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퀴어, 생태, 지역을 추가해 다국적 시리즈로 돌아오다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시리즈 이미지
영화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이미지

1.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님아> 시리즈로

2014년 개봉한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80여만 관객을 기록해 한국의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중 역대 흥행 1위에 오른 작품이다. 76년간 함께 했던 강계열, 조병만 노부부의 애틋한 감정과 이별 준비를 담아내 기존 독립영화의 소재나 접근 방법과는 차별성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해당 작품은 영화의 대성공 이후 한동안 독립영화의 시장성에 주목하거나 기존 독립영화에서 덜 조명되던 노인세대를 소재로 한 작업이 늘어나는 등 흥행을 넘어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 <님아>가 시리즈로 확장돼 돌아왔다.

넷플릭스가 지난 4월 13일 공개한 <님아: 여섯 나라 노부부 이야기>는 오리지널 영화를 만들었던 진모영 감독이 한국 편 감독과 시리즈 전체 프로듀서를 맡고, 지역별 안배를 거친 6개국 에피소드를 2019년 1년간 작업해 선보였다. 넷플릭스의 190개국 2억 시청자에게 동시 서비스되는 중이다. 국내 원작 콘텐츠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선보이는 건 거의 최초의 일인 만큼 이 작업이 가져올 후속 파급력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확장된 시리즈는 <님아>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다. 에피소드 주인공의 조건은 1) 50년 전후는 함께 살아왔으며 2) 지금 현재도 일상을 함께 나누는 커플일 것이다. 동서양과 신·구 대륙을 아우르는 각 에피소드에서 이 기준은 어김없이 지켜진다. 하지만 국가별 에피소드는 여기에 적지 않은 변주를 꾀한다. 그저 원작의 단순 복제가 아니라 각국의 노인 문제와 사회 현실을 특산품 향신료 같은 톡 쏘는 맛으로 첨가했다. 그 덕분에 영화적으로 주는 감동과 교육적인 가치가 잘 균형을 이룬 준수한 시리즈로 완성됐다.

 

2. 개별 에피소드 살펴보기

시리즈는 순서대로 1편이 미국, 2편은 스페인, 3편은 일본, 4편 한국, 5편 브라질, 6편 인도의 커플을 다룬다. 전반부에선 물질적 노후는 일정 부분 보장된 상황에서 겪는 애환과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는 이들의 이야기 측면이 강하다. 좀 더 구분하자면 앞선 4편이 일정 부분 사회안전망과 노인 복지제도가 정비된 1세계 이야기라면 뒷이야기들은 3세계 편에 해당한다. 노년 커플의 사랑 이야기란 뼈대를 제외하고는 환경이나 조건에 따른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국가별 에피소드마다 우리가 예상하는 이야기 전개에 배경으로 다른 살펴볼 테마가 거의 하나씩 포함되는데 이를 통해 비교 고찰의 재미가 추가된다. 그 동일성과 차이를 변별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테다.

 

"미국: 진저와 데이비드" 에피소드 이미지
영화 <미국: 진저와 데이비드> 에피소드 이미지

2_1. <미국: 진저와 데이비드>

첫 번째 출발은 미국 북동부, 캐나다 접경지대인 농업지역 버몬트주에서 24살과 19살 때부터 함께 해온 결혼 60년 차 데이비드와 진저 커플이다. 문을 여는 에피소드로 가장 무난하고 전체 시리즈의 성격을 규정하는 입문반 역할을 하는 이야기로 정해졌을 법하다.

진저와 데이비드는 큰 굴곡 없이 여섯 자녀를 키워 독립시켰고 또래 친구와 이웃들 중에선 건강도 양호한 편이다. 크게 빚을 지거나 늘그막에 골치를 썩일 문제도 그리 없어 순탄한 삶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을 때 생의 마무리 단계를 계획하고 깔끔하게 정돈하려 시도한다. 장례절차와 방식의 문제, 둘 중 누가 먼저 떠날 걸 대비해 위임장 작성, 상속과 보험 문제 등을 꼼꼼히 정리해간다. 그런 둘의 시간을 겨울에서 출발해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딱 일 년으로 정리해 담아낸다.

