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장애인자립생활위원회는? ‘중증장애인 활동 지원 24시간 보장 투쟁’ 통해 구성된 민관합의체
장애인 탈시설·탈재가 및 자립 생활 이념 구현 위한 다양한 정책 협의
2021년 핵심 의제는 “장애인 자립 생활 위한 조례 제정”

 

제2차 포항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위원회가 진행 중이다.
제2차 포항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위원회의 모습. 사진 황우성

포항시가 장애인의 자립 생활 정책 협의를 위한 민관협의체인 포항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위원회(이하 ‘자생위’)를 발족,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 및 정책 구현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포항시는 지난해 11월 9일 열린 제1차 자생위에서 두 달에 한 번 정례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포항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 제정을 2021년 자생위의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올해 2월 23일 열린 제2차 자생위에서는 발달장애인 시설 재입소 및 시설관계인 후견인 선정 사례와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선발 기준 문제, 장애인 건강권과 이동권 등 장애인 자립생활 정책에 관한 여러 현안을 논의했다.

이번 자생위는 지방정부가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긴급하고 중대한 정책 의제로 인식하여 상설 민관협의체를 구성한 경북 지역 최초의 사례로, 장애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포항시는 지난해 7월 23일 경북 지역 최초로 하루 24시간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자생위를 통해 활동지원제도를 비롯한 장애인 자립생활 정책 전반의 근본 방향과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이 같은 변화는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시혜적 복지가 아닌 시민의 기본적 권리이자 ‘차별 철폐’라는 중대한 헌법적·인권적 과제의 차원에서 인식할 것을 포항시에 요구해 온 장애계 및 시민사회의 노력에 힘입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장애계 및 시민단체는 지난 2년간 포항시를 대상으로 활동 지원 24시간 전면 확대 등 장애인의 생존권 및 탈시설·자립 생활 권리 보장을 촉구해 왔다. 그 결과 인간다운 삶의 보편적 조건과 권리를 박탈당해 온 포항시 중증장애인의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해 6월 30일, 장애계 및 시민단체로 구성된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이하 ‘420포항공투단’)은 한 달간의 노숙 농성 끝에 포항시와 ▲2022년까지 최중증 독거장애인 13인에 대한 활동 지원 24시간 보장[종합점수(X1) 360점(아동 280점) 이상] ▲장애인 자립생활정책을 상시 논의하는 10인 이내(포항시5, 장애계5)의 협의체(곧, 자생위) 구축을 합의했다. 장애계 및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요구로 포항시가 ‘장애인 자립 생활’을 하나의 중대한 정책 과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인 자립생활 정책 논의 “포항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시 기준 근거”

특히 이번 자생위 출범을 계기로 포항시가 장애인의 자립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탈시설 정책을 본격화할 것인가에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 7월 28일, 포항시는 420포항공투단의 요구안에 대한 회신 공문을 통해 자생위 설치의 목적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제시하는 기준을 근거로 포항시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환경 마련”임을 밝힌 바 있다.

 

"UN장애인권리협약이 제시하는 기준을 근거"로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정책" 및 "환경"을 마련할 것을 약속한 포항시. 자료제공 420포항공투단
▲ ‘UN장애인권리협약’이 제시하는 기준을 근거로 포항시는 ‘중증장애인 자립 생활 정책 및 환경 마련’을 약속했다. 자료제공 420포항공투단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매우 적극적으로 탈시설 정책을 지향하는 보편적 국제규범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자립생활 및 지역사회 통합’이라는 소제 아래,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조건으로 거주지 선택의 자유, 어디서 누구와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가지며, 특정한 주거 형태에서 사는 것을 강요받지 않아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UN CRPD)는 동 조항에 근거해 한국정부를 대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권적 모델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탈시설화 전략을 개발하고, 활동보조 서비스를 포함한 지원서비스를 대폭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국정과제 42번으로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약속했다. 오는 8월에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을 수립·발표하여, 탈시설 및 자립생활 지원에 관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을 명문화할 방침이다.

국회 또한 지난해 12월 10일, 10년 이내에 거주시설을 폐쇄하는 동시에 보다 철저히 장애인의 자립 생활 및 사회통합을 지원하는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함으로써 탈시설을 통한 장애인의 실질적인 자립 생활 실현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장애계 및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거주시설 내 장애인의 (집단)거주’ 그 자체가 헌법이 선언하는 인간의 존엄 및 행복추구권, 이에 전제된 자기결정권, 그리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헌법 제10조, 제17조)를 현격히 침해하는 위헌적이고 반인권적인 구시대 정책의 유물이라며 비판해왔다.

