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폭력, 성적지상주의가 낳은 ‘괴물’
체육계 지도자와 선수 신분 보장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

 

1월 26일 가해자들이 재판에 앞서 법정 앞에선 피해선수들과 가족
1월 22일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 관련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서 피해 선수들과 가족, 그리고 피해자 인터뷰를 방해하는 사람들 모습.

2019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에서 발생한 코치의 가혹 행위가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가 매우 놀랐고, 긴 재판 끝에 얼마 전 내려진 처벌의 수위에 한 번 더 놀랐다.

지난해 트라이애슬론 경주시 선수단에서 벌어진 가혹 행위와 한 선수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건이 알려진 후 수없이 많은 내용이 언론을 통해 회자되었고, 폭력 등 가혹 행위 근절을 위한 대책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체육계의 폭력을 뿌리 뽑는 방편으로 최숙현 법이 통과되고, 스포츠윤리센터가 만들어졌다. 인권 관련 담당 공무원에게 준사법기능을 부여하여 직접 수사권을 행사하게 하는 특단의 대책도 마련되었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가 내놓은 대안에 대해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특히, 운동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지금의 대책으로는 체육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왜 수많은 대책에도 우리 사회는 체육계의 폭력이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체육계 폭력의 원인으로 성적지상주의를 지목하며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해 왔다. 또한, 금메달에 환호하던 사회에서 2등뿐 아니라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등 사회적 인식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육상 등 전통적인 비인기 종목에도 관중이 몰리고, 시청자가 늘어나는 등 실질적인 변화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체육계는 폭력 등 가혹 행위에 내몰려 있고, 성적지상주의는 수그러들지 않고 운동하는 선수들을 압박하고 있다. 무엇이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바뀌지 못하도록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일까?

체육계는 축구, 야구 등 인기 종목 중에서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경기종목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1년 또는 2년, 길어야 3년을 넘기지 못하는 계약을 하고 있다. 학교 체육, 직장운동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감독과 코치가 비정규직이고, 직장운동부 선수들 역시 비정규직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경주시 체육회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서 드러난 것만 보아도, 선수들과의 계약은 사실상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규정 투성이였다.

계약 기간 3년을 보장받았다 하더라도 계약 기간 내에 전국체전 등에서 3등 이내의 성적을 내지 못하면 자동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조항에 서명해야 하는 것이 체육계의 현실이다.

특히,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진 종목의 경우 아예 제대로 된 팀조차 꾸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전국체전용으로 급조된 운동부에서 별도의 임금조차 없이 운영비에서 일부를 떼어 급여를 지급하는 일도 흔하다.

어디 그뿐인가?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종목별협회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종목별 국제 대회 성적에 따라 지원금의 크기가 달라진다. 종목별협회는 협회대로 국제 대회 성적을 높이기 위해 선수와 지도자들을 독려한다. 그나마 이런 경기종목의 선수단은 나은 형편이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도 들지 못하는 경기종목은 명함조차 내밀기 쉽지 않다.

우리가 화려한 경기에 열광할 때, 운동부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목에 건 메달로 인해 다른 팀의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목이 잘리지 않을지 걱정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에 내몰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체육계의 비참한 현실은 체육계 폭력에 대해 법의 단죄를 진행하던 그 기간에도 거듭 확인됐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를 고발한 선수들에게 일부 선수들이 몰려들어 “왜 너희들이 피해자냐?”, “너희들은 그 사람과 함께 메달이라도 땄지”, “선수단 없어지면 니들이 책임질 거냐” 등 비수가 되는 말들을 쏟아 냈다. 트라이애슬론 협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시끄러운 애들 몇 명 때문에 트라이애슬론 중흥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개 선수단에서 발생한 일을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나”라며 책임 전가에 급급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물론, 이러한 행태와 발언은 비난받아야 하고, 용납될 수도 없다. 하지만, 체육계 지도자들이 자신이 거둔 성적만으로 자신의 자리가 결정되고, 선수들이 자신이 거둔 성적만으로 계약 유지 여부가 판가름 날 때, 그들이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한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우리의 책무는 끝나는가?

늦었지만, 최근 체육계 원로들이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 전반에서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며 제도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모아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들은 ‘지도자들과 직장운동 선수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전국 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문제가 바뀌어야 한다’며,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체육 지도자와 선수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지위 향상’을 강조하며 문화체육관광부부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체육계 폭력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현실에 내몰린 체육계의 비정규직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체육계가 오랜만에 체육계의 구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모아가는 지금, 체육계 폭력을 근절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를 보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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