조상들이 물려준 가족농장은 이제 업종도 바뀌고 주변 이웃 농장들도 다 떠나고 없지만, 여전히 노부부와 자식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초원의 집 연작의 첫 번째 책, <큰 숲 작은 집>에서 읽긴 했지만, 도무지 맛을 가늠할 수 없었던 메이플 시럽을 만들고 딸기와 호박을 수확하고 크리스마스트리 나무를 기른다. 주말 체험농장 형태로 이들은 시대에 적응하는 중이다. 노부부의 보기 드문 금슬이 이야기의 중심이긴 하지만, 이들이 사는 동네의 지역 공동체 커뮤니티 풍경과 고령자 세대의 일상들이 꽤 상세히 배경으로 묘사된다. 어딜 가나 노인들을 등치는 보이스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지 노부부가 들른 지역 행사에선 사기 피해 방지 워크숍이 열리고, 이웃 농장들은 정부의 권유로 경영 합리화와 투자에 매진하다 다수가 토지 신탁 회사로 넘어가 버렸다. 부부도 젖소를 키워 우유를 납품하다 꽤 손해를 봤다고 한다.

하나둘 쇠약해지고 치매 등으로 고통받는 오랜 친구들을 보며 두 사람은 가능한 범위에서 삶을 소소하게 즐기려 노력한다. 결혼 60주년을 맞아 둘만의 여행을 가고, 마을 주민들의 깜짝 축하파티에 기뻐도 하고, 지역 축제에서 각자 몫을 맡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늙어간다는 것의 전형을 이 에피소드는 보여주려는 것 같다. 하나의 거대한 사계절 풍경화처럼 아직 무너지지 않은 로컬 커뮤니티와 가족 공동체, 긍지와 기억을 간직한 토박이 농부 커플의 60년은 어지간한 힐링 치유 장르를 뛰어넘는 청량감과 온기를 선사한다. 흐뭇하게 사람 냄새를 느끼고 싶을 때 후회 없는 선택이 될 법하다.

 

"스페인: 나티와 아우구스토" 에피소드 이미지
영화 <스페인: 나티와 아우구스토> 에피소드 이미지

2_2. <스페인: 나티와 아우구스토>

두 번째 이야기는 스페인. 자연공원이 있는 산간지대 주민 나티와 아우구스토의 이야기다. 역시 겨울에서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로 순환되는 구성이다. 역시나 60년째 해로 중인 노부부의 일상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번 편에서는 좀 더 이들이 겪는 애로사항과 불편이 지역 소멸 현상과 함께 다뤄지는 게 특징이다.

아우구스토는 운전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테스트를 받지만 통과하지 못한다. 노부부는 이제 원거리를 이동하려면 자녀나 이웃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부부의 폭스바겐과 바이크는 이제 차고에서 잠잘 운명이다. 이후 이야기 진행에서 일관되게 제기되는 문제점의 출발이다. 나티와 아우구스토 커플이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은 서서히 사라져가는 공간이다. 한참 전에는 스무 명이 살았다지만 이제 마을 주민은 4커플 8명의 노인뿐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메우는 건 야생동물이다. 노인들은 농작물을 건드리는 멧돼지 무리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전기 울타리를 설치하고 개를 데려와 맞서게 하고 불침번도 서지만 역부족이다. 이웃들이 모여서 빵을 굽지만, 장작이 모자라 설익은 빵을 나눠 먹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동네 친구 사이인 노인들은 서로 의지하며 힘닿는 한 농사를 짓고 가축을 돌본다. 우리네 시골이나 섬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풍경, 이동트럭 상점이 등장하면 주민들이 모두 모여드는 풍경도 이채롭다.

여름이 되자 커플은 처음으로 해변 투어를 떠난다. 패키지여행상품이지만 이들은 오래 공들여 일정을 준비하고 처음 누려보는 바다와 파도에 경탄한다. 유람선에서 아이들이 직업을 묻자 아우구스토는 양치기였다고 말한다. 아이의 가족들은 곧바로 사라져가는 직업이라 언급한다. 멧돼지를 쫓는 작전(!)을 벌이며 아우구스토와 동네 이웃들은 자신들의 어릴 적 악동 시절을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가을이 오고 불길한 상징적 이미지가 거듭 이어진다. 그리고 아우구스토가 사라진다. 화면을 보며 조마조마했을 이들에게 한참 뒤 병원에 있는 그의 모습이 등장한다.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그는 다행히 회복해 마을로 돌아온다. 그가 귀환하던 날 (몇 안 되는) 주민이 다 모여 환영식을 벌인다. 겨울이 오고 송년의 밤을 조촐히 치르는 가운데 불빛이 저물어간다.

