거제도와 지형


알다시피 일본은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와는 다르게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입법부인 의회에서 다수당 대표가 행정부 수반인 총리(총리대신)가 되는 구조다. 의회는 상하 양원제를 취하기 때문에 상원인 참의원(245명 전후)과 하원인 중의원(465명)으로 나뉜다. 이런 상하 양원제는 과거 귀족 중심의 상원과 평민의 하원으로 나뉘던 구조의 유산이며, 실제 참의원의 과거 명칭은 ‘귀족원’이었다.

참의원은 중대선거구제+비례대표제(석패율제 적용), 중의원은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참의원은 임기 6년으로 3년마다 절반이 교체되는 구조이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주요 배경인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 또한 절반을 새로 선출하는 선거였다. 지역구 선거제도가 상하 양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자민당 일당독재에 가까운 장기간의 집권 동안에도 참의원에서는 최소한 견제 구도가 유지될 수 있었다. (도쿄의 경우 참의원 선거에서 6위까지 당선 가능하다)

‘도도부현’이라 불리는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경우, 정당의 이름으로 출마하는 게 가능하지만 상당수가 당의 후원을 받는다는 정도에 불과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많다. 전국시대부터 지역주의 경향이 강하고, 중앙정부의 개입 능력이 강하긴 하지만 지역 차원의 전통이나 지방 세력의 위상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지역은 야권 성향 무소속이, 자민당 유력 정치인 연고지에선 여권 성향 무소속이 득세하는 식이다.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도 지역별로 편차가 크긴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만만찮은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중반 자민당의 세가 일시적으로 위축되면서 사회당과의 연립정권(!)이 탄생한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 비非 자민당 거대 야당이 탄생해 잠시 정권을 빼앗겼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백 년이 넘는 집권 기간은 중앙정부 관료나 중앙언론과 오직 자민당 중심의 정-관-언 구조가 형성되어 겨우 집권한 야당은 시행착오와 태업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이는 일반 국민들에게 바꿔봐야 별 수 없다!라고 실망감을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도쿄전력이나 틀에 박힌 관료들을 제압하는 데 애먹던 간 나오토 총리 내각이 물러나고, 다시 자민당 천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상하원 모두 자민당과 (불교에서 파생된 신흥종교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둔) 공명당이 2/3 전후 안정된 연립여당을 형성하고 있으며, 야당은 간신히 헌법 개헌을 저지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최근 지리멸렬했던 야권 분열의 난맥을 타파하기 위해 중도개혁 성향의 입헌민주당이 탄생했고, 공산당 등 기존의 진보적 야당들과 선거와 호헌(현 평화헌법 사수) 연대를 결성하는 정도의 진전이 있었다.

물론 야당이라 해도 중도-진보 세력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사카 등 일본 서부(관서지방)를 기반으로 한 일본유신회나, 도쿄 내에선 여당의 지위를 가진 ‘도민 퍼스트회’ 같은 자민당과 별반 차이가 없거나 더 보수우파적인 정당이 만만찮은 세를 유지한다. 혐한으로 유명한 ‘재특회’ 기반의 일본제일당도 꾸준히 선거에 출마하고 있다. 이는 일본 사회 내에 심화되는 정치 무관심으로 투표율 절반이 겨우 넘는 상황에서, 숫자는 적어도 결집력이 강한 극우주의 집단이 과잉 대표되는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실제 자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전체의 1/4에서 1/3 정도이며 나머지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극우보수적인 입장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야권에 큰 기대 또한 없기에 근래 한국에서처럼 적극적으로 투표하지 않는 식이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 속 주인공 격인 신생정당 “레이와 신센구미”는 무슨 배짱으로 선거에 뛰어든 것일까?

 

3. 레이와 시대의 반란이 시작되다


영화 속에서 두 번째 주인공 격의 비중을 가진 “레이와 신센구미” 당 대표 ‘미야모토 타로’는 배우 출신 정치인이다. 국내에서도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배틀 로얄>이나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 등에서 조역으로 얼굴을 알린 바 있는 중견 연기자 출신이다.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명품 조연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살았을, 이 1974년생 배우는 동일본 대지진 전후로 정치에 입문해 한차례 낙선 후 두 번째 도전에서 참의원에 당선된다.

이후 연예인 출신 정치인으로 독불장군 캐릭터가 되어 소수정당을 전전하던 그가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과 백일 전에 급히 만든 정당이 “레이와 신센구미”다. 영화 이름은 일왕(덴노)이 바뀌면서 붙이는 연호 “레이와”, 과거 도쿠가와 막부를 수호하기 위해 번벌 세력과 맞서 싸워 일본 역사에선 인지도가 높은 무력집단 “신센구미”의 이미지를 조합한 것이다.

