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던 공간이 효자 노릇을 합니다” 학교협동조합과 어린이 기본소득
“없었던 공간이 효자 노릇을 합니다” 학교협동조합과 어린이 기본소득
  • 강환욱
  • 승인 2021.06.0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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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동초 학교협동조합 매점 모습. ⓒ강환욱

시작

이제는 학교에 매점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배고픔만 아니라 마음도 채워주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잘 먹는 것은 더 큰 행복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는 ‘매점은 무조건 옳다.’ 평합니다.

매점은 2019년에 학교협동조합의 형태로 설립했습니다. 학교협동조합을 매점 중심으로 꾸린 것입니다.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이 된 가게로 굉장히 많은 절차를 거친 끝에 사업자등록을 해서 문을 열었는데, 그런 수고로움을 자처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행복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촌락에 위치한 학교 주변에는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건강한 먹거리를 간식으로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도교육청에서 학교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는 공모사업이 있었습니다. 결국 도교육청의 지원금으로 생협 제품을 채워 협동조합매점을 열 수 있었던 셈입니다. 설립 과정에서 학부모 네 분을 만나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데, 이분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운영은 학생들도 조합원으로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요소들이 많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학교협동조합의 형태가 적합했습니다. 그 안에서 건강한 먹거리의 가치와 민주 시민 의식, 협동의 가치, 사회적 경제, 지구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가짐과 행동 등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어른들의 과제이며, 아이들이 단순한 소비자로만 남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첫해

매점을 열고 시범 운영 기간을 몇 주 거친 뒤, 중간놀이 시간과 방과후 시간에만 매점을 열기로 했습니다. 매점의 개업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학교 주변에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었던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었는지 아이들은 참 많이 먹었습니다. 마구 사 먹어대던 아이들은 점심을 먹기 전 중간놀이 시간에는 간식을 하나만 사 먹기로 합의를 했죠. 간식으로 배를 채우니 점심밥이 예전보다 맛없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6학년 아이들 중 희망자는 매점 매니저가 되어 쉬는 시간에 문을 열고 포스기의 전원을 켭니다. 배가 고프거나 심심한 아이들은 매점을 찾고 매니저는 계산원의 역할을 합니다. 학생 매니저들은 자신의 순번인 날에 귀한 중간놀이 시간 30분을 매점에서 계산대와 함께하는데, 이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끔 무례한 손님이 있기도 합니다. 매니저의 위상을 세우고 적게나마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 적지만 매점화폐를 월급으로 주고 간혹 치킨 회식도 합니다.

 

▲판동초 학교협동조합 학생매니저. ⓒ강환욱

오후에는 학부모 이사들이 매점을 관리합니다. 학부모 이사들은 학교협동조합의 설립을 함께한 발기인이자 조합원입니다. 자기 자녀가 다니고 이용하며 함께 만든 학교 매점에 누구보다 큰 애착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호떡을 구워서 매점에 오는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방학 때는 국수를 끓여주기도 합니다. 꽤 많은 사람들의 헌신으로 매점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죠. 또한 매점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노릇도 합니다.

 

위기

매점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문득 느꼈습니다. ‘매점에 오는 아이들만 오는구나.’ 이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 것인데 문턱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이 원인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것이지만 아이들의 다모임 회의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용돈의 격차가 있었습니다. 용돈이 적거나 없어서 잘 가지 못했다는 목소리는 무척 슬프게 들렸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곳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어리기에 용돈을 주지 않는 보호자도 있을 텐데 그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권리의 격차를 발견했으니 어떤 방식으로 이를 보완할 것인지가 중요했습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존재하는 공간을 마음 편히 누리면서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권리의 격차이면서 즐거움의 격차로도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돈이었으니 단순하게 부족한 돈을 어느 정도는 채워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용돈의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용돈은 낮은 계급으로 향하는 의미로, 복종이나 순종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지속성을 담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상실될 수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일입니다. 산만하다고 혹은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돈이 깎일 수 있는 위기를 마주하는 사건 따위는 절대로 발생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안전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돈을 지급해서 권리 공백을 채워주려는 제도가 오래도록 보호받으려면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주어야 하고, 선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모두에게 주어야 하며, 한 번 주는 것보다는 정기적으로 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기본소득의 개념과 통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어린이 기본소득’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기본소득이라는 단어가 가진 선한 힘을 빌린 셈입니다.

