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이 영화를 보라!]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 김상목
  • 승인 2020.12.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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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도시를 파괴하는 부동산 투기의 실상

 

"푸시 -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포스터 이미지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포스터 이미지

 

1. 젠트리피케이션 다음은?

영화가 시작된다. 작지만 근사한 바에 가득 들어찬 손님들 앞에서 바텐더는 수수께끼를 낸다. “그 동네를 떠날 때가 됐다는 첫 번째 신호가 뭘까요?” 쉽게 답하지 못하는 청중들 앞에서 바텐더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한다. “빈티지 옷 가게가 생겼을 때죠.” 젊은이와 예술가들이 그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곧 임대료가 오를 것이란 이야기다. 그리되기 전에 얼른 떠날 궁리를 해야 한다는 우스개에 듣던 이들은 박장대소한다.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의 인상적인 도입부다. 그리고 카메라는 세계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그 농담이 현실로 변모하는 잔혹한 풍경화를 치밀하게 보여준다.

부동산 투기라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가 있다. 첫 번째는 추억의 댄스그룹 소방차가 패러디해 부를 정도로 1980년대 기승을 떨치던 서울 강남 부동산 투기의 주역, 일명 ‘복부인’ 풍자(그 중심에는 당시 영부인과 전설의 사기꾼들이 있었다). 두 번째는 그 직후인 1990년대 초반, 일본 버블 붕괴의 기억이다. 성장의 극을 달리던 일본 부동산 가치가 정점을 찍던 그 시절에는 일본 부동산을 전부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고 미국 대기업 몇 개가 인수합병으로 일본에 넘어가자 군사력으로 진 일본이 경제력으로 이긴다는 자조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과 괴리된 채 폭주하던 버블 붐은 종지부를 찍고, 경제 위기가 도래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 장기 불황의 시작이다. 전국에 짓다 만 맨션과 리조트가 널려 있었고, 당시 초인기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버려진 유원지가 배경일 정도로 사회 전반에 어두운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일본은 아직도 온전히 그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푸시 -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이미지

다시 현재의 한국으로 돌아오면, 근래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자 소상공인과 임차인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코로나 창궐 후 반짝 미담으로 ‘착한 건물주’가 유행했지만, 일부 선의로 상황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도시 공간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유사한 조건의 나라 중에 자영업자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장래희망 건물주”라는 유행어가 등장했다. 정부의 부동산 잡기와 임대주택 정책은 사회적 논란 속에 표류한다. 부동산 문제로 갑론을박하는 와중에 참고할 만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가 그 주인공이다.

 

2. 프레드릭 게르텐의 영화들

감독 프레드릭 게르텐은 스웨덴 출신 1956년생 고참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바나나 소송사건 Bananas!>(2009)에선 우리에게도 익숙한 초거대 다국적 과일 회사 Dole에 맞서는 쿠바 출신 미국 이민자 변호사의 법정 투쟁을 다뤘다. 속칭 “바나나 공화국”의 일원인 중미의 소국 니카라구아의 바나나 플렌테이션 농장 노동자들은 생산성 명목으로 무차별 사용된 독성 농약 때문에 불임과 질병에 시달려 왔고, 변호사는 12명의 바나나 농장 일꾼들을 대리해 지난한 소송을 이어간다.

후속 작품 성격인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 Big Boys Gone Bananas!>(2011)는 전작 <바나나 소송사건>이 여러 영화제에 초대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상영이 취소되거나 선정에서 배제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곧 Dole 회사 변호사로부터 상영할 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통보가 날아온다. 연이어 명예훼손 고소, 기업의 사주를 받은 음해와 편파 보도가 이어진다. 기업 홍보를 맡은 대행사는 대대적인 클린 이미지 광고를 쏟아낸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절망적 상황에 몰리지만, 제작진은 대기업과의 2라운드 대결에 나서 상영을 위한 권리 투쟁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차기작 <자전거 vs 자동차 Bikes vs Cars>(2015)에선 세계 대도시 교통 문제를 다룬다. 각국 도시들의 주요 통행수단을 매개로 감독은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고갈, 대도시의 교통난이 가져오는 비효율과 낭비를 지적한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의 가능성과 함께, 자동차보다 먼저 발명되어 일찍이 도시 내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되었지만, 자동차 산업에 밀려나 버린 역사를 소개한다. 거대 산업의 이익을 위해 강제 추방당하다시피 한 자전거 위주 도시교통 기반의 사연과 함께 현실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미국 LA, 덴마크 코펜하겐을 찾아 소개한다. 이 작품의 연출과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고스란히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로 연결된다.

