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해바라기 운동과 청년 세대를 상징하다

 

"헤비메탈 정치인" 포스터 이미지

 

1. 프레디 림의 이중생활

영화가 시작된다. 귀청을 찢을 듯 강렬한 고음 사운드 속에서 중국의 전통 경극 같은 분장을 하고 한 남자가 무대에 선다. 그는 쇳소리를 방불케 하는 그로울링 보컬로 섬뜩한 가사를 옮긴다. “헤비메탈 음악 다큐멘터리였나?” 순간 헷갈리기 시작한다. 열창을 벌이던 그 남자는 자신을 열광하는 관중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한다. 헤비메탈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부류에 속하는 심포니 블랙/대스 메탈 그룹 “써닉”의 보컬리스트이자 대만의 국회의원인 입법위원이라 밝히자 관중들은 ‘그를 총통으로!(우리의 대통령에 해당)’라는 구호를 외치며 열광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인상적인 도입부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

매력적인 인물, 그것도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인물을 카메라로 담는 허락을 받는다는 것은 인물 위주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는 거의 모든 이들의 로망 같은 일이다.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르코 윌름스는 멀고 먼 대만에서 그런 존재를 찾아냈다. 그의 이름은 프레디 림. 대만의 관록과 인기를 겸비한 헤비메탈 그룹, 그중에서도 웅장하고 화려한 심포닉 사운드와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 심지어 악마주의 소재를 즐겨 쓰는 블랙/데스메탈 계열에 속하는 밴드 “써닉”의 보컬이자, 대만 입법위원으로 2016년 당선된 청년 정치인이다. 이제 40에 접어든 그는 즐기기 위해서는 음악을,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선 정치를 한다고 감독에게 말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감독은 정치인 프레디 림의 1년 활동을 조명한다. 그는 한국의 정의당과 유사한 위상의 신생 진보 정당 《시대역량》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사실 프레디 림은 뮤지션 시절부터 앰네스티 대만 지부장을 맡는 등 다양한 인권 운동과 NGO 활동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과연 그는 균형감각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그는 왜 성공적인 음악 활동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에 뛰어들게 되었나? 감독은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그의 행보를 소개한다.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영화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2. 대만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해바라기 운동의 후예

 

2_1. 대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는가?

우리는 대만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감독은 자신 또한 국외자로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대만에 대한 감상을 관광 가이드처럼 풀어낸다. 인구 2,400만에 면적 35,000㎢, 산지가 많아 인구밀도는 최고 수준. 예전엔 ‘자유중국’, 요즘엔 ‘중화민국’ 혹은 ‘대만(타이완)’이라 불리는 곳. 모두가 이 나라를 알지만 정작 UN 회원 가입이 안 된 나라.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조밀하게 구성되고, 최근 반도체 대란에서 보듯 세계 경제의 일각을 담당하는데도 마치 없는 존재처럼 인식되는 그런 나라. 질서의식이 높고 남의 눈치를 신경 쓰며 줄을 잘 서는 나라….

대만의 역사는 40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본토와는 무관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는 오히려 대항해시대에 유럽인들이 먼저 식민지로 개척 중이었고 원래 그 땅에는 동남아시아 계통의 원주민(현재는 고산족이라 불리는)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만의 인구 구성은 두 번의 격동기를 겪는다. 첫 번째는 400년 전 한족의 명나라가 만주족의 청나라에게 정복당한 뒤 명나라 부흥 운동을 벌이던 정성공이 당시에 대만을 차지하고 있던 네덜란드 총독부를 몰아내고 3대에 걸쳐 이어지는 정 씨 왕국을 세우면서부터다. 이때 정성공을 따라 명나라 유신과 강남 해안지대에서 다수의 이민이 대만에 정착한다. 이들이 현재 대만의 인구 구성에서 7할 이상을 차지하는 ‘본성인’이다. 정 씨 왕국은 청나라에 끝내 투항하고 대만은 중국 본토 왕조에 편입되지만, 근대에 들어 청일 전쟁의 패배로 대만은 일본제국에 의해 식민지가 된다. 50년간의 일본 통치하에서 특히 일본군 사생아가 대거 발생해 일본계 대만인 또한 적지 않은 숫자에 이르게 된다.

두 번째 대 격변은 1949년, 중국 본토의 패권을 둘러싼 내전에서 장개석의 국민당이 패배하고 ‘국부천대’라는 이름으로 대만으로 정권을 옮겨오면서이다. 수십만의 패잔병을 포함한 대규모 인구가 망명정권을 수립하고자 건너온다. 1945년이 되어서야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던 대만으로선 우리의 그 시절에 못지않은 대난리였던 셈이다. 장개석 정권은 기반을 굳히기 위해 무려 38년 동안 대만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그리고 중국은 본토 제패의 기세를 몰아 대만까지 석권하고자 시도했고, 한국전쟁 참전으로 여력이 없는 가운데도 10여 년 동안 대만과 본토 사이의 연안 섬들을 무대로 점령전과 포격전을 이어간다.