미야모토 타로 당 대표는 창당하면서 ‘야권 분열을 넘기 위해!’라는 목표를 내세운다. 기존 야당에 입당하지 않고 신생정당을 만들면서 주장하는 것은 야권 활성화. 그의 ‘기묘한’ 주장은 이후 레이와 신센구미의 선거 과정을 통해 하나둘 의도가 밝혀지게 된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 스틸 이미지

3_1. 레이와 신센구미의 참의원 선거 대응


지지율 2% 이상을 확보하고 원내 의원을 보유해야 일본 정계에선 ‘정당’ 대우를 해준다. 우리 기준에서 ‘원외정당’은 ‘정치단체’라 불리는 게 일반적이다. 창당 당시 당 대표인 미야모토 타로가 참의원 신분이기에 원내에 의석 1명뿐인 레이와 신센구미는 정치단체로 대우받는 상황이었다.

이 ‘정치단체’는 245명 중 절반인 123명을 새로 뽑는 참의원 선거에 10명의 후보를 낸다. 1명의 지역구와 9명의 비례후보다. 지역구 후보는 도쿄도에만 냈다. 이전 선거에서 4등으로 당선되었던 미야모토 타로 당 대표가 아닌 오키나와 출신의 창가학회 지역 대표 출신을 내세운다. 미야모토 타로로서는 배수의 진을 친 셈. 6등까지 당선 가능한 대선거구이기에 다른 사람은 다 떨어져도 직전 선거에서 당선된 그로선 원내 진입이 가능한 상황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양보한 것이다.

그렇다면 비례후보 순위에선? 본인은 3순위로 나선다. 1-2순위는 현 정권의 장애인 정책을 비판하며 중증 장애인 후보를 내세운다. 나머지 후보도 본인을 제외하면 기성정치인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 세븐일레븐 본사에 맞서던 편의점주, 비정규직 파견노동을 전전하던 싱글맘, 환경운동단체 활동가, 납북자 가족단체 활동가, IT-금융전문가들이다. 선거 100일 전에 급조된 신생정당에 정치경력이 없는 무명 후보들, 일본의 선거에서 정당 못지않게 위력을 발휘하는 지역별 ‘후원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레이와 신센구미의 운명은 과연? 하게 되는 대목이다.

레이와 신센구미는 기존 조직력이 발휘되는 지역구 선거를 도쿄 선거구 외엔 포기하고, 자신의 인지도와 SNS 활용 등의 방법으로 돌파해나간다. 거리연설과 자원봉사자를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정치 후원금을 시민들의 소액기부로 모아낸다. 소선거구제 중심의 중의원 선거였다면 역부족이었을 테지만, 중대선거구제인 참의원 선거였기에 상대적으로 가능했을 선거운동 방식이다. 하라 가즈오 감독의 영화는 이런 다채로운 선거운동 과정을 아기자기하게 담아낸 작품이겠지, 라고 짐작한다면 또 틀렸다. 영화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3_2. 야스토미 아유미와 말을 따라 떠나는 여정


<레이와 시대의 반란>의 진 주인공은 비례 후보 가운데 1명인 야스토미 아유미다. 도쿄대 교수로 재직 중인 (호적상) 야스토미 아유무 교수는 나이 50을 넘어 ‘여성장’을 시작하고 커밍아웃한다.(‘여성장’은 아유미 본인이 만든 신조어이다. ‘여장’은 여장남자로 자신을 왜곡한다고 판단했다.) 아유미는 이번 선거 이전에도 지방 소도시 선거에 단기필마로 뛰어든 바 있다.

물론 4시간여가 넘는 장대한 상영시간을 자랑하는 <레이와 시대의 반란>에서 다른 9명의 후보에게도 감독의 카메라는 골고루 돌아가지만 명백히 주인공은 야스토미 아유미이다. 다른 후보의 입장과 의견을 묻고 답을 보여주는 순간이 지나면, 카메라는 다시 아유미에게 돌아온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일본 열도를 종횡하는 아유미의 여정을 짚어낸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 스틸 이미지

아유미 후보는 거리 유세를 위해 살아있는 말을 데리고 다닌다. 말을 타고 다니는 게 아니다! 중년의 아유미가 말을 끌고 선거운동을 하는 풍경은 그저 해프닝처럼만 보인다. 말을 선거운동에 합류시킨 이유는, 삭막한 대도시의 풍경에 색채를 더하고 다른 방식의 삶과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말을 활용한 선거운동은 기발한 화제가 되긴 하지만 많은 불편을 낳는다. 말은 다니면서 말똥을 흩뿌리는 버릇이 있다. 경범죄로 단속되지 않기 위해 말똥 수거 담당자가 따라다녀야 하며, 도로교통법 운운하는 경찰이나 경비 직원에게 내쫓기기 일쑤다. ‘역전 광장에 말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는 식이다. 급진적 주장과 구호를 외치는 듣보잡 신생정당의 선거운동을 훼방 놓기에 아주 좋은 명분이다.