다음 문제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주에 한 아이당 2,000원을 지급할 경우 80,000원 정도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 40명 정도였거든요. 1년에 34주를 등교하니 2,740,000원이 필요했고 이는 그렇게 부담스러운 금액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한 아이에게 한 해 동안 기본소득을 지급하는데 70,000원 정도가 필요한 것이니까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협약. ⓒ강환욱

그래서 학교 자체 예산으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제안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생협의 매점을 운영하며 알게 된 지인이 “100만 원을 좋은 곳에 쓸 데가 있나요?” 하고 물어보았죠. 마치 중요한 퍼즐 조각을 내밀 듯 말입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선한 손길은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이어졌습니다.

 

자유

어린이 기본소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입니다. 매주 아이들에게 현금성 매점화폐를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 참 간단한 제도이지만 무엇보다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도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을 받았을 때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간섭받지 않았듯이 아이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섭하는 것은 차별입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제한할 권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몸소 겪을 수 있게 묵묵히 바라봐 주어야 합니다.

이를 경계해야 하는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우정(가명)이라는 2학년 아이였는데 초기 설문에서는 어린이 기본소득을 사용하며 기록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설문에서는 친구를 고발합니다. ‘정화(가명)가 기본소득만 믿고 펑펑 써서 7,800원만 남았어요. 그래서 매점에 가는 날, 하루 쓰는 돈을 정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다분히 부정적이고 경직된 답변을 적었습니다. 두 번의 설문 사이에는 우정이가 가지고 있던 어린이 기본소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오염시키는 간섭이 있었던 것이죠.

그 간섭은 담임 선생님의 통제였는데, 첫째로 교실에서 흥청망청 쓰는 것을 경계하라는 훈계를 했고, 둘째로 우정이가 한참을 고민하며 계산대로 들고 간 동전지갑을 보고는 “비슷한 것 있는데 왜 또 사니? 가져다 놔”라는 제재를 가한 것이죠. 그러니 나만 제재를 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군다나 정화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기본소득으로만 소비생활을 하는 아이였죠. 전형적으로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어른의 섣부른 간섭이었는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동심이 조금씩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동심을 최대한 오래도록 지켜주어야 하는데 말이죠. 스마트폰과 폭력적인 간섭은 동심을 파괴하는 1순위입니다.

한편 우정이가 적었던 고발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목소리가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라’는 마음이 아니라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목소리라면 말이죠.

 

기본소득을 수령하는 아이들.
▲기본소득을 수령하는 아이들. ⓒ강환욱

그래서 어린이 기본소득과 관련한 의도적인 경제교육을 경계하였고 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것이 경제교육이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 스스로의 소비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듯했습니다. 지급된 기본소득을 바로바로 사용하기보다는 모아두었다가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고, 충동적이기보다는 신중함에 가까웠습니다. 쓰는 재미뿐만 아니라 모으는 재미도 느꼈던 것이죠.

 

반응

매점에서 어린이 기본소득을 쓰는 아이들의 반응은 크게 개인 차원과 관계 차원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남겼습니다. ‘돈을 어떻게 쓸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고, 신중한 소비를 한다’, ‘문구류가 생겨서 읍내에 나갈 필요가 없어졌어요’, ‘집에서 용돈을 받지 않는다’, ‘학용품 같은 것도 사고 장난감도 사니까 뿌듯하고 좋은 것 같아요’, ‘이거 사도 되는지 안 되는지 계속 고민됐던 기억도 있었고, 또 매점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많아서 자주 가야겠다고 했던 기억도 있다’, ‘저는 집에서 용돈을 받지 않아서 매점을 가끔 갔는데 기본소득을 시작하고 나서 매점에 자주 갈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관계 차원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남겼습니다. ‘매점이 예전보다 북적거리고 화기애애해졌음’, ‘아이들의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친구에게 먹을 것을 사줄 수 있어서 좋아요’, ‘친구랑 과자 먹을 때 기분이 좋아요’, ‘아이들이 즐겁게 매점을 가요’.

