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이야기로 입시 교육의 폐해를 관통하다



1. 가르강튀아 이야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유럽에선 르네상스와 동시에 종교전쟁이 창궐했다. 프랑스의 신·구교 갈등은 절정에 달해 성 바돌로뮤 데이의 학살과 이후 기나긴 대립으로 발루아 왕조가 몰락하고 부르봉 왕조가 개창하는 격변을 맞는다. 이 전쟁 와중에 ‘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끔찍한 살육은 당대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깊은 상흔으로 남았고, 그들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후세에는 몽테뉴가 <수상록> 등을 통해 비판적 지성과 지적 회의론, 절대주의에 대한 우려 등을 표현한 사례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대척점에는 우화와 만담을 차용한 날 선 풍자의 프랑수아 라블레(Rabelais, F.)가 있다. 라블레는 1534년에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1권을 펴낸 뒤 연작 소설들을 통해 동시대를 냉소적으로 풍자하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초월적 존재에 가까운 거인 가르강튀아와 그 아들 팡타그뤼엘의 허무맹랑해 보이는 모험을 통해 중세 말의 시대상을 비꼬는 내용이 일품이다.

가르강튀아는 왕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온갖 영재교육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둔재가 되어버린다. 왕실에선 난리가 난다. 수소문 끝에 현자를 찾아 방법을 물으니 마법의 물약을 먹이라고 한다. 그 약을 먹은 어린 가르강튀아는 그가 배웠던 온갖 과잉 교육의 덩어리를 토해낸다. 그리고 동서고금 현인의 지혜와 고전 양서를 필요한 만큼만 받아들인 뒤 나머지는 세상을 주유하는 모험으로 메운다. 그렇게 라블레의 상상 속 세계에서 가르강튀아는 위대한 영웅으로 성장한다.

이번에 소개할, 곧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를 보는 순간, 어릴 적 읽었던 가르강튀아의 조기교육 일화가 저절로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모든 길은 입시로 통한다!’는 교육 현실의 알파와 오메가는 대중문화에서도 꾸준히 다뤄지는 주제이지만,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포스터 이미지

1980년대에 이미 첨예화된 입시 위주 교육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강우석 감독)와 <닫힌 교문을 열며>(1992, 장산곶매) 등의 영화로 대중문화사에 기록될 정도로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1989년 전교조가 창립되고, 역대 모든 정부에서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제도 개선이 공약과 정책으로 등장했지만 별다른 변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또 한 편의 영화가 도착했다.

 

2. <디어 마이 지니어스>의 진행 경로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기본적으로 ‘셀프-다큐’의 경향으로 규정되는 작품이다. 과거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영화가 ‘저항 언론’ 혹은 ‘대안언론’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다수였던 데 비교한다면, 2000년대 초반 이후 ‘대세’가 된 ‘셀프-다큐’는 영상으로 표현된 ‘일기장’에 가깝다.

감독은 자신, 혹은 주변 가족이나 친구 등의 지인을 다루면서 사적 관계를 조명하거나, 그 과정에서 좀 더 이야기를 확장해 과거의 독립다큐들이 다루던 사회적 문제로 나아가기도 한다. 각자가 중심에 놓는 소재와 방법론은 실로 다양하며, ‘셀프-다큐’라 하더라도 그 범위는 무한히 확장 가능한 셈이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관조적인 경우가 많아졌지만, 격렬하게 충돌하는 경우도 왕왕 등장한다. 자전적인 소재를 다룰 때는 청년세대의 변화된 조건 하의 취업이나 진로 문제에 대한 고민, 여성-LGBT라는 소수자적 정체성과 사회에서 겪는 차별 등의 쟁점들, 가족과의 관계에서 세대 갈등이나 모부 세대 삶의 재조명 같은 테마를 다루곤 한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가족을 관찰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감독 본인의 과거 회고를 지나, 사회적 주제인 교육 문제 전반을 조명하는 확장성을 가진 ‘셀프-다큐’라 할 수 있겠다.

(이하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일정 부분 담겨 있습니다)

 

2_1. 전반전

 

‘리얼 영재 육성 다큐멘터리’라는 카피를 내세운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구윤주 감독이 자신의 16살 터울 막냇동생 구윤영을 대상으로 한 본인 어머니의 영재교육 프로젝트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 과학 영재로 가족의 자랑이었으나 정작 대학은 영문과로 진학했고, 현재는 졸업을 앞둔 예비 백수인 감독은 그 광경이 무척 착잡하다. 하지만 대학 시절, 전공 공부보다 영상 촬영에 더 매진했던 본인으로서는 좋은 소재거리를 발견한 셈. 졸업을 앞두고 자취생활에서 다시 본가로 돌아온 감독은 막내와 어머니를 카메라에 담으며 이야기는 출발한다.