이들이 사라지면 이곳은 아마 멧돼지들의 집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60년 전 양치기 청년 바가지 씌우려 술집 젊은 주인이 독주를 먹이던 첫 만남의 인연도 희미해질 테다. 노부부의 인간 드라마와 때론 오그라들 정도의 애틋함 가운데 스페인의 풍광과 노인만 남은 농촌의 실태가 배경으로 조명되는 이야기다.

 

"일본: 키누코와 하루헤이" 에피소드 이미지
영화 <일본: 키누코와 하루헤이> 에피소드 이미지

2_3. <일본: 키누코와 하루헤이>

세 번째는 일본이다. 50년 된 커플 키누코와 하루헤이의 이야기는 앞의 두 편과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도 부부의 사적인 삶을 일본의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의 역사와 직결시켜 드러낸다. 일본의 유명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에서 키키 키린은 끝내 한센 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하루헤이는 15년 만에 수용시설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아내가 될 키누코의 응원과 격려 덕분이다.

13살에 한센병 발병을 확인하고, 하루헤이의 아버지는 불치병이니 같이 물에 빠져 죽자고 했었다. 마을의 의사는 그가 15살을 못 넘기고 죽을 거라 진단했다. 병원에서 일하던 키누코는 한센병이 치유되었음에도 사회적 멸시와 혐오 때문에 탈시설을 포기했던 하루헤이에게 여신처럼 등장해 그가 세상으로 나올 용기를 줬고, 둘은 누구도 그들의 과거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 자손을 낳고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그런 치열한 삶과 장애인 탈시설 활동가로서의 면모 때문에 부부는 대학 강연이나 저서 작업에도 틈틈이 활약 중이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지난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인생역정과 함께 그들의 자녀에게도 낙인 씌워졌던 장애인 차별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의 승리 과정이 함께 한다. 561명의 장애인 자녀 집단소송 승소 상황이 전반부를 흐뭇하게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가을이 되자 이제 결혼 50주년을 맞이한 커플 중 키누코의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하루헤이가 키누코를 돌봐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외롭지는 않다. 이들 부부의 삶은 늘 활동가와 지지자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연대해온 벗들은 함께 걱정하고 위로하며 서로 도울 일을 찾는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나고 키누코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하루헤이의 84번째 생일에 둘은 서로 오그라든다며 민망해하지만 어느 젊은 연인 못지않은 달콤한 대사를 날리는 중이다. 시리즈를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기본색을 유지하면서도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낸 일본 편의 감흥은 결코 만만치 않은 발견이다.

 

2_4. <한국: 생자와 영삼>

네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남 보길도에서 47년째 더불어 사는 생자와 영삼 부부다. 영삼은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미역 같은 해조류도 기른다. 생자도 일을 돕고 농사일도 한다. 그중에도 가족의 가업은 전복 재배다. 1970년대 초에 결혼해 다섯 자녀를 양육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생을 영위해 왔지만, 생자의 건강이 최근 나빠지기 시작해 부부는 고민에 빠진다. 청력이 나빠져 보청기에 의지하니 영삼은 생자가 걱정되어 바깥일을 한사코 못하게 막는다. 평생 고된 노동의 결과로 비틀리고 왜곡된 몸의 부작용이 서서히 하나둘 드러나며 병치레가 늘어간다.

 

"한국: 생자와 영삼" 에피소드 이미지
영화 <한국: 생자와 영삼> 에피소드 이미지

자식들은 이제 두 노인이 일을 쉬길 권하지만 둘은 그럴 생각이 없다. 저렇게 근면히 일하던 이들이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면 더 안 좋을 것 같단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두 사람은 평생 노동하며 삶을 보냈다. 금슬 좋은 부부지만 이들에게도 장성한 첫째를 먼저 묻은 슬픔과 자신들이 그만두면 가업인 전복 재배를 물려줄 이가 없다는 현실의 고민도 적지 않다. 그런 숙제 중 뾰족하게 해결되는 일은 없지만 둘은 노래자랑에 나가 애정을 뽐내고 힘닿는 한 여전히 일상의 노동을 영위한다.

