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를 찾는 이들에 관한 영상 보고서

 

"UFO 스케치" 포스터 이미지

1. 우리 곁의 UFO 현상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

미확인(Unidentified) 비행(Flying) 물체(Object)의 줄임말이다. 반대말은 식별 가능 비행 물체에 해당하는 I.F.O.(Identified Flying Object), 우리는 흔히 UFO를 외계인이 타고 온 비행접시로 통용하지만 정말로 그런 사실이 확인된다면 UFO는 그 순간 IFO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기막힌 역설적 상황이다.

그러나 엄밀한 개념 정의에도 불구하고 현실 통념상 UFO는 지구 바깥에서 외계인이 타고 온 탈것으로 상상되곤 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뜬금없이 등장하곤 하는 ‘51구역’과 ‘로스웰 사건’ 등은 미국 사회 내 대표적 음모이론으로 꼽힐 정도로 대중문화 현상이 되었다. 외계인이 존재하며 수시로 지구를 들락거리고, 미국 정부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 정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를 숨기거나 심지어 외계인과 협력관계라는 것이다. 외계인들은 지구 곳곳을 암약하며 인간을 납치하거나 실험하고,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과 교류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도 가십으로 종종 접할 수 있다. 현대의 신흥종교 중에서도 관련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선 비교적 드문 편이다.

하지만 서구권에 비교해 덜할 뿐이지 한국 또한 UFO 목격담은 끊이지 않고 등장해 왔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편에서 1609년 강원도 일대에서 현대의 UFO 목격담을 빼닮은 기이한 현상 목격담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지방관이 급보로 조정에 고했을 정도로 꽤 큰 사건이었던 듯하다. 기록문화가 극도로 발달했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인 만큼 묘사가 구체적이고 정황 또한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천문 관측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던 조선 시기인지라 유성 등과 비교해 확연히 다른 서술로 차별화된다.

이후로 현대에 들어와서도 공군에 발령된 미확인비행물체 요격 출동 사례는 물론, 심령현상이나 미확인 생물(크립티드) 같은 소재의 유행과 궤를 같이하며 UFO 목격담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은 1995년 중앙일간지 기자가 우연히 촬영한 가평 UFO 사진이다. 하지만 이런 목격담은 잊을 만하면 꾸준히 올라오지만, 서구의 대표적 UFO 관련 인사들이 대부분 사기나 조작으로 신뢰를 잃어가면서 철 지난 떡밥 취급으로 열기는 식은 지 오래다. 일단 우주 탐사와 지구 내 감시 추적 체계가 비약적으로 발달했고, 누구나 고화질 카메라로 언제든 촬영이 가능해진 조건에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발견 사례가 현저히 줄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UFO 스케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UFO 스케치 스틸 이미지

그럼에도 UFO 목격담은 끊어지지 않고, 무시와 외면 속에서도 미확인비행물체를 찾는 이들은 우리 곁에 존재한다. <UFO 스케치>는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관련 가이드북 <UFO 신드롬>의 저자인 맹성렬 한국UFO연구협회장(현 우석대학교 전자전기공학부 교수)을 따라 그런 이들을 취재하고 “UFO 현상”에 대해 고찰한 거의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2. 맹성렬 교수가 만난, UFO를 쫓는 이들의 이야기

‘자칭’ UFO 전문가들은 대부분 ‘유사과학자’에 해당된다. 유사과학이라 하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과학이 아니라 흉내만 내는 가짜 과학이란 뜻이다. 민간 전문가라 자처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경력이나 학위는 미심쩍거나 자가 복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맹성렬 한국UFO연구협회장이 대표적인 관련 저서 <UFO 신드롬>을 처음 출판한 게 1995년이니 국내에선 거의 유일무이한 공식 학계 인사인 셈이다.(이 책은 2003년, 2011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으나 현재는 절판 상태다) 대학 시절부터 UFO 연구회 활동을 해 왔다니 경력이 만만찮다. 기본적으로 UFO는 존재한다고 믿지만, 검증에 대해선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해 판단하는 편이다.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UFO를 믿느냐?’와 ‘UFO를 본 적이 있냐?’다. 영화 시작부터 그런 질문에 대한 본인의 답변들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영화의 전개는 그 답변의 변화와 직결된다) 수십 년간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연구와 강연을 쌓아 나름대로 전문가로서 미디어에 종종 호출될 정도의 지명도와 권위를 쌓아왔지만 정작 실제로 본인이 UFO를 목격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반생을 바쳐온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속한 협회의 주요 활동 중 하나인 UFO 촬영 사진의 감정 활동을 위해 전국 각지의 UFO 목격담을 찾아 여정을 거듭한다.

