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람꽃 ⓒ이현정

1월이 지나가며 급해지는 내 마음을 붙잡기엔 쿠구구콰쾅! 심장의 소리가 엄청나다. 천둥소리를 닮은 소리가 번개처럼 내려꽂힌다. 내 가슴으로 말이다. 이젠 움직여야 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처럼 너무나 강렬하다. 그러니 이것으로 또 하루의 시작은 봄바람을 휘날리며 숲길을 걷는 것이다.

2월로 들어서면서부터 변산바람꽃이 피어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변산바람꽃을 지키기 위해 사방에 진을 쳐놓은 곳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너머로 다가가고 있는 순간이다. 몽글한 조그마한 구름이 내려앉은 듯 보였다.

바람도 그냥은 지나치지 못하나 보다. 그 진이 처진 감나무 아래엔 덕지덕지 낙엽들이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지. 크고 작은 자갈들 위에 얹힌 썩어가는 낙엽들에 둘러싸여, 모인 작은 구름들이 춤을 추는 듯 말이야. 하지만 훅훅 거리며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며 바람들의 거침없는 하이킥이 분명하다. 그러하더라도 온몸으로 봄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아프다.

 

변산바람꽃 ⓒ이현정
변산바람꽃 ⓒ이현정

처음 발견된 곳을 이름 붙인, 바람의 바다를 고향으로 둔 그 이름 변산반도 변산바람꽃은 바람을 피할 수 없나 보다. 열병을 앓으며 첫사랑의 시련을 이겨내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청소년의 한 시절을 보내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또다시 기로에 서 있는 우리들이지만 봄은 아픈 것인가.

일찍 피어나 우리들의 무지한 생태의식 속에서

낙엽을 헤집어 좀 더 기다려 필 운명들이 꺾이고야 만다.

우리들의 발아래에서

죽을 운명처럼 말이다.

 

뿔나비 ⓒ이현정
네발나비 ⓒ이현정
청띠신선나비 ⓒ이현정

따뜻한 숲길이 불안한 오후 1시. 기온이 17도를 나타낸다. 너무 더워 길 위의 아지랑이가 반갑지가 않다. 이런 마음을 알 리 없는 뿔나비, 네발나비, 청띠신선나비들은 연거푸 퍼드득거리며 짝을 찾느라 바삐 움직일 뿐이다. 온몸이 부서져 가는데도 말이다.

씁쓸한 나비들의 날갯짓들 사이로 찢겨 파드득거리는 날개들이 비친다. 작년 겨울을 맞으며 낙엽 아래나 쓰러진 나무둥치 사이 속에서 겨울잠을 설치며 깨어났지만, 오늘 이 숲길 속에 우리와 함께 날며 걸으며 한다.

 

변산바람꽃도

나비들도 봄의 급변화는 아픔이다.

아픔의 봄은 모든 생물에게 숙명이 되어가나 보다.

우리들로 하여 아픈 봄이 되어 버렸다.



 

글 _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