특히 화기애애해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점을 잘 가던 아이는 혼자만 이용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감정이 있었고, 잘 가지 못하던 아이는 서운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미안함과 서운함은 모두 불안함인데 그런 감정이 많이 해소되었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불안함은 유대감과 안정감으로 치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전의 불안한 감정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곧 분노가 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언젠가 표출이 되겠죠.

한 아이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친구가 200원을 빌려주어서 고마웠어요.’ 또 다른 아이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친구가 뭘 살 때 돈이 부족해서 200원을 주었다’.

동전 속에 담긴 마음을 주고받은 두 친구의 관계는 분명 예전보다 돈독해졌을 겁니다.

 

소득

사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언어로 잘 표현하진 못합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저는 어린이 기본소득의 가장 큰 소득을 ‘유대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기에 모두가 누리는 공통의 제도, 그리고 이를 통해 겪는 일상들이 아이들을 결속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받는 것이기에 창피할 일도 없고, 어른으로부터 전해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적힌 게시판에서 자신의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기에 자존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학교라는 작은 사회로부터 동등하게 챙김을 받는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이후에 타인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서로에 대한 지지는 협동이 필요한 시대의 기본적 가치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베풀 수 있다고 하니까요. 기본소득을 통해 미약하지만 예전보다 나은 평등과 자유를 경험해 본 학생들은 분명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소득은 아이들에게 소비권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보호자가 사서 주는 것만 쓰다가 이제는 자신이 소비의 주체가 됩니다. 매점에서 간식을 살지 장난감이나 문구류를 살지를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이 크다고 합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 성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

 

확장

매점은 협동조합의 전체가 아닌 한 부분입니다. 협동조합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확장성에 대해 공감을 하실 것입니다.

저희의 확장은 기후위기 극복에 학생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을 찾는 것 그리고 노작교육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분리배출, 아나바다 장터, 목공교육, 재봉틀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공수업 받는 아이들. ⓒ강환욱

특히 사회적 경제는 자립과도 깊은 연관이 있고 이를 위해서는 노작교육(勞作敎育)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작교육을 위한 공방을 만들었고, 스스로 지었습니다. 저부터 자립을 시도해야겠더군요. 덕분에 아이들도 종종 함께 작업하면서 건축의 전 과정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협동조합의 수익금도 일부 투입되었으니 매점이 공방이란 동생을 만든 셈이며, 학생과 마을의 노작공방이 탄생한 것입니다.

분명 아동 권리의 격차는 촌락의 문제만이 아닐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어린이 기본소득을 제안한 것은 이웃 마을 옥천에서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는 것을 본 덕분이었습니다.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역 화폐를 지급하여 그들의 일상과 관계를 한 단계 올려준 사례였죠. 그래서 자체 화폐나 지역 화폐 같은 방식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격차를 보완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별 자체가 다수에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며, 아이들은 잘 표현하지 않고 감내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니까요. 아이들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데 소득이 주어지는 것이 맞냐 아니냐 하는 저급한 논란이 아니라, 권리 격차를 해소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원

협동조합을 학교 안에서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니 일이 많습니다. 개인적 수익은 없으며 모두 학생복지로 환원합니다.

일이 많은 것에 비례하여 눈에 보이는 효과도 컸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방과후 교실로만 쓰이던 곳은 매점으로 바뀌었고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피드백은 환한 얼굴입니다.

 

ⓒ강환욱

글 / 강환욱 판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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