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재현된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

 

1_1. 잘 알려지지 않은 <레 미제라블>의 핵심 주제

 

한 번은 마들렌 씨는 한 무리의 시골 농부들이 쐐기풀을 뽑아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뿌리가 뽑혀 시들어가는 쐐기풀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죽었군요. 하지만 이것들도 활용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어린 쐐기풀은 아주 훌륭한 채소입니다. 자라면 삼이나 대마 같은 섬유소가 생기지요. 쐐기풀로 짠 천은 삼베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쐐기풀을 잘게 썰면 닭이나 오리에게 먹일 수 있고, 으깨면 소에게도 먹일 수 있습니다. 쐐기풀의 씨를 사료에 섞어 먹이면 가축의 털 가죽의 광택이 좋아지지요. 그 뿌리를 소금과 섞으면 아주 예쁜 노란색 염료가 됩니다. 거기에, 쐐기풀은 1년에 2번이나 거둘 수 있는 작물입니다. 게다가 재배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면적도 거의 차지하지 않고, 밭을 갈 필요도 없고, 김매기도 필요 없지요. 단 하나 안 좋은 점은, 익은 씨가 쉽게 땅에 떨어지므로 수확이 어렵다는 거지요. 아주 적은 수고만 들이면 쐐기풀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방치하면 미움을 받아 이렇게 뽑히게 되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쐐기풀과 같은 운명을 겪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마들렌 씨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친구들, 이걸 기억해 주십시오. 세상에 나쁜 식물이나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나쁜 경작이 있을 뿐이지요.”

 

우리가 어릴 적 읽던 <장발장> 축약 판본은 대개 이 에피소드를 건너뛰기 일쑤였다. 미리엘 주교와의 만남으로 개과천선한 장발장의 짧은 성공담 이후 곧바로 팡틴과 코제트 모녀와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발장의 가장 평화롭던 시절인 소도시 시장 임기 동안 지나가는 일화로 서술된 위 에피소드는 사실상 <레 미제라블>의 핵심 주제를 집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대목이다.

쐐기풀은 유럽이 굶주리던 시절 최후의 구황작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평소에는 잡초 취급을 받아 우리가 논에서 피를 뽑듯 퇴치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피’도 인류의 초창기 농경 시대 주요 작물이었던 적이 있던 것처럼, 쐐기풀 또한 늘 천대받았지만 절박한 순간에는 요긴한 구황작물로 활용되는 운명이었다. 이런 쐐기풀의 운명은 심지어 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이어졌다. 감자나 순무마저 떨어지면 최후로 먹을 수 있는 건 쐐기풀로 쑨 풀죽이었다.

 

"레 미제라블" 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 <레 미제라블> 포스터 이미지

1_2. 빅토르 위고의 원작과 이전 영화화 작업들

프랑스의 국민 문호,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이자 자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소설인 동시에, 프랑스 일국을 넘어 전 지구적 고전의 반열에 오른 <레 미제라블> 원작은 불어판으로 2,598쪽, 655,478자가 넘는 장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대하소설이다. 원작의 부제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대하소설은 1789년부터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연속되던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종언과 함께 1815년 종결되고 부르봉 왕조가 복위한 시절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이미 혁명의 경험을 겪었지만, 반동적인 왕정으로 회귀한 시대 배경을 기반으로 여전히 혁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시절이다. 한편 정치적 민주주의는 후퇴했지만, 과거 귀족들의 지위를 차지한 신흥 자본가들에 의해 사회 전반의 빈부격차는 악화 일로를 걷던 시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당시 시대 배경에 대한 르포를 방불케 할 만큼 상세한 해설과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장발장과 코제트의 이야기 중심으로만 축약되어 소개된 측면이 짙다 보니, 국내 번역본 중 가장 완성도 높다는 민음사 판 5권 전집을 펼치면 우리가 간과했거나 처음 보는 내용이 수두룩할 것이다.

앞에서 서술했던 쐐기풀 일화는 이 대하소설의 주제로 많은 이들이 손꼽는다. 당시는 초기 자본주의 치하 시민에게 참정권 등 정치적 발언은 미약한 가운데,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대지주의 여전한 압제 사이에서 혁명 후에도 별반 민중의 삶이 나아진 게 없던 환멸의 시절이다. 가난과 빈곤이란 그저 개인의 모자람이나 천벌처럼 피할 수 없는 존재로, 즉 당사자의 잘못으로 치부되는 시대였다.

