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언을 알리는 징후

 

"에듀케이션" 영화 포스터 이미지


1. Prologue _ 2019년 10월 부산에서 “에듀케이션”을 만나다


코로나19 창궐로 전 세계 영화제가 파행을 겪기 몇 달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에듀케이션”을 만났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국제영화제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영화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문제점들을 골고루 접할 수 있다. 특정 지역, 개별 국가의 비극도 있지만 좀 더 보편적인 지구적 쟁점을 동시적으로 접할 드문 기회다. 공통 쟁점에 관한 나라별·지역별 상황을 비교 분석할 수 있다. 책이나 다른 경로로는 닿기 힘든 기회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한국 독립영화는 워낙에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현실이 스펙터클하다 보니 그런 상황을 제대로 담아내기에도 바쁘다. 그러다 보니 ‘한국적’ 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히 차고 넘치지만, ‘다른 나라들에선 비슷한 문제들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 답하는 건 어렵다. 그만한 비전을 선보이려면 거장 급의 통찰력을 갖추거나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의도했거나 그중 하나일 텐데, 2019년에는 전자의 예시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사례가 나왔고, 후자로는 이 작품, “에듀케이션”을 과감히 들 만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장벽을 뚫고 넘어가는 힘과 파격의 순간을 경험하게 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이르러서 마침내, 요즘 우리가 세계 뉴스에서 늘 접하고 있는, 서구 복지국가 시스템에 균열이 오면서 창궐하는 극단주의 경향과 교육격차에서 오는 사회적 야만의 위협을 경고하는 경향을 국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 “에듀케이션”에 그려진 세계


“에듀케이션”을 연출한 김덕중 감독은 졸업작품 소재로 본인이 했던 장애인활동지원사 경험을 떠올리고, 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복지의 현실에 대한 발언을 담아 첫 장편을 완성한다. 대충의 줄거리는 이렇다.

성희(배우 문혜인)는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일을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평소에 동경하던 스페인으로 떠날 궁리로 관련 준비 중이다. 장애인 활동지원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지만 다만 돈을 모아서 졸업학점을 채우려는 방편일 뿐이다. 좀 쉬운 일을 달라고 알선기관 코디네이터를 들볶고, 기본적인 돌봄 노동 외에 그녀의 소망대로 스페인 갈 준비에 시간을 보내려 한다.

 

영화 에듀케이션 스틸 이미지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일이 이뤄진다면 영화가 나올 리가 없었을 테니, 곧 위기와 갈등이 시작된다. 성희가 지원하는 중증 장애인의 아들인 고등학생 현목(배우 김준형)은 그의 활동지원이 마뜩잖지 않고, 둘은 줄곧 충돌하게 된다.

성희는 기본적인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데 추가 업무를 요구하고 자신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는 현목이 불편하다. 현목은 설렁설렁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늘 어머니를 돌보면서 알바에만 매달리느라 제대로 된 관계를 겪지 못하던 현목은 오랜만에 일상적으로 접하는 성희와 어떻게든 친해지고도 싶어 자꾸 들러붙는다.

그런 그들의 관계는 때론 격렬한 파행으로, 어쩌다 인간적으로 케어하고 돌봐주는 순간들로 채워진다. 하지만 훈훈한 마무리와는 거리가 꽤 멀다. 둘 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유가 없고,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서로 악의가 전혀 없음에도 상반된 둘의 조건과 상황은 막판의 격렬한 카타르시스로 성큼성큼 들어선다.

