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믿는다”는 한 마디
[칼럼] “믿는다”는 한 마디
  • 지민
  • 승인 2020.11.0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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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그 뭐 성소수자, 그거냐?” 아빠가 물었다. 마치 밥은 먹었냐고 묻듯이 가볍게. 아빠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베이비부머’ 세대의 60대 남성,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정당을 지지하며 오랫동안 대형교회에 다니던 사람이다. 평소 ‘잘 지내고 있냐, 졸업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냐, 미래 계획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주로 하던 아빠는 비슷한 뉘앙스로 내가 성소수자인지 물었다. 그때 아빠의 질문과 나의 대답 사이에 흐른 찰나의 순간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 될 거라는 걸, 나는 직감했다.

재작년 봄, 갑자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한창 언론에 ‘한동대 부당징계 사건’으로 내 이름이 오르내리던 시기였다. 조만간 원가족에게 전화가 올 거란 예상은 했지만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몇 차례 전화를 피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빠는 평소보다 목소리가 두 톤쯤 올라가 있었다. “먼지야,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모르는 척 되물었다. “무슨 일이요?” 

 

ⓒfreepik

아빠는 학생처장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댁의 자식이 곧 징계를 받는다고,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아냐고, 학교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열면서 동성애를 설파하고 본인도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다른 곳에서 성소수자 인권 강의도 하고 다닌다고. 필요하면 모아놓은 자료를 다 보내줄 테니 얼른 자식이 반성할 수 있도록 설득하라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빠는 당시 단호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지민에게 직접 듣겠습니다.” 그러곤 내게 전화를 건 것이다. 

그제야 나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우선 아빠가 들은 말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했다. 학교에서 무기정학 징계를 받은 건 맞다. 그러나 부당한 징계다. 내가 직접 주최한 강연도 아니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연 페미니즘 강연이 학교가 자신들의 교육 이념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징계한 거다. 그동안 목사와 교수들은 학생 개개인을 사찰하고, 특정한 정체성을 비난하고 공격해 왔다. 이건 명백히 차별의 문제이고 부당한 징계다. 나는 반성할 게 없다. 끝까지 싸울 거다. 그러니 우선 나를 믿어 달라.

차분히 시작한 설명은 뒤로 갈수록 울먹임으로 바뀌었다. 설마 학교가 이런 무모한 짓(징계뿐 아니라 부모님에게 협박 전화)까지 할 거라 생각지 못했고, 부모님이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지도 두려웠다. 과연 이 사건과 내 정체성을 알고도 부모님은 나를 이해하고 지지할까. 혹시 나를 부정하거나 학교 편을 들지는 않을까. 확신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원가족은 그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선뜻 믿고 기대기보다는 얼마 간 떨어져 있는 게 더 편한 거리.

한참 내 울먹임을 듣던 아빠는 말했다. “알겠어. 네 말이 맞겠지. 우선 믿을게. 대신 오늘 엄마랑 포항에 가서 너를 직접 만나고 싶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내가 어버버하는 사이 전화는 끊겼고, 해가 질 무렵 부모님은 포항의 작은 카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지난 세 달 동안 일어난 일들을 털어놨다. 징계가 왜 부당한지부터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까지 대화는 주로 두 사람을 안심시키는 쪽으로 흘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가 어떤 정체성과 지향을 가지고 있고, 그게 징계의 한 요소였다는 점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가만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freepik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부모님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애써 감정을 숨기는 듯 보이던 두 사람은 내 이야기가 끝나자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잠깐의 정적 후 내일 학교를 찾아가 보겠다는 아빠를 말리며 말했다. “우선은 저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어릴 적부터 한 번 확고한 결정을 내리면 고집을 놓지 않던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을까. 두 사람은 또다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오늘은 뭐 했는지. 내일은 뭐 할 건지. 그러다가 날아온 질문. “너도 그 뭐 성소수자, 그거냐?” 

순간 내 머리는 세상 그 어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라고 답하지.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말해도 괜찮을까. 만약 안 괜찮으면? 말하지 말까. 그럼 뭐라고 말하지. “네, 저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고 팬섹슈얼적 지향을 가지고 있고 로맨스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어요.” 고민과 달리 대답은 빛의 속도로 나왔다. 와다다다.

