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당에게 선거란? : 2019년 제주 지방선거의 경우

 

1. 선거라는 스펙터클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다

 

선거를 다룬 국내 다큐멘터리는 그리 많지 않다. 극영화가 상대적으로 활발히 소재로 다루는 것과 비교된다. 극영화의 경우 픽션으로 재구성할 수 있고, 스릴러에 활용하기 좋은 이점으로 상업영화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큐멘터리 사례로는 촬영감독으로 잘 알려진 박홍열 감독이 오랜 친구의 진보정당 선거운동을 담은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1, 2와, 강의석 감독이 극우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변희재의 선거운동을 동행하며 만든 <애국청년 변희재> 정도를 떠올릴 수 있겠다. 선거 현장은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들의 총합이지만 그만큼 카메라의 자리를 어떻게 두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피사체와 친밀한 관계인 경우엔 애정이 홍보로 순식간에 전환될 테고, 적대적 관계의 경우 촬영 자체가 어렵다. 후자의 경우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스라엘의 다큐멘터리 거장 아부 모그라비가 <어찌하여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리엘 샤론을 사랑하게 되었는가>에서 극우 정치인 아리엘 샤론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찍은 사례나 마이클 무어가 <로저와 나> 이후 그의 전매특허로 구사하는 전개 방식을 생각하면 되겠다. 그 외에는 추격 저널리즘 탐사보도 형태의 뉴스 다큐멘터리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중간은 없는 걸까? 국내에선 보기 드문 ‘다이렉트 시네마’ 스타일의 작업을 지향하는 민환기 감독의 <청춘 선거>는 온전히 그 방향을 지향하지는 않되 상당 부분 근접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2. <청춘 선거>의 기본 설계

꾸준히 제주라는 공간을 기록하던 감독은 1차 결실로 전작 <제주노트>를 2018년에 선보인 바 있다. <제주노트>는 4.3과 강정과 제2공항을 둘러싼 난개발이라는, 제주 현대사의 3대 갈등 요소를 한데 아울러 3개의 시간대를 영화 한 편에 담아내려는 야심찬 시도였다. 거기에 4.3을 체험한 제주 원주민과 근래 이주한 청년세대와의 교류를 통해 지역의 특징을 부각하려는 세심한 설정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어 감독은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 광역비례대표 후보를 출마시킨 제주 녹색당 선거운동을 담은 이 작품을 선보인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지속해서 제주를 방문해 틈틈이 촬영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접하게 된다. <제주노트>에서 스쳐 지나던 여럿이 차기작에서도 얼굴을 비친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주인공 격으로 등장한다. <청춘 선거>의 도입부에서 영화의 주역이라 할 고은영과 윤경미의 2014년 모습이 짧게 스케치 된다. 그 당시에는 찍는 이도 찍히는 이도 <청춘 선거>에 담긴 미래를 예상치 못했을 테다. 기록은 힘이 세다.

 

2_1. 국내에선 보기 드문 다이렉트 시네마의 색깔

전작이 4.3과 강정과 제2공항 난개발이란 3개의 시간대를 오르내리는 고난이도 작업이었다면, <청춘 선거>는 선거운동 기간이라는 제한된 물리적 시간(약 한 달간)에 집중해 제작한 작품이다.(물론 사전 작업과 후반 편집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는 2019년 지방선거 준비 기간부터 선거 당일에 이르기까지 제주 녹색당 활동을 배경으로 삼는다. 해당 선거에서 제주 녹색당은 도지사 후보와 2명의 비례 광역의원 후보를 출마시켰다. 감독은 본래 선거 다큐멘터리를 준비했던 건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제주의 변화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꾸준히 본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만나고 교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의 주 관심사인, 근현대사에서 계속 이어져 온 제주라는 공간의 비극과 근래의 강정 해군기지 문제, 최근 논란의 중심으로 지역 난개발의 핵심인 제2공항 건에 이르기까지 감독이 천착해온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쟁점이 핵심인 선거인지라 내친김에 작업이 진행된 셈이다.