 

영화 에듀케이션 스틸 이미지

“에듀케이션”의 영화 속 세계는 이렇다. 사회복지제도가 외형적으로는 완성되어가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이해와 관심은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복지제도 혜택은 받지만, 그 제공되는 범위가 태부족함에도 정부와 사회는 책임을 다했다며 그들만의 사각지대에 내버려 두면서 사회적으로 소외계층이 형성된다. 영화 속 활동 지원 이용자와 제공자는 별반 처지가 달라 보이지 않음에도, 각자의 어려움 앞에 배려와 우애의 형성은 불가능하게 보일 지경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근본적으로 이타성과 협동 없이 복지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이런 모순들이 응집된 끝에 터져 나오는 결말부의 폭발은 당황스럽긴 하지만 개연성 측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 의미심장하게 구현되었다. 복지 현장에서 줄곧 문제시되어온 쟁점이 현실 갈등을 노출하며 답습과는 선을 긋는 주목할 만한 작업으로 완성되었고, 영화제 소개 1년 만에 극장에서 관객 앞에 선보일 기회를 잡았다.

 

3. “에듀케이션”이 그려내는 ‘동시성’


제목인 “에듀케이션”은 단순히 복지 소외 문제를 빙산의 일각처럼 끄집어낸 것을 넘어서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부의 재분배와 사회갈등 완화를 위한 장치로 기능하던 복지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삐걱대고 있다. 고장 나버린 사회안전망은 빈부격차를 일정 부분 완화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그 과정에서 과거 신분 상승 통로였던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그 결과는 (사회복지제도가 막아내야 할) 계급모순의 심화다. 영화의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제목은 이런 지점들을 아우르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해 제대로 쓰기 시작하면 아마 소논문이 나올 것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편견 하나를 들자면, 이 제도와 개념은 착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근대적 사회복지 제도의 탄생은 지독한 이해타산의 결과물에 가까웠다. 이 제도를 통해 최소한의 복지안전망을 갖추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가진 자들-기득권층은 미래의 위협을 예방하기 위해 적절한 대책을 취하려 했다. 보험 하나 드는 셈 치고.

그렇게 출발한 복지안전망은 늘 불충분했다. 그 제도를 설계한 이들과 수령할 이들이 항상 분리될 운명이었으니. 그 비非주체성은 수요자를 정체 상태에 놔두거나 심지어 타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한편 정부와 사회는 기본 최소 수준의 제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생색을 내며 나머지 책임에서 면책된다. 그 사각지대에 낀 이들은 부족한 제도라도 챙겨야 하는 수요자와 그 상대편의 서비스 제공자이다. 기본 설계가 가진 한계는 고스란히 이들에게 전가되지만, 연례행사로 열리는 ‘사회복지의 날’ 행사에서는 이들 사이에 화목하고 헌신적인 이미지 외의 그늘은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 “에듀케이션”은 정확히 그 지점을 직격한다.

 

영화 에듀케이션 스틸 이미지

“에듀케이션”이 첫선을 보인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수백 편의 전 세계 화제작이 몰려드는 곳이다. 불가사의할 만큼 그 영화제 현장에서 “에듀케이션”이 갖는 주제의식과 통하는 오대양 육대주의 최신작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서로 짜고 계획한 것처럼 연관되는 주제들, 그런 기이한 동시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불완전한 복지제도의 구멍과 형식적인 데에 그치는 사회안전망의 문제, 현장에서 충돌하는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 간에 벌어지는 ‘을’에 대한 ‘을’의 무한투쟁,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사회적 잉여로 전락한 존재들이 추락을 거듭한 끝에 도달하는 “사회적 야만”의 위협, 그런 배경의 결과로 꿈과 목표를 상실한 세대의 탄생과 그 결과로 닥칠 사회의 붕괴……. 

“에듀케이션”이 전하려는 저변의 이야기들은 현재 전 지구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극단주의 위협과 공동체의 붕괴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이는 다른 한국 독립영화 대다수가 애써 다루고 언급하지만, 그 심연에는 대부분 도달하지 못하는 데 반해, “에듀케이션”이 드물게 성취해낸 고유한 결실이다.

