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에 안 나온 것, 영화와 다른 것, 정말로 그랬던 것 (2)

(1)편에 이어

피디가 교수들 앞에서 전문가와 맞짱토론... 가능한가?


<제보자>에서 윤민철 피디와 이장환 박사는 여러 명의 교수들이 줄지어 앉은 가운데 토론을 시작한다. 이 장면은 허구적 설정이 아니라 실화를 그대로 가져오다시피 한 것이다.

PD수첩의 한학수 피디는 황 박사와의 직접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날카로운 질문을 펼쳤다.
이날 황 박사는 대중 강연 때마다 틀어주던 논문 해설 강의를 시작했는데 한 피디로서는 다 아는 내용이었기에 20분만에 강의가 중단되었다.

황 박사는 PD수첩 취재진에게 실험실을 구경시킨 뒤 인터뷰를 시작했다. 황 박사는 이 자리에서 연구원의 난자 체취가 자발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황 박사가 직접 병원으로 데려간 것으로 드러났다.


황 박사는 위용을 과시하려는 듯 여러 명의 교수를 배석시켰지만, 이날 한 피디와의 인터뷰에서 황 박사가 흔들리자 오히려 참석 교수들이 긴장하고 동요하는 기색을 비쳤다는 후문이다. 황 박사는 영화에서처럼 한 선생님, 다음부턴 내가 철두철미하게 할게요라고 변명했었다고 한다.

황우석 박사를 상징하는 <제보자>의 이장환 박사. 배우 이경영이 연기했다.

영화엔 나오지 않은 공정한 제3, 김형태 변호사

한 피디는 200511월 초, 황우석팀의 안 모 교수에게 연락을 받았고 그 자리에 함께 나온 김형태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한 피디와 안 교수 모두와 안면이 있었다. 김 변호사는 일종의 판관으로 두 사람을 맞이한 격이었다.

김 변호사는 여기서 자신이 검증 과정을 책임지는 제3자로 나서서 줄기세포를 조용히 검증해보자고 제안했다. 결국 PD수첩은 검증을 위해 줄기세포 샘플을 인수하게 되고, 검증기관 2개소와 제3자 변호사도 보관용으로 세포를 나눠 갖게 된다.
 

그러나 샘플들에서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자 검증은 위기에 처했고, 그나마 한 군데서 나온 줄기세포 검증 결과 논문에 나온 줄기세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이후 한 피디와 황 박사는 김 변호사와 함께 만나게 되는데 검사 결과를 들은 황 박사는 재검증을 주장하며 희한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 “사이언스 논문의 유전자 지문을 검증하려면 실험 당사자가 같은 시점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비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언제나 동일하다는 유전자 지문의 특성과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황 박사는 대화를 마칠 즈음 예전에 한 선생이라고 부른 한 피디에게 한 형()’이라고 부르며 부드러운 압박을 가했고, 황 박사가 자리를 뜨고 나서 김 변호사는 일그러진 안색으로 한 피디에게 느낌이 불길하다고 털어놓았다 한다

김형태 변호사

PD수첩이 준비한 방송의 제1탄으로 매매 난자 사용이 드러나자 황 박사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회견문을 김형태 변호사에게 보여주게 된다. 안규리 교수가 한 피디를 만나며 김형태 변호사를 불러내기도 했듯, 김 변호사가 황 박사쪽에서도 의지하는 인물이었다는 방증이다.

김 변호사는 이때 황 박사에게 기자회견문이 짧고 간명하고 모호하여 이런 립 서비스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으니, 난자 문제에 관해 솔직하게 밝히고, 줄기세포허브 소장직을 사퇴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황 박사는 회견에서 소장직 사퇴를 밝히지만, 난자 문제에 대해서는 결국 솔직히 털어놓지 않아 김 변호사를 당혹케 했다.