아유미 후보는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함께 하고, 그녀의 고향 오사카의 난개발 현장에서는 과거 역사가 담긴 공공건물이 쉽게 헐리는 현실에 아파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 교토대에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던 벽보 게시판이 철거될 위기에 분개한다. 오사카의 대표적 일용직 노동자들의 거리인 가마가사키 유세에서 하라 가즈오 감독은 아유미 후보 대신 노숙인을 카메라에 담는다. 선거운동에는 별반 도움이 안 되는 일들이다. 선거운동이 절정에 도달하는 마지막 주말에도 당 지도부와 별다른 상의 없이, 수도권에 가지 않고 자신만의 기묘한 유세를 이어나간다.

처음에는 기인처럼 보이는 행각이 재미있어서 감독이 아유미를 주인공으로 삼았나 싶지만,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걸 동의할 순 없을지언정 아유미의 주장이 점점 귀에 쏙쏙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유미의 정치적 구호는 단 하나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그리고 선거 유세와 거리연설에 말과 거리예술가들을 대동한다. 투표권도 없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가 유세 관중의 대다수가 된다. 아이들은 살아있는 말을 처음 만져보고 즐거워하고, 정치유세인지 길거리 버스킹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아유미 일행과 함께 웃으며 즐거워한다. 우리가 선거운동에서 상상하기를 포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저 개그 라이브가 아니다. 자신이 다녔던 오사카의 유서 깊은 초등학교 건물, 전쟁 시기엔 폭격을 피해 많은 이들이 불안에 떨며 피난했던 공간이 지역사회 상의도 없이 철거된 사실을 이야기하며 아유미도, 듣고 있던 동네 주민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힌다. 교토대 학문의 자유와 청년들의 실험을 상징하던 표현의 벽이 도시미관을 이유로 폐쇄될 위기에 처한 상황을 자신의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교문 앞에서 일장연설을 펼친다. 그런 순간에 아유미는 분노로 포효하고 부당함에 저항한다.

그 절정은 도쿄 한복판에서 댄서들과 펼친 마이클 잭슨의 대표곡 “쓰릴러” 퍼포먼스이다. 아유미의 소신인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꿈꿨던 또 다른 문화적 아이콘,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며 수도 한가운데 도로에서 언뜻 보면 대규모 플래시몹을 벌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영화에서나 실제로나 “쓰릴러”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 선거에 쓰이기엔 故 마이클 잭슨의 곡들은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하기에 너무 비싸다. 그래서 마치 무언극처럼 기괴하게 춤을 추는 좀비 같은 모양새는 순수한 동심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현재의 일본을 표상하는 행위예술 같은 기이한 정적으로 변환된다.

 

3_3. 레이와 신센구미를 통해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


아유미의 기묘한 여정에서 영화는 막판에 다다른 레이와 신센구미의 선거운동 유세로 선회한다. 중증 장애인, 오키나와 출신 창가학회 개혁파, 비정규직 싱글맘, 환경운동가, 납북자 가족단체 활동가, IT 기업 및 금융전문가, 세븐일레븐 점주, 문화운동가 등 레이와 신센구미의 다채로운 후보자 진용을 감독의 카메라는 알뜰살뜰하게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들려주려 애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그저 도매금으로 욕하고 마는 일본 사회 내의 다양한 상황들,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 스틸 이미지

특히 감독이 애정을 가진 듯 보이는 이들이 더 있다. 당 대표인 미야모토 타로는 선거운동이 결정적 국면에 이른 주말 도쿄도 번화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집중유세와 말미 개표 결과 순간에 주인공에 가까운 아우라를 뿜어낸다. 레이와 신센구미도, 신생정당의 참신하고 기발한 후보 진용과 선거운동 또한 분명 미야모토 타로의 구상에 기반한 것임이 명백하니 그의 비중은 줄이래야 줄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추가로 소개할 이들은 분명 감독의 시선이 오래 머물던 존재들일 테다.