국민당 정권을 따라온 이들은 ‘외성인’이라 불리며 정권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불만을 가진 본성인과 원주민까지 철권통치를 벌였다. 이 시기의 분위기를 잘 묘사한 걸작 영화가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계엄령이 종식되고 국민당 정부가 민주화로 연착륙하면서 동아시아에선 한국, 일본, 몽골과 함께 제도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국가로 손꼽히는 단계에 이르렀다. 2010년대 이전까지 대만의 정치 판도는 기존 정권의 계승자인 국민당과 야당인 민진당이 정권을 주고받는 경쟁 구도였다. 하지만 2014년에 많은 것이 격동에 휩싸이게 된다.

 

2_2. 해바라기 운동의 발발과 그 유산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영화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프레디 림이 속한 정당은 2014년에 대만 사회를 뒤흔든 해바라기 운동의 기운에 힘입어 출범한 신생 진보 정당 “시대역량”이다. 거대 양당이 경쟁하는 가운데 시대역량은 113석의 입법위원 중 5석을 차지한 상태다. 시대역량은 기존 집권세력이자 중국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국민당과는 대립관계이며 대만의 현상 유지를 꾀하는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과는 연정 파트너에 가깝다. 프레디 림은 시대역량 중에서도 대만 독립파에 가까운 견해를 밝힌다. 이는 현재 대만의 청년세대들 정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만은 외교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해도 독립국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대만 독립운동은 꽤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대만 내에는 자국 명을 중화민국으로 부를 것인가 대만으로 부를 것인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있다. 중화민국을 옹호하는 이들은 외성인, 즉 중국 본토에서 최근에 건너온 국민당 친화적인 이들이다. 이들은 하나의 중국을 옹호하며 과거엔 다시 대륙을 회복할 꿈을 갖던 이들이다. 본토 수복은 어렵지만 하나의 중국을 포기할 수 없다. 반면에 대만의 독자국가화를 추구하는 이들은 본성인이 주류다. 이들에겐 장개석의 국민당 또한 외부의 침략자에 가까울 뿐이다. 중국 본토와의 오랜 대립과 계엄령에 시달려온 이들로선 대륙과의 갈등을 끊고 그저 지금의 대만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기에 대만 독립이란 구호로 UN에 재가입하고 중국과의 고리를 끊고 싶어 한다.

이런 복잡한 구도 속에서 2014년, 당시 국민당 정권은 중국 본토와 인력 및 서비스 교류를 대폭 확대하는 협정을 추진한다. 대만의 청년세대에게 이는 본토로의 경제 종속과 노동시장 무한경쟁을 의미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대만 초유의 입법원(국회) 점거 사태가 벌어진다. 이 일련의 과정을 해바라기 운동이라 일컫게 된다. 운동으로 결집했던 청년세대는 민진당 외곽에서 집결했고 시대역량이 탄생했다. 프레디 림이 시대역량에 참여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3. 정치인 프레디 림의 행보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영화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프레디 림이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주요 행보는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그가 뮤지션 시절부터 참여해왔던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결되는 영역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제 그가 현실 정치인으로 다양한 고려와 전망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미지의 영역이다. 대개 정치신인들은 첫 번째에 집착하다 현실을 모른다는 평판과 함께 잊히거나, 두 번째 길에 진입하려다 ‘때 묻은 정치인’이 되곤 하는데 프레디 림의 정치 활동은 그런 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궤적을 보여준다.

 

3_1. 사회운동가로서의 프레디 림

프레디 림의 정치적 입장은 대만의 정치계에서도 급진파에 속한다. 그는 인권과 언론 자유 옹호의 관점이나 대만 본성인 입장에서 외지에서 온 독재자인 ‘국부’ 장개석을 혐오한다. 대만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참배할 것 같은 장개석의 기념관에 감독이 입장할 때 그는 동행을 거부한다. 그리고 영화에선 장개석 동상에 달걀을 던지는 시위대가 소개된다. 프레디 림은 장개석을 떠받드는 국민당 골수 지지자들에겐 ‘나쁜 사람’으로 찍힌 상태다.

그의 장개석 혐오는 사상적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민당 정권은 본성인들이 사용하던 대만어를 학교 현장에서 금지하고 탄압했다. 대만어는 사투리로 폄하되고 무시당했다. 대신에 소수 외성인들이 구사하는 표준중국어가 공식어가 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프레디 림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국민당 정권의 언론탄압에 저항하다 분신한 정난룽을 존경한다. 정난룽은 대만 독립운동의 시초이기도 하다. 둘은 양립할 수 없는 대립 항이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철권통치를 벌이면서 계엄령하에 인권침해와 군사 국가화 정책을 이어왔고, 일당독재 아래에서 숱한 탄압이 벌어졌다. 한국군 못지않게 군 의문사나 군대 내 인권유린 또한 심각했다. (시대역량의 입법위원 중 한 명은 군 의문사 희생자의 누나일 정도다) 과격하게는 대만 본성인에게 일본 식민지 시절이나 국민당 독재 시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는 정치세력도 존재하는 대만이니. (프레디 림은 그 정도로 극단적 주장을 펼치진 않는다) 시대역량 정당 차원에서 대만 독립파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프레디 림의 대만 독립운동 긍정의 태도는 보기 드문 소신의 표출이다.

