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삼평리 평화회관.

담벼락에 기댄 지팡이가 둘, 그늘 자리에 보행 보조기가 셋. 방충망 미닫이문 앞에 빼곡한 제각각의 신발들. 할머니들은 이내 어서 오라고 반긴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봉지 커피를 탄다. 프라이팬에 찰떡을 굽고, 포도송이를 씻고, 포크를 나눈다.

지난봄, 청도에 코로나19 감염증이 유행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얼마 전 다시 문을 연 파란 지붕 집 이름은 <삼평리 평화회관>.

코로나19도 우리랑 상관없이 지나갔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에도 삼평리 평화회관은 비가 새지 않았다. 손 매운 쌍둥이 아빠가 단단히 고정해둔 검은 비닐 차양막은 마당 가득 그늘을 드리웠다.

김춘화 할머니는 말했다. 한전 때문에 마을이 갈라졌다고. 한전 사장이 나서서 갈라진 동네를 화합시켜야 한다고. 이 작은 동네가 이만큼 찢어질 때는 얼마나 몹쓸 짓을 많이 했겠냐고. 한전 사장과 삼평리 이장이 사과하길 바란다고.

 

청도 각북면 삼평리를 가로지르는 송전탑.

“비가 많으면 감이 적게 달리거든. 대신 꿀밤이랑 밤은 많이 열렸어.”

올해는 감 수확량이 줄어 해마다 가을이면 감을 따러 오던 중국인 유학생들 발길도 끊겼다. 이른 아침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식구들은 감밭에서 온종일 감을 딴다.

“살 수가 없어, 짐승 때문에!”

날이 저물면 들짐승 산짐승이 부쩍 자주 내려온다고 했다. 고라니, 멧돼지, 산토끼가 밭을 파헤친다. 고라니는 콩을 먹고, 멧돼지는 옥수수랑 고구마를 먹는다. 김춘화 할머니는 고구마밭에 어린 새끼까지 데리고 멧돼지 여남은 마리가 나타나 밤새 경운기 시동을 켜두고 멧돼지 떼를 쫓았다.

“닭이 병아리를 다섯 마리 깠어!”

“너무 적게 깠네!”

달걀 스무 개, 스물두 개를 묻으면 병아리 열여덟 마리를 까던 암탉이 올가을에는 다섯 마리만 깠다. 화나고 서운한 일이었다. 쌍둥이네 닭장 암탉 이야기였다.

여름엔 그렇게 비가 많더니 가을 가뭄에 가을 채소가 걱정이라고 했다.

걱정과 안타까움이 고구마 줄기에 달린 고구마처럼 줄줄이 이어지던 즈음, 청도 읍내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녀오신 이억조 할머니가 어깨에 멨던 가방을 열어 장에서 산 고구마 한 봉지를 꺼냈다.

“내일 삶아서 먹자!”

오후 네 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진을 찍자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들은 휴대폰 카메라 너머 보이지 않는 얼굴을 향해 안부를 전했다. 우리는 무사하다고.

 

2020년 가을, 삼평리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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