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주<br>
ⓒ 김연주

 

17살 정유엽

공공의료를 앞당기는 등불이 되다

 

봄이 왔구나

바람은 부드럽고

햇빛은 따뜻하여

천지 들산에 풀들이 돋아나고

나뭇가지에 연분홍 꽃들이 피어나는구나

 

뭇 생명들이 깨어나는데

유엽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이 봄엔 너도 해군사관학교를 가고 멋진 모자를 썼을 텐데

애통하고 절통하여라

 

너의 마지막 순간들

이마는 끓어오르고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으로 신음소리를 낼 때

의사와 간호사는 책임을 피하고,

병원은 진료를 거절하고 치료도 거부하고

따뜻함도 보살핌도 위로의 말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아픈 네 몸을 피검체로 내맡겨야 했던

이 생에서의 너의 마지막이

애통하고 절통하여

가슴을 치고 심장을 찢는구나

 

미안하다

아픈 너를

그저 너의 이마와 손발을 쓸어내리는 것 밖에 할 줄 몰라

그저 병원과 의사를 믿고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줄 몰라

무망간에 너를 놓치고 말았구나

그 먼 길 떠나는 너의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하고

작별 인사도 없이

노래도 없이

너를 떠나보내고야 말았구나

 

미안하고 미안하다.

공부만 잘하면 의사 되고 돈 잘 벌고 출세하는 거라

세상이 말할 때

아니라고

그보다 중한 것이 사람이요

그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요

외치고 노래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거늘

너를 잃고서야 알게 되었구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아이나 어른이나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누구나 생명은 귀하고

우리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너를 놓치고서야 뼈에 사무치게 알게 되었구나

 

유엽아, 사랑하는 아이야

너를 보내고야 아비도 어미도

돈도 명예도 아니라 생명이 먼저란 것을 배웠구나

‘공공의료’가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구나

 

너를 보내고 우리는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함께 노래한다.

귀한 생명 차별 없이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생명을 치료하는 것은 돈 벌이의 수단이 아니어야 한다고.

누구 하나가 아니라 사회가 국가가 우리 모두가

합의하고 실천하고,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유엽아

순하고 아름다운 영혼아

밴드를 하며 노래를 좋아했던 아이야

수많은 의료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공공의료가 실현되는 그날을 앞당기는

작은 등불이 되려고

너는 그리 허망하게 갔느냐

그립고 그립구나

 

지켜봐다오

너를 사랑했던 처음 그 마음처럼

우리가 가는 이 길을

 

부디

네가 사는 그 나라에서는

거절도 당하지 말고

거부도 당하지 말고

온당하고 따뜻하게 치료받고

아프지 말기를

 

그렇게 다음 생에는

4월 산천에 흐드러질 진달래처럼

화전놀이도 하고 꽃잔치도 벌이고

활짝 마음껏 피었다가

여름의 뜨거움도

가을의 풍요도

겨울의 고요함도 다 누리고 가시게

 

 

3월 18일 봄 빛 가득한 날에

정유엽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은주

 

정유엽 학생 1주기 추모제에서 추모시를 낭송했다. ⓒ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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