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상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고 비대면 만남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독서모임이 은근히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다. 지난번 모임은 한 번으로 끝나서 아쉬웠는데, 이번 기회에 나도 온라인 독서모임을 가볍게 시작해볼까 싶었다. 읽던 책만 읽는 것보단 읽어야 할 책을 함께 읽는 것도 필요하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일을 통해 독서의 폭을 넓혀주는 과정도 의미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때마침 평소 좋아하던 작가가 인스타그램 계정에 신청자들을 모아 온라인 독서모임을 개최해보려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 작가는 동네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흠모하는 마음을 안고 방문하고 싶어도 서울에 있어서 가보지 못해 아쉽던 터였다. 작가님이 개최하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한다면 작가님과 친분을 쌓을 수 있겠지? 하는 흑심을 안고 정식 모집글이 올라오길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드디어 작가가 정식으로 온라인 독서모임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나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고 나서야 함께 읽기로 한 책 제목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읽기>. 표지는 예쁜데 두께가 제법 된다. 고전이란다. 오뒷세이아라는 말을 그리스신화 같은 곳에서 얼핏 들어봤던 것 같다. 부끄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뒷세이아가 뭔지 정확히 몰랐다. 혼자 읽어보려다 실패해서 독서모임 신청한다는 글이 여러 개 올라오는 걸 보면서 생각보다 유명한 고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제야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고전은 어렵다는 편견(?)으로 멀리할 수 있을 만큼 멀리해왔는데 고전 읽기 모임이라니! 내용이 어려워 기한 내에 다 읽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과 읽긴 읽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독서모임 내내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은 두려움이 겹겹이 쌓여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흑심은 사람을 무모하게 만든다.

 

ⓒ이숲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읽기>는 서양 고전학자 강대진 교수님이 고전 ‘오뒷세이아’를 읽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원작 해설과 시대적 배경 설명을 담은 해설서였다. 원작이 아니라 원작 해설서라는 걸 알게 되니 두려움이 살짝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 먼저 읽고 설명해 주는 게 조금은 더 알아듣기 쉽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첫 주 차 분량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뒷세이아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담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다. 트로이아 전쟁 이후 그의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기까지의 10년여간의 모험담을 총 24권에 담았다. 독서모임까지 읽어야 할 분량은 좀 많았지만, 막상 읽어보니 겁먹었던 것보단 재밌었다. 그만큼 잘 풀어서 해설해주는 저자의 능력이 컸고, 그리스신화에 익숙해서 그런지 오뒷세우스의 모험 서사가 재밌었다.

독서모임에서는 모임을 주최한 작가의 사회로 참여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생긴 질문이나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를 꺼내면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뒷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의 모험 간에 유사성과 차이점이나 오뒷세우스가 귀향을 고집하는 이유 등 원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하고 ‘야만적’으로 묘사되는 섬과 편협한 여성 캐릭터 등에 관해 현대적 관점으로 다시 해석해보기도 하였다. 특히 현대적 관점으로 오뒷세우스를 다시 읽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나 혼자 읽었으면 고민해 보지 못했을 지점들을 다른 구성원들이 날카롭게 지적해 주어 관점의 폭도 넓어졌다.

나눈 이야기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오뒷세이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그려진 오뒷세우스 부인이나 오뒷세우스를 도와주거나 괴롭히는 역할은 꼭 여성이 맡는 점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그렇게 단면적으로 그려내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몇 주에 걸쳐 나눴다. 결론은 시대의 한계 때문에 편협적인 여성 캐릭터가 탄생했다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영웅을 빛내주기 위해 단면적으로 등장하는 그들의 행동에 나름의 서사를 부여해보기도 하고 오늘날의 우리 같았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그려보기도 했다.

 

ⓒ이숲

그러던 중에 실제 우리와 같은 관점으로 오뒷세이아를 분석한 책들이 있다는 정보도 언급됐다. 오뒷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의 관점에서 오뒷세이아를 다룬 <페넬로피아드>와 오뒷세이아에서 마녀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키르케의 서사를 다룬 <키르케>다. 북스타그램을 하면서 얼핏 봤던 책들인데, 오뒷세이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 아무튼 당시에도 평이 좋아서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읽어야 할 책들이 늘어난다.

 

ⓒ이숲

벌써 독서모임 마지막 주를 향해 가고 있다. 여전히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고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선 어렴풋하다. 이제 한 권 읽어놓고 그 의미를 통달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지. 다만 고전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무게에 겁부터 먹었던 때를 떠올린다면 이제는 고전을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재미를 조금은 알겠다. 혼자 읽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영영 오뒷세이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겠지. 흑심으로 시작한 독서모임에서 고전 읽기의 재미라는 나름의 의미까지 경험하다니. 사실 흑심보다는 후자의 의미가 더 크게 남을 것 같다. 이 의미를 잘 살려서 이번 생에 <오뒷세우스> 완독도 도전해볼까.

북스타그램을 시작한 뒤로 책과의 인연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닿을지 모른다는 설렘을 느낀다. 다음은 어떤 책 또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오늘도 북스타그램 태그를 건다.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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