장애계 및 시민사회는 ‘탈시설’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국내외의 흐름을 고려할 경우, 이번 자생위 출범이 포항시가 탈시설 정책을 선도적으로 앞당기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2월 23일, 제2차 자생위를 통해 시민 위원들이 포항시에 제출한 자립 생활 지원 조례안 초안(시민위원 측 조례안 명칭: ‘포항시 장애인 탈시설·탈재가 및 자립생활 회복 지원 조례’)에 ‘탈시설’을 명문화한 것 또한 이러한 전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시민 위원들은 그 밖에도 그동안 복지와 권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던 장애인의 현실과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재가(在家) 장애인이 실질적인 자립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당사자의 부모를 비롯한 가족에게 돌봄의 부담이 오롯이 전가되고, 극단적인 경우 또다시 당사자가 시설로 보내지거나 기타 위험에 처하는 암울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탈재가’라는 표현을 조례안에 삽입했다.

자생위 위원들은 차기 회의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립생활 조례안에 관한 협의를 해나갈 것을 약속했다.

 

경북에서 처음으로 ‘장애인자립생활위원회’ 개최

시민 위원, 포항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안 비롯 

장애 현안 논의 열띤 참여

이날 자생위에선 조례안 외에도 다양한 자립 생활 현안이 논의되었다.

시민 위원들은 장성동 자립 생활 장애인 강제 시설 입소 및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해 포항시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립생활’ 중이던 장성동 거주 발달장애인 A 씨가 실질적 자립생활 지원체계의 공백 속에서 이웃들의 민원에 노출돼 포항시의 통합사례회의를 거쳐 재차 거주시설로 입소된 정황과, A 씨의 공공후견인이 관련 거주시설의 관계자인 사실이 드러나 인권위 긴급 진정까지 제기된 사건에 관해 시민 위원들은 후견인 교체 및 A 씨를 비롯한 발달장애인 개인별 자립 지원 수립에 포항시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박충일 포항시민인권연대 집행위원장은 “보건복지부는 발달장애인지원사업안내 지침을 통해 거주시설 종사자가 후견인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정하고 있다”라며,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시설관계인이 후견인이 될 수 없도록 정한 취지와 자립 생활 지원이라는 후견제도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동권과 관련해서는 ▲평일 6시 이후의 ‘동행콜’(휠체어 탑승설비 이동지원 차량) 이용 어려움, ▲22시 이후 동행콜 야간 계획 예약제의 부당성, ▲동행콜 연휴 이용 불가 문제 등이 공유되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포항시 도로교통과 김대환 팀장은 “따로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동행콜과 협의하여 해결할 부분들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작년부터 시행된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제도와 관련 신청자 중 최종 선정자를 심사하는 배점 기준표 상 ‘거주 기간(연속)’ 항목이 총점 100점에서 20점을 차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이날 제기되었다.

 

올해 포항시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했던 S 씨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자신의 배점 결과. 신청 당시 포항시 거주 기간이 1년이 채 안 됐던 S 씨는 총점 20점인 '포항시 거주기간(연속)' 항목에서 평균 4점을 받았다.
올해 포항시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했던 최중증장애인 S 씨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자신의 배점 결과. 신청 당시 포항시 거주 기간이 1년이 채 안 됐던 S 씨는 총점 20점인 ‘포항시 거주 기간(연속)’ 항목에서 평균 4점을 받았다.

시민 위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포항시청 노인장애인복지과 최건훈 팀장은 “(현 20점 배점)기준을 완화해 보도록 하겠다”고 답하며 “사업 예산이 한정돼 있고 부득이 순서를 정해야 하니 심사 기준을 이렇게 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민 위원은 포항시에 거주한 기간이 짧을수록 심사에 불이익을 받게 되는 현행 심사 방식 자체가 장애인에게는 부당한 차별의 경험이 된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를 마친 후 하용준 420포항공투단 집행위원장은 “해당 항목 자체가 헌법상 거주 이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한다. 원하는 지역사회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기본 권리이지 거주 기간을 기준으로 줄 세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이어 그는 “현재 포항시가 인구 50만을 지키겠다고 여러 유인책을 쓰고 있는데, 정작 장애인은 포항시에 거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만드는 차별적인 항목이 아닌가”라며, “이 부분에 관해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건강권과 관련하여 포항시에 장애인을 위한 지정 치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자생위 시민 위원인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윤해수 소장은 “장애 특성에 따라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전신)마취가 필요한 장애인이 많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치과가 이러한 장애 특성을 고려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윤해수 소장은 “사실상의 진료 거부를 경험하는 것이 장애인에게는 일상이다.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치과 한 번 가기 어려운 현실이 서둘러 개선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문제를 파악한 포항시는 “다른 시·도의 사례들을 조사하여, 장애인 지정 치과 문제를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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