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보는 색다른 시선과 각도의 5인 5색 단편들

 

"속삭이는 잔해와 소리없이 떨어지는 잎들" 스틸 이미지
영화 <속삭이는 잔해와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들> 스틸 이미지

1. 코로나 시대, 영화제가 관객과 소통하기

코로나 이후 많은 영화제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현장에서 눈앞에 보이던 감독, 배우와의 만남이 사라진 공백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행사의 안정적 개최와 확대된 접근성 보장 측면에서 환영하는 이들도 많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인 셈이다.

매년 9월에 열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영화제 행사 외에도 순회상영회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상시적으로 벌여 왔다. 하지만 작년 이후 온라인으로 중심을 이동해 4월에는 4.16 세월호 추모 기획전을, 5월엔 5.18 민주화운동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영화제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되니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바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직접 극장을 찾지 않아도, 특히 타지 관객들이라면 그림의 떡이던 기획이 눈앞에 펼쳐진다.

프로그래밍의 의도는 뚜렷하다. 특이하게 이번 기획전 상영작 다섯 편의 감독은 모두 1980년 이후 출생한 이들로, 포스트 5.18세대 입장으로 바라본 작업에 초점을 맞췄다. 80년 이후 세대의 시점에서, 다양한 관점과 각도에서 바라보는 5월 광주의 단면도를 지향하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2. 각자의 색깔이 선명한 다섯 편의 작품들

이번에 소개된 5편의 작품은 모두 다큐멘터리 범주에 포함되지만, 그 속 사정은 제각각이다. 실험성이 강한 작업과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작업이 나뉘고, 5.18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성격과 오히려 언급하지 않거나 부담감을 느끼는 사정이 교차하며, 미술이나 댄스와 접목되는 시도들도 빈번히 눈에 띈다. 창작자 중에선 해외 감독이나 재일동포 감독도 있다. 이런 예외성이 작품에 대한 흥미를 더한다.

 

2_1. <우리가 살던 오월은>

<우리가 살던 오월은>은 조선학교 학생들의 모국방문단 여정을 기록해 분단된 남북의 상황을 재일동포라는 경계인의 시선으로 담아낸 <하늘색 심포니>(2016), 재일동포들의 민족학교 “우리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탄압에 맞서는 동포들의 투쟁을 기록한 <사이사-무지개의 기적> (2019) 등의 작품을 선보여온 재일동포 3세 박영이 감독의 작업이다. 조선학교 출신 재일동포 4세 대학생 김중로와 김희영의 5.18 광주 역사기행 여정을 기록했다. 생전 처음 남한 땅을 밟은 이들을 맞이해준 건 또래의 광주지역 대학생들이다. 이후 그들은 바쁜 일정을 함께 소화하며 친분을 쌓아나간다. 서로 자신들을 소개하는 모임을 갖고 5.18 관련 사적과 기념관들을 방문하며 책과 영상으로만 접하던 역사에 대해 알아간다. 당시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면서 어렴풋이 들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실감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던 오월은" 스틸 이미지
영화 <우리가 살던 오월은> 스틸 이미지

감독은 여기에서 왜 재일동포들이 5월 광주에 대해 관심을 갖는지 역사적 맥락을 소개한다. 개별적, 일회적 사건으로서의 광주가 아니라 해방과 분단 이후 한반도를 뒤덮은 반공주의와 독재 정권은 억압적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빨갱이 사냥’을 단행했다. 여러 건의 조작된 공안 사건이 틈만 나면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터져 나오곤 했다. 그 희생양으로 가장 손쉬운 먹잇감은 재일동포였다. 특히 유신독재 전후로 체제 수호를 위한 여러 대규모 조작 사건이 벌어졌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중심으로 친척 방문하러 갔다가 공항에서 끌려가거나 3국에서 납치되어 간첩으로 둔갑하던 기막힌 사례들을 실제 당사자와 경험자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정리해 상세히 설명한다.