영화 초반 늦둥이 막냇동생과 어울리는 감독의 ‘이모 미소’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구윤영의 시간이 지나가면, 어머니와 막내딸 사이에 긴장감마저 감도는 홈스쿨링 시간이 도래한다. 어머니가 구윤영에게 요구하는 학습량은 가공할 만하고, 두 사람은 모녀 관계라기보단 무협지 속에서 살인적 수행을 반복하는 사제관계의 현실판처럼 비칠 지경이다.

감독은 그런 어머니에게 항의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가정 형편상 대학을 나오지 못했고, 감독 본인과 둘째에 했던 조기교육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봤기에, 그 결정판(!)으로 늦둥이 막내를 ‘영재’로 키워내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

제대로 놀지도 여유를 갖지도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상을 보내는 게 과연 동생을 위하는 일이냐고 감독이 문제를 제기하면, 어머니는 남들 다 하는 일이고 ‘조건’을 갖추는 게 막내를 위해서도 이로우면 이롭지 손해 볼 일이 아니라고 대꾸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구윤영이 엇박자를 내거나 힘들어하는 게 드러나자 어머니는 하드 트레이닝 과정을 다소 완화한다. 어머니의 반성과 동시에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찍겠다는 욕망 때문에 자신은 어머니에게 따지고 항의하면서도, 정작 본인이 막냇동생에게서 흥미로운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 탐욕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상황을 깨닫게 된다.

구윤영이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가 ‘굶주린 독수리’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은 무척 역설적이며, 이 상황을 전환점 삼아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이야기의 주제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스틸 이미지


2_2. 후반전


감독은 처음부터 ‘과거의 영재’였던 자신의 지금 삶과 그 경로를 도돌이표처럼 따라오는 막냇동생의 현재를 겨냥해 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그 과정에서 ‘현재’를 사는 ‘과거의 영재’는 어떤 상황인가 성찰하기 시작한다.

이과의 기대주로 교육받았던 감독은 성장하면서 적성에 어긋나지 않아 보였던 과학영재의 궤도를 벗어나 영문학과로 진학했다. 그렇다고 학과 공부를 충실하게 하지도 않았다. 학부 시절 내내 전공 공부보다는 카메라를 들고 영상 촬영에 두 눈 파는 시간을 보냈다. 졸업이 다가오고 이제 더 이상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감독에게는 다방면의 위기가 찾아온다.

자취생활의 자유를 청산하고 본가로 돌아왔더니 경제적으로 자립하라는 통보가 날아오고, 졸업하면 아무 내세울 것 없는 백수가 된다는 초조감에 어떻게든 뭔가 하고 있다는 증명을 하고팠던 것 같다. 감독은 자신 또한 어머니와 별반 차이 나지 않는 집착으로 동생을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후 생각에 잠기고, 이것저것 자립을 꾀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여유를 찾고 촬영도 계속 이어나간다.

자신과 세 살 터울로 옥신각신하던, 이제는 임용고시에 합격해 교사가 된 둘째 동생과 대화를 해본다. 둘째 동생은 언니보다는 영재 코스에 좀 더 저항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막내 구윤영보다 그녀가 가르치는 학급 아이들이 조기교육 강도가 더 심하다는 데서 충격을 받는다.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면 그런 게 가능하지? 감독은 혼란에 빠진다. 어머니는 막내의 독서량을 체크해 어린이 도서관에서 2주에 책 26권을 실어 나를 정도로 교육열이 강하지만, 그래도 초반의 기세는 좀 누그러져 보인다. 반면 구윤영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녀에게 내재화된 학업 성취욕과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 구조는 어머니가 덜 다그쳐도 자동으로 작동되기 시작한다.

감독은 자기 개인의 과거사가 터울 많은 막내에게 재현되는 상황에 주목해 출발했을 뿐이지만, 조기교육의 주관자 어머니만 제어하면 될 것이라 섣불리 생각했던 상황은 걷잡을 수없이 확장된다. 가족 내에서만 합의가 되면 자기의 전철을 막내가 밟지 않으리라는 예단이, 실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시스템이라는 걸 감독 본인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3. 한 가족의 초상이 곧 대한민국 입시교육의 지형도가 되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그런 섬뜩한 결론에 도달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밝은 톤을 유지한다.