아마 시리즈 중 가장 대중적인 에피소드이자 처음 기획 배경이 된 감독의 대표작을 가장 충실하게 이어받은 이야기 편일 테다. 하지만 외국 배경 에피소드들이 세계 지리와 사회에 대한 부가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데 비해 한국 편은 예상이 충분히 가능한 내용이라 새롭게 뭔가를 발견하는 기쁨은 덜한 편이다.

 

2_5. <브라질: 니시냐와 주레마>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브라질의 59세 “여女” 니시냐와 65세 “여女” 주레마의 이야기다. 둘은 43년째 같이 사는 중이다. 보기 좋은 미담이지만 전통적 가족 형태에만 시리즈가 치우치지 않냐고 이의를 제기할 이들에게 본편은 신선한 충격이자 시리즈 전체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을 법하다.

둘은 20살과 14살 때 처음 만났고 몇 해가 지난 뒤 한집 살림을 시작한다.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둘이 사는 집 주변에는 작은 모계 부족처럼 둘의 자손들로 가득하다. 주레마는 니시냐와 만나기 전 네 명의 자녀가 있었고, 니시냐는 주레마와 싸우고 집을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임신한 상태였기에 해마다 아이들은 늘어왔다. 둘을 정점으로 한 미니 모계 사회는 브라질 대도시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호시냐에 자리 잡고 있다. 흔히 ‘파벨라’ 라 부르는 산비탈의 달동네다. 수도는 단수되기 일쑤고 라디오에선 파벨라를 배경으로 마약 갱단과 국가 헌병대의 총격전 소식이 쉴 틈 없이 흘러나오는 그런 곳이다.

 

"브라질: 니시냐와 주레마" 에피소드 이미지
영화 <브라질: 니시냐와 주레마> 에피소드 이미지

둘의 삶 역시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 주레마는 늙고 병들어 더 이상 노동에 종사하지 못하고, 니시냐는 가정부로 일한다. 그럼에도 둘은 어마어마한 대가족을 부족장처럼 돌보고 부양해 왔다. 주레마의 65세 생일에 모인 이웃의 가족들은 축하와 함께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는 중이다. 주레마가 병치레 때문에 들리는 호시냐의 공공 보건소는 열악한 브라질 빈민가의 공공서비스 현실을 수도 단수와 함께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둘 다 일생을 호시냐에서 나고 자랐지만 노후의 작은 꿈을 갖고 있다. 교외로 이주해 자연과 더불어 목가적 삶을 함께 보내는 소망을 품고 있다. 땅을 조금 구입한 뒤 집을 짓기 시작하며 둘은 툭툭 다투다 돌보기를 거듭한다. 아프리카계 후손인 둘은 토착신앙과 기독교가 혼합된 움반두 교라는 종파의 영매이기도 하다. 거창한 교리나 교세와는 무관하게 이들이 신봉하는 움반두 교는 가장 원초적 기복 신앙에 가까워 보인다.

1월부터 시작해 차례로 달력이 바뀌듯 달이 지나가고, 산동네에서 눈으로는 지척이지만 막상 마음먹어야 갈 수 있는 리우 해변에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둘은 그녀들의 첫 만남 후 주레마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니시냐와의 관계를 알고 받아들여 줬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둘은 서로의 관계를 결국 아무에게도 속이지 못했던 셈이다. 평생 서로 부딪히며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일생을 함께하게 되었다.

형편이 어려워 새집을 올리는 데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끝내 새집이 완성된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호시냐를 벗어나 햇볕과 물과 자연을 접하며 살게 된다. 이곳에서 그녀들은 호젓한 산책을 즐긴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니시냐와 주레마는 함께 해로할 것이다. 이성애 지향의 시리즈에서 툭 튀어나온 듯 돌출한 이야기지만, 시리즈 전체에 다양성을 더하고 브라질의 아프리카계 도시 빈민들의 삶과 문화도 덤으로 보여주는 파격과 의외성의 시간이다.

 

2_6. <인도: 사티아바마와 사트와>

드디어 마지막 편이다. 1세계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점점 3세계와 소수자, 사회적 환경에 관한 쟁점들을 끌어들이며 대미를 향해 나아간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인도의 중서부 데칸고원, 마라타 지방에서 42년째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사티아바마와 사트와 커플이다.