감독은 매끄러운 연출 밸런스를 유보하고 현재 두 4세 동포들의 여정이 가진 역사적 함의에 대해 그 기원과 배경 해설에 공들인다. 1980년 당시 재일동포들이 벌였던 5월 광주에 대한 대규모 항의와 연대운동의 발자취는 우리에겐 생소한 풍경이다. 국내에선 언론통제로 철저히 은폐되었던 당대의 진실은 오히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보이듯, 외신기자들에 의해 해외에서 더 잘 알고 있었고, 재일동포들은 대규모 시위와 대사관 항의 조직, 기록 영상 번역 등으로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전후 사정이 소상히 등장해 놀라움을 준다.

역사 속 시간 여행에 이어 카메라는 다시 광주의 대학생들에게 돌아온다. 5.18 기념일을 앞두고 촬영 당시 벌어지던 정치권의 망언과 폄하 난리에 울분을 토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자료 화면으로 삽입된 모 정당과 특정 집단의 행태가 다소 도식적으로 소개된 후 다시 청년들의 교류 여정으로 연결된다. 김중로는 마지막 일정으로 증조부의 고향 동네를 찾고 함께 해온 학생들과 두 사람은 우애를 나누며 분단과 광주에 대해 외면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그런 교훈 넘치는 마무리 중에도 국경을 초월하는 BTS 사랑으로 대동단결! 장면은 오묘한 조미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살던 오월은>은 중편 분량에 아주 많은 정보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래서 교육 자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만큼 재일동포라는 존재는 한반도의 지난 70년간 모순을 온몸으로 실체화한 것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일 테다. 다소 투박하거나 익숙한 전개가 적지 않고, 중편에 전부 담기엔 너무 큰 세계관을 선보이는 작업이긴 하다. 하지만 조금 난처하긴 한데, 그게 뭐 딱히 틀렸거나 시대착오적인 것도 아니다. 어떨 때는 훈훈하고 어떨 때는 뭉클하게 만드는 사이에 우리 시야를 확장하는 그런 작업이다. 재일동포라는 경계인의 시야각으로 본 80년 5월에 대한 초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살던 오월은 Yarn of Light

2019, 다큐멘터리, 역사·청년, 38분

감독 박영이

2020 시네광주 1980 상영작

 

2_2. <속삭이는 잔해와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들>

 

"속삭이는 잔해와 소리없이 떨어지는 잎들" 스틸 이미지
영화 <속삭이는 잔해와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들> 스틸 이미지

중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미술 작업과 영상 활동에 종사하는 보왕 감독은 1980년 5월 당시 진압군이 체포한 시민들을 감금하고 고문하는 동시에 치료도 해주던 부조리한 공간, 국군 광주병원을 찾는다. 이제는 폐건물이 된 이곳은 얼마 전부터 광주 비엔날레 특별 전시장으로 부분적으로 활용되는 중이라 한다. 감독 본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폐허 한복판을 계산된 동작과 몸짓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간다. 건물 안은 먼지와 부스러기가 가득하고 남자의 신발이 그 찌꺼기들을 밟을 때마다 기묘한 파열음이 들렸다가 사라지곤 한다. 건물 바깥에는 잡초와 들풀이 밀림처럼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데 마치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가리려는 듯, 혹은 그곳 지하 어딘가에서 벌어졌던 국가폭력에 희생된 원령을 봉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비단 80년 5월 당시에만 그 음침한 면모를 발휘한 것은 아니다. 이곳은 국가에 징집된 기간 마치 국가 소유물처럼 간주되며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박탈당했던 당시 현역 군인들의 장소다. 감독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흔적들을 용케 찾아내 이것저것 보여준다. 국가가 주도하는 위에서부터의 캠페인 문구의 상투성, 이발 봉사자에게 주지시키는 두발 규정의 통제 본능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런 사실적 풍경들은 감독이 고안한 시각효과와 설치작업으로 점차 상징화되며 초현실적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깨진 유리창을 스크린 삼아 서슬 푸른 호랑이의 부릅뜬 형상이 비친다. 곧 호랑이는 5공화국 당시 3S 정책을 연상케 하는 헐벗은 핀업 걸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다시 호랑이로 돌아오길 반복하며 서로 섞여든다. 마치 공안탄압과 우민정책을 병행하며 통제를 고도화하던 독재 정권의 억압 기제를 상기시키듯.