김 변호사는 PD수첩이 보도되지 않던 때 황우석 교수는 검증에 응하고, MBC<PD수첩> 내용을 보도하라고 주장한다. 그는 중립적인 중재자로 출발해 양측에 검증을 제의하고, 마침내는 황 박사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 

한학수, 김병수 뿐 아니라 강양구, 한재각이 있었다

<제보자>에는 김병수 박사(현 시민과학센터 부소장)의 존재 말고도 사건 주요 인물들이 영화의 한계 탓에 여럿 생략되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와 한재각 당시 민주노동당 연구원(현 녹색당 정책위원장)이다.

강 기자와 한 연구원은 초창기부터 김병수 박사와 트리오를 이루어 황 박사의 연구를 검증해왔다. 그러다 김 박사가 한학수 PD, 제보자 닥터K와 긴밀히 공조하고 보안을 유지하면서 세 사람의 연대가 이완되었다는 게 최근 강 기자의 회고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황우석사태가 일단락된 이후 <침묵과 열광>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과학기술 민주화운동의 세례를 받았던 강 기자는 끈질긴 추적 보도로 황 박사의 추종자들로부터 개양구로 불리어졌다. “개양구, 너와 네 가족은 교통사고로....... 뇌수가.......”라는 내용의 핏빛편지를 받는 등 여러 협박을 겪기도 했다. 그는 다른 언론이 알고도 놓치는 보도들을 <프레시안>에 충실히 기사화하는 역할을 했다.

한재각 당시 민주노동당 연구원은 정치권에서는 드물게 황우석연구의 맹점을 추적한 인물이다. 난자 공급을 둘러싼 윤리 문제에 특히 천착했다.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추출하는 수술은 부작용과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었고 따라서 줄기세포에서 난자를 구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노무현 대통령을 위시한 한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윤리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과학기술이 진보해야 한다는 입장에 그쳤다

황 박사는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 <사이언스>에 논문을 실으면서, 그간의 연구 과정에 427개의 난자를 사용했다고 주장했었다. 이 난자도 많은 편이라 그 출처에 의구심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복제 동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동물 난자도 수백 수천 개인데 인간 복제 배아에서 4백여개의 난자만 사용되었다는 것은 더 큰 의문을 남겼다.

한재각 연구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었던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을 포함해 몇몇 국회의원을 통해 난자의 출처와 과학기술부의 황 박사 지원 예산 540억원(2005~2014) 등을 추적했다.


 

강양구, 김병수, 한재각이 공동 집필한 <침묵과 열광>

이에 황 박사측은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의 상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언론 플레이를 벌이고, <조선일보>2005107황우석, ‘민주노동당 때문에 연구 못할 지경이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과학기술부나 황우석팀에 요청한 자료는 연구의 절차나 특성상 평소에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자료라서 연구에 지장이 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홈페이지에서 황 박사의 추종자들에게는 물론, 일부 당원들에게도 항의 세례를 받았고, 당 간부들도 황 박사를 비판하는 데 주저했다.  

나중에 검찰 수사로 밝혀진 결과 황 박사측이 사이언스 논문 연구에 사용한 난자는 확인가능한 것만 총 2221개였다 


한 피디의 실책보다 YTN의 취재가 훨씬 더 큰 문제였다

영화에서처럼 한학수 피디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를 방문해, 황우석 박사와 함께 일했던 연구원(김선종)을 찾아가 증언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한 피디가 검찰 수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검찰 수사가 충분히 벌어질 만한 사안이긴 했지만, 당시엔 검찰이 문제를 알지도 못했던 터였기에 다소 협박으로 비칠 소지가 있었다. 결국 <PD수첩>이 방영에 제동이 걸린 것도 이 문제, 즉 '취재 윤리 위반' 논란 때문이었다.


