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회사가 사라졌다”
[서평] “회사가 사라졌다”
  • 박지영
  • 승인 2021.01.26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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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은 기록을 없애는 거잖아요. 잘못된 것들을 리셋시키고 다시 만드는 거잖아요. 모든 사람의 피땀 눈물을 다 한마디로 리셋시키는 거. 노동자한테는 환장할 노릇이고, 자본가한테는 정말 손쉬운 방법이죠. 폐업은 정말 인생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은 일이에요. - 회사가 사라졌다, p. 236

IMF 이후 일자리, 감원, 해고, 부도, 폐업, 청산, 외주화, 아웃소싱은 기업을 움직이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특히 코로나 이후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잃는다’는 성별 구분 없이 일상의 공기처럼 떠돈다.

‘쉬운 해고’와 문을 ‘탁’하고 닫는 것처럼 폐업이 쉬운 자본가를 상대로 노동조합이란 막차를 타고 달려드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일자리 시장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 ‘하대’를 지나 ‘천대’ 받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회사가 사라졌다〉는 가난한 맏딸이 학교를 포기하고 직장에 뛰어든 생애에 대한 구술서이다. 약을 달고 살며 손가락이 변형된, 사라진 회사의 노동자 정숙 씨 이야기다. ‘해고’와 ‘폐업’이 쉽고 여성 노동자는 쉽게 버릴 수 있다는 노동계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텅 빈 회사의 을씨년스런 모습, 투쟁 현장에서 밥 지어 먹고 집으로 퇴근하는, 노조하는, 노조하려는 수많은 정숙 씨를 만날 수 있다. 흑자를 내던 휴대폰 케이스 회사가 어느 날 골프장을 운영하는 회사로 바뀐다. 쉽게 사라지는 회사, 쉽게 쓰고 쉽게 해고되는 여성 노동자, 손 놓은 정부, 기업 우대 세금의 진실을 낱낱이 알려준다.

 

ⓒ 박지영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은 어쩌다 ‘여자들’을 기록하게 되었을까.

 

가끔 언론이 찾아와 일자리를 읽은 사람들에게 심정을 물었지만, 생각이 아닌 심정을 묻고 눈물과 한숨을 담아 갔다. 그마저도 폐업은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는’일이라며,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치기해 보도했다. - p.9 

15년을 매일같이 집보다도 오래 지내던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갑자기 단절되는 일. 내가 통제할 수없이 닥쳐온 상황들. 이런 경험이 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낼까. - p.45

일하는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회다. ‘그래도 되는 세상’이 싫어 여자들은 뭉쳐 ‘달려든다’. 달려드는 여자들이 만드는 장면이 자꾸만 내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다. 그 장면들이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의 풍경을 바꿀 것을 알기에. - p.105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전봇대에 어떤 경력도 이력도 필요 없는 시급제 ‘주부 모집’ 공고를 볼 수 있다. 진입하기 쉬운 직장은 일하다 언제든 나와도 되겠다 생각하겠지만, ‘해고’라는 단어를 맞닥뜨리면 투사로 변한다. ‘여자 벌이’가 반찬 벌이 취급되며 삶에서 커리어가 되지 못한다. 억울해서 노조에 가입하고 ‘드센’ 아줌마가 된다. 반면, 일과 가족 챙김에 소홀함이 없는 ‘엄마다운’ 슈퍼우먼이 탄생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꿈적거려야 먹고 살으니까. 나도 돈이 없을 때는 마음을 기냥 내려놔 버렸는데, 통장에 천만 원, 2천만 원 쌓이니까 재밌더라고. 그래서 내가 돈을 더 마악 안 쓰고 모았지. 안 쓰고 밤낮으로 벌었어 그냥. - p.81

 

쓰고 싶은 자들의 중요한 이유로 이 책은 편파적으로 향한다. 자본가와 노조하는 노동자는 영원히 투쟁하는 세력으로 보이며 그것은 맑스의 ‘착취’ 이후 영원불변하지 않는가.

성급하게 이 책을 요약하자면, 사라진 회사에서 일하고, 먹고, 싸웠던 노동자 정숙 씨는 나 자신이기도 하다. 어느 편도 아니라던, 알고 싶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무지함을 평화주의라며 나불거렸던 것을 반성하게 한다. 이제는 겸손해할 필요가 없어진다.

 

티도 안 나는데 애쓰며 사는 사람들, 그 ‘애씀’이 별 볼 일 없어서 ‘자격 없다’라고 하는 세상, 일하고, 헤어지고, 변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 p.256

흔히 있는 일이라던, 어쩔 수 없다던, 그리 중대한 사건은 아니라던 여자들의 노동과 실직을….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 p.259

노동자가 서 있는 위치에서 편향된 글쓰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숨죽여 사는 듯 보이는 노동자들의 담대한 순간을 담아내는 것, 내가 노동 르포를 계속 쓰고 싶은 이유다. - p.262

 

사라진 회사는 직원들을 경쟁시키며 밤낮없이 미싱을 돌리게 했다. 자본가가 흑자를 볼 동안 노동자의 주야 2교대 젊은 시절은 적자 인생이었다. 누군가는 더 가지고 누군가는 더 빼앗기는 인생은 불평등하다. 자신이 착취당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용기를 낸다. 언니들의 ‘빼앗기지 않는 법’은 혼자가 아닌, 함께 노동조합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맞서서 싸우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더러워서 피할 수도 있고 치사해서 피할 수 있지만, 그러면 또 딴사람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니, 나는 맞서서 싸우겠다. 온갖 못난 갑질에 피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는 가치만으로, 나는 이겼다고 생각해요. - p.104

 

이 책은 사라진 회사에서 가족을 먹여 살린, 천 원짜리 노동(?)처럼 치부된 여성 노동사를 채집하고 구술하는 작업에 의미를 두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구호처럼, 사적으로 치부되었던 여성 노동을 사회구조적 책임의 정치로 짚고 넘어가는 서술기법은 이 책의 포인트다. 더불어 성별 분업 노동이라는 가부장제 존속 이념을 꼬집고 노동시장에서 소수자인 여성의 상대적 지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다.

인터뷰이의 구술을 채집하고 글로 녹여내는 작업은 고되다. 저자의 배려와 동감이 차가운 현장에서 온기를 보일 때 인터뷰이는 마음을 연다. 림보, 시야, 하은, 희정에게 무한정의 박수를 보낸다.

인간의 존엄과 타인의 존엄을 배우는 노조하는 정숙 씨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자본과 노동이 평등하게 인간에게 향할 날까지 그 사실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미싱 바늘이 손가락을 물어뜯어도 일하는 자신이 좋았다던 노동자의 이야기는 회사가 사라지듯 사라지면 안 되는 거다. 땀샘을 타고 흐른 진짜 노동의 맨바닥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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