그런 지나간 시대의 터널을 통과하듯 남자는 아래에서 위쪽으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먼지와 티끌들이 부딪히고 비벼지는 소리는 마치 당시의 총성처럼 들리게 연출된다. 그렇게 컴컴한 실내에서 점점 라벨의 볼레로처럼 위풍당당한 배경음악이 채워지는 가운데 바깥의 빛이 더해진다. 그리고 다시 어두운 건물 내 전시 공간으로 돌아온다. 이제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엔 관람객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전시장에는 슬라이드 방식으로 험준한 산맥과 5월 당시 운행을 멈춘 교외 시골 기차역의 풍경이 교차하며 올랐다 내려오길 반복한다. 당시 광주가 전국적으로 고립되었던 사실을 은유하는 것일까?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전시를 일군의 관람객들이 고요를 유지하며 지켜본다.

개별적 육체의 몸짓과 공간 배경의 조화를 통해 구체적 해설이나 입장 표명 없이 상상력의 힘만으로 80년 5월에 접근하려는 시도다. 행위예술과 1인 극과 설치미술이 조화된, 해석의 새로운 방법론이라 하겠다.

 

속삭이는 잔해와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들

Murmuring Debris and Leaves Silently Fall

2019, 다큐멘터리, 실험, 역사·미술, 22

감독 보왕

2019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20 로테르담국제영화제

 

2_3. <징허게 이뻐네>

<징허게 이뻐네>는 80년 5월 광주에 대해 아무것도 보여주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감독은 광주 서부시장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활동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작업을 부탁받는다. 어머니의 목표는 “리마인드 웨딩 프로젝트”, 할머니가 된 의상실 단골손님들에게 손수 작업해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히고 근사한 사진을 찍어주는 기획이다. 30년 전에 대구에서 광주로 이주해 정착한 어머니는 삶터이자 일터인 의상실과 함께 해온 단골들과 그저 고객을 넘어 친구이자 이웃들의 공동체를 꾀한다.

 

"징허게 이뻐네" 스틸 이미지
영화 <징허게 이뻐네> 스틸 이미지

어머니와 단골들이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며 함께 활짝 웃고 어울리는 모습을 확인한 감독은 서울로 돌아간다. 이제 서른을 맞이하는 감독은 친구들과 송년회 겸 신년회를 준비하며 함께 김밥을 말기 시작한다. 근사한 인스타그램 사진 촬영용 식당을 예약하거나 주문 배달하면 될 것을 굳이 그렇게 한다. 정성 들여 자신들이 만든, 온기가 남은 김밥을 친구들은 나눠 먹으며 덕담과 고민을 나눈다. 서른이 된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그들은 세대적 고민을 이어나간다.

감독은 명절에 다시 광주로 돌아간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시 읽기 모임을 단골들과 함께 꾸리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실행한다. “누구의 00”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소개하고 불리며 옛 인연을 추억하고 인생을 돌아보며 시 낭독에 열중한다. 그렇게 자연 발생적으로 “살롱 문화”가 형성되는 현장을 확인한 감독의 놀라움이 전해지는 순간, 그 어떤 언급이 없음에도 이 영화를 보던 몇몇은 자연스럽게 80년 5월 광주에서 며칠 동안이나마 존재했던 “대동세상”의 흔적,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던 풍경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지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꿈보다 해몽이지만, 철저히 보여주지 않기의 방식으로 80년 광주의 의의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실행하는 힘이다. 아주 단순하고 어찌 보면 투박한 구성이지만 공동체의 형성 과정으로 광주의 그날 정신이 계승되고 있음을 상상하면 괜히 훈훈하고 흐뭇해진다.

 

징허게 이뻐네 Truly Beautiful

2020년, 다큐멘터리, 노인·여성·공동체, 28분

감독 정경희

2020 서울노인영화제

 

2_4. <손, 기억, 모자이크>

이번 기획전의 다른 작품들도 다른 5.18 관련 상영기획 소개 작품들과는 이질적 면모가 꽤 보이지만 <손, 기억, 모자이크>는 그런 면모가 극점에 이른 작업이다. 그림 작가 박은선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고 싶다. 그림 작업은 작업실이라는 자신만의 요새에서 할 수 있는 천직이다.