논문이 조작되었다고 증언한 김선종 연구원은 머지 않아 다시 태도를 뒤바꾸게 되는데 역시나 배후에서는 공작이 있었다. 김 연구원은 한 피디에게 메일을 보내 본인은 한 피디님이 유도하는 대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일부 했다”, “강압 하에 이루어진 잘못된 인터뷰라고 말했다. 훗날 이 메일은 김 연구원이 아닌 황 박사가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취재윤리를 더 심각하게 위반한 건 YTN이었다. 황 박사측의 안 모 교수, 윤 모 교수는 YTN 김 모 기자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들은 안 교수가 가지고 있던 3만 달러의 현금을 각각 1만 달러씩 나눠서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채 출국했고, PD수첩에게 논문 조작 사실을 자백한 미국 피츠버그의 김선종 연구원과 또다른 연구원에게 각각 1만 달러를 전달했다.

황 박사는 PD수첩의 줄기세포 검증에 응하면서 다른 언론기관에서도 검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흘렸다. YTN 김 모 기자는 황 교수로부터 줄기세포를 받아 고려대 법의학과에 검증을 의뢰했는데, 후에 밝혀지지만 사이언스 논문과 다른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YTN은 황 박사팀과 함께하는 기이한 행보를 보이게 된다.

YTN12월 초 한 피디의 취재 윤리를 문제 삼는 보도를 내보낸다. 이 보도에서 김선종 연구원은 PD수첩과의 인터뷰가 폭력적인 상황에서 이뤄진 것처럼 묘사했다. 과장이었지만 MBC는 위기에 몰려 <뉴스데스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YTN의 기자들이 한통속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기자는 "황 박사의 지시로 논문 사진을 불려서 더 많이 찍었다"는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을 12월 10일 보도했다. 강양구 기자의 최근 증언에 따르면 "YTN의 황우석 편향 보도를 참을 수 없었던 한 기자와 담당 데스크의 작품"이었다. 


우리 그냥 구속되자”? 진짜로 그랬다!

<제보자>에서 이성호 팀장(박원상 분)은 취재 결과를 방송할 수 없게 되자 윤민철 피디에게 구속되자고 말한다. 구속이 되면 검찰 수사에 돌입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서라도 진실을 밝히자는 취지였다. 극적으로, 아니 극단적으로 들리는 말이지만 실화에서도 나타났던 말이다.

이성호 팀장의 모델은 당시 PD수첩의 팀장이었던 최승호 CP였다. 최 팀장은 오늘날 인터넷 탐사언론 <뉴스타파>의 주역으로 유명하다(황우석 사태 당시 언론 자유 탄압을 겪은 그가 끝내 MBC를 나와 독립언론을 차린 현실이 참담하게 느껴진다). 최 팀장은 PD수첩에 위기가 닥치자 헛구역질을 하는 등 심각한 스트레스 증상을 나타냈는데 MBC 근처 술집에서 한학수 피디에게 “학수야 네가 구속돼라고 했다.

윤민철 PD와 이성호 팀장의 실제 모델인

  

한학수 MBC PD와 최승호 당시 PD수첩 팀장(현 뉴스타파 소속)

검찰이 PD수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간 확보한 취재물을 검찰이 입수하게 되면 황 박사에게까지 수사가 확대되는 건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물론 한 피디나 최 팀장은 구속되지 않았다.

최 팀장과 한 피디는 국민적 항의 뿐 아니라 회사내의 눈총에도 시달렸다. 한 피디는 회사 근처 식당으로 가면 다들 범죄자를 쳐다보듯이 나를 보았다고 회고했다. MBC 노조에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에도 몇몇 조합원들은 이에 항의했고 10여 명이 한꺼번에 조합을 탈퇴하기도 했다.

(다음 편에 계속)

 

황우석 박사를 믿는 사람들은 논문 조작이나 윤리적 문제를 믿지 못하고, 검증 시도들을 음해나 방해 공작으로 치부했다. 그러다 결국 당사자들이 어느 배후에 연결되어 있다는 온갖 음모론이 나왔고, 심지어는 PD수첩, 프레시안,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등을 "미국의 스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북한의 첩자"라고 하는 사람도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황빠다', '황까다' 주장이 엇갈렸으며, 심지어 온갖 정보기관은 물론 프리메이슨, 라엘리안 무브먼트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어느 네티즌들은 이렇게 현란하고 복잡한 '음모론 지도'를 그려가며 풍자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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