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역사 이야기] 독버섯
[근현대 역사 이야기] 독버섯
  • 강철민
  • 승인 2021.01.2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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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율이에게


겨울은 겨울이구나. 영하 15도라니 대단한 날씨다. 바깥에서 일을 하니 손, 발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하늘에는 눈이 펄펄 내리고 찬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작년에 보지 못한 눈을 구경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역시 겨울은 눈 구경만 한 게 없다.

겨울이면 눈썰매를 타러 다녔어. 지금처럼 놀이동산에 가서 타는 게 아니라, 들판과 산속을 들개들처럼 헤집고 다니며 타는 거지. 거북선이 근사하게 그려진 비료 포대를 들고, 눈이 가득 내린 산이나, 못 둑에 올라섰어. 칼바람이 볼을 때리고 머리칼 속에서 이마로 땀이 흘러내렸어. 소맷자락으로 땀과 콧물을 훔쳐내며 포대에 눈과 낙엽을 긁어 넣었어. 허파 속으로 얼음 같은 숨이 깊이 차고, 어깻죽지 위로 만두 찜통처럼 김이 펄펄 나면 나도 모를 자신감으로 겁날 게 없었어.

솜이불같이 푹신하게 속을 채운 포대를 기저귀처럼 깔고 앉았어. 국가대표나 된 듯이 결연히 내려갈 준비를 했지. 포대의 양쪽 귀를 움켜쥐고 발을 구르며 순식간에 비탈길을 내려갔어. 눈가루들이 흩날리며 무지개 같은 빛이 났어. 양옆으로 하늘과 나무들이 날아가고 엉덩이와 턱밑으로 전해지는 진동에 맞춰 요들 같은 고함을 질렀어.

우리 집을 지나 골짜기 눈길을 따라 올라가면 드문드문 민가가 있었어. 박 씨 제실이 있는 제일 끝 집 ‘토골’에는 여자애와 할머니가 단둘이 살았는데, 여자애는 나와 나이가 같았어. 항상 눈에 멍이 들어있던 여자애의 어머니는 일찍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고, 아버지는 산을 타며 약초를 캤는데 한 번씩 들러 쌀과 돈을 주고 갔데.


봄날도 가까워져 오고, 날이 풀려 어머니와 손을 잡고 집 앞 골짜기 길에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어.

멀리서 할머니 손을 잡고 있는 여자애가 보였어. 손으로 뜬 빨간색 털모자 사이로 갈색빛 머리카락, 큰 눈에 눈동자는 까맣고 맑았어. 뭘 바른 것 같은 조그마한 붉은 입술과 조개같이 하얗고 작은 운동화에 하얀 리본이 달린 양말을 신고 있었지. 덜 녹은 눈길 물웅덩이를 피해 깨금발을 짚으며 사박사박 걸어오고 있었어.


“안녕” 

“...”

어머니 허리춤을 잡고 엉덩이 뒤에 숨어서 빼꼼히 쳐다봤지. 겨울 햇볕에 얼굴이 뜨거워졌어. 어머니와 할머니는 뭐라 뭐라 한참을 이야기하는 것 같더니, 이제 가자고 할머니가 여자애의 손을 다시 잡아끌었어.

여자아이는 주머니에서 하얀 바둑알 같은 걸 꺼내 주고는 먹어보라는 시늉을 했어. 차돌을 입에 넣은 것처럼 차갑고 딱딱하더니 금방 달콤한 맛이 났어. 그건 엿이나 꿀하고는 다른 아주 세련된 단맛이었지.

시간이 지나, 그 세련된 단맛을 내는 것이 눈깔사탕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가 읍내로 볼일을 보러 가시면 항상 큰 소리로 말했어.

“맛있는 거 좀 사 오이소, 눈깔사탕 사 오이소”

 

나도 그 여자애를 다시 만나면 꼭 눈깔사탕을 주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어. 여자애는 왜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지, 어른들이 말하는 그 ‘토골’에 찾아가고 싶었어.