그는 인권 운동을 지원하던 시절부터 관계를 유지해 온 이들과의 연대를 추진한다. 티베트 독립운동에 대한 지지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그는 달라이 라마 대만 방문을 추진하는 데 참여하고, 대만 내 티베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를 방문해 세 차례나 달라이 라마를 접견했을 정도다. (당연히 프레디 림은 중국 본토 방문 불허 1순위일 것이다) 티베트 독립운동을 그가 지지하는 것은 인권운동가로서의 소신인 동시에, 대만과 티베트 독립운동의 연관성에 주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현실 정치인이니까.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영화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3_2. 현실 정치가로서의 프레디 림

입법원에 진출한 프레디 림은 국방위원회 소속이 된다. 그는 반전 평화주의에 가까운 정치적 지향이지만, 중국과 대만 양안 관계는 본토라는 G2 초강대국의 무한대로 팽창하는 군사력에 포위된 작은 섬의 형국이다. 대만 또한 국가 규모에 비교해 엄청난 군사력을 갖고 어떻게든 중국의 군사적 압력에 맞서는 중이다. 그는 국방위원으로서 중화민국 군(대만 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참관한다. 중국의 가공할 군사력과 압박에 대해 프레디 림의 대항 전략은 단호한 태도와 조심스러운 행동이다. 반대로 모호한 입장과 우유부단한 행동이 근래 양안 관계에서 대만을 얕보이게 만들고 중국의 도발을 촉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취한다.

프레디 림은 개인적 소신으로서 뿌리 깊은 군사주의 비판과 동시에 국방위원으로서 중국에 맞서는 군사력 강화를 이뤄내야 한다. 티베트 방문이 인권 운동 연장+외교활동의 포석이라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사절단 참가는 현실 정치 일원으로서의 활동이다. 중국에 포위된 상태에서 국가로서 대만을 승인한 나라가 17개국(대부분 중소국)에 불과한 대만은 어떻게든 미국의 지원과 승인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미국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중국 견제용으로 대만을 체스 말로 활용할 뿐이지만 대만은 그 한 수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시기에 미국은 십여 년간 중단했던 무기 판매를 재개하고, 중국과의 합의점인 ‘하나의 중국’ 입장을 철회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프레디 림으로서는 트럼프의 반인권적 행보를 좋게 볼 수가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한 후 퇴장하던 그는 트럼프를 놓고 분열된 미국 사회의 민낯을 확인하고, 트럼프 반대자들의 구호에 우호적 눈빛을 보낸다. 정치인으로서 트럼프 집권을 기회로 활용해야 하지만 트럼프의 언행과 위험한 극단적 태도에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히는 그의 고심을 감독은 기어코 포착해 담아내려 애쓴다.

 

4. 청년세대의 상징으로 무게를 고민하는 행보

미국에서 귀국한 프레디 림은 자신이 당선된 지역구에서 열리는 대만 전통 축제에 방문한다. 흔한 말로 지역구 관리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지역사회 모델을 추구하는 장이기도 하다. 영화에선 상세하게 언급되지 않지만, 청년세대의 주요 고민인 ‘일자리’와 ‘인권 증진’에 그는 꾸준히 천착하는 활동을 해 왔다. 영화 중간에 종종 삽입되는 그의 그룹 시절 뮤직비디오들만 봐도 그의 고민이 즉흥적인 게 아니라 뮤지션 때부터 오랜 기간 숙성되어온 세계관의 발로임을 알 수 있다. 청년층의 참여 확대를 위해 그의 공연과 기존 축제를 결합하는 기획에도 나선다. 그러한 기획으로 펼쳐지는 공연이 영화 도입부의 바로 그 순간이다. 시작에서 봤던 공연과 되돌아온 공연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프레디 림을 통해 <헤비메탈 정치인>은 대만의 근현대사와 현주소, 민주화 과정과 해바라기 운동의 경과, 자국 내 정치지형과 쟁점 과제들을 청년세대의 입장과 고민에 기반을 두고 방대한 내용임에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경쾌한 배경음악과 함께 영화는 1시간 30분 가까이 쭉 달리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큰 누수 없이 데이터를 전달하는 완급조절 솜씨가 무난하다. 아울러 연결 고리가 무척 많은 홍콩 민주화 운동 관련 영화들과 비교해가며 고찰한다면 현재 중국권에 관련된 풍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 일단 동아시아 청년세대들의 공통된 고민과 정치적 참여 방도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헤비메탈 정치인>은 입문용으로는 더없이 좋은 자료다.

영화 이후로 프레디 림은 2020년 재선에 성공해 지금도 뮤지션과 정치인의 이중생활을 성공적으로 꾸려나가는 중이다.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영화 <헤비메탈 정치인> 스틸 이미지

 


작품 정보

 

헤비메탈 정치인 Metal Politics Taiwan

2018, 독일·대만, 다큐멘터리, 인물·사회·역사·인권·정치·문화, 88분.

감독 마르코 윌름스

출연 프레디 림

2018 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상영작.

※ EBS D-box에서 월정액 스트리밍 서비스로 관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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