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문연구원 등 국제연구진, 블랙홀 편광 연구를 통해 확인
2년 전, 블랙홀 영상 공개로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도 증명

 

M87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블랙홀의 편광 영상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M87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의 편광 영상. 출처=한국천문연구원

25일, 한국천문연구원은 5천5백만 광년 떨어진 M87 은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편광 관측을 통해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이고 내뱉는 과정을 알아냈다고 EHT 국제 공동 프로젝트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지난 2019년 4월 10일 최초로 블랙홀(Black Hole) 영상을 공개했던 EHT(Event Horizon Telescope,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국제 공동 연구진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M87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에서 특정한 방향으로만 진동하며 나아가는 빛(전자기파)인 편광 관측 영상을 공개했다. 인류가 블랙홀 가장자리에서 강한 자기장 증거인 편광을 관측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랙홀은 주변에서 물질을 끌어들이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블랙홀로 유입된 물질 일부는 방출되고 일부는 블랙홀 안으로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블랙홀 중력에 붙잡히기 직전에 빠져나가는 물질은 에너지를 양쪽으로 강력하게 뿜어내는 제트의 형태로 우주로 멀리 날아간다.

하지만 블랙홀 주변 물질 유입과 방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M87 같은 거대 타원은하의 중심에서 어떻게 은하 크기보다 더 큰 제트가 발생할 수 있는지는 이제껏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관측 결과는 5천5백만 광년 떨어진 M87 은하가 중심부 핵에서 고에너지 제트를 어떻게 내뿜을 수 있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천문연구원을 비롯한 전 세계 65개 기관 300명 이상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EHT 연구진은 2년 전 처녀자리은하단에 속한 M87 중심부 블랙홀 이미지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후 연구팀은 M87에 대한 지속적인 관측과 분석을 수행한 결과, M87 블랙홀 주변 빛이 상당 부분 편광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블랙홀은 빛조차 탈출할 수 없는 강한 중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건지평선 바깥을 지나가는 빛도 휘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블랙홀 뒤편에 있는 밝은 천체나 블랙홀 주변에서 내뿜는 빛은 왜곡돼 블랙홀 주위를 휘감는다. 왜곡된 빛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블랙홀을 비춰 블랙홀의 윤곽이 드러나게 하는데 이 윤곽을 ‘블랙홀 그림자(Black Shadow)’라고 한다.

연구진은 여러 번의 관측자료 보정과 영상화 작업을 통해 고리 형태의 구조와 중심부의 어두운 지역, 즉 블랙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M87 블랙홀의 경계(사건의 지평선)는 4백억 km에 조금 못 미친다고 밝혔다. 블랙홀 그림자 크기는 이보다 2.5배 정도 크다.

 

EHT 연구진이 2019년 4월 10일 공개한 관측한 블랙홀(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사진 출처. 한국천문연구원
EHT 연구진이 2019년 4월 10일 공개한 블랙홀 영상.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출처=한국천문연구원

블랙홀은 극단적으로 압축된 천체로, 매우 작은 공간 내에 엄청난 질량을 포함하고 있다. 지구 질량 블랙홀은 탁구공 절반보다도 작은 지름을 지닌다. 이러한 천체들의 존재는 시공간을 휘게 하고 주변 물질들을 초고온으로 가열시키면서 주변 환경에 극단적인 영향을 끼친다.

EHT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블랙홀과 같은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인 천체들을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했다.

편광 관측은 블랙홀 바로 바깥에서 물질 유입량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번 편광 관측 영상을 통해 M87 블랙홀 가장자리 빛 고리가 강하게 자기화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연구진은 편광 관측 영상 분석을 통해 블랙홀 주변에 예상보다 훨씬 강한 자기장이 존재함을 알아냈으며, 자기장 구조를 통해 블랙홀 바로 바깥에서 물질 유입과 방출이 일어나는 영역을 최초로 상세히 확인했다.