아침밥을 먹고 마당에 나와 먼 산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골짜기 비포장길을 경찰차와 승합차가 먼지를 풍기며 올라가고 있었어. 어머니께서 점심밥을 준비하고 있으니, 올라갔던 차들이 내려갔어. 조금 있다 건넛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어.

“에구 어떻게 하나. 토골 사람들이 참…”

아주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어머니를 한 번 쳐다봤어. 어머니는 나보고 방에 들어가라고 하셨어. 방에 들어가 창호지 문에 귀를 낙지 빨판처럼 갔다 댔어. 침을 꼴깍 삼키며 숨을 죽였지.

“아니 글쎄 할머니랑 애가 버섯을… 독버섯을 먹는 버섯인 줄 알고…”

“한참이나 지나서 발견돼서… 쯧쯧”

“아니 약초꾼이 독버섯을 구분 못 해?”

어머니가 아주머니 손을 잡아끌어 멀리 나갔는지,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았어. 왜 그렇게 닭똥 같은 눈물이 나던지. 가족 아닌 사람의 사건에 흘린 첫 눈물이라서 그런지, 그 눈깔사탕의 맛이 하도 강렬해서인지 하여튼, 그 강렬한 기억 속에 일곱 살 가을은 지나갔어.

 

지난번 편지에 새해에는 해방 후 자료를 살펴보기로 했었지. 그런데 자료를 찾다가 너무 어이가 없는 일제강점기 선전물을 발견하고는, 이것만 살펴보고 다음 자료로 넘어갈까 해. 

 

청주명륜회 중일전쟁 선전자료 (1938).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 소장 자료

이 자료는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식민지 조선의 유교 단체였던 ‘청주명륜회’에서 발행한 선전물이야. 

일제강점기, 공자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을 담은 유학을 공부하고 명륜(明倫 : 인륜을 밝힘), 시경(詩經 : 중국 최고의 시집, 공자 편찬)을 연구하는 유림단체들이 많이 있었어. 그중 ‘명륜회’는 일제의 친일 정책에 회유된 대표적 친일 유교 단체야. 

내용을 살펴보면 공자의 가르침과 유교에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지. 한마디로 유교와 제국주의가 만나 ‘유교 제국주의’라는 괴이한 사상의, 기가 막히는 내용의 내용이야. 내용을 해제하고 번역해보자. 

 

우리 民衆의 自覺 하고 實行 할 일


人類社會난 三綱五倫과 正義人道如何에 左右되넌바이라 萬若人으로셔 三綱五倫이 無하면 禽獸와 無異하고 國家로서 三綱五倫을 經으로하고 正義人道로 緯로 하지아니하면 亡國의 患을 不免할지라 我帝國은 開國三千載에 萬世一系로 三綱五倫을 經으로하시고 正義人道를 緯로하사 入紜一宇에 聖治로 吾等이 紛紛한 現世에도 太平으로 謳歌함은 全혀 我皇至德化에 依함이라 彼支那ᄂᆞᆫ 麟邦의 懇切한 忠告와 我東亞의 共存共榮의 大精神에 反하야 世界的魔手인 赤化蘇聯과 握手하고 狡榾無雙한 英佛의

勢力을 仍用하야 東洋平和를 破壞하고 亞細亞民族으로 歐美民族의 追狗와 奴肄를 甘作코자하니 今此日 支事變이 天意에 合理的으로 一年有餘에 北支의 北京과 中支의 上海와 南支의 徐州漢口를 次第陷落하얏시니 正義人道에 昭然明示함을 孰不知耶아 惟我朝鮮同胞난內地人으로 自古同根異枝의 共甘若의 原理를 此際一層覺悟하고 戰爭의 根本精神예 則하야 銃後의 報國精神을 鞏固하야 上으로 皇恩을 報答하고 下로 出征將兵의 後慮를 無케하야 聖戰最後의 目的을 達토록 左記事項을 猛省盡力할 事 

