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막리는 우리를 천천히 조금씩 들인다. 살림집과 힐링센터를 함께 하려니 공간 확장이 필요했다. 우리는 공사가 다 끝나고 이사를 들어가는 것보다 번거롭지만 집에 살아보면서 공간을 구상하기로 했다. 함께 사는 선생님이 이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난방은 어떤지 창으로 드는 햇빛은 어떤지 마당으로 지나는 달과 구름들… 지내보고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결정하기로.

2월 18일,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우수에 온막리로 1차 이사를 했다. 날은 차고 오전부터 눈발이 날렸다. 하늘도 축하하는지. 이삿날 눈이 오면 잘 산다고 하지 않던가! 창문으로 이삿짐을 들이는 바람에 온종일 한 데서 있는 셈이라 온몸이 꽁꽁 얼 지경이었다. 그리 많지도 않은 짐인데 해 질 녘에야 창문이 닫히고, 난로에 불을 지폈다. 처음 피우는 불이라 연기가 풀풀 밖으로 새어 나와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지만, 실내는 조금씩 냉기가 가시고 열기라 퍼졌다.

어둠이 병풍처럼 쳐진 산에서 내려와 마당으로 들어설 때 이사 떡을 들고 반장님 댁을 찾았다. 동네엔 40여 가구가 살고 그중 3분의 1 이상이 외지인으로 주말에만 머물고, 부산에서 온 분들이 많다 한다. 마을에 주말별장이 많으면 집은 있으나 사람이 살지 않아 공동체 문화가 살아나지 않는다. 주말에 와서 집을 돌보다 가기 바빠 이웃과 어울릴 여유가 없다. 점점 마을 공동체의 일과 놀이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풍요는 사라졌다. 집과 땅은 생활의 터전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이자 채소를 얻는 땅에 불과하며, 숯불 바비큐 파티를 하는 장소 정도로 전락해버린다. 삶의 노래와 춤의 시대는 끝나고 전설과 신화는 영영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다.

이사 다음 날 급히 심리치료가 필요한 분이 있어 온막으로 초대했다. 길을 30분을 헤매고야 골목으로 마중 나가 있던 나를 찾았다. 길을 헤맨 것에 미안함을 전하니,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 두려워 긴장과 걱정이 많았는데 집을 찾아 헤매느라 그 긴장을 다 잊어버렸다며 여행처럼 왔다고 하신다.

우리의 주인공은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과 상실, 미움, 분노의 혼동으로 목이 꽉 막히고 마음의 고통이 큰 분이었다. 마음이 급해서 집을 수리할 때까지 기다리기 힘들어 이사 다음 날로 날을 잡은 것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엄마를 만났고 자신을 만났다. 드라마가 끝나고 주인공의 몸은 펴졌고 얼굴엔 미소와 발그레 혈기가 돌았고 막혀있던 생리혈이 흘렀다. 우리가 주인공의 삶으로 초대받아 몰입하는 사이 집은 이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우리를 안전하게 결계를 치고 지켜주었다. 생각보다 집은 따뜻했고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황토와 나무 때문인지 밖으로 보이는 바람과 소나무 때문인지.

이사 한지 닷새째, 10시간 상담을 신청한 분이 스트레스로 5월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 하셔서 오시라고 했다. 천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오려면 나드리 콜을 불러야 한다. 청도에는 3대의 나드리 콜이 있는데 청도군민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하는 것이라 외지인은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당당한 주인공은 3시간이 걸려 부탁과 설득으로 나드리콜택시 예약에 성공했고 어머니와 함께 도착했다.

 

ⓒ이은주

모래 놀이를 하는 상담자이기 때문에 더 자신을 성장시키고 나와의 작업 과정에서 자신이 치료사로서 경험으로 배우는 것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녀만큼 자신에 충실하고 도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1박 2일은 소리 없이 흘러갔고 그녀는 살아보지 못한 잉여 현실의 세계를 살아보며 지금 여기에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지를 알고 온막리를 떠나갔다.

1차 이사를 한 지 이렛날부터 아흐렛날까지는 드라마예술치료사 수련과정이 있었다. 음식을 나누어 먹고 춤추며, 기도하며, 살아온 날들이 나에게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나의 관계 패턴은 어떻게 온 것이지 탐색했다. 우리는 과거의 업식을 벗어나 지금, 여기, 나로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알게 되었다. 아, 온막리 집은 우리를 천천히 그러나 깊이 받아들인다.

워크샵을 마치고 현실적인 문제를 살피며 힐링센터 이사를 결정하려고 하니 오리무중이다. 힐링센터 공사를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한다. 집을 샀다고 금방 공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절차가 필요하고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먼저 땅과 집에 대한 소유권 이전이 되는 데 1주일이 걸리고, 바꿀 공간에 대한 디자인이 나오면 건축설계가 완성된다. 그 후 신고절차를 거치는 데 2주가 걸린다. 그것도 관할청에서 바로 일이 처리되었을 때 이야기다. 증축허가증이 나와야 첫 삽을 뜰 수 있다. 공사는 2개월 반 정도가 걸린다 하니 안정적인 일상을 살아보기까지 빨라도 5개월은 걸리겠다.

온막리 집에서 열흘을 살아보니 공간에 대한 이해가 훨씬 명료해졌고 수리를 할 부분과 하지 않아야 할 부분들이 보인다. 경산과 온막을 왔다 갔다 하며 공간을 디자인하는 000선생님과 수차례 디자인을 의논했고, 생각이 수시로 달라졌고, 그럴 때마다 의논을 하고 도면이 다시 그려졌다. 대추밭에 독립된 센터 공간을 지었다가 부수고, 뜨락을 냈다가 허물고, 거실의 벽은 몇 번이나 허물어졌다가 유지되었다. 이사 날짜를 셈하고 재촉하기보다 마음을 느긋하게 되는 대로 내맡기기로 했다. 이러다 올봄 농사는 지을 수 있을지…….

 

- 3.1절 밤에



글 / 이은주 (65년 성주 생, 동화작가, 여성주의 사이코드라마티스트, 이은주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경산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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