하지만 영화 초중반에서 구윤영의 처우를 놓고 감독 VS 어머니의 대립 구도가 주요 갈등이었다면, 후반으로 향하면서 구윤영이 영재교육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전반전의 긴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걱정과 우려를 낳게 한다. 놀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어린아이의 본성이 점점 봉인되고, ‘영재’가 되고 ‘100점’을 맞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채워질 수 없는 욕구가 막냇동생에게 내재화되어간다. 자기보다 더 성적이 좋은 아이를 보면 자연스레 ‘적’으로 인식하는 회로가 마치 저 맑고 순수해 보이는 소녀에게 이식된 것처럼 말이다.

 

"디어 마이 지니어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디어 마이 지니어스 스틸 이미지

끊이지 않는 갈등에도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가족 풍경을 묘사하기에 관객이 섬뜩함을 느낀다면 그 강도는 더 깊고 오래갈 테다. 그런 연출 효과는 삽입된 애니메이션 컷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밝은 원색의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지는 풍경은 감독의 유년시절 회고와 함께 ‘의자 뺏기’가 개인에게 내화 되는 과정을 적절히 묘사한다. ‘디스토피아’화된 교육현장을 언급할 때마다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PartII)” 뮤직비디오가 떠오를 만큼.

1980년대 이후 입시 열풍의 폐해와 기형화된 교육열은 한국 사회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였다. 교육의 서열화는 곧바로 계급 재생산으로 이어지고, 이제 모부의 경제사회적 조건은 곧 자녀에게 승계되는 분열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나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영화 이름에서 나타나듯 과거에 최소한의 통합력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차별과 서열의식을 고스란히 교실에 가져오고 그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듯하다. 개인의 선의나 노력으로 이 거대한 괴물 같은 시스템을 벗어나는 건 거의 불가능한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 방법론에 대해 여러 입장이 부딪히겠지만, 교육의 목적이 실질적인 교육이 아닌 신분제의 세습이 되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디어 마이 지니어스> 영화를 만든 감독과 영화 속 가족은 그런 비극적 결론과 인식에 도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육 현실을 반영한 현실 가족(자매/모녀) 이야기로 관객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독립영화 작품이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에게 <디어 마이 지니어스>는 감독의 의도를 넘어 아이를 통조림으로 만들어버리던 핑크 플로이드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찰나의 공포를 안겨준 영화로 남는다.

다시 “가르강튀아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른이 된 가르강튀아는 이웃 나라의 침략 받았을 때 큰 공을 세운 수도사에게 수도원을 마음 내키는 대로 세울 수 있도록 상을 내린다. 그 결과, 근세 문학에서 유토피아의 시초 가운데 하나인 ‘텔렘 수도원’이 창조된다. 중세 말 극단주의와 편협성이 만들어낸 종교전쟁의 지옥도를 목격한 작가 라블레가 자신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써 내려간 이상향, ‘자유의지의 궁전’인 텔렘 수도원의 풍경은 지금 현실의 ‘구윤영’들에게도 여전히 절실해 보인다.

구윤영과 또래 친구들, 그리고 그 앞과 뒤를 채우는 미래세대에게 ‘어른’들은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욕망, 혹은 현재 누리는 작은 지위를 유지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현대사를 통틀어 정부나 공공영역이 채워주지 못한 복지안전망을 지켜온 최후의 보루 ‘가족’주의는 개인의 자아발전보다는 ‘가문의 영광’에 복무하도록 예속하는 데 집착해왔다. 핀란드 교육의 자율성과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 인재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면서 이런 이율배반을 지속하는 것은 자기모순일 뿐이다. 자유로운 창의와 주체적이고 비판적 사고가 가능한 미래세대를 바란다면 그들에게 숨 쉴 자유를 주라!

 

작품 정보

 

디어 마이 지니어스 Dear My Genius

한국, 다큐멘터리, 2018, 2020.10.22.(개봉 예정), 80분, 전체관람가

감독 구윤주
주연 구윤영, 구윤주, 문선숙, 구윤희, 구민수
배급 필름다빈

23회 부산국제영화제(2018) 초청(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16회 EBS 국제다큐영화제(2019) 초청(키즈 다큐)
10회 광주여성영화제(2019) 초청(한국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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