一、吾等은 三綱五倫을 違反치못할 誠意로 神社와 文廟에 遙拜나又난 참叅拜할 事 
一、出征軍人의 家族을 真心으로 愛護慰問할 事 
一、自力更生의 目的으로 士農工商의 各其職業을 一層勉勵하야 衣食住三事에 豐足토록할 事 
一、節米貯蓄을 實行하야 報國貯金에 資할 事
一、生活改善키 為하야 冠婚喪祭에 儀禮準則을 絕對實行할 事
一、染色衣를 一體着用할 事
一、廢物을 利用하야 新件을 調製치말 事
一、護模靴代로 草靴를 專用할 事


昭和 十三年 十月 日

清州明倫會


우리 민중이 자각하고 실행할 일

인류 사회는 삼강오륜과 정의 인도 여하에 좌우되는 바, 만약 사람으로서 삼강오륜이 없으면 금수와 다를 바 없고, 국가로서 삼강오륜을 경으로 하고, 정의 인도를 위로하지 않으면 망국의 환을 면치 못한다. 우리 제국은 개국 3천 년, 만대손이 한 계통으로 삼강오륜을 경으로 하고 정의 인도를 위로해서, 복잡한 형세에 들어가더라도 성스러운 통치를 했고, 모두가 어지러운 현세에도 태평성곡을 부르는 것은 모두 우리 황제의 덕분이다.

중국은 인근 국가의 간절한 충고에도 동아시아 공존 공영의 대 정신에 반하여, 세계적 마수인 적화소련과 악수하고, 교활하고 강력한 영국와 프랑스의 세력을 이용해서 동양평화를 파괴하고 아시아 민족을 유럽, 미국 민족의 개와 노예로 만들고자 했다. 얼마 전 지나사변이 하늘에 뜻에 합리적으로 이루어져, 1년여 만에 북쪽의 북경과 가운데의 상해, 남쪽의 서주 한구지역을 차례로 함락했으니, 정의 인도에 밝은 빛을 보여주었다. 

누구나 부정할 수없이 조선동포는 내지인과 같은 뿌리의 다른 가지이며, 같은 공감의 원리로 이번 기회에 새로운 각오로 전쟁의 근본정신에 의해서 총 뒤의 보국 정신을 공고히 하여, 위로는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출정 장병의 우려가 없도록 해서 성전 최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좌측의 기재된 사항을 깊이 반성하고 진력을 다할 것.

하나. 우리는 삼강오륜을 위반하지 못하는 성의로 신사와 문묘에 요배 또는 참배할 것.
하나. 출정군인의 가족을 진심으로 아끼고 소중히 하며, 위문할 것.
하나. 자력갱생의 목적으로 사농공상 각기 직업을 한층 더 성실히 임해서 의식주 3가지가 풍족도록 할 것.
하나. 쌀을 아끼고 저축을 실행해서 보국 저금에 비용을 댈 것.
하나. 생활개선을 위해서 관혼상제에 의례준칙을 반드시 실행할 것.
하나. 염색 옷을 일체 착용할 것.
하나. 폐물을 이용해서 새 물건을 조제하지 말 것.
하나. 고무신 대신 짚신으로 전용할 것.

소화 13년(1938년) 10월 일

청주명륜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지.

“모두 어려운 현시대에 태평성곡을 부를 수 있는 것이 황제(천황)의 덕분”
“아시아 민족을 유럽, 미국의 개와 노예로 만들고자 했다”
“지나사변(중일전쟁)이 정의, 인도의 밝은 빛”
“일본과 조선의 같은 뿌리이니 황제(천황)에 충성하고 성전(중일전쟁)에 전력을 다하라”


지금 내가 봐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그 밑에 지켜야 할 사항들의 수준은 또 어떻겠니.

다음은 이러한 친일 유교 단체가 얼마나 지역의 유림까지 뿌리를 내려, 일제에 충실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야.

 

명륜회 시집찰고를 위한 충북 음성군 금왕면 황군 위문 시(詩) 출품 안내장(1937. 10. 23).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 소장 자료

 

역시나 내용을 해제해서 번역해 보자.
 