빅토르 위고는 장 발장의 입을 통해 사회구조의 모순과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사회악을 지적하고 환경과 기회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근대 이후 정치와 복지의 핵심 화두가 여기에서 완성형으로 대두된다. 즉 가난이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반향을 얻어낸 효시로 <레 미제라블>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세계 사상사에 족적을 남긴 셈이다.

워낙 지명도 높은 원작이다 보니 영화 매체가 탄생한 후 다양한 경로로 영화화가 이뤄졌다. 본국 프랑스에서는 1920년대부터 영화로, 그리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여러 차례 제작된 바 있다. 비교적 우리에게 익숙한 작업으로는 1998년 빌 어거스트 감독, 리암 니슨과 제프리 러쉬 주연의 정통 드라마 영화가 있다. 2012년 톰 후퍼 감독, 휴 잭맨과 러셀 크로우 주연의 뮤지컬 영화 역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2012년 버전은 지금도 국내에선 가장 대중적으로 친숙한 <레 미제라블> 영상화일 것이다.

<레 미제라블>의 이름을 가진 영화는 이외에도 적지 않은 숫자를 자랑한다. 1920년대 첫 영화화될 당시부터 워낙 원작의 이름값 덕분에 거의 모든 영상화 작업은 평균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이제 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게 있을까? 하는 와중에 전혀 새로운 방식의 영화가 2019년 칸 영화제에 등장했다. 이번에 소개할 레쥬 리 감독의 <레 미제라블>이다.

 

2_1. 104분 동안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야기

 

영화가 시작된다. 한 소년이 거리의 군중들과 함께 움직인다. 배경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이다. 파리 시내 곳곳에서 열광한 축구팬들이 결승전에 나선 대표 팀을 광적으로 응원하는 중이다. 소년 또한 무표정하지만 이들에게 휩쓸려 들어간다. 이 해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우승하는 영광을 누린다. 거리에 운집한 군중은 기쁨에 겨워 환성을 지르고 축제를 벌인다. 격렬한 우승 축하와 함께 파리의 상징 개선문이 클로즈-업 된다.

인상적인 오프닝이 끝나면 카메라는 파리 교외의 일 드 프랑스 지역, 그중에서도 몽페르메유 일대를 조망한다. 이 지역은 낡은 아파트촌을 중심으로 가난한 이들과 여러 형태의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동네다. 스테판 경장은 이곳 경찰서로 새로 전근을 오게 된다. 경찰서의 분위기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전형적 강력반 배경이다. 우락부락한 경찰과 요란법석의 서 분위기 속에서 스테판은 같이 일하게 될 강력반 주간 팀과 인사를 나눈다. 팀장을 맡은 크리스와 그의 파트너 그와다는 초반부터 스테판이 교외 지역 근무 경험이 없음을 알고 짓궂은 장난을 걸며 기싸움을 벌인다.

이 와중에 마치 그림으로 그려내듯 소소한 작은 일화들을 통해 몽페르메유 지역의 정경이 묘사되기 시작한다. 빅토르 위고가 이 동네에서 <레 미제라블>을 집필했다는 시청 홈페이지 홍보 글처럼 대문호의 이름을 딴 학교도 있지만, 순찰팀 멤버들은 아직도 그 시절과 별반 동네가 달라진 게 없는가 보네? 하며 농담으로 지나친다.

 

"레 미제라블"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이미지

분명 사람 사는 동네일 텐데 동료들은 강압적으로 마치 심심풀이하듯 시시콜콜한 수작과 함께 검문검색을 시행하고 스테판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동네에는 떼를 지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넘쳐나고 상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에서는 자칭 ‘시장’이 경찰과 적대적 공생 관계 속에서 이권을 쥐고 최소한의 공공서비스(엘리베이터가 멎으면 동아줄로 시장에서 산 물건을 올려주는 식)를 제공하고 있다.

마약과 범죄가 만연하는 동네를 무슬림 형제단이 계도하는 활동을 벌이지만, 경찰들에게 이들 독실한 무슬림 집단은 예비 테러리스트가 아닐까 의심을 받는 처지다. 주민들은 경찰에 기본적으로 적대하는 태도를 감추지 않으며 경찰들 또한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함을 잘 안다. 그 적대감의 조합이 스테판의 동료들이 수행하는 기싸움과 강압적 통제다. 동네의 이권을 나눠서 차지한 조직들은 그런 경찰과 갈등하면서도 적당히 공존하려 한다. 다만 이해관계에 따른 이들의 상호 불신에 기초한 공존은 늘 서로의 약점을 움켜쥐고 더 유리한 위치를 잡으려는 음모와 책략의 도가니 속이다.