보기 싫은 사람 안 보고 불편한 관계 안 만들고 배고플 때 눈치 안 보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그녀는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서울에서는 전망이 탁 트인 광화문이 마음에 드는 장소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늘 마주치는 시위대는 시끄럽고 무서워서 싫어한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런데 참여해본 적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조곤조곤 흘러나오는 동안 카메라는 내내 그녀의 작업실과 방을 가득 채운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과 먹는 걸 좋아해 손수 만드는 음식 미니어처 제작 과정을 화면 가득 담는다. 전체 분량의 삼분의 일이 그렇게 지나간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바깥으로 분출을 꿈꿀 때 이야기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를 풀기 시작한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연상 능력이 강하던 그녀에게 어릴 적 처음 본 5.18 교육 영상은 자신이 두렵고 꺼리는 시위 이미지의 원형질처럼 그저 피하고픈 공포와 불안의 대상일 뿐이었다. (아니 대체 10대 초반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준 걸까?) 친구들은 그런 시청각 수업 때 으레 그렇듯 딴짓을 하고 농땡이를 부렸지만, 전학 와서 물정 모르던 박은선은 끝까지 버티며 다 시청한 뒤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한다. 트라우마가 발동하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속을 찔러대는 고통에 휩싸인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야 그런 후유증을 극복하려 시도하는 중이라고 한다, 촛불집회나 4.16 관련 행사도 무서워서 참여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활발히 결합하는 친구들을 보면 소외감이 든다고 한다.

 

"손, 기억, 모자이크" 스틸 이미지
영화 <손, 기억, 모자이크> 스틸 이미지

그녀는 트라우마 치료 겸 유년 시절의 그것과 다시 대면해 보기로 하고 광주로 향한다. 이제 후반으로 접어든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반신반의하며 기다리게 된다. 박은선은 5.18 기념관에서 어릴 적 만났던 기억 속 이미지들을 찾아내 다시 대면한다. 한참을 직면하던 그녀는 휴게실을 찾아 주저앉다시피 쓰러진다. 그리고 변화될 것을 기대했지만 안 변했다고, 하나도 안 변했다고 넋두리처럼 내뱉는다. 끝이다.

<손, 기억, 모자이크>는 누군가에겐 당황스럽고 누군가에겐 불편할 작품이다. 결국 박은선은 유년기에 겪은 5.18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고, 이후로도 소외감을 감내하며 자기만의 성채에서 안전한 일상을 보내려 할 것이다. 사회적 비극을 이미지로 체험할 때 이성적 호오를 떠나 정서적으로 번 아웃이 오는 이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누가 틀렸고 맞는지를 떠나 단지 가까이하기 싫을 따름이다. 본작은 그런 입장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리는 셈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지금처럼 안방에서 시사프로나 <택시운전사>로 80년 5월을 접할 수 없던 시절에는 외신 영상을 복사한 뉴스 다큐가 거의 유일한 영상 창구였다. (SBS에서 “모래시계”를 방영하기 전까지는 거의 그랬다) 누군가는 공분했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소리 소문 없이 자리를 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부끄럽거나 두렵거나 등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다. <손, 기억, 모자이크>는 그랬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동시에, 요즘 세대의 싫은 건 싫어요! 세태가 기묘하게 작품 속 찰흙과 물감이 섞이듯 결합되어 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과 참여보다 자신의 주관적 호오가 더 절대적 기준이 된 세태의 반영으로 봐야 할 것인가? 이 단편을 본 소감은 어찌 표현해야 할까?

 

손, 기억, 모자이크 Hand, Remember, Mosaic

2019, 다큐멘터리, 트라우마·사회, 24분.