 

"청춘선거" 스틸 이미지

민환기 감독은 연출의 목적성을 배제하고 대상의 자연스런 모습을 마치 카메라가 없는 듯 기록하는 다이렉트 시네마 형식을 취하는 국내의 몇 안 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촬영하는 것은 카메라와 친숙해지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국내 독립영화에서 다큐멘터리는 대개 후자의 방법을 취해 왔다. 이는 과거의 독립영화가 대안 언론의 역할, 사회적 약자에 연대하는 매체의 기능을 강하게 지녔기 때문이다. 정부나 제도언론의 외면 속에 누구도 기록해주지 않는 이들의 상처와 불신을 넘어서기 위한 신뢰 때문에 카메라의 윤리성이 강조되고 중립성보다는 동지적 관계가 중시되던 문화의 유산이다.

하지만 다이렉트 시네마는 등장인물들이 카메라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그들의 평소 일상 그대로 노출이 이뤄지고, 좀 더 객관성을 추구해 결과적으로 대상의 진실성을 확보한다. 그래서 지나친 친밀도를 오히려 조심하고, 당사자가 즉자적으로 노출을 꺼리는 지점도 충돌을 감수하고 담아내려 한다. 이는 기계적 중립성 추구와도 다르고, 우애와 친교에 경도되지 않는 고도의 자세를 필수로 한다.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사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실재를 보여주므로 결과적으로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선거라는 극적인 사건을 담아내기에 감독의 이전 작업보다 <청춘 선거>는 스펙터클한 구성과 감각적 음악 활용도가 꽤 두드러진다. 감독 특유의 다이렉트 시네마 경향과 관찰적 시선은 여전히 도장으로 찍은 듯 녹아들어 있다. 선거운동 기간 민감한 내부 현안 논의나 논쟁 과정에서 찍히는 대상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지언정 카메라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 덕분에 <청춘 선거>는 선거를 밀착해 다루면서도 홍보영상과는 차별화되는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2_2. 진보정당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계승 의식

영화가 시작되면 <청춘 선거>의 주역이라 할 고은영, 윤경미 두 사람과의 첫 만남 순간이 2분여에 걸쳐 담긴다. 이 도입부는 우연했던 만남이 필연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성격을 상징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그 직후 검은 화면 세 컷에 걸쳐 짧은 문장이 이어진다.

8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다.

극단의 억압 속에서 극단의 변화를 추구한 혁명의 시기였다.

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소련 사회주의는 몰락했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위력을 잃었다. 혁명가들은 조용히 세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한 시대가 끝났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소수의 사람이 진보정당을 시작했다.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패배와 낙오, 변절과 이탈의 역사였다.

 

80년대 → 90년대 → 진보정당 역사의 순서로 시대 규정과 연속성을 풀어내는 대목이다. 기본 정보 외엔 해설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상 드문 경우지만, <청춘 선거>의 제작 배경을 이해하는데 최소한의 필수 정보라 판단했기에 쐐기를 박듯 본격적인 시작 이전에 제공되는 셈이다.

영화는 “청춘”들이 치르는 선거라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춰 홍보하고 있다. 그 “청춘”이란 흔히 상상하듯 현실의 20~30대라고만 볼 수 없다. 엄밀히는 과거 급진적인 사회변혁을 꿈꾸며 “청춘”을 바쳤던 이들과 그 후예들을 지칭하는 의미가 더 본질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아직도 여전히 소수의 지지와 다수의 외면에 직면한 조건 아래 대안 세력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현주소를 선거운동을 통해 보여주겠다는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이다.

단 세 컷, 몇 줄뿐이지만 한국의 현실 진보정당 기원과 배경을 아주 적절하게 요약한 초반의 쐐기는 감독 본인이 그 세대를 공유하며 관찰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통찰일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유명무실하던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당을 건설해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야당의 역할조차 제한적이라 봤고,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운동권’이 정당의 역할을 대신하던 때였다. 거듭된 군사 쿠데타의 경험 때문에 자연히 사회운동은 ‘폭력’에 대해서도 ‘대항폭력’에 한해 용인하는 측면이 분명 존재했었다. 1980년대를 회고할 때마다 떠올리는 광장과 거리의 ‘정치’의 풍경이다.