영화 속 ‘성희’는 이미 우리가 현실에서, 그리고 영화를 포함한 대중문화 일반에서 경험하고 있는 ‘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의 전형이다.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지만 그다지 사회복지에 관심도 없어 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사정상 그만둔 성희는 그저 숨 쉴 틈 찾고 싶어서 머나먼 이국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일종의 ‘난민’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품은 이들이 정작 도착한 곳에서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고민에 빠진 무수한 붕어빵들을 만날 뿐이다. ‘어딜 가든 여기보단 나을 거야!’라며 파랑새를 찾듯 모험을 떠나지만 2020년의 세계는 어딜 가든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희가 도덕적으로 해이하거나 신문 사회면에 등장했다 잊히는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영화 초반에 ‘준형’의 가사노동 요구는 명백히 안 되는 일이고, 어찌 되었건 사회복지학과에서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성희의 활동 지원은 시급으로만 환산될 성격의 것은 아닐 테니.

 

영화 에듀케이션 스틸 이미지
영화 에듀케이션 스틸 이미지

 

‘준형’의 존재는 기존의 한국 독립영화에서 보이던 유사한 유형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준형은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며 그 또래에 비해 제대로 된 지도나 관리에서 열외로 보인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하지만 관객의 시선에서 준형이 공무원 시험에 과연 제대로 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아마 준형은 학교에선 피곤해서 잠만 잘 테고, 단순 아르바이트와 집만을 오가는 일상이 눈에 선하다. 돈도 없고 백도 없고 교육을 통한 기회도 제공받지 못하면서 최소한의 사회복지제도만으로 중증 장애인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는 그에게 과연 미래란 무슨 의미일까?

“에듀케이션”에서 준형이 그려내 보이는 초상은 한국 사회는 물론 미국의 ‘힐빌리’나 ‘화이트 트래시’, 영국의 ‘차브’, 일본의 ‘사토리’ 세대, 러시아의 ‘고프닉’ 같은 유사한 신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기이한 ‘동시성’이 아닐 수 없다. 액션 영화 “킹스맨” 시리즈의 주인공 ‘에그시’가 차브족의 전형적인 예시인데, 액션 오락영화임에도 사회적으로 그들만의 하층 계급 안에 갇힌 채 미래를 잃고 될 대로 사는 초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불안정한 신분에 체념하고 마는 층위는 나날이 증가 일로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교육을 통한 향상심도 기대하기 힘든 이들이 고립되고 방치된 끝에 다다를 개인과 사회의 운명은 아찔할 뿐이다.


4. “에듀케이션”의 성취, 그리고 결말이 던지는 파열구


아마 “에듀케이션”의 촬영 현장은 평화롭고 훈훈하기보다는 숨이 턱 막히는 밀도였을 게다. 감독이 작정하고 연출한 (독립영화계에서 믿고 쓰는) 문혜인 배우와 신예 기대주 김준형 배우가 어우러지는 ‘무저갱’의 대립과 충돌은, 이들이 어쩌면 현실에서 너무나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었기에 더욱 진하고 처연한 슬픔의 기운으로 각인된다.

문혜인 배우의 지친 듯 피곤한 표정과 무심한 것처럼 섬세하게 표현된 터치들은 마지막의 경이로운 폭발로 뿜어져 나온다. 그 놀라운 마지막 찰나를 위해, 감독은 자기가 원하는 비전을 뽑아내고자 비타협적으로 몰입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작정하고 독기를 품은 작품이 나오기란 어렵다. 욕심 많은 감독과 프로의식 철철 흐르는 배우가 제대로 밀고 당기며 아슬아슬 줄타기하던 제작 현장의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에듀케이션”은 21세기 한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가 앓고 있는 사회복지의 위기, 그 심연에 도달한 드문 사례다. 그렇기에 꽤 불편하게 볼 이들도 적지 않을 테다. 이 영화는 만장일치의 박수를 기대하기보단, 격렬한 논쟁을 촉발하기를 바랄 태도로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작품 정보


에듀케이션 The Education


한국, 드라마, 2019

2020.11.26. 개봉, 98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김덕중

주연 문혜인, 김준형

배급 씨네소파


24회 부산국제영화제(2019) 올해의 배우상(문혜인&김준형)

45회 서울독립영화제(2019) 경쟁(장편)

8회 무주산골영화제(2020) 영화평론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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