 

"푸시 -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이미지

 

3. UN 주거문제 조사원을 따르는 스크린 세계 일주

감독과 카메라는 국제인권법 관점에 따라 대도시 주거문제를 진단하는 UN 주거문제 관련 특별 조사위원 레이라니 파르하의 여정을 따른다. 캐나다의 토론토와 오타와, 영국 런던, 브라질 발파라이소, 스페인 바르셀로나, 미국 뉴욕, 이탈리아 밀라노를 누비다 서울에까지 이르는 장대한 여정이다. 세계 유수의 대도시들 곳곳에선 마치 붕어빵 기계로 찍어내듯 동일한 풍경이 펼쳐진다. 도심 집값과 임대료는 폭등하고 가난한 이들은 도시공간에서 쫓겨날 운명이다. 강제철거로 쫓겨나느냐 도저히 낼 수 없는 집세와 임차료에 제 발로 나가느냐 차이 정도다.

그렇게 오랜 세월 지역을 매개로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공동체와 골목의 이웃들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초국적 금융자본과 대규모 부동산기업은 대규모 리-모델링 사업으로 지가를 올려 팔아서 큰 이익을 얻는다. 로맨스 영화의 배경으로 유명한 런던의 매력적인 동네 노팅 힐 상황은 충격적이다. 그림처럼 근사한 단독 건물들의 소유주는 세계 각국의 부재지주들이다. 정작 주민들은 세입자 신세일뿐. 그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으며 결국 그 지역은 공동화되어 간다.

얼핏 생각해 보면 그렇게 공실률이 높아지면 손해 볼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원래 살던 이들이 모두 사라져야만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가치가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들은 공실률이 아무리 높아도 별반 걱정이 없다. 찔끔찔끔 임대료 수입보다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토지 가격 상승이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집값 상승률과 비교하면 임금 인상은 몇 분의 일 수준이고, 서민이 아무리 노력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란 하늘에 별을 따듯 불가능한 현실이다. 토론토에서는 지난 30년간 집값이 425% 오를 동안 임금은 133% 올랐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는데 해당 지역 실제 거주자는 점점 줄어든다. 그러하기에 조금만 임대료를 올리면 대규모 자본의 도시 공간 장악은 순식간이다. 매입 주체는 다국적 부동산 관리 회사이며, 자본을 대는 이들은 온갖 출처 불명의 사모펀드들이다. 주객전도도 이런 경우가 없다. 이쯤 되면 젠트리피케이션은 그나마 얌전한 축이란 한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지경이다.

해외 뉴스를 통해 국내에도 많이 보도된 사건인 런던 노팅 힐 인근, 영국 최대 부촌 지역인 켄싱턴&첼시에 인접한 그렌펠 타워 화재 참사는 영화에서도 주요한 예시로 소개된다. 그렌펠 타워는 저소득 노동자 계층이 살던 낡은 24층 임대주거용 건물이었다. 제대로 된 수리보수 대신에 겉으로만 리모델링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저급한 자재로 날림 외관 공사만 거듭하던 이 건물에서 2017년에 냉장고 폭발로 화재가 발생한다. 불타기 쉬운 외장 소재는 화마를 키웠고, 앞서 언급한 부실한 유지 보수로 건물에는 정작 반드시 필요한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 게다가 화재가 새벽에 일어나는 바람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푸시 -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이미지
"푸시 -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이미지

이 건물의 거주자는 저소득층과 이민자들이었기에, 개별 화재를 넘어 영국 보수당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 정책을 상징하는 참사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하위 10%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이재민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임시 거주지는 제공되지 않았다. 여론의 비난에 겨우 시늉만 했을 뿐. 일례로 해당 지역구 지방의원이 이재민에게 노팅 힐에서 살 능력이 안 되면 떠나야 한다고 했다는 일화가 나올 정도다. 세상이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의 카메라가 향하는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도시를 만들고 가꿔 온 주인공들은 바깥으로 쫓겨나거나 더 열악한 주거조건으로 내몰린다. 단지 주거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도시에 있는데 도시에 거주할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하나? 출근하기 위해 몇 시간을 이동하는 소모적 행위를 반복하거나 실 환경에 비해 비싼 임대료를 감수해야 한다. 하루살이 인생이 되어버려 저축 같은 미래를 위한 투자는 불가능하다. ‘가난의 대물림’ 조건이 완성되는 것이다. 개인과 가족의 경제적 전락과 함께, 다양한 이들이 조밀하게 관계망을 형성해온 지역 공동체 문화 또한 소멸의 길을 걷는다. 결국, 도시에서 사람은 사라지고 건물만 남는다. 사회와 문명의 붕괴로 이어지는 디스토피아의 풍경이다.