昭和十二年 十月 二十三日

金旺面支部長
各里役員 殿

詩集拶稿에 關한 件

左記詩題에 依하야 時文을 
夛数募集取濹하여
道聯合會로 送達케되으니
貴 区內名 儒林에게 關知하시와
今月二十五日까지 原稿을
本面에 送達하시게 하여 주시압기 切望

一. 皇軍慰問時
詩韻 長, 陽, 光

二. 明倫会聯合会韻(詩題隨意)
樓, 幽, 歌, 愁, 秋

三. 投稿主意

1. 投稿用紙는 半紙四訃紙 又는 半紙邪白紙로 二通提出할 化
2. 字本는 正字로 鮮明히 記入할 化
3. 末尾에 投稿者 住所, 氏名, 號을 鮮明히 記入할 化
4. 右 軌株에 達치 안은 것은 受付取扱을 아니함.


소화 12년 10월 23일

금왕면 지부장
각리역원 앞

시집찰고에 관한 건. 왼쪽에 기술된 시제로 시문을 다수 모집하여 도연합회로 송달하게 되었으니, 유림들은 이를 잘 인지하고 25일까지 면으로 꼭 송달해주시기 바랍니다. 

一 . 황군 위문시 : 시운 - 장(長), 양(陽), 광(光)
二 . 명륜회연합회운(자유시제) : 시운 - 누(樓), 유(幽), 가(歌), 수(愁), 추(秋)
三 . 투고시 주의사항

1. 투고 용지는 반지사부지 또는 사백지로 2통 제출할 것
2. 글씨체는 정자로 선명히 기입할 것
3. 말미에 투고자의 주소, 이름, 호를 선명히 기입할 것
4. 오른쪽 주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취급하지 않음.

역시나 중일전쟁 당시, 전선에 있는 천황의 군대인 황군을 위문하는 시를 도, 군, 면, 리까지 유림을 동원하여 시집을 제작한다는 내용이야. 

유림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가, 화가, 예술가들이 황군을 위문하고, 침략전쟁에 조선 청년들이 총알받이가 되도록 선전, 선동하고 미화했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의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지.

이렇듯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수많은 단체, 개인들을 일제에 협력하도록 만들고,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의 침략전쟁에 조선 민중들을 동원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어.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이 일제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 행위인 줄은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 

수많은 전선의 확대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수탈은 결국 일제를 패망으로 몰아넣었고, 일본제국주의는 몰락했어. 그러나 지금도 전혀 반성과 사죄는 없지. 아마 그것은 일본 자국 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친일의 제대로 된 청산과 반성이 없어서는 아닐까?

아직까지 친일 청산이 없어 일제의 친일잔재 세력들이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지. 

지난 광복절 축사 때 김원웅 광복회 회장의 발언이 생각나. 

“윤동주 시인이 일제 때 잡힌 죄목이 국가보안법 전신인 치안유지법이고, 빨갱이라고 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옥사하셨는데 죄목도 치안유지법. 백범 김구 죽이고 안두희가 진술을 공산당을 타도했다고 했다. 신채호, 김구, 윤동주를 빨갱이로 몰았던 사람들이, 친일청산 이야기하면 지금도 친북 좌빨로 몰아간다. 이런 시대는 끝내야 한다.”

이제 제대로 된 ‘친일잔재 청산’과 더불어 제대로 된 ‘자주노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명륜회 전단지에서도 보이듯, 일제는 미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켰지. 그러나 해방이 되고 미군정(美軍政)이 한반도에 들어왔을 때, 일제에 부역한 친일잔재 세력들은 본능적으로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알고, 미국을 주인으로 섬겼어. 

또 친일 세력들은 적산을 통한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지. 오히려 친일에서 친미로 탈을 바꿔쓰고 대한민국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어. 

아직도 국가보안법, 내란 선동으로 감옥에는 양심수들이 갇혀있고, 한미동맹이라는 불평등조약으로 내정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 

지금이 그때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 앞으로의 백 년을 내다보는 겨울이다.

 

글 _ 강철민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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