비정규직 파견노동을 전전하며 한때 노숙까지 했었다는 싱글맘 와타나베 테루코 후보는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그나마 다니던 일자리도 그만둬야 했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고, 삶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그녀는 특별한 지식도 훈련도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이 팽배한 미래를 공유하는 이에게 던지는 그녀의 진솔한 발언과 태도는 영화 초반과 말미를 비교하면 ‘괄목상대’란 이런 걸 말하는 거구나! 할 만큼 진한 호소력을 뿜어낸다.

당 대표인 타로가 일종의 ‘자객공천’으로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하고 영입한 노하라 요시마사 후보는 집권 자민당의 파트너 공명당의 문제를 공격적으로 제기한다. ‘평화’와 ‘복지’를 내세우는 공명당이 평화헌법 폐기와 형식적인 복지에 급급한 자민당의 집권을 돕는 것에 대해 다른 야당이 공명당과의 관계 악화를 염려해 퍼붓지 못하던 비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특히나 오키나와 주민으로서 일본 전체의 부담을 식민지에 가까운 땅 오키나와에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데 대해 도쿄 한복판에서 목청을 높인다는 의의를 살린 풍경이 참신하다.

막판 집중유세는 선거운동 조직이나 열성 지지자 외에는 대부분 외면하고 지나치기 일쑤인 일본의 선거 지형에서 특이하게도 수천의 인파가 몰려 이채로운 풍경을 선보인다. 젊은 사람들,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던 이들이 대거 몰려들고, 기존 선거 유세와는 다른 퍼포먼스와 공연을 즐기며 뭔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열망에 함께 한다.

초반에는 머뭇거리던 아마추어 정치신인들이 이제는 제법 대중들 앞에 서거나 연설하는데 꽤 익숙해진 3개월 동안의 변화가 놀라울 지경이다. 과격하게 보이지만 진정성 있어 보이는 호소는 평소 정치권에서 주목하지 않거나 하나 마나 한 원리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절절함이 담긴다. 그렇게 레이와 신센구미는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 기득권 세력이 부패하고 무능하니 교체하자는 기존 야당 세력의 전술을 뛰어넘을 듯 보인다. 일본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광대한 쟁점과 논쟁의 지형도가 고축척 지도처럼 <레이와 시대의 반란>에서 펼쳐진다.

 

4. 선거가,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4_1. 선거 결과는 과연?

대미를 장식하는 개표 결과는 영화 속에서, 그리고 국제정치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뉴스로 접한 바대로, 레이와 신센구미가 2명의 참의원을 배출하며 일본 내 제도권 정당으로 올라서는 ‘절반의 성공’을 이룬다.

당선자는 비례 1, 2번. 루게릭 병에 걸려 세계 유일의 전신마비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인 후나고 야스히코 후보와 역시 척수 손상과 뇌성마비를 앓는 중증 장애인 키무라 에이코 후보였다. 이들이 참의원으로 당선되는 덕분에, 그들의 참의원 등원 과정은 선거 시기 레이와 신센구미가 그토록 원했던 언론의 조명을 과도할 만큼 독차지한다. 이들의 의회 출입을 위해 일본 의회 건물의 대대적 공사가 진행될 정도로 그동안 장애인 당사자의 대표성은 무시당해 왔었고, 레이와 신센구미의 도전은 적어도 일본의 장애인권 역사에서는 족적을 남긴 셈이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레이와 시대의 반란> 스틸 이미지

당 대표인 미야모토 타로는 낙선했다. 하지만 얻은 게 더 많다고 평가된다. 비례 3번으로 그가 얻은 득표는 100만 표에 가깝고, 역대 참의원 낙선자 중 최다 득표인 44만 표를 두 배나 초월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다면 당선되었을 텐데, 선거제도의 함정으로 낙선한 셈이다. 2% 이상의 득표와 2명의 참의원을 배출해 연예인 출신 괴짜 독불장군 정치신인이 원내정당 대표가 되었으니 성공에 가까운 결과다.