대답을 들은 아빠는 어느 정도는 알아들은 눈치였지만, 이내 눈을 피했고 잠시 후 다시 말을 돌렸다. 공교롭게도 내 말의 반 이상은 영어였다. 그것도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와르르 쏟아지듯 나왔다. 평소 특정한 정체성으로 나를 설명하는 걸 여러 이유로 선호하진 않지만, 이 순간 나는 이 단어들에게 고마웠다. 그렇게 얼마간 대화를 더 나눈 뒤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갔다. 싱거운 커밍아웃이었다.

싱거웠다면 싱거웠을 이 순간을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두 사람은 아마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굳이 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실일 테니까. 이후 부모님과 나는 ‘그 뭐냐, 성소수자 그거’에 대해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언론과 교회를 통해 동네방네 소문내듯 퍼져버린 나의 각종 정보들을 모를 리 없을 텐데도. 특히, 평소 인터넷과 기독교 소식에 기민한 아빠가 이 사실을 모를 리는 더욱 없을 텐데 말이다. 지금도 두 사람이 그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을 거라 나는 짐작할 뿐이다.

 

ⓒpixabay

얼마 전, 서울의 한 단체에서 폴리아모리 토크쇼를 진행한 적이 있다. 토크쇼 도중 사회자가 물었다. “폴리아모리에 대한 편견이 많지만 모르는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의 인정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였을 것 같아요. 가족들이 어떤 반응이었을지 궁금해요.” 나는 답했다. “저에게는 원가족의 인정이 그만큼 중요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사람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제게는 적당한 거리감을 지키고 적당한 무관심으로 서로 모르는 채 하며 각자의 삶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지금이 좋아요. 그렇지 않았던 시절을 겨우 벗어났던 걸 생각해보면 더욱이 그래요.”

평소 내 생각을 담은 답변이었고, ‘가족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전제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이었지만, 한동안 나는 내 대답을 곱씹었다. 나에게 원가족의 인정과 지지는 정말 중요치 않은 걸까. 스스로를 원가족에 대한 정서적 의지와 친밀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나는 애당초 어떤 기대를 포기한 건 아닐까. 만약 적극적으로 환대받고 지지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마다했을까. 언론과 교회, 학생처장이 만들어낸 가짜뉴스를 듣고도 “네 말이 맞겠지. 우선 믿을게”라고 답했던 아빠의 말에서 느꼈던 모종의 위로감이 더욱더 답을 내리기 어렵게 했다.

실은 서운한 적도 있다. 서러웠던 적도 있었다. 아마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처음 다녀왔던 때였던가. 아니, 친구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고 환대받았던 경험을 나눠줬을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정신과에 다닐 때마다 들었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있는 그대로 존중 받고 싶다. 지금 내 모습 그대로 환대 받고 싶다. 네가 뭐든 너는 소중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이런 생각에 말이다. 

설령 정서적 의지와 친밀감을 주지 못할지언정 내 삶에, 특히 영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무수한 영향을 주었을 존재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환대해준다는 느낌을, 나는 무척 받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내가 마음껏 내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이 원가족일 수 없다는 사실이 서운하고 서럽기도 했다.

아직 내 의문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다만, 꼬리를 무는 질문 끝에 어렴풋이 알게 된 사실 몇 가지를 늦은 밤 일기장에 흩날리듯 적었다. 원가족이 이해하고 지지해준다면 마다할 이유 없이 기쁘겠지만, 그것이 내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그럼에도 나는 그런 순간을 욕망하기도 한다고. 또 그럼에도 애써 회피하는 당신들을 나는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당한 무관심이 지금껏 살아온 당신들이 지금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도 내 몫이겠다고. 어쩌면 나는 “믿는다”는 한 마디로 충분했다고.

 

※ 2년여 투쟁 끝에 2020년 1월 30일, 한동대 부당징계 사건은 ‘징계는 무효’라는 승소 판결로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단지 재판 승소가 끝이 될 수는 없다. 이 사건은 한 개인만의 일도, 한동대만의 일도, 특정 종교만의 일도, 대학이란 특정 공간만의 일도 아니다. 한동대를 비롯한 기독교, 나아가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고, 이들은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그저 흘러가고 사라지며 없었던 일이 되지 않도록 한동대 부당징계 사건을 구석구석 기록한다.
 

 

글 _ 지민
한동대 부당징계 당사자. 비혼생활공동체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갓길: 같이 걷는 길> 등에서 활동합니다. 염치 아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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