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제목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만약 당신이 어딘가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고 어처구니없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당신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여러분은 시간에 딱 맞추어 무엇인가를 해본 적이 있는가? 이 바쁘고 정신없는 현대사회에서 시간에 딱 맞추어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가 않다.

만약 여러분이 대학 생활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정시에 무아지경에 빠진 듯 마우스를 클릭했을 것이다.

또 만약 여러분이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좋아하거나, 아주 유명한 공연 관람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표들을 구하기 위해 정시에 맞추어 필사적으로 어떠한 행위들을 해 봤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위의 두 경우는 매일의 일상적인 경우는 아닐 것이다. 많다 하더라도 3개월~1년에 한 번 정도의 긴장된 순간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경북지역에서 휠체어를 탄 중증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의 일상이 마치 전쟁과도 같은 긴장된 상황을 마주할 것이다.

내가 가고 싶고 혹은 가야만 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그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 콜택시를 예약하려고 알람과 초시계를 맞춰두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전화기 다이얼을 누르는 모습. 여러분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경북지역에 살고 있는 휠체어 이용 중증 장애인에게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경산시청에서 열린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선포식에서. 사진 이경형

요즘 들어 이동권이라는 세 글자가 너무 가슴 시리다.

임산부도 노인도 교통약자라고 정의하지만 이들은 적어도 탈것들을 못 타지는 않는다. 단지 휠체어를 타고 있을 뿐이고 택시와 버스를 타고 싶을 뿐인데 무슨 원칙과 규정이 필요하단 말인가?

병원 진료 목적이 아니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교통약자 콜택시를 탈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다. 그 지역 거주자가 아니면 시외지역 이동도 불가하다. 설령 거주자라고 하더라도 시외 이동은 병원 진료로 제한된 지역이 대부분이고, 어떤 지역은 이용횟수 제한까지 걸려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국가와 지자체가 당연히 보장해 주어야 할 많은 권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장애인에게만 유독 서럽고 아픈 권리가 바로 이동권이다.

사람들은 이동권을 장애인의 권리이고 복지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일상이지 권리나 복지가 결코 아니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밥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처럼 버스 타고 택시 타자는데 이것이 어떻게 복지가 되고 권리가 되는가?

그저 평범한 일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놓은 장애인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도 안 되고, 배탈이 나도 안 된다. 탑승시간이 1시간 이하로 남았을 때 갑자기 취소하면 경고가 생긴다. 이 경고가 세 번이면 한 달 동안 이용이 정지된다. 이것이야말로 복지라는 명목으로 가하는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이 일상화되지 않는다면 경북도가 그 어떤 좋은 장애인 정책을 펼친다 해도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거주시설과 집, 아니면 병원에서만 보내온 장애인에게 경북도는 다시금 환자의 낙인을 찍어 병원으로만 내몰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우리도 차별, 배제, 억압의 굴레를 벗고 진정 자유로이 지역사회 곳곳을 누비고 싶다.

우리도 시민임을 지역사회를 향해 절규해본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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