 

"청춘선거" 스틸 이미지

선거를 통한 진보정당 최초의 시도는 1991년 열사 정국에서 당시 사회운동의 총력을 집결한 투쟁에서 패배와 교차하듯 시도되었다. 민중당이란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규모 운동 조직 중 마지막으로 비합법 무장투쟁을 부분적으로나마 상정하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조직 사건과 와해 이후 선거를 통한 ‘신 전술’의 시작이다. 이 흐름은 1992년 대선에서 민중후보 백기완 선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모두 유의미한 성과와는 거리가 멀었고, 현실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함께 ‘몰락’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운동권 내에서 횡행한다.

이제 소수만 남은 과거 혁명을 꿈꾸던 이들은 기존 제도권 정당에 흡수되거나, 운동 판을 떠난 이들과는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한다. 다시 진보정당을 추진하는 길이다. 1996-1997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을 통해 성과와 한계를 경험한 민주노총과 사회운동 일각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들은 1997년 권영길 후보를 앞세운 독자 후보로 대선에 참여한다. ‘국민승리21’ 선본은 이후 민주노동당의 모체가 된다. 이후 짧은 희망과 기나긴 좌절과 정체의 시간이 찾아온다. 영화는 그런 과거의 기억이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려는 의도를 명시한다.

감독은 원래 선거를 소재로 장기간 영화를 기획하진 않았을 테다. 감독의 주 관심사는 제주 지역의 변천사였다. 거기서 만난 이들이 관련 주제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른다기에 호기심이 발동해 즉흥적으로 작업을 개시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보정당의 족적에서 가장 중심이라 할 정의당이나 진보당, 노동당 대신에 상대적으로 계통성이 약한 녹색당이 주역이 된 셈이다. 하필 제주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거운동을 펼치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청춘 선거>는 제주라는 공간에서 평범한 ‘아마추어’들이 시행착오가 속출하며 선거를 치러내는 과정을 통해 진보정당의 역사성과 현재적 의의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3. 진보정당의 희망과 한계를 압축하다

사실 우리는 영화 내용의 결과를 전부 알고 있다. 승패만 놓고 본다면 당선자를 내지 못해 패배한 선거다. 하지만 “반딧불이”에서 “선거”로, 다시 “청춘 선거”로 제목이 바뀌어 온 사정은 영화 속 제주 녹색당원들이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묘하게 연결되며 결과가 아닌 과정의 흐름을 조명한다. 단체가 아닌 ‘정당’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 인지도도, 현실 정치 참여 경험도, 당 내부의 통합된 전망과 목표도 어느 것 하나 축적된 게 없다. 진보정당들의 역사는 늘 이런 혼란 속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거듭하며 명멸해 왔다.

영화의 첫 번째 가제는 그런 진보정당의 역사를 상징하는 “반딧불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은 그 제목을 버리고 관찰자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듯 “선거”로 가제를 수정한다. 이번에는 너무 건조하다고 생각했던지 최종 제목인 “청춘 선거”로 변경한다. 제주라는 공간+선거라는 시간이 교차하는 격동의 조건에서 고군분투하는 집단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가운데 우호적인 시선이 미약하게나마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소한 듯 중요한 변천사는 영화 속 인물들의 태도와 인식의 변모 과정과도 묘하게 닮은 꼴이다.

 

"청춘선거" 스틸 이미지

3_1. 3번의 지지율 변화에 너울처럼 흔들리는 풍경

영화 속에서는 3번에 걸쳐 선거 관련 후보와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도지사 후보 | 정당

D-30 : 1.0% 0.8%

D-14 : 2.8% 3.0%

D-day: 3.5% 4.87%

이 세 차례의 변곡점은 본격적인 선거 대응이 처음이던 제주 녹색당 구성원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요동치게 만든다. 사실 처음의 위기는 예비후보 등록 직후부터 시작된다. 영화 초반 후보자 대담 현장에서 돌발적 사건이 터진다. 제2공항 관련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했던 지역 활동가(사건 직전 탈당)가 현직 도지사인 상대 후보를 물리적으로 습격한 뒤 자해하는 일이 터졌다. 현장에서 고은영 후보의 충격받은 표정이 여과 없이 영화에는 담겼다.

