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눈 속을 헤치며 붉은겨우살이를 바라보다
쌓인 눈 속을 헤치며 붉은겨우살이를 바라보다
  • 이현정
  • 승인 2021.01.11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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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또다시 어둠을 뚫고 한파가 몰아치는 이른 아침을 달려 나간다. 바로 오늘, 추위를 앞세운 내 주춤거림으로 기회를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한 두 손이 운전대를 움켜쥔다. 그렇게 함께할 일행을 만났다. 우리는 전라북도를 향해 달린다. 지난밤 진눈깨비처럼 흩뿌려진 얕은 눈 쌓임이 듬성듬성 스친다.

어느 순간에 가는 눈알갱이들이 천천히 춤추며 나풀거리더니 제법 굵은 소금알갱이로 보인다. 차창 밖으로 내민 손에 내려앉은 눈 결정은 제법 굵었다. 점점 우리는 속도를 낼 수 없게 되었다. 내내 눈들도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백색의 들판으로 바뀐다. 물론 우리 주변을 함께 달려주는 차량 또한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저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제설 트랙터를 오히려 위안으로 삼을 정도이다. 우린 그렇게 위태로운 눈 쌓인 도로를 줄기차게 달리며 3시간 30분 만에 숲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현정
ⓒ이현정

흰 눈이 내리는 숲속은 순백의 겨울 나라의 위엄을 보여주고도 모자랄 듯했다. 수년 전부터 뉴스에선 북극 찬 공기를 가두었던 제트기류가 북극 진동주기에 의해 음의 값으로 약해지면서 그 틈으로 한반도로 향한다고 했다. 현재의 극추위가 바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파고드는 한기는 더욱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한다 말이지. 앞장선 일행 한 분은 서두르고 계셨다. 나와의 간격이 꽤 차이가 나고 있었기에, 급기야 보이지 않는다, 앞선 그분이. 그러거나 말거나가 돼버렸다. 너무도 신비로운 눈을 한소끔 떠 입으로 가져가 비벼보기도 한다. 그 새하얀 눈을 말이다.

훗! 숲의 계곡도 하얗게 펼쳐져 하얀 눈의 세상을 여행하는 듯하다. 1km 넘게 걸었을 것이다. 그 새하얀 눈 숲속의 넘칠 정적을 깨고 트드특 트툭 트두득! 둔탁하지만 명확하게 내려찍는 소리다. 바라보는 내 동공이 어질어질해질 정도이다. 오색딱다구리이다! 5m 정도 떨어졌을까 말이다. 이리저리 살피는 이들, 천적인 나를 피할 생각이 없나 보다. 더구나 수컷이다. 붉은 빛깔의 정수리를 드러내고는 치열하게 부리를 꽂아대고 있다. 그렇게 눌러대는 휴대폰 셔터 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질 않는다. 어찌 반갑지 아니할까 말이다. 쪼아대는 나무줄기 반대편은 흰 눈이 기막히게도 쌓여있다. 세로로 기다랗게 말이다. 먹이를 찾을 선택지가 줄어듦이다. 어찌나 부리로 파고드는지, 어리석은 우리들 눈으론 열심히 산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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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숲에서 만난 오색딱따구리. ⓒ이현정
눈 속 붉은겨우살이. ⓒ이현정

이제 거의 다 왔다며 우리를 다독이신다. 허둥거리며 조금 올랐을까 말이다. 내 머리 위를 가리키신다. 그렇게도 그리던 겨우살이를 만나고 말았다. 저 위에 빨간 열매를 단 붉은겨우살이와 옅은 노란빛으로 영롱한 겨우살이가 함께 그 새하얀 눈을 업은 채 고고하게도 앉아있다. 굴참나무에 굵직한 뼈뿌리를 내리며 말이다. 열매는 올 2월까지도 새들에게 먹이로 먹힐 것이다. 물론 붉은겨우살이와 겨우살이는 반기생으로 여름은 나뭇잎에 많이 가려지지만, 겨울은 초록의 잎들이 광합성을 하는 것이다. 또한, 번식은 더욱 확실히 해 두었다. 오래전 겨울 지리산 탐사에 나섰다가 마을 어귀에 뒹구는 겨우살이 열매를 따서 만져 보았다. 엄청 끈적였다. 새는 열매를 따 먹다 부리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열매는 나무에 비비며 떼어낸다. 그렇게 새로운 겨우살이들이 탄생한다. 물론 다른 경로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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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겨우살이. ⓒ이현정
눈 쌓인 겨울 숲. ⓒ이현정

눈 속에 폭 쌓인 깊은 겨울 숲엔 그 백설이 줄기를 타고 오르고 가지에 내려앉고 겨울눈들(동아)을 온통 싸 안고 했어도 겨우살이 열매를 다 감출 수는 없었나 보다. 곧 햇살이 반짝이는 날엔 올라앉은 눈들이 녹을 것이다. 천천히 녹더라도 괜찮다. 보이는 만큼 천천히 따 먹을 것이다. 오르며 만났던 오색딱다구리 또한 빈곤한 만찬을 즐기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새들에겐 더욱 붉은겨우살이와 겨우살이들이 특별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말이다.

눈 쌓인 겨울 숲은 빛나는 빛도 쌓았고 포도당도 쌓았으며 건강하게 썩은 흙도 생각할 수조차 없이 쌓아 놓았다. 흘러가는 바람도 또한 쌓여있다. 강한 바람,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그 바람들이었다. 그렇게 모든 생명체들이 눈처럼 쌓여 언젠가 녹아들 것을, 푹푹 빠지는 내 발걸음을 위로해본다.
 

 

글 _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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