대학 시절 UFO 동호회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20대와 현재의 생각을 비교하고 아마 서로 간에 평생 거듭해 왔을 논쟁을 이어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해 1980년 실제 미확인비행물체를 요격하러 출동했던 예비역 공군 장성을 만나 당시 상황을 인터뷰한다. (해당 사례는 국내 대표적 목격담 중 하나다) 감독은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공신력이 부여된 공인의 증언과 대담 현장을 초반부에 배치함으로써 관객들이 UFO 목격담의 전형적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감독은 인터뷰 대상자들을 사례 유형과 분야별로 배열해 이 영화가 주인공 격인 맹성렬 교수의 <UFO 신드롬> 간략 버전 영상보고서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UFO의 목격 특징과 비행 방식 등의 특이점이 꽤 상세히 설명된다. 의외로 군에선 UFO 추정 물체에 대해 출격을 반드시 하는 편이라는데 이는 외계인이 존재하는 걸 믿는다는 게 아니라 미확인비행물체는 일단 요격하는 게 기본 임무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 인식과는 상이한 지점이다.

 

"UFO 스케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UFO 스케치 스틸 이미지

이어서 맹성렬 교수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UFO 사례인 가평 UFO 사진을 촬영했던 신문기자를 만난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보기 드물게 객관적 검증이 가능했던 해당 사례 에피소드를 해설한다. (전문 사진 촬영 과정을 거쳤기에 촬영 일시 확인은 물론 촬영된 물체의 물리적 분석이 가능했던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사례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기자와의 대담을 통해 UFO 현상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토로하기도 한다.

일단 한반도 내에서도 뭔가 목격되고 있구나 하는 확인을 거쳐 본격적으로 UFO의 존재를 믿는 이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UFO를 믿는 이들의 온라인 동호회의 ‘제1회 UFO의 날’ 행사에 참석해 다양한 생각을 듣고 질문한다. 모인 회원들은 연령대도 성별도 다양하다. 현실 가능성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사업 계획 발표를 보기도 하고, 왜 UFO의 존재를 믿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비슷한 이들끼리 모여 확증편향이 짙어지는 듯도 하지만 맹성렬 교수는 논쟁보다는 경청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다음에는 실제로 UFO를 통해 외계인과 접촉하는 경험을 했다는 이와 인터뷰를 시도한다. 그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종종 발견되는 서구의 UFO 접촉자들과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 절대자적 존재인 외계인들이 인간을 관찰 혹은 감시하면서 몇 사람을 선택해 정보를 주거나 교류하는데 자신이 그중 한 명이란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런 유형의 ‘근접 조우’ 경험자들은 종교적 체험에 가깝다)

몇 년에 한 번씩 서울 광화문 광장 상공에서 UFO 목격 소식이 올라오곤 한다. 공교롭게도 그 소식은 모두 ‘UFO 헌터’ 민간인 연구자 허준 씨에 의한 것이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한 그는 맹성렬 교수와 이후 자주 동행하며 관측과 촬영에 거듭 등장한다. 열정적으로 UFO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주관적으로라도) 검증 원칙과 기본 개념을 가진 사람이다. 맹성렬 교수가 처음으로 UFO를 봤다며 가져온 영상을 보고 흥분하다가도 그 촬영 시각에 상공을 지나던 비행기나 인공위성 여부를 확인하자는 치밀함을 보인다. 결국 I.S.S(국제우주정거장)의 궤적과 겹친다는 것이 입증되자 맹 교수는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통념과 다르게 인공위성 일부나 국제우주정거장은 대낮에 보일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 퍽 흥미로운데, UFO 추정 사진만 보면 흥분하던 허준 씨는 예상외로 ‘현장 경험’에 입각해 검증을 거치는 반면, 현상 연구자인 맹 교수는 처음 UFO를 목격했다는 기쁨에 약간의 맹목성을 보인다는 것. 영화의 주제가 UFO에 대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UFO를 둘러싼 현상과 그에 관련된 사람들을 조명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두 사람이 UFO의 비행 방식이나 UFO의 목적에 대한 가설을 토론하는 장면도 꽤 재미있다. ‘현장파’ 허준 씨와 ‘연구자’ 맹 교수의 대담 격인 해당 부분에서 때론 열정적으로 맞장구를 치다 가끔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두 사람의 ‘케미’가 일품이다.

 

"UFO 스케치"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UFO 스케치 스틸 이미지

맹 교수는 자신의 주 임무 중 하나인 아마추어 목격담 검증을 위해 다시 지방을 순회한다. 어떤 이는 나름대로 경험치와 논리를 갖고 이것저것 주장을 펼치거나 의견을 나누지만, 음모론으로 기울기도 한다. 미확인비행물체가 군 기지 주변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 군부대 주변에 미심쩍은 게 많다며 ‘한국의 51구역’이 분명하다는 식이다. (51구역은 미국 네바다 사막에 있는 군사기밀 장비 실험 기지인데 음모론 신봉자들은 이곳이 UFO와 외계인 연구기관이라 믿는다) 다른 이는 한눈에 봐도 조악한 증거를 갖고 간절히 그것이 UFO라고 인정되기를 갈구한다. 맹 교수는 그런 유도 질문에 답을 망설이며 힘들어한다. 믿고 싶은 이에게 그것을 속 시원히 믿으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냉정하게 답하기도 곤란한 표정이 볼만하다.