 

4. 반격의 시작?! 그리고 한국의 부끄러운 민낯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는 단지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펼쳐진 묵시록적 풍경만 보여주진 않는다. 관록의 감독이 무척 애를 쓴 티가 팍팍 날 정도로 영화에는 쟁쟁한 게스트들이 등장한다. 컬럼비아 대학의 세계적 도시이론 권위자 사스키아 사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사회운동가 출신 바르셀로나 시장 아다 콜라우, 이탈리아 남부 범죄조직 카모라의 실상을 정면으로 파헤친 르포 소설 <고모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 등이 그 어벤저스의 일원이다. 이들은 대도시의 국경을 초월한 현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규제책 마련 같은 공동 대응, 그리고 도시 주거권이 보편적 인권임을 전 지구적인 표준 협약으로 설정하려는 목표를 설정한다.

앞서 언급한 쟁쟁한 조력자들의 조언과 지원에 힘입어 각국 주요 대도시의 진보적 행정가와 활동가들이 영화 후반에 들어서 포럼과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무분별한 난개발을 제어하고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하기 위해서다. 투기세력에 맞서 도시 행정부가 토지와 주택을 매입해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공동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에어비앤비 같은 초국적 사업체의 위법 행동에 실질적 조치를 취하는 사례들이 작지만 축적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푸시 -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이미지

영화 후반 카메라는 서울에 도착한다. 일순간 반갑다. 하지만 그 직후 부끄러움이 한가득 터져 나온다. 프레드릭 게르텐 감독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한국 사회를 정의한다. 1950년대 한국전쟁의 잿더미와 국민소득 57달러의 초 빈국에서 반세기 만에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하지만 그 대가로 “브루탈리즘brutalism” 스타일의 강제 개발을 시행한 나라.

그리고 용산 참사의 생존자가 출연해 자신이 겪었던 강제철거와 국가폭력에 대해 증언한다. 민망하기 짝이 없다. 용산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곳곳에서 재개발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강제철거와 일방적인 행정집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다음 장면 또한 우리에게 충격과 경각심을 안긴다. UN 조사관은 국민연금공단을 방문한다.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은 한국의 국민연금이 자금을 투자하는 대상 중에서 범죄조직의 돈세탁이나 조세 포탈지대를 우회하는 경우가 존재함을 지적한다. 공단 관계자들은 묵묵부답일 뿐이다. 자국의 은퇴한 연금수령자의 몫을 불리기 위해 타국 시민의 일자리와 삶터를 빼앗는 다국적 부동산 기업을 투자처로 삼는 것을 문제시해야 한다는 질타가 이어진다. 모순이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5. 주거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

부동산 문제는 우리에게도 피부로 절실하게 와닿는 문제다. 주거환경이 사회적 계급을 상징하고, 초등학생이 어른들의 그릇된 인식을 복제한듯 사는 동네에 따라 편 가르기와 차별이 만연한다는 뉴스를 볼 때 이맛살을 찌푸리곤 한다. 하지만 일국적 차원에서만 인식하던 문제를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으로 연결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확신하는데 필수적인 연결고리가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에서 제대로 구현된다.

부동산 문제와 도시개발에 대한 고민을 품은 이들이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내용이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는 가득 들어차 있다. 세계적 명사들의 친절한 해설과 해법들은 머리만 싸매고 끙끙 앓던 이들에게 후련하고 속 시원한 쾌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삶의 터전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이 정든 동네에서 쫓겨나는 무수한 사례들이 분노의 목소리로 순도 높게 세계 곳곳에서 우러나온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성찰의 용광로 같은 명품 다큐멘터리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라.

* EBS의 다큐멘터리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 D-box에서 월정액으로 관람 가능하다.

 

작품 정보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Push

스웨덴, 다큐멘터리, 2019, 92분

감독 프레드릭 게르텐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2019) 초청

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2019) 초청

핫독스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2019) 초청

클리블랜드 국제 영화제(2020)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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