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경북지역 탈시설 권리 실현을 위한 토론회-탈시설, 존엄한 삶을 묻다” 개최
범죄 시설 6곳 중 절반이 소규모 시설… “규모 작아진다고 집단수용시설 본질 사라지지 않아”

 

경주푸른마을, 혜강행복한집, 영덕사랑마을 등 경북 도내 사회복지시설 인권유린 문제가 잇따르는 가운데, 경주에서 탈시설 권리 실현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경북시민인권연대회의(준),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는 13일, 소노벨 경주 에메랄드1홀에서 ‘탈시설 권리 실현을 위한 경북지역 토론회 - 탈시설, 존엄한 삶을 묻다’를 개최했다.

 

탈시설 권리 실현을 위한 경북지역 토론회. ©경북시민인권연대회의(준)

“시설 수용은 제도적 차별이자 학대”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재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존엄한 삶을 위한 탈시설”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2019년 9월, 국가인권위권위원회가 정부에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권고하였음에도 여전히 중앙정부 차원의 탈시설 정책은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시설수용 정책은 제도적 차별이자 학대다. 이를 성찰을 해야 할 국가가 시설을 유지하며 탈시설을 권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시설이 권리로써 작동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은 탈시설과 관련된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21대 국회에 장애인탈시설지원법과 지원주택 입법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김재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좌장을 맡은 이인영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과 조사관, 김종한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상임공동대표 ©경북시민인권연대회의(준)

김종한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상임공동대표는 “경북지역 시설 인권침해 현안과 지역사회 과제”를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았다. 김 대표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지역 장애인시설 인권유린 문제를 나열하며, “시기와 이름은 달라도, 내용의 본질은 같다. 거주 장애인 학대와 착취, 설립자 일가와 운영진들의 시설 사유화, 공익제보자 탄압과 해고까지 ‘복지’의 이름으로 인권유린을 자행한 범죄시설”이라 지적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최근 논란이 된 6곳의 시설 중 절반이 30인 이하의 소규모 시설이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이를 통해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들이 시설 현안이 터질 때마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시설 소규모화’ 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인지 확인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규모가 작아진다고 집단 수용시설의 본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작든 크든 시설은 시설일 뿐”이라 비판했다.

이어 경상북도가 수용시설 인권유린 문제를 대처할 때마다 “사람이 아닌 법인과 시설을 살려왔다”며, “범죄 시설 중 경상북도가 시설 폐쇄나 법인 해산 수준의 적극적인 행정처분을 조치한 사례가 없다. 탈시설을 추진한 사례 역시 단 한 건도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공론화된 장애인시설 인권유린 현황. 자료제공=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인권유린 고발한 공익제보자 고통에 내몰려

“공익제보자 보호와 지위 인정 절실”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에 따르면, 올해 공론화된 6곳의 범죄 시설 중 5곳이 모두 공익제보를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제보자가 운영진에 의해 해고되거나 탄압받는 사례가 모두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주 혜강행복한집의 경우, 공익제보자가 설립자 일가이자 인사권을 가진 전 원장의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포항다원공동생활가정, 영덕사랑마을 역시 제보자가 학대행위자로 내몰려 쫓겨나거나 해고 시도를 당하는 등 탄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김종한 대표는 “시설 현안 대응에서 공익제보자의 보호와 지위 인정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공익제보자의 지위 인정과 보호 방안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탈시설 권리 실현 방안을 주제로 분야별 지정 토론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김신애 경북시민인권연대회의(준) 대표는 “행정과 공공기관에서 시설수용이 차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인권에 기반을 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분들에게 나가고 싶은지 묻는 것 자체가 권리침해”라며, “그 누구도 시설에 입소하고 싶어서 들어가지 않았다. 사회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꼬집었다.

또한 65세 이상, 20대 청년의 시설 입소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소개하며, “가족에게 쏠려있는 부양의 의무를 덜어내지 않으면 시설 수용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무근 공공운수노조사회서비스노동조합 경북지역지부장은 “탈시설과 노동권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며, 탈시설의 원칙에서 노동권 과제들을 같이 풀어가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적대적 관계가 아닌 탈시설을 위한 연대자, 동반자로서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뜻을 밝혔다.

탈시설을 책임 있게 추진해나갈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문제도 지적되었다. 양만재 경상북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학대사례대응에서) 실제 당사자가 지역사회에 정착해 자립하는 과정까지 책임지고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며, “경상북도가 이 부분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정토론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경북시민인권연대회의(준)

강현석 장수벧엘장애인의집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장수군 사례를 소개했다. 강 대표는 “대책위는 투쟁을 통해 장수군수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고, 현재 독립주거와 주거코디네이터를 확보해 자립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시설에 계신 분들의 80%가 발달장애인분들이다. 탈시설을 논의할 때 발달장애인 자립 지원체계에 대한 고민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당사자 토론자로 나선 김은지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은 “탈시설 이후 필요한 것”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씨는 “수급비가 너무 적어서 걱정”이라며, 폭력이 없는 안전한 생활, 배우고 싶은 교육 무상 지원, 기초생활수급비 확대, 생리대 무상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가 빨리 끝나 놀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수용시설 인권유린 문제, “성찰과 사과가 먼저다”

현장토론에서는 ▲탈시설 추진을 위한 조례 제정, ▲공익제보자 보호 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특히, 탈시설 당사자라고 밝힌 한 참여자는 “수십 년 동안 시설에서 학대를 받고 살아왔다. 지금도 학대는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연대를 말하기 전에, 직접적인 가해자가 있든 없든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먼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관련 기사 보기: 시설, 그들은 우리에게 왜 사과하지 않는가?)

이에 송무근 지부장은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노조의 일”이라며 “당사자들이 입은 피해와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김신애 대표 역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부모로서 수많은 20대 청년 장애인들이 시설에 입소해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너무 부끄러웠다. 나 역시 장애인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대신 사과드린다”며 마음을 전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인영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과 조사관은 토론 내용을 종합하며, “오늘 토론회는 경북지역 탈시설의 도화선이 될 것 같다. 경상북도와 각 시·군에서 탈시설을 위한 자발적인 계획이 속히 수립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종한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상임공동대표는 “오늘 토론회가 탈시설의 시작이다. 오늘의 이 에너지가 경북을 바꾸고, 장애인이 나와서 탈시설을 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10월 30일, 경상북도의 범죄시설 폐쇄와 근본적인 탈시설 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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