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망루, 검은 연기. 12년 전 그날의 기억


지금보다 몸이 가볍고 더욱 감정이 요동치는 날들의 연속이었던 12년 전 어느 겨울날 아침부터 속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로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시작된 뉴스의 연속이었다. 화면과 사진에서 나오는 불타오른 망루와 검은 연기는 나 혹은 우리들의 기억과 가슴에 강한 생채기를 남겼다. 벌써 12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용산의 악몽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살 수밖에 없다.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대구에서도 여의도에 비견될만한 면적이 재개발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여전히 용산 참사가 던져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최근 정부(2.4 부동산 대책 발표)는 공공주택과 개발을 통해 수백만 호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주택시장에 대한 공급량 충격을 통해서 가격을 안정화하겠다는 전형적인 탑-다운 방식의 보완책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의 아파트 공급량이 부족해서 20억 아파트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지표상에 드러나는 아파트 가격만을 봐서는 해결 불가능하다. 아파트를 지을 때 땅을 파는 것처럼, 근원과 심연을 바라봐야만 해결 가능하다.

그렇다면 근원(根源)과 심연(深淵)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로 주거권이다. 내가 건강하고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곳에서 거주할 권리, 이것이 공공의 영역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장에 기대어 시장이 만들어 놓은 공간적 신분을 획득하기 위해서 사다리를 걷어차고 눈물을 짓밟으며 사는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 욕구라고 하는 의/식/주를 보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혹은 대도시로 몰리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매우 당연하다.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소득에 대한 접근권, 노동소득과 관련된 교육의 질적 차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치안력의 차이,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보건행정과 접근권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야지만 인간이 단순한 생존의 동물을 넘어서게끔 하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것들의 욕구와 생산이 시작되고 그리하여 그 생산력의 근처에 있어야만 (제한적인) 유형, 무형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싶은가는 인간의 물리적이고 근원적인 기대와 한계에 기반하고 있다.

 

지상의 방 한 칸, 거주안정의 권리(주거권)


하지만 오늘날 국가와 사회, 시장은 모든 곳에서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거나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없다. 그리하여 그것이 보장되는 재화(여기서는 좋은 주거지역)에 대한 선호는 높지만 접근과 향유는 제한되니 시장원리에 따라서 가격은 갈수록 높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원리에 기대어 자산이 함께 증식되니 단순히 높은 아파트의 공급량에 기대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요원해 보인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안정적인 주거의 욕구라는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을 정부가 그 스스로 플레이어로 뛰는 자유시장에 맡겨왔기 때문에 이 사태가 나는 건 어찌 보면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 아파트, 땅과 관련하려 일어난 부동산 문제, 재개발, 자산 불평등의 문제는 주거권에 대한 적극적인 보장으로 넘어서야 한다. G. 에스핑 앤더슨(Esping Anderson)이 말하듯 복지국가의 핵심은 인간의 삶에서 자유시장이 아닌 탈상품화된 영역을 많이 확보해 나감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용산으로 기억되는 우리 사회의 참혹한 문제는 공공의료, 공공교육, 공공서비스 영역에서의 지역 격차를 줄이고, 이렇게 향상된 지역에의 시장의 교환법칙을 통한 경쟁 말고 사회주택, 공공주택, 공공임대를 통한 다양하고도 많은 사람들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 이 두 가지 축을 기초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니 아파트의 가격과 부동산 폭등의 원인을 사람들의 투기심리로 보기보다 우리 사회의 평등, 그중에서도 주거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해서 일어나는 결과로서 이해해야 한다.

주거를 상품이 아닌 인간의 권리로서 접근하는 것, 그것은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막아서는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잠이 오지 않는다”(김사인/지상의 방 한 칸) 던 어느 시인의 목소리를 되새김질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본다. 그래야 12년 전의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시작된 싸움이 끝나게 될 것이다.



글 _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