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타그램을 하면서 새로운 작가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크다. 책을 고를 때 작가도 매우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니까. 평소 관심 있는 작가가 책을 내면 망설임 없이 집어 들게 된다. 반면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은 책의 제목과 목차, 그리고 무작위로 펼친 페이지의 글을 보고 나서야 관심이 생긴다. 그나마 오프라인 서점이면 가능한 일. 온라인 서점으로 책을 사려 할 땐 그마저도 들여다볼 수 없어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진다. 북스타그램을 하기 전엔 더 심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책 자체를 거의 읽지 않을 때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추천은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을 집어 들게 하는 마법을 만들어낸다. 리베카 솔닛과의 만남도 그랬다. 솔닛은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쓴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우리에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로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를 쓴 작가로도 알려졌다.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는 알았지만 그게 솔닛의 책에서 쓰인 용어란 건 까마득히 몰랐던 때. 누군가의 추천이 없었다면 솔닛의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첫 만남은 경북 청도의 시골 책방이었다. 그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는데 마침 북스타그램에서 그 책방을 본 기억이 났다. 망설임 없이 책방으로 향했는데,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아 살짝 고생했다. 날도 막 더워졌던 터라 땀을 좀 흘리며 책방에 도착했다. 그때 책방 사장님께서 내어주신 레모네이드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여하튼 책방의 책들을 구경하는데 한쪽 벽면에 작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고 그곳에 몇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무슨 책인지 표지를 구경하고 있으니 책방 사장님께서 다가와 본인이 책모임에서 읽은 책인데 너무 좋아서 추천하는 책으로 따로 꺼내놓았다고 설명해 주시면서 이 책을 읽으며 가깝지 않았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때 추천해 주신 책이 바로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이다. 책방에 들렀으니 책은 사야겠고, 한 권만 사기엔 여기까지 걸어오며 흘렸던 땀방울이 아까웠다. 한 권은 평소 눈여겨보던 책으로 골랐고, 다른 한 권을 더 고민하는데 책방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 눈에 밟혔다. 책방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추천하신 책인데 설마 별로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표지에 적힌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부제도 마음에 들었다.
 

<멀고도 가까운>은 리베카 솔닛 앞에 혼자서는 처리할 수 없는 산처럼 쌓인 살구들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이 살구들은 그의 어머니 집에 있던 살구나무에서 따온 것으로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로 인해 살구들을 처리할 수 없게 되자 결국 그의 몫이 되었다. 눈앞에 쌓여있는 살구들. 그녀는 이제 성하지 못한 살구들을 골라내고 남은 살구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 곳곳에 악취를 풍기며 썩어갈 것이 뻔하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마치 미뤄두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 골라내고 담아내야 하는 것과 같다고. 그렇지만 섣불리 어머니에게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갈등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멀어진 거리를 좁혀나가기 위해 가장 가까운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소설 속 인물이나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동물이나 장소에 관한 이야기일 때도 있었으며 지인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솔닛의 이야기이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떠난 이야기 여정처럼 느껴졌다. 추천해주신 이유에 공감했다. 쉬이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묵직하게 남는 책이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출간한 출판사 계정에서 ‘리베카 솔닛을 좋아하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곧 리베카 솔닛의 신간 <마음의 발걸음>이 출간되는데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보통 서평단 신청은 큰 조건 없이 신청을 받는데 이번 서평단은 리베카 솔닛의 전작을 읽고 리뷰를 올려야 한다는 신청 조건이 달렸다. 사놓은 책도 많고 시간도 부족해 당분간 서평단 활동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솔닛의 신간은 읽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책을 살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기에 굳이 서평단을 신청할 이유는 없었지만 여기 솔닛의 전작을 읽은 사람이 있어요, 벌써 리뷰도 올린 사람이 있어요,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는지 결국 신청하고 말았다. 다행히 서평단 신청 글이 올라오기 전에 업로드한 리뷰도 인정이 되어서 서평단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서평단이 되었다.

 

청도에서 리베카 솔닛을 추천받지 않았더라면, 추천받은 책을 구매하지 않았더라면, 구매해놓고 읽지 않았더라면, 읽고도 리뷰를 쓰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우연 속에 만난 두 번째 리베카 솔닛의 책이었다. 책방 사장님이 생각났다. 잘 몰랐던 작가와 책을 소개해 준 사장님. 내가 북스타그램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청도 시골 책방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리베카 솔닛과의 인연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마음의 발걸음>은 신간이지만 신작은 아니다. 1997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된 책으로, 리베카 솔닛의 아일랜드 여행기로 알려졌다. 하지만 리베카 솔닛에게 아일랜드는 단순한 여행지라기보단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일랜드계 미국인 3세대쯤 되는 이에게 어느 날 던져진 국적, ‘내가 잘 모르는 내 나라’다. 나는 다시 ‘내가 잘 모르는 내 나라’로 떠나는 솔닛의 이야기 여정에 함께했다. 시간에 쫓겨 지난번 리뷰를 쓸 때만큼 공을 들이진 못했지만, 그때처럼 솔닛의 통찰력과 그가 풀어낸 삶의 지혜를 읽어 내려간 즐거움에 관해 썼다.

 

서평단 리뷰는 무사히 업로드하였다. 쓰다 보니 좀 길어졌는데, 상대적으로 짧게 쓴 다른 리뷰에 비해 플러스 요인이 되었을까. 운이 좋게도 우수리뷰어에 선정되었다. 이로써 리베카 솔닛과의 특별한 인연이 추가되었다. 어떤 이는 이게 무슨 특별한 인연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리베카 솔닛이 무명작가도 아니고 유명한 작가니까.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다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맞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니까 특별하다.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연. 나에겐 북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책방과의 인연이 특별했고 책방 사장님의 진심 어린 추천이 특별했다. 그리고 특별함을 믿기 때문에 오늘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북스타그램 태그를 걸며 리뷰를 올린다. 리베카 솔닛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담아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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