그 직후 관련 대응을 놓고 후보를 포함한 선본 관계자들은 격한 논쟁을 진행한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 경험이 있을 리 없다. 낯설고 당혹스러운 사안에 대해 어떻게든 대처를 해야 하는데 감독은 그 불편한 순간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등장인물들은 감독을 향한 불편한 시선을 내비치고 직설적으로 ‘안 담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쓰기에 힘들 텐데.’라며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 순간까지 감독은 여과 없이 노출한다. 이후 한 달간 그들이 부딪힐 낯선 세계에 대한 예고인 셈이다. 그리고 감독의 기록자로서의 입장을 분명히 선언하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상황을 추스르고 본격적인 선거운동 과정에 돌입한다. 진보정당 활동에서 늘 부딪히게 되는 낮은 인지도, 선거 때만 등장하는 정치꾼 취급, 당선될 일도 없는데 뭐 하러 나왔느냐는 무시 등 익숙한 상황들을 돌파하며 후보와 운동원들은 필사적인 노력을 펼친다. 이 과정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부각되는 특정한 이미지, 고은영 후보의 색깔을 맞춤한 녹색 운동화 클로즈-업으로 상징화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청춘” 선거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장치다.

선거운동을 열심히 진행하면서 점차 설정했던 목표에 근접하는 결과를 기대할 만하게 된다. 대부분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에 흥분한다. 하지만 그 순간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서술했듯 위기가 도래한다. 80~90년대 혁명을 꿈꾸며 치열한 사상 투쟁을 벌였던 기존 진보정당과 상이한 결을 가진 녹색당은 가치에 동의는 하지만 노선투쟁을 제대로 진행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데 이제 당선자를 배출할 기회가 온 것이다.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자 기존 진보정당의 선거 전술이던, 어차피 당선은 힘드니 자신들이 주장해온 다양한 정책과 가치를 홍보하는 데 치중할 것인가? 아니면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상징이 되는 후보를 집중적으로 부각할 것인가? 격론이 벌어진다.

 

"청춘선거" 스틸 이미지

그 일련의 상황에서 특정 후보는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반면에 다른 후보는 기존 정당과 같은 선거운동 방식이 마땅치 않다. 경쟁 후보를 누르기 위해 저격수 형태의 선거운동을 기획하자 그런 방식이 옳은지 반문이 터져 나온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소외되는 후보나 강조되지 못하는 정책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는 단지 녹색당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넓게는 진보정당 전반에 대한 논쟁점이자,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는 일각의 비판과 직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저 소박하게 열심히 선거운동에 힘쓰는 장면들만으로도 충분한 스펙터클을 선보일 법한데 감독은 여기에 기어코 보는 이들까지 현기증이 날 만큼의 치열한 긴장을 조성한다. 그런데 은근하게 초반부를 되돌아보면 감독은 이미 선본 내의 이견과 갈등, 차이와 논쟁점들을 잔뜩 준비해뒀었다. 그리고 선거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의 몰입과 관객에게 향해지는 감정의 전염이 비등점에 도달하기 전 찬물을 끼얹어 냉각시켜 버린다. 그 대신 흥분한 관객을 진정시키고 개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복원시킨다.

입장 (1) 대도시의 경쟁 구도를 빗겨나 제주로 ‘이주’한 고은영 도지사 후보

입장 (2) 운동조직과 진보정당을 거쳤다 지쳐 이탈했으나 ‘데모’가 좋아 돌아온 윤경미

입장 (3) 제주 토박이로 반드시 당선되고픈 열망이 가득한 비례후보 1번 오수경

입장 (4) 자신의 존재와 당의 많은 정책이 소외된다고 느끼는 비례후보 2번 김기홍

크게 이 네 가지 입장들이 경우가 씨줄 날줄로 엉키면서 소용돌이를 이루는 구조다.