감독 박은선

2019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ADF 단편 경쟁 심사위원 특별언급

 

2_5. <쉬스토리>

 

"쉬스토리" 스틸 이미지
영화 <쉬스토리> 스틸 이미지

<쉬스토리>는 장르 형식으로는 아직 국내에서 생소하지만 근래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댄스필름+인터뷰와 자료화면을 조합한 익숙한 다큐멘터리 형식이 결합하여 있다. 서로 분량과 비중을 만만찮게 점유하지만, 댄스 필름에 조금 더 비중이 기운다,

푸른 들판에서 무용수들이 녹음 우거진 자연을 배경으로 춤을 춘다. 가히 봄의 왈츠 풍경이다. 하지만 2~3분 후부터 화면엔 춤추는 무용수들과 함께 80년 5월 광주에서의 학살과 폭력의 이미지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거듭한다. 이제 춤사위는 어느새 비통한 조가의 형태로 변모한다. 국군 광주병원으로 무대가 옮겨진다. 체포된 시민들, 다수의 여성이 포함된 그들이 고문당하던 어두운 기억을 소환하듯 각각의 방에서 무용수들은 사이코드라마 일인극을 시연하듯 무언과 몸짓으로 그녀들의 고통을 재현하고 있다. 점점 더 뉴스와 자료 영상의 등장 빈도가 잦아진다, 죽은 자로 설정된 이들에겐 태극기가 덮이고 진혼곡의 춤이 더해진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듯 무용수들은 다시 야외에 선다. 다만 그곳은 앞서간 희생자들의 무덤 앞이다. 무용수들은 태극기를 두르고 피 묻은 것처럼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은 채 죽은 자들의 증언을 몸의 동작으로 전하려는 듯 신체 언어로 표현한다. 그날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 같은 단호하고 비감 어린 표정을 비추며 댄스가 끝나면, 실제 항쟁에 참여한 절반의 여성들을 대신해 생존한 이들의 증언과 함께 역사로 확립된 그날에 관한 규정을 폄훼하려는 자들과 아직도 단죄되지 못한 자들의 행태가 교차한다, 춤을 통해 추상적으로 전해지던 이미지가 지배하던 전반부와 다르게 후반부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강하다.

그러다 보니 두 형식이 조화롭게 섞이기보단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듯 마무리가 된 셈이다. 그 부분에서 관객에게 호오가 나뉠 법하다. 아직도 순수하게 댄스로만 그날을 담아 표현하기엔 우리의 어깨는 무겁고 머리는 복잡하다는 것을 <쉬스토리>의 기이한 밸런스가 입증하는 셈이다. 조금 더 댄스필름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시도의 초반은 본래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다양한 형식적 실험에 마음 부담 조금 덜하며 자유로이 시도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이 작품은 그런 상상력을 촉발하는 시도다.

 

쉬스토리 She’story

2019년, 댄스필름, 다큐멘터리, 여성·역사, 15분

감독 황준하

2020 대한민국 대학 영화제 특별상, 5.18 3분 영화제 최우수상

2019 가톨릭 영화제

영화 <쉬스토리> 스틸 이미지

 

3. 미래를 향해 다양성을 강조한 기획전의 의의

본 기획전은 DMZ 영화제 유튜브 채널에서 5월 14일(금)부터 28일(금) 21시까지 2주간 5편 모두 공개 중이다. 80년 5월 광주와 동일한 맥락에서 지금 세계 곳곳에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에게 연대를 전하는, 5·18기념재단이 제작한 “세계 군사주의와 권위주의 방지의 날” 제정 캠페인 영상이 영화 모두에 추가된다.

1980년 5월 광주와 1987년 민주화 투쟁에 영향을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이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아시아 대부분 국가가 현재 미얀마 상황에 침묵하는 가운데 한국이 비교적 목소리를 내는 것 또한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역사의식 덕분일 테다. 이제 다양한 방법과 각도로 5.18의 현재적 의의를 조명하고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광주를 기억하고 계승할 것인가에 대해 모색할 때다. 이런 특징 있는 기획전은 그런 고민에 유용한 촉매가 될 것이다.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c/DMZ%EA%B5%AD%EC%A0%9C%EB%8B%A4%ED%81%90%EB%A9%98%ED%84%B0%EB%A6%AC%EC%98%81%ED%99%94%EC%A0%9C/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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