영화는 선거 종료 2 달여 후, 하라 가즈오 감독이 아유미를 처음 만났던 산속 목장에서 말과 함께 어울리는 그녀와의 재회로 248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4_2. <레이와 시대의 반란> 이후 레이와 신센구미


영화는 그렇게 2019년 4월, 레이와 신센구미가 탄생한 직후부터 선거가 막 끝난 7월까지, 그리고 짤막한 마무리가 추가된 9월까지를 담아 그해 10월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다. 하라 가즈오 감독의 스타일로만 봐도 즉흥 작업에 가까운 속도다. <레이와 시대의 반란> 앞뒤로 완성된 감독의 작품인 <센난 석면피해 배상 소송>과 <미나마타 만다라>가 각각 10여 년은 족히 걸린 작업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후 레이와 신센구미와 등장인물의 후일담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금융 전문가로 자신을 소개하고 비례후보로 출마했던 오오니시 츠네키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일본 사회에서 정책 대안을 묻는 질문에 망언 수준의 답을 하는 사고를 치고 당에서 제명당했다. 그리고 유일한 지역구 후보로 도쿄도 선거구에 출마했던 창가학회 출신 노하라 요시마사는 당 조직과 운영 구조에 불화가 생겨 2020년 상반기에 탈당했다.

2020년 7월 5일에 시행된 도쿄도지사(우리로 치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연대로 인권변호사 출신 무소속 통합 후보 논의가 진행되던 중, 당 대표인 미야모토 타로가 독자후보로 나섰다. 자민당 출신으로 한때 아베 신조의 대항마로 꼽혔으며 보수야당 ‘희망의 당’을 만들어 기세가 등등했으나 현재는 도지사 직 수행에 전념 중인 현직 고이케 유리코를 자민당이 지지하는 상황이었다. 극우부터 진보까지 여러 후보가 출마한 선거였지만 야권의 떠오르는 인기 정치인인 미야모토 타로가 독자 출마한 상황은 꽤 논란을 불렀다. 야권 통합후보로 나선 우쓰노미야 겐지와 미야모토 타로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2, 3위를 기록하면서 60% 이상 압도적 지지를 기록한 고이케 유리코 현 지사의 승리로 선거는 끝났다. 일본 야당의 취약함을 드러내고, 미야모토 타로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확인하는 결말이었다.

이제 레이와 신센구미를 포함한 일본의 모든 정당에게 가장 큰 화두는 늦어도 2021년 10월 24일 이전에 치러질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일정이다. 2021년 봄에 치러질 것으로 보이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으로선 현상 유지를, 야당은 약진을 통한 견제에 사활이 걸린다. 레이와 신센구미는 100명의 후보를 출마시키겠다는 포부를 선보였다.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일들이 많다.


5. 엔딩 노트


전 세계적으로 기성 정치에 실망한 이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이나 극단주의 세력에 마음이 한창 끌리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것처럼 보이던 서구와 북미에서도 기존 제도권 주류 정당 외에 양극단의 입장을 취하는 포퓰리즘 성향의 정당이 속속 탄생해 바람을 일으키고 명멸하는 중이다. 특히 극우주의 정치세력의 발호는 많은 우려를 낳기도 한다. 레이와 신센구미 또한 그저 일회성 반짝이라 치부하는 진단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드물지 않다. 실제로 레이와 신센구미 또한 그렇게 사라지거나 변질될 위험이 있음을 감독 또한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라 가즈오 감독은 적어도 영화로 담아내는 과정 속에서만큼은, 실수 연발 시행착오 속에서도 즉흥적 분노를 넘어 서민과 소수자의 고통을 긍정적 참여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이 정당의 실험에 깊게 공명한 듯 보인다. 영화 서두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당당하게 자신이 화면에 등장하던 감독은 기록자이자 조언자로서 신나게 활약한다.

영화는 그저 신생 진보 정당의 생기발랄한 선거투쟁을 뛰어넘어 일본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의 오류와 국민국가의 폐단, 소수자의 잠재력, 미래사회와 인간성에 대한 통찰의 시간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특히, 기인으로만 치부되던 야스토미 아유미 후보의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은 깊게 고찰할 가치가 있다. 관록과 열정을 겸비한 거장이 격동의 선거에 뛰어들어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고루 담아내면서도 절대로 중심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다.

근래 국내 진보 정당의 선거 대응과 결과가 현실에서 획득하고픈 목표 혹은 지향해온 가치와의 충돌로 빛이 바래거나, 내부 갈등의 심화로 표류하는 것에 좌절하는 이들에게 <레이와 시대의 반란> 영화와 레이와 신센구미 정당의 실험은 유의미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또한,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피상적으로 매도해버리는 국내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지적 흥미도 넘치게 제공하는 참고서가 될 수 있겠다.

 

 

작품 정보


레이와 시대의 반란 Reiwa Uprising れいわ一揆

Japan, documentary, 2019, 248분,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하라 가즈오 HARA Kazuo

32회 도쿄국제영화제(2019) 경쟁(일본영화 스플래쉬)

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2020) 초청(퍼스펙티브 티거 번즈)

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20) 초청(글로벌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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