EHT 연구진은 이번 영상을 통해 M87 블랙홀 주변부의 강력한 자기장이 어떻게 초대질량 블랙홀과 제트의 형성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M87 블랙홀 주변의 뜨거운 가스 일부는 가장자리 강한 자기장 압력으로 블랙홀 중심에서 강한 중력에너지를 이기고 밖으로 밀려 멀리 제트 형태로 날아가고, 나머지 일부는 자기장에 끌려 사건의 지평선으로 나선 운동하며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EHT 한국 연구진을 이끄는 한국천문연구원 손봉원 박사는 “우리는 EHT 연구의 일환으로 천문연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Korean VLBI Network)을 활용해 M87 블랙홀 주변의 강착원반과 제트 등 추가 관측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KVN 기술을 활용할 차세대 EHT는 블랙홀 관측과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홀 관측을 위해 EHT는 전 지구에 걸친 망원경 8개를 연결해 이전에 없던 높은 민감도와 분해능을 가진 지구 규모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다. 지구의 자전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로 1.3밀리미터 파장 대역에서 하나의 거대한 지구 규모의 망원경이 구동되는 것이다.

이런 가상 망원경을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라고 한다. EHT의 공간분해능은 파리의 카페에서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해능이다.

EHT에 참여한 8개의 망원경은, 아타카마 밀리미터/서브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아타카마 패스파인더(APEX), 유럽 국제전파천문학연구소(IRAM) 30미터 망원경,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대형 밀리미터 망원경(LMT), 서브밀리미터 집합체(SMA), 서브밀리미터 망원경(SMT), 남극 망원경(SPT)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천체물리학 저널 회보(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3월 24일 자에 두 편의 논문으로 게재됐다.

 

전 세계 8개의 망원경을 연결한 EHT(Event Horizon Telescope) 그림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전 세계 8개의 망원경을 연결한 EHT(Event Horizon Telescope) 그림. 출처=한국천문연구원

 


[참고]

EHT 공식 언론배포 자료
https://eventhorizontelescope.org/blog/astronomers-image-magnetic-fields-edge-m87s-black-hole

○ 초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
질량이 태양 질량의 수십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르는 가장 큰 유형의 블랙홀이다. 거의 대부분의 은하의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초대질량 블랙홀들은 상대적으로는 크기가 작은 천체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관측이 불가능했다. 블랙홀 그림자의 크기는 그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무거운 블랙홀일수록 그 그림자도 더 커진다. M87의 블랙홀은 그 거대한 질량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 덕분에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블랙홀들의 그림자 중 하나로 예측됐고, 따라서 EHT의 완벽한 관측 대상이 됐다.

○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 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
거대한 영역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대형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연동해야만 한다. 세계 각지의 최첨단 전파망원경으로 하나의 천체를 동시 관측해 분해능(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구별하는 능력)을 높이는 초장기선 전파간섭계 기술을 활용한다. 수백~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으로 동시에 같은 천체를 관측하여 전파망원경 사이의 거리에 해당하는 구경을 가진 거대한 가상의 망원경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전파 신호를 더 증폭할 수 있고 그래서 더 높은 해상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8개 전파망원경이 각자 전파 신호를 포착하고 이 신호들을 한데 모아 ‘가상의 망원경 초점’에서 종합하면 사실상 지구만한 전파망원경의 효과를 낼 수 있다.

○ 일반상대성 이론과 EHT
191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어떤 물체가 존재하면 그 주변 시공간은 그 물체의 질량에 영향을 받아 휘어지게 되는데 질량이 크면 클수록 주변 시공간이 더 많이 휘어져 더 큰 곡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과 두 탐험대가 1919년 개기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아프리카 해안의 프린시페섬과 브라질의 소브랄로 원정을 떠났다. 에딩턴은 개기일식 때 태양 주변 빛이 1.61초 휘는 것을 관측했고, 이로써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EHT는 우리의 중력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한 번 검증하기 위해 팀의 구성원들을 세계 각지의 가장 높고 고립된 전파 시설들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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