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바늘잎. ⓒ이현정

입동이 벌써 지났다. 두 주가 지난 그 숲은 아직 뾰족하고 가늘게 날카로운 초록잎들이 조심스레 나스락거리고 있었다. 그 틈 단풍나무의 붉은빛과 상수리나무의 진노랑빛은 가을 추억을 더욱 익어가게 한다. 그렇게 온통 하늘을 가리는 소나무들은 빛바랜 노란빛을 슬쩍 비친다. 그러다 스치는 바람에 엽록소를 버린 윤기조차 잃어버린 채 힘없이 매달린 바늘잎들이 스르르 떨군다. 또한, 매몰차게도 몰아치는 바람이 야속하기까지 할 수도. 이내 잎비로 쏟아져 내린다. 따끔거리며 내려앉더니 투박한 내 안경 위로도 걸쳐진다. 두 장의 소나무 잎이 말이다. 한참을 쪼개진 빛처럼 부서져 내리는 소나무 낙엽을 내 눈 속에 담아본다.

 

단풍나무와 상수리나무. ⓒ이현정
ⓒ이현정

그렇게 말라버린 계곡의 시작점 같은 그곳은 시간을 두고 깎여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구릉지 같았다. 가득하게 폭 싸인 느낌이지만 한 줌의 빛조차 비추질 않는 숲속이다. 이 숲속을 우리는 회양목의 좌표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 생강나무들은 미처 잃지 않은 윤기들을 머금고 있었고 밝은 노랑의 넓은 잎들은 마치 맘껏 꿈을 펼친 듯 펴 놓았다. 부러우리만큼 말이다.

 

숲속에서 만난 회양목. ⓒ이현정
회양목 열매. ⓒ이현정

소나무들이 길쭉하게 자라 우세한 이 숲속에 검은빛초록과 노랑의 보색처럼 만들어 내놓았고 깊어가고 있는 가을의 아쉬움은 마치 낙엽들과 뒹굴며 우리들의 발걸음 소리는 그 속에 깊은 잠으로 잠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회양목의 자생지를 찾아 또다시 계곡을 타고 오르며 지난해 열매를 보지 못했던 회양목의 열매를 만난다. 흔히 학교나 공공 기관 등 흔히 만나는 아이들과는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 어둠 속 빛에 굶주리며 살아간 나머지 빛을 찾아 헤맨 흔적들이 여기저기 상흔으로 남아있다. 자라다 빛을 못 만나면 그 가지는 시들시들 죽어간다. 그것이 몸부림치던 흔적인 것이다. 그렇게 자란 줄기들이 내 키를 훌쩍 넘는 아이들이 속속 보인다. 기특하기도 하지!

더욱더 깊어지는 가을 숲속은 온통 상처들로 가득 차 있다. 붉거나 주황빛이거나 또는 노란빛이거나 화려한 상처들이 숲땅으로 떨어지면 숨겨진 진실의 상처가 우리와 마주한다. 빛을 찾아 애썼던 잔가지들처럼 말이다. 결국은 그것의 죽음이 자기를 살리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들은 아주 오래전에 죽음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야 빛을 찾은 다른 줄기와 가지에게 힘을 보태줄 것이 아닌가 말이다.

나 또한 내가 살기 위해서 그 어떤 화려함이든 짊어지지 않으려 애쓴다. 내가 사는 이유는 숲속을 자유롭게 걷는 것이지 말이다.



가을숲. ⓒ이현정
가을숲. ⓒ이현정

 

글 _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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