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오지 않은 것, 실제와 다른 것, 정말로 그랬던 것 (1)

2005년 대한민국을 달구었던 황우석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제보자>102일 개봉했고 1014일 기준 125만 명의 누적 관객을 동원하면서,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관람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인터넷 댓글에서는 사건 당사자인 황우석 박사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나,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인(박해일 분)의 분투는 오늘날 부쩍 위축된 언론 현실과 대비되면서 정의를 지향하려는 대중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평이다.


영화적인 수준이나 재미를 떠나, 물론 <제보자>에는 이런저런 한계가 존재한다. 황우석 연구팀의 체세포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얽힌 다양한 맥락이 생략되었고, 실제로 7개월 가량 진행되었던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도 영화에서는 대거 빠져 있다. 이들을 러닝 타임 속에 넣기란 당연히 곤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본지는 영화와 실제 사건의 차이와 유사성을 다룬 기사를 준비했다.

크게 알려진 사건이라 이 영화의 결말을 보지 않고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이 기사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밝힌다. 아울러, 이 기사에 나오는 한학수 PD의 증언이나 회고는 그의 저서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에 서술된 내용임을 일러둔다. 이 책은 근래 <진실, 그것을 믿었다>로 새로 나왔다.  

<PD수첩>의 첫 기획은 <황우석과 부시>였다

영화에 나오는 방송 프로 <PD추적>은 황우석 연구의 허상을 파헤쳤던 MBC <PD수첩>을 가리킨다. 박해일이 연기한 윤민철 PD의 모델은 한학수 PD. PD가 황우석 연구를 추적했던 계기는 제보자의 고발이 아니었다.

그는 <세기의 논쟁, 황우석과 부시>라는 제목으로 생명윤리 문제를 다뤄볼 작정이었다. 당시만 해도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는 난자 공급이나 연구 윤리보다는, 줄기세포 연구가 생명윤리에 반한다는 종교계 등의 반발에 더 크게 직면해 있었다.


한학수 피디는 황우석 교수팀과 줄기세포 연구를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 쪽과 공화당 사람들을 섭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양쪽 다 섭외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20055월의 일이다. 그러다 한 피디는 61일 제보자로부터 메일을 받는다. 황우석 박사와 인연이 있다는 제보자는 이 메일을 통해 황우석 박사의 논문에 대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편지 보낸다고 밝혔다.

진실과 국익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인가요?”

영화에서 제보자(류연석 분)는 이렇게 묻는다. 영화 대사 치고는 다소 무거운, 과연 실제로 그렇게 말했을까 싶은 말이다. 이는 사실이다. 한 피디 역시 윤 피디가 답변했던 것처럼 언론인이라면 진실이 우선이며, 진실 추구가 궁극적으로 국익에 이바지한다고 답변했다.

PD가 난자 매매 사실을 알게 된 사정

영화에서는 윤 피디(박해일)가 취재 도중 난자 매매 현장을 잡고, 이와 황우석 박사 연구팀의 연관을 짚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보자인 일명 닥터K’, 이메일을 보낸 후 한 피디와 만난 자리에서 <사이언스> 논문이 조작임을 밝히면서 이와 함께 난자 매매 사실을 증언했다.

이외에도 닥터K는 황우석 박사의 복제소 영롱이’, ‘백두산 호랑이 복제 프로젝트’, ’광우병 내성소발표, ’무균돼지와 이종간 장기이식 사업등이 과장이나 허위로 점철되었다는 증언을 쏟아내게 된다.


제보자를 보호한 시민운동가 겸 과학자가 있었다

<제보자>에는 나오지 않지만 황우석 사태에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있다.

닥터
K2004년도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부소장이던 김병수 박사를 처음 찾아가 황박사팀 연구에 쓰인 난자가 불법으로 매매한 것임을 제보한다. 마침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황 박사의 복제소 영롱이1990년대 말부터 감시해왔던 단체였다.


김병수 박사는 이후로 닥커K를 보호하며 황 박사 연구의 실체를 더듬어나가는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자연과학 쪽에 식견이 없는 한학수 피디가 황 박사의 <사이언스> 논문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장본인도 김 박사다.

제보자의 신변 보호도 그의 몫이었다. 김 박사는 최근 <오마이뉴스>에 출연해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제보자의 집에서 누군가 들어와서 흔적을 남기고 나갔다. (제보자가) 담배를 끊었는데도 집에 들어와보니 담배꽁초가 놓여 있다든가 하는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이 사건 이후 김 박사는 제보자를 장기간 피신시키게 된다.

