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민주노총 경산지부 주최로 열린 ‘특수고용 해고 노동자 김경희와 함께하는 연대문화제’. 사진 김연주.

‘특수고용 해고 노동자 김경희와 함께하는 연대문화제’가 19일 경산 두레밥상에서 열렸다.

자동자판매연대노조 해고 노동자 김경희 조직부장을 응원하기 위해 민주노총 경산지부 주최로 열린 연대문화제에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혜찬 스님과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민주노총 조합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김경희 조직부장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2019년 1월, 현대자동차 경산남부대리점에서 해고됐다.

김경희 조직부장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화해를 권고했다. 원청은 모든 소를 취하하는 전제로 복직을 권고했지만 거부했다. 전국에 자동차 판매노동자가 6천 명이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돌아서면 경찰서 가야 되고, 돌아서면 검찰청 가야 된다. 증인, 사실확인서 작성, 증거자료 준비 등을 동료들이 챙기고 있다”며 “저만큼 동료들도 고통받고 있고, 재판 과정에 힘이 돼주고 있다. 이길 때까지 지칠 수 없을 것 같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판매연대노조 대구경북분회 김영권 대의원은 “노동조합에서 김경희 동지 개인으로 진행되는 모든 것이 판매연대 운명과 같다. 혼자 힘들게 버티는 것이 짠하고 감사하다.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딱 맞는 그런 삶”이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매주 월·수·금요일에 경산남부대리점 앞에서 ‘판매연대 부당 해고, 노조탄압 규탄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 활동과 관련해 명예훼손·업무방해·모욕 등 40여 건의 고소·고발이 이어져 현재 미결 조사만 7~8건에 이른다.

 

김정곤 민주노총 경산지부장은 “김경희 동지는 거의 매일 곳곳을 연대하러 다녔다. 매일매일 울음 속에서 연대를 다녔다. 동지 혼자서 투쟁하지만, 이 투쟁 진다면 민주노총 존재 이유 없다. 복직 그날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희 조합원은 “여기까지 오면서 울었던 기억밖에 없다. 힘도 능력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살도 고민했었다. 10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내려다보니 무서웠다.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살고 싶어서, 죽고 싶지 않아서 연대했다. 연대가 살 길이라 느꼈다. 직원들을 보호하고, 판매연대를 알리고 싶었다”라며 “저의 희망과 ‘빽’은 우리 동지들이다. 이길 때까지 우리 동지들 한분 한분 찾아뵙고 응원하겠다, 응원해달라.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대, 해고 노동자의 일상

IMF 외환위기 이후, 1999년 현대자동차 구조조정으로 자동차 판매노동자들은 ‘지점’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대리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으로 나뉘었다. 자동차 판매대리점과 자동차 판매용역계약을 체결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4대 보험 가입이나 기본급·퇴직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2015년 8월 자동차 판매대리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현대차그룹은 연이어 자동차 판매대리점을 ‘기획 폐업’하고 조합원을 해고했다. 노동조합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자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인정했다.

2019년 6월 13일 대법원은 자동차 판매노동자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연대문화제에 참석한 자동차판매연대지부 최현진 부양지회장은 “2016년 해고 돼서 지난해 판결이 났지만 지금까지 복직하지 못했다. 현대자동차가 노동조합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드러난다”고 말했다.

 

“너거들이 부모 잘 만났으면, 빽 있으면 영업하겠나?”

김경희 조직부장은 노동자들이 대리점 소장의 ‘노예’였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때로 ‘이 새끼, 저 새끼’로 불렸다. 전국 자동차판매영업소 가운데 실적 1·2위를 다투는 곳이었지만, 기본 수수료 외에는 판촉 수당도 인센티브도 없었다. 인격적 모욕을 하지 말라고, 수수료를 정상 지급하라고 요구하자 소장은 직원을 해고하겠다고 했다.

 ‘소장이 워낙 악랄해서 더 뭉쳤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하라고, 각서를 쓰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소장이 강요하자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을 결심했다.

노동조합이 보호해 줄 거라고 기대했다. 곧이어 노동조합 활동에는 의무도 따른다는 걸 알게 됐다. 해고된 이후 1년에 5만 킬로를 달리며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을 빠짐없이 찾았다.

2020년을 시작하던 날, 새해 첫날에도 그는 ‘동지’와 함께였다. 1월 1일은 경산지역 택시노동자들이 점거농성 중이던 경산시청에서 새해 일출을 보았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두 손을 모으고 투쟁하는 동지들의 복직과 안녕을 기도했다.

 

1월 1일, 김경희 조직부장은 택시노동자들이 점거농성 중인 경산시청에서 새해를 맞았다. 사진 김연주.
사진 김연주
음력 설날, 영남대의료원에서. 사진 김연주.

음력설을 맞은 1월 25일, 김경희 조직부장은 박문진 지도위원이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209일째 고공농성 중인 영남대의료원을 택시노조 이상국 경북지회장과 함께 찾았다. 경산시장 과일가게에서 레드향과 감귤을 한 상자씩 샀다. 겨울 내의가 든 종이 가방도 챙겼다.

영남대의료원 로비에 이르자, 단식 농성 중이던 노조 간부들이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곧이어 파란색 점퍼를 입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장에 도착했다. 친구가 세배하러 오라는 말에 한달음에 왔다고 했다.

“이 잠바 당근마켓에서 8천 원 주고 샀어요. 제가 파란색을 좋아해요, 한진 작업복이 파란색이었거든요. 고공농성할 때 사장이 크레인 타고 올라와서는 그 옷 벗으라고 하고 갔어요. 그러고는 작업복이 회색으로 바뀌었죠.”

앞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항암치료 후유증을 겪는 와중에도 70미터 상공에서 고공농성 중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 꽁꽁 언 땅을 걸어 부산에서 대구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김경희 조직부장은 영남대의료원을 상대로 복직 투쟁을 벌였던 박문진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지도위원의 35년 우정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24일, 김진숙 동지를 만나러 그는 부산에 간다고 했다. 올해 말 정년을 앞두고 지난 6월부터 복직 투쟁을 이어오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최근 암이 재발했다. 해고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로, 다만 노동자로, 올해의 마지막 날을 함께 맞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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