이런 동네 풍경을 감독의 카메라는 관찰자 역할인 스테판을 통해 묘사하지만, 여기에 추가로 전지적 관찰자 시점을 추가한다. 동네에 사는 숫기 없는 소년 뷔조는 드론으로 동네 여자애들 몰카를 찍다가 소녀들에게 걸려 혼나곤 한다. 그런 뷔조의 드론에 어느 날 충격적인 영상이 찍히고 간신히 유지되던 동네의 불안한 공기는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2_2. 새끼 사자와 또 다른 새끼 사자의 이야기

영화 시작 부분에서 등장했던 소년은 어느새 경찰서에서 닭을 훔치다 잡혀 와 있다. 아버지는 아이를 두드려 팰 기세로 자식을 보호하기는커녕 경찰에게 마음대로 하고 연락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게 전부다. 이 소년 ‘이사’는 동네에 공연하러 온 집시 서커스단의 새끼 사자를 훔치는 대형 사고를 친다. 흥분한 집시들은 무장하고 동네를 누비며 무력시위를 하고, 동네의 ‘시장’ 세력과 일촉즉발의 대치를 시작한다. 스테판과 동료들은 공권력으로서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큰일을 저지르는지도 모르고 SNS에 자신들의 건을 자랑하는 바람에 쉽게 소재는 파악된다. 하지만 경찰에 적대하는 동네 아이들의 저항 때문에 동료 경찰인 그와다가 그 과정에서 큰 사고를 치고 만다. 이제 10년을 이 동네에서 굴렀다는 크리스와 그와다 대신에 스테판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머리를 싸맬 지경이다.

뷔조가 드론 영상을 촬영했음을 알게 된 순찰팀 동료들은 뷔조를 덮치지만, 소년은 무슬림 형제단을 이끄는 전직 갱스터 살라에게 구원을 청한다. 살라의 가게에 뷔조가 있음을 알게 된 경찰과 동네의 한다하는 조직들이 모두 모여들고, 자칫하면 정말 대형 사고가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스테판은 살라와 대화를 시도한다. 실제 2005년 파리 교외에서 이민자 2세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던 폭동의 파괴적 결말을 언급하며. 일단 그렇게 사태는 수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살라는 ‘분노’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강조하며 예언자처럼 막을 수 없음을 읊조린다. 그리고 막바지의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친다.

그 폭풍의 시간은 기존의 동네 권력들로도 경찰의 무력으로도 막아설 수 없는 세기말적 분노의 폭발로 묘사된다. 아마 이 부분에서 숨을 꼴딱 삼키지 않을 이들이 얼마나 있으랴.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음에도 그 어떤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대단한 스펙터클을 분노의 기운 가득 실어 선보이는 <레 미제라블>의 결말은 지난 몇 년간 봐왔던 영화들 중 한 손가락 안에 들 만큼의 잔상을 남긴다. 분노는 막을 수 없다.

 

"레 미제라블"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이미지

2_3. 세심하게 배치된 동네와 사람들의 군상

 

레쥬 리의 <레 미제라블>은 직선으로 끝까지 달리는 스타일의 영화다. 약간의 숨 고르기를 위한 휴식 정도 외에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질주한다. 그 와중에도 섬세한 터치로 몽페르메유 동네의 일상을 마치 관객이 스테판과 동료들의 옆에서 함께 다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적대적 시선으로 본다면 만악의 근원이자 범죄의 온상인 지역,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보면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놀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한데 어울려 공존하는 조금 색다른 동네 풍경일 뿐이다. 경찰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동네를 좀먹는 브로커나 마약 상인들을 활용하며 그들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동네는 사회 공공서비스의 사각지대 하에서도 우리 전통의 계모임처럼 상호부조 체계를 갖추거나, 살라의 무슬림 형제단처럼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범죄에 빠지게 하지 않으려는 계몽 활동도 최소한이나마 진행 중이다. 정작 동네에 부족하기 짝이 없는 건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지원과 안정적 치안을 위한 경찰력 확보다.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그저 골치 아픈 동네로 치부되며 일선 경찰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다 보니 경찰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중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강압적 태도로 일관하기 시작한다. 동네의 범죄조직들과 연루되다 보면 유착 또한 필연적이다. 그리고 적대적 주민들과 잦은 충돌은 자기 조직 보신주의로 치달으며 내부 자정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스테판의 동료들이 보이는 자기방어 논리는 어느새 이들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공권력이라는 사회 구성원 간 합의로 위임된 강제력을 객관적으로 행사하기 힘든 수준에 도달했음을 깨닫게 한다.