김 박사는 제보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청와대로부터 접촉 요구를 받기도 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황 박사의 연구를 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박사는 청와대 관계자에게 제보자가 받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방지할 것과 줄기세포 진위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가려내라고 요구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제보자의 부인은 또다른 제보자였다

영화에는 황우석을 본 딴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와 헤어진 제보자와 변함없이 이 박사 연구팀에서 일하는 부인(류현경 분)이 갈등하는 한편, 그의 딸은 난치병을 앓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도 허구적으로 가미된 설정이다. 다만 닥터K의 부인인 제보자B는 실제로 황 박사 실험실에서 연구를 했던 간호학 전공자이다.

제보자B20059PD수첩팀과 인터뷰를 가진다. 여기에서 황 박사 실험실의 모 여성 연구원이 자신의 난자를 제공한 과정을 증언한다. 주지하듯 난자 제공은 본인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데다가 연구원이 상관의 지시를 어기기 어려운 권력관계가 있어서, 연구원이 실험에 쓰이는 난자를 제공하는 건 연구윤리 위반으로 꼽힌다.

하지만 황 박사의 연구원 난자 사용이 드러난 이후에 이를 어처구니 없는 논리로 옹호하던 목소리들도 있었다. 요컨대 그런 연구 윤리는 선진국들이 후발 국가들의 연구를 훼방할 목적으로 세워놓은 것이며 그것을 꼭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황 박사는 정말로 소고기 세트를 돌렸나

영화에는 윤민철 피디의 집으로 이장환 박사가 보낸 소고기 세트가 등장한다. 실제로도 그랬. 황우석 박사팀은 실험실 중간방에 있는 냉동고에 소갈비 한우 세트를 보관해 두었다가 연구원들을 통해 명절에 언론인들에게 돌렸다. 뿐만 아니라 황 박사는 자신의 소 농장에 고위 관료들을 초청해 소갈비, 돼지갈비, 사슴 피 등을 먹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황우석 사태를 분석하는 지식인들은 황 박사 등의 과학자들과 이에 결합한 언론인, 정치인, 관료 등을 묶어 과학기술동맹의 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PD의 멘토였던 교수는 실존 인물이다?

영화에는 <PD추적>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이장환 박사의 연구에 비판적인 대학 교수가 등장한다. 영화 후반, 이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PD추적의 방영을 지지하기도 한다. 실존 인물 가운데 이와 유사한 이는 황상익 교수다. PD수첩팀도 실제로 그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이자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이었던 황상익 교수는 20057월경 황우석 신드롬은 많은 부분 과학기술주의와 애국주의에 빠진 언론 보도에 기인한다대부분의 언론보도에서 합리성과 비판성이라는 과학정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임상실험 대상을 찾아갔을 때, 황 박사와 한 피디는 엉겹결에 통화했다?

영화에서처럼 한학수 피디는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를 추적하다가 황 박사가 만든 줄기세포의 체세포를 제공한 어린이 환자와 그의 아버지인 어느 목사를 만난다.

영화에서는 목사가 이장환 박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통화를 요청하는 바람에, 윤 피디는 엉겹결에 이 박사와 통화를 하고 그 사이 조연출이 어린이의 입안에서 체세포를 얻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는 목사가 황 박사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기까지는 했으나 통화가 성사되지는 않았다. 목사는 황 박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 PD수첩의 인터뷰에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자신의 아들이 곧 임상 실험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소년에 대한 임상 실험은 줄기세포 연구단계상 매우 위험한 것으로, 닥커KPD수첩에 제보하게 된 동기이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조연출의 모델은 MBC 김보슬 피디로, 이날 김 피디는 소년의 머리카락 3개를 뽑고 입안을 긁는 작업을 함께했다. 김 피디의 성격이 영화 속의 털털한 조연출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피디의 술회에 따르면 김 피디는 이날 처음 황 박사를 두고 쌍욕을 했다고 한다. 황 박사가 기획한 임상 실험이 매우 위험해 소년의 앞날이 걱정되었던 탓이다.

황우석팀은 '젓가락 기술'의 선두 주자가 아니었다

영화에서처럼 황 박사도 젓가락 같은 기구로 난자를 쥐어짜 핵을 빼내는 기술, 이른바 스퀴징(squeezing) 기법을 널리 홍보했다. 황 박사와 그를 추종하는 언론은 이를 세계 최초인 양 원천 기술이라는 개념까지 붙였다.

하지만 스퀴징은 1990년대 후반에 여러 실험실에서 상용화된 기법이었고,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몇몇 언론과 황 박사팀은 마치 젓가락을 쓰는 한민족의 쾌거라는 코드에 맞춰 애국주의적 선동을 일삼은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키워드

#N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