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개교까지 멀고 험한 길, 서로 다리가 되어준 이들

 

"학교 가는 길"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 이미지

1. <학교 가는 길>, 그 사회적 폭력의 현장

<학교 가는 길>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설립되기까지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투쟁과 애환을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아이들이 버스에 오른다. 특수학교로 통학하는 아이들이다. 발달장애인이 대부분인 아이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등교 준비에 시간이 배로 든다. 9시 등교를 위해 어머니와 아이는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서울 시내 특수학교가 22개 자치구 중 몇 곳 안 되기 때문에 대다수의 아이들은 기본 1시간, 최장 4시간 왕복 등하교를 길에서 보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부모들과 나누며 아이들의 모습을 담던 카메라는 이윽고 흐릿하게 처리된 길가의 현수막을 비춘다. <학교 가는 길>의 오프닝 장면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는 2008년 폐교된 공진초등학교가 있다. 교육부지로 묶여 있는 이곳에 특수학교를 설립해 타 구의 학교로 몇 시간씩 걸려 왕복해야 하는 아이들을 동네에서 수용하자는 게 장애인부모회의 목표다.

 

"학교 가는 길"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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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유력 정치인이 자신의 인기를 위해 학교 부지에 (용도변경이 안 되는데도) 국립 한방병원 유치를 공약하면서 극렬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국립 한방병원 유치 이유는 강서구가 동의보감을 쓴 허준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이 인기 영합 공약 덕분에 병원 신설과 일자리 증가라는 장밋빛 꿈에 젖은 인근 주민들은 안 그래도 마뜩잖은 특수학교 건립에 극렬하게 반대하기 시작한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 대책위원회 측 주민들은 자신들의 태도는 차별이나 혐오가 아니며 자신들은 님비 현상으로 매도당하며 오히려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며 원망한다. 이들은 언론에 극히 적대적이며 공개 토론회에서 물리적 폭력을 불사하거나 거친 언행을 내뱉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카메라에 잡힌 현장의 풍경은 조금 보태자면 현세에 강림한 지옥도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다. 인간이 어떻게 저리 잔인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영화의 전반부 약 40분을 보면서 내내 떠오르던 건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가, 그리고 자기 이익에 이기적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부동산 가치 하락이나 장애인 차별은 그들의 태도를 보면 송두리째 거짓과 위선으로 느껴질 뿐이다. 눈물로 읍소하는 장애인 자녀의 어머니들에게 ‘내 알 바 아니고!’라고 면전에서 외칠 수 있는 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난 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었다. 반대위원회 측 주민들은 영화 내내 흐릿하게 처리되어 제대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지만, 그들은 평소에 동네에서 만나면 평범한 동네 이웃들일 것이다.

옆집 아저씨, 동네 슈퍼 아줌마, 노인정 할아버지, 집주인 할머니 같은 친근한 존재들. 그런 복색을 한 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공할 혐오의 언어, 그 이전에 격앙된 폭력적 태도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무지를 선택하고 필요에 따라 분노할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그 폭력에 맞설 길 없었던 어머니들은 끝내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읍소한다. 지역 주민들은 ‘쇼하고 있네!’라며 그조차 매도하지만 2017년 매스컴에 대서특필된 그날의 사진 한 장은 전국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학교 가는 길"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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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반부에서 일어나는 사려있는 분석과 다면적 고찰

왜 반대하는 주민단체는 저렇게 극렬하게 저주를 퍼붓다시피 하며 자신들이 오히려 차별받는다고 절규하는 것일까? 그들의 주장에 일말의 진실이 감춰져 있지는 않을까 분석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영화는 특수학교 예정부지인 공진초등학교의 역사를 분석해 관객에게 해설하기 시작한다.

발단은 1990년대 초반이다. 노태우 정부는 부동산 2백만 호 주택 공급 정책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의 변방이던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는 영구임대 아파트가 집중적으로 건설된다. 당시 이 지역에 세워진 아파트 호수는 15,400가구에 이른다. 그중 직원아파트 4,000가구, 일반분양 3,000가구 외에 무려 8,400가구가 영구임대 구역으로 지정된다.