새끼 사자 관련 건이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후, 사건에 관련되었던 모든 이들은 각자의 장소로 일단 돌아간다. 팀장 크리스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가정으로,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그와다는 이민자 1세로 보이는 어머니에게로 향한다. 동네의 작은 권력들 또한 안도하며 일상으로 복귀한다. 다만 사고뭉치 ‘이사’만 영화 시작 때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마치 예언자처럼 살라가 언급한 분노의 화염이 분출하기 전의 고요다. 결코 지속될 수 없는 그런 순간.

 

3_1. 21세기 <레 미제라블>의 새로운 정전

레쥬 리의 <레 미제라블>은 소설 원작과는 영화 마지막에 삽입된 단 한 컷과 영화 초반 등장인물들이 언급하던 짧은 대화 외에는 겉으론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소설의 줄거리와는 무관함에도 이 새로운 유형의 <레 미제라블>은 위대한 고전의 정신을 21세기에 되살려낸다.

우선 이 영화는 놀라울 만큼 원작에서의 인물 간 대립 구도를 올곧게 구현한다. 사람은 갱생할 수 있으며 나쁜 환경이 그를 범죄자로 만든다는 원작에서 장 발장을 통한 에시는 스테판 경장의 시각으로 구현되고, 몽페르메유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 2세대임에도 동네의 규율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폭압적 권위가 필요함을 긍정하는 동료 그와다의 태도는 자베르 경감의 그것과도 같다. 사실 이민자가 자신을 그 사회에 받아들여 준 기존 사회체제를 긍정하는 것을 넘어 맹신하는 것은 의외로 흔한 일이기도 하다. 자신은 노력하고 자수성가해서 굴레를 벗어났지만, 동네의 다른 이들은 의지도 없고 그저 동네를 좀먹을 뿐이라는 개인주의적 태도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크리스와 스테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처럼 보이던 그와다가 영화 후반의 대화에서 서로 건널 수 없는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이후 불어닥칠 ‘분노’의 폭풍을 예감케 만든다.

원작에서 장 발장은 물론 지역사회의 성자로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빈민을 돕던 미리엘 주교는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다. 아마 그런 캐릭터가 존재했다면 영화 막바지의 폭발은 지연되거나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1830년대에서 근 200년이 흘렀음에도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온정은 메말랐을 뿐이다. 그 대신에 예언자 ‘살라’가 있다. 이미 선인은 사라지고 오직 억압으로 자신들을 예비 범죄자로 적대하는 권력에 직면한 자신들은 결국 스스로를 불태울 화염의 분노로 돌아올 것이라는. 그리고 그때는 모두가 모든 걸 잃어버리는, 사회의 종말을 낳을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자다.

 

3_2. 감독의 체험을 극대화한 영화의 섬세한 풍경들

감독 레쥬 리는 영화의 배경인 몽페르메유에서 나고 자랐다. 영화 속 주요 사건과 에피소드들은 거의 모두 자신이 실제 겪었거나 보고 들은 일들이라 말한다. 서커스단 새끼 사자 납치 건까지도. 어릴 적부터 비디오카메라로 동네를 촬영하던 그는 17살에 영상 집단에 참여해 다양한 현장 미디어 활동을 경험한다. 2008년에는 영화 속에서 뷔조가 드론으로 촬영한 것처럼 지역 경찰의 불법적 행태를 카메라에 담아 두 명의 경찰을 징계위에 올리는 등 활약을 펼친 바 있다.

자신이 너무나 익숙한 동네이기에 스테판과 그의 동료들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직접 동네에서 캐스팅한 비전문 연기자들 위주다. 살라 또한 그저 지역 주민이고 뷔조는 감독의 친 아들이라고 한다. 동네를 잘 알기에 가능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인상적인 악역이지만 인간적 면모도 끝까지 놓지 않는 크리스 역은 감독의 영상 집단 오랜 동료이며, 그와다 역은 역시 파리 교외의 이민자 밀집 구역 출신 배우이자 유명 모델이라고 한다. 그 외에는 정말 저잣거리에서 길거리 섭외로 골라낸 날것 그대로의 연기인 셈이다. 그 화학적 결합은 실로 놀라운 경지다.