몇 가지 사례들에선 해외에서 UFO 목격을 주장하는 이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납치설이 등장하기도 한다. 뭇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UFO 신봉자들의 스테레오 타입 같은 사례다. 외계인이 사람을 납치해 생체실험하거나 표본을 추출하고, 납치되었다 돌아온 이들은 후유증을 앓거나 정기적으로 납치를 당하기도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들이다. 또는 UFO에 탑승한 이들은 외계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는 존재들이고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등장한다. 음모이론 혹은 피해 망상을 의심케 하는 대목들이다.

다소 느슨하게 음모론을 좇던 후반부는 다시 맹 교수를 포함한 동료들의 UFO 추격의 여정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자주 목격된다는 특정 시기에 맞춰 야간 관측을 거듭한다. 무엇인가가 목격된다. 남들은 봤는데 자기만 놓쳤다며 탄식하는 맹 교수에게 ‘세컨드 찬스’가 돌아온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떤 걸 눈으로 보고 어렴풋하게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드디어 UFO를 목격했다고 뿌듯해하는 맹 교수와 동료들의 덕담과 함께 그동안 목격되었다는 무수한 UFO 사진들-대부분은 도무지 뭔지 알 수가 없어 보이지만-의 향연이 펼쳐지며 영화는 엔딩으로 향한다.

 

3. “UFO 현상” : 순환논증 오류와 간절한 염원 사이에서

‘Ad Hoc 가설’이란 게 있다. 주장에 대한 반박이 나왔을 때 재반박을 위한 임시방편용 반박 가설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반박에 대한 재반박 자체는 틀린 게 아니지만, 이 경우 원래 주장을 입증할 다른 확증 대신에 오직 반론을 위한 가설만 내세운다는 게 문제다. 서두에 언급했듯 21세기 들어 UFO 목격담이 현저히 줄어든 건 이와 관련한 편향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UFO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데 UFO가 IFO가 되지 않으면 이는 과학적으로는 입증될 수 없는 문제다. 이게 인공위성이나 비행기나 드론이 아니라는 증명을 할 수 없다. 미확인비행물체는 말 그대로 ‘미확인’된 존재일 뿐이다.

여기에서 설명 불가로 끝나는 (전체의 1~5%에 해당) 사례에 쏟아지는 온갖 반박에 대응하기 위한 순환논증으로 ‘인류의 수준을 초월하는 지적 생명체이니 다 가능하다!’ 주장이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이 주장 또한 입증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게 문제다. 영화 중반에 맹 교수는 또 다른 UFO 전문가와 대담을 벌이는데 맹 교수는 전형적 이공계통이고 상대방은 인문학자다. 맹 교수는 이런 순환논증의 오류를 지적하며 현대 과학의 합리성을 설파하지만, 인문학자는 ‘철학과 믿음’의 문제로 대응한다.

그러던 맹 교수가 영화의 말미에선 상대방의 주장에 기울어지는 인상으로 남는다. 과학자로서 가능한 검증을 거치는 활동이 그동안 맹성렬 교수가 펼쳐온 활동이었지만 영화 초반에 옛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처럼 그는 기본적으로 UFO가 무엇인진 몰라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수많은 사례를 걸러내 자신이 믿는 존재를 어떻게든 더 신뢰받게 만들려는 대학생 시절의 꿈이 그의 인생을 지금까지 끌고 온 셈이다. 허준 씨를 비롯해 그와 목격담에 함께 하는 동료들은 사회 보편의 인식에 따르면 그저 괴짜들일 뿐이지만. 원자화된 현대 사회에서 저렇게 무엇인가에 열정을 바치는 이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 영화 내내 몇 번 발생한다. 맹성렬 교수의 변화가 급격해지는 바람에 후반부 전개가 급작스러운 느낌이 있고, 결국 UFO가 IFO가 되진 못했기에 화끈한 결말에 이르진 못했지만, 초지일관 감독이 보여주려던 바는 명확히 느껴지는 작업이다.

 


작품 정보

UFO 스케치 UFO Sketch

한국, 다큐멘터리, 2020

2021.03.04. 개봉, 83분, 전체관람가

감독 김진욱

주연 맹성렬, 임병선, 장호동, 지영해, 서종한, 김선규

배급 (주)마노 엔터테인먼트

21회 전주국제영화제(2020) 상영작

 

"UFO 스케치" 포스터 이미지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