그 결과 가양 4•5단지는 전국에서 가장 장애인, 탈북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율이 높은 동네가 되었다. 1992년 문을 연 공진초등학교에 임대아파트 외 구역 주민들은 자녀 보내기를 거부해버린다. 그 억지 요구를 교육 당국은 민원에 못 이긴 척 허용하는 반교육적 처사를 감행한다. 이제 공진초등학교는 영구임대 세대만의 게토가 되어버렸다. 미국 대도시 슬럼가 공립학교의 풍경은 멀리 있지 않은 셈이다. 그 결과는 한때 46학급 1,200명에 이르던 재학생이 1/10으로 줄어드는 참상이었고, 결국 공진초등학교(와 바로 인접한 공진중학교)는 개교 20년도 채우지 못한 채 폐교되고 만 것이었다.

 

"학교 가는 길"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 이미지

여기에서 영화는 반대 진영이 단일하지 않으며 앞서 설명한 바대로 가양동 일대의 역사를 통해 그 차이와 균열을 풀어낸다.

공진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과 부모들의 증언이 잇달아 소개된다. 애초에 영구임대단지 주민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격리하듯 건설한 가양동 아파트 건립 계획의 문제는 이후 지역에 현재까지 앙금과 분열상을 드리운 폐해로 증명된다.

가양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은 동 주민센터의 교육 프로그램 덕분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는 제주도로 이주해 마을 아이들에게 컴퓨터 코딩을 가르친다. 그런 그의 유년 시절 경험은 통계자료 못지않게 그 학교의 존재 의의를 웅변한다. 그리고 가양초등학교 존속을 꾀하던 학부모들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가양동의 역사를 자기 체험으로 토로한다.

하지만 그런 통찰과 함께 가양초등학교에 관계된 이들은 특수학교 설립 반대 추진위원회에는 가담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 측 주민들은 자신들이 원주민이자 토박이라 자처하지만, 온전히 지역을 대표하지는 못하는 셈이다. 가양동 지역 일대의 특수성과 차별에 대한 설움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는 있지만 지금 특수학교를 반대하며 목소리 높이는 이들은 원죄가 있는 이들이다. 바로 가양초등학교에 영구임대 주민 자녀들만 가둬 학교 폐교를 자초한 이들과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란 것이다. 그들의 이기심 때문에 설움 받은 이들 또한 특수학교 설립이 탐탁잖지만,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데는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 즉 흔히 우리 지역은 단일한 정체성의 집단이라는 선전에 대한 허구성까지 영화는 나아간다.

그렇게 영화는 선악 양비론을 펼쳐 적과 아를 나누는 쉬운 방법 대신에 현재의 파국에는 역사적 맥락과 다양한 이면이 있음을 끈기 있게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증명하려 한다. 이런 태도가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을 담보하고, 우리 편을 위한 선전이 아니라 작품의 객관성을 책임진다.

그 한편에서 절대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전국구 정치인이던 누구다. 그의 이중적 행태는 정치인이란 저렇게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하는 거구나 탄식하게 만든다. 그 국회의원의 인기 영합을 위한 이중적 행태가 반대편 주민들의 욕망을 부추긴 측면은 지대하다. 사실상 문제가 악화된 ‘원흉’은 그인 셈이다.

 

"학교 가는 길" 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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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교육부지로 특수학교가 아니라도 예술학교나 대안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던 자리에 뜬금없이 용도에 맞지도 않는 병원 설립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바람에 주민들의 욕망에 기름을 부어놓고도 그는 뒷짐을 진 채 침묵을 지킨다. 특수학교를 반대한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장애인 단체 행사에 국정감사로 바쁜 와중에도 참석해 빠짐없이 인사를 건네고 넉살 좋게 사람들과 악수를 나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 코스프레로 일관하는 유력 정치인은 책임지지 않는다. 그 거대한 위선은 심판받지 않는다.