 

"레 미제라블"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레 미제라블> 스틸 이미지

레쥬 리 감독은 영화의 제작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한 2005년 파리 교외 청소년 폭동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감독 자신의 연고가 있는 아프리카의 말리에서 테러와 빈곤의 소굴처럼 인식되는 그곳의 현실을 담은 <365일>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 감독이 최초의 극영화로 선보인 게 바로 <레 미제라블>이다. 제작비 마련 등을 위해 먼저 단편으로 20여 개 영화제에서 선보인 뒤 호평을 받아 장편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위대한 고전의 문제의식이 프랑스 대혁명 이후 2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해 버린다.

영화 메인 포스터이자 공화국 프랑스 인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기뻐하던 월드컵 우승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극적인 “수직-하강”의 이야기는 마치 지독한 농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껏 여러 차례 혁명으로 자유-평등-박애의 나라로 각인되었지만, 월드컵 우승 외에는 자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다는 냉소의 풍경이다. 참 독한 풍자이자 박제된 혁명에 대한 비소, 그리고 그 모든 걸 뒤덮는 절박한 외침이 영화에는 가득 담겨 있다.

불과 140만 유로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영화의 배경인 동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겨우 완성될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크게 성공하자 현 프랑스 대통령 엠마누엘 마크롱은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에서 시사회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은 파리 외곽의 대표적 화약고로 일컬어지는 방리외 구역에서 상영할 때 보러 오시라 초청 의사를 전했다. 그리고 답장은 없었다고 한다.

 

4. 다시 위대한 고전의 문제의식으로 회귀하다

복지국가와 톨레랑스가 완성되었다고 우리가 믿던 유럽에 대해, 몇 년마다 지도에서 돌아가듯 “00 나라가 대안이다!” 부류의 허깨비 담론이 유령처럼 떠돌다 사라지곤 하는 한국에서 <레 미제라블>이 선보이는 21세기 파리 교외의 풍경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유럽 통합 과정에서 노동과 복지는 오히려 후퇴하거나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자본 통합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와 금융 집단의 지배하에 놓여버린 유럽은 이미 공공예산 삭감과 함께 범죄와 빈곤에 대한 엄벌주의와 무관용 대응으로 기운 지 오래다. 그리고 난민과 이민자 소요는 각국의 극우화를 불러오는 중이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고서야 결국 세상 종말 전쟁 같은 출구 없는 분노가 대폭발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란 엄중한 경고를 이 영화는 도화선이 불타오르듯 끝까지 밀어붙인다. 작품 속에서 폭발하는 분노 앞에는 경찰도 동네 갱스터들도 속수무책일 뿐, 세상을 몽땅 태워버릴 듯한 화염과 연기가 점점 자욱해진다.

우리는 영화가 대체 이 난장판을 어떻게 마무리 낼지 숨죽이며 마른침 삼키고 기다리지만, 영화는 결말을 열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생사여탈은 처음의 소년 ‘이사’(아랍어로 그 이름은 예수의 동의어이다)의 손에 달려 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그다음부터는 작품이 반영한 실제 현실의 문제이자 관객의 몫이라 감독은 웅변한다. 그리고 원작의 그 인상적인 대목이 화면에 뜬다. 미래를 어떻게 열 것인가는 영화를 본 이들에게 숙제로 남겨진다.

 

여러분 이걸 잘 기억해 두시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레 미제라블" 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 <레 미제라블> 포스터 이미지

작품 정보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프랑스, 드라마, 2019년, 2021. 4. 15 개봉, 104분, 15세 관람가

감독 레쥬 리

주연 다미앵 보나르(스테판 루이즈), 알렉시 마넨티(크리스), 지브릴 종가(그와다), 이사 페리카(이사)

출연 스티브 티앙쉬(르 메이어), 잔느 발리바(라 코미세어)

수입 및 배급 영화사진진

2019 32회 유럽영화상 유러피언 디스커버리상

2019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벌칸상(기술상)

2020 45회 세자르 영화제 신인남우상, 편집상, 작품상, 관객상

2020 34회 고야상 유럽영화상

2020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IFFR 유스 심사위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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