그런 홍역을 치르며 선본은 격렬한 노선과 가치 투쟁과 각자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선거투쟁을 이어나간다. 선거 중간중간 지지율 조사 발표는 단락을 매듭짓고 국면을 전환하는 역할을 맡아 화면에 툭툭 등장하곤 한다. 마침내 선거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종결된다. 마무리에 등장하리라 기대할 법한, 선본 식구들의 격려나 덕담, 후일담은 끝까지 배제된다. 그저 최소한의 선거 결과 정보를 텍스트로 공유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3_2. 감독이 드러내고자 한 것들

 

"청춘선거" 스틸 이미지

선거운동 기간 도지사 후보 고은영과 제주 녹색당은 상당한 시선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선거 사무장을 맡은 고참 활동가 윤경미조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이다. 늘 인지도 10% 미만에 그치던 진보정당 후보가 인지도 50%의 벽을 넘는다. 모두 얼떨떨하다가 뭐든지 해낼 것 같은 자신감에 젖는다. 하지만 제도권 정당으로서 의회 활동이나 수권 경험의 부재는 극복하기 힘든 한계다. 그리고 풍찬노숙 시절에는 두드러지지 않던 내부의 노선 차이는 이제 기대감과 함께 선후 순서와 비중을 놓고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

영화 내내 고은영은 자신이 당의 지방선거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사실을 감당해야 한다. ‘관종’이긴 한데 경험 없는 ‘관종’이라 자조하면서 힘겨움을 토로하지만, 선거라는 롤러코스터에 탄 이상 약간의 중독과 함께 선거운동 기간을 돌파한다. 윤경미는 자신의 지난 진보정당 경험으로는 해석 불가능한 현실에 직면해 선거운동을 끌고 나가야 한다. 가치와 실용 사이에서 그녀 또한 모든 상황을 제어하기엔 버겁다. 제주 토박이로 고은영이나 선본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주민들과는 상이한 지역 인지도를 가진 비례후보 1번 오수경은 당선을 목표로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를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갈등의 상징이 되어간다.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중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강조점을 찍는 부분들이다.

감독은 이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촬영을 분리하는 결단을 내린다. 고은영의 선거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분량들, ‘청춘’ 선거라 이름 붙일만한 부분에 대해선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기운이 담기도록 기조를 잡는다. 하지만 감독 자신은 진보정당의 다양한 고민과 고군분투를 기록하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촬영 팀은 역할을 나눈다. 초중반 부분에서 당과 후보를 알리는 데 모두 서툴지만 달려들던 과정에선 긍정적 음악과 함께 빛나는 청춘의 페이지를 넘기는 느낌이다. 하지만 정작 지지율 상승으로 더 두근거려야 할 것 같은 부분부터는 논쟁과 과제 위주로 (불안한 효과음을 깔고) 끌고 나가는 식이다. 퍽 기이한 접근 방법이다.

감독은 어느 정도는 기존의 순수한 관찰자적 태도를 희생해 가며 진보정당의 특별했던 한 달여를 기대와 희망의 분위기를 6:4로 펼쳐 보인다. 진보정당의 역사에 대한 동 세대의 회고와 함께 선거에 참여한 이들의 열정과 희망에 살짝 전염된 것처럼. 하지만 그에 휩쓸리지 않는 고집스러운 관찰자의 시선 또한 4할을 점유하며 적당한 냉각기능을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의 실마리를 보았지만, 한계는 극복되지 못한 엄밀한 현실을 확인시키듯.

 

"청춘선거" 스틸 이미지

4. <청춘 선거>가 끝난 후, 과제와 활용법

 

2020년 가을, 영화가 완성되어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영화에 담겼던 이들의 신변에는 작지 않은 변화들이 잇달았다. 어떤 변화는 영화 속 내용에 이입된 이들에게 씁쓸한 유감이나 깊은 슬픔으로 다가갈 법하다. 제주 녹색당의 얼굴로 영화 내내 활약하던 고은영은 당을 탈당하고 후원회원으로 남았다고, 영화 개봉 기자회견 등에서 밝힌 바 있다. 트랜스젠더로서 정체성이 알려진 뒤 극심한 사이버불링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던(이는 영화 내에선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김기홍은 올해 2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감독은 굳이 그런 후일담을 영화에 추가하진 않았다. 다이렉트 시네마의 본령대로 영화에 담긴 부분들이 그 순간의 현실이라 판단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청춘 선거>는 정치 혐오를 넘어 대안 정치를 고민하는 청춘들, 진보정당의 풀뿌리 활동가들, 국내에서 흔히 접하기 힘든 다이렉트 시네마와 선거 다큐멘터리의 색다른 매력을 맛보고 싶은 관객들, 제주의 과거-현재-