 

3. 다시 가시밭길, 하지만 보기 드문 승리의 결실

다시 영화는 지난한 특수학교 설립 추진과 반대편과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전반부 마지막을 장식한 토론회장 사건 이후 반대 측 주민들의 히스테릭한 반응은 극에 달한다. 여전히 어머니들은 눈물짓고 흐느끼다 악에 받치곤 한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냐고, 그렇게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게 대체 뭐가 있냐며 심장에서 새어 나오는 절규를 뱉는다. 하지만 그런 선명한 대비 속에서 점차 노력은 결실을 맺는다. 정치권에서 지원을 끌어내고 활발한 여론전을 펼쳐나간다.

이들이 겪은 시련은 고스란히 경험으로 전환된다. 특수학교 건립 추진 운동과 함께 서울 타지역의 여전히 관내 특수학교가 없는 자치구에 대한 지역별 관련 움직임에 강서구 장애인부모회는 힘을 보태며 연대에 나선다. 다른 자치구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구청장이나 교육 당국은 주민들이 반대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거나 떠넘기기로 일관한다. 반응이 뻔히 예상되니깐. 그런 과정에서 카메라는 단체 안의 작은 차이나 이견도 종종 노출시킨다.

감독이 집중하는 지점은, 평범한 어머니였던 이들이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전사’가 되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이끌었는지 그 원동력을 규명하는 것이다. 후반부 구석구석에 깨알같이 그 지점들을 꽉꽉 채워 넣으려 감독은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학교 가는 길"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 이미지

마침내 지난했던 노력의 결실로 구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강서구 내 두 번째 특수학교 설립이 통과된다. 모든 게 다 잘 되었으니 이제 감격에 벅찬 어머니와 아이들을 비추며 영화는 종료되는 걸까? 그 순간 카메라는 분노에 싸인 장애인부모회의 기자회견 현장을 비춘다. 뜻밖의 상황이다. 이들은 왜 규탄에 나선 걸까?

겉보기엔 모든 게 다 잘 된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시 교육감과 지역구 모 국회의원, 반대 측 주민대책위원회 대표가 함께 한 합의 현장은 석연찮은 기미를 내포한다. 그 불길함의 이유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확인된다. 반대 측을 달래기 위해 대가로 ‘공수표’를 치렀기 때문이다. 장애인부모회는 교육감에게 격렬히 항의한다. 어머니들은 이후 계속 이어져야 할 특수학교 추진 과정에 그릇된 선례를 남길까 걱정이 앞선 것이다. 자신들의 단발적 성공에 안주하기보다 이들이 겪어온 지난한 경험으로 학습된 교훈이자 지혜일 테다. 그렇게 투쟁의 끝에서 어머니들은 활동가로 성장한다. 정작 주요 활동가들은 자녀들이 이미 학교를 졸업해 자신들은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함에도 말이다.

그리고 이제 영화는 본격적인 마무리 단계로 진입한다. 점점 언어는 줄어들고 이미지가 화면을 메우기 시작한다. 새 학교, ‘서진학교’가 폐교한 터에서 새 단장을 하며 올라가는 공사현장이 유명 건축물이 창조되듯 다양한 앵글로 촬영되어 선보인다. 그리고 이윽고 개교한 학교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의 풍경이 그림처럼 스쳐 지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선으로 끝내도 충분 하련만 감독은 순간순간 화면을 시커멓게 비우며 자막으로 기억되어야 할 사실들, 여전히 남은 과제들, 그리고 깨알 같은 정보들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학교 가는 길>은 독립 다큐멘터리의 우직함과 성실함이 형상화된 작품으로 2021년 5월, 우리 앞에 등장했다.

 


작품 정보

 

학교 가는 길 A Long Way to School

2020, 다큐멘터리, 장애ㆍ가족ㆍ사회ㆍ인권

2021.5.5 개봉, 99분, 12세 관람가

감독 김정인

출연 이은자, 정난모, 조부용, 장민희, 김남연 외 발달장애인 부모들

등장 조희연, 김성태

제작 스튜디오 마로

공동제공/배급 영화사진진

2020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2020 인천 인권영화제 폐막작

2020 서울 독립영화제 특별언급

 

"학교 가는 길" 영화 포스터 이미지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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