이들은 인도 사회를 수천 년간 지탱해온 기본 단위인, 힌두교를 믿는 농민 대가족이다. 식량으로는 기장과 수수를, 수익 작물로는 목화를 재배하며 소와 염소를 기른다. 평범한 인도 부부의 표본처럼 보이지만 둘은 그런 전형성-집안 어른들에 의한 일방적 결정-에 기초한 혼인으로 만났음에도 금슬이 퍽 좋다. 둘은 서로 피부색이 짙다느니 인도 사회 특유의 면모를 짐작케 하는 디스 전도 벌이지만 가부장제 질서 대신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쭉 견지한다. 시리즈 전체의 필수인 화목한 노부부의 일상 그대로다.

 

"인도: 사티아바마와 사트와" 에피소드 이미지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에 의해 이들의 평화로운 삶은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든 상황에 처한다. 기본적인 복지안전망이 아직도 구축되지 못한 채 가족부양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대가족의 가족농업으로 생계가 해결되지 못하는 현실은 파국으로의 롤러코스터에 다름없다. 장성한 아들들은 하나둘 어린 손녀 손자를 노부부에게 맡긴 채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초거대 스케일의 이촌향도 현상이다. 부모와 헤어진 어린아이들은 투정을 부리며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사티아바마와 사트와의 연로한 어머니들 돌봄도 벅찬 문제다. 사티아바마도 눈이 급격히 나빠지고 몸이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녀는 더 기운이 빠지기 전에 힌두 성지순례를 다녀오길 소망하지만 흉년이 든 현실은 이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순례에도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손녀 손자들과 이별 전 마을 풍물시장에서 한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노부부는 단둘이 남겨진다.

마을의 전반적 풍경도 노부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가뭄과 호우가 교차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전통적인 지혜와 경험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힘든 문제다. 인력 중심의 농업에서 장성한 자녀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없게 됨은 그저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생활방식의 붕괴에 가깝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 고난을 함께 헤쳐 온 두 사람은 “소년, 소녀를 만나다!”가 연상되는 깜짝 이벤트를 벌이며 둘만의 시간을 이어간다.

세계는 넓고 노부부의 백년해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다양한 법이다. 세태 변화, 세대 차이, 결혼에 대한 관점의 차이 같은 추상화된 논점 대신 이번 에피소드는 기후변화에 따른 농촌 사회의 붕괴와 전통적인 사회복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두 노인과 가족의 앞일을 염려한다. 그저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렇다고 가족의 해체를 전망으로 앞세우지도 않은 채로, 여전히 3세계에선 생존의 문제를 시리즈의 기본 골격과 접목해 대미를 장식하는 에피소드다.

 

3_밸런스 좋은 확장 시리즈로 돌아온 <님아>

원작의 골격에 충실하면서도 시리즈로 확장된 <님아>는, 각국 상황에 맞춰 “지방”, “장애”, “퀴어”, “생태” 등의 키워드를 적절히 추가해 썩 균형 잡힌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특히 소소한 진보적 태도가 돋보인다. 매회 제목부터 여성과 연소자가 앞에 붙는다. 별것 아닌 듯해도 대부분 관성적으로 남성과 연장자가 앞에 붙는 게 당연한 듯 인식되는 통념에 작은 파문을 던지는 셈이다. 또한, 장애인과 고령자의 접근성을 고려한 ‘배리어-프리’ 처리가 전체 기본 지원된다. 비용이 당연히 추가되기 때문에 아직 공중파 방송이나 상업영화에서도 온전히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성공에 힘입은 자가 복제의 우려를 딛고 글로벌 프로젝트로 엄청나게 판이 커진 시리즈는 원작에 적지 않은 변주를 가해 진화와 확장을 이루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가 도달하지 못했던 규모에 도달한 이번 시리즈의 평가 여부는 또 다른 기획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도전은 계속된다.

 


작품 정보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My Love: Six Stories of True Love

2021, 다큐멘터리/미니시리즈, 12세 관람가

총괄 프로듀서 진모영

감독 진모영, 카롤린 사, 딥티 카카르, 파하드 무스타파, 도다 히카루, 치코 페레이라, 일레인 맥밀리온 샐던

제작 및 배급 넷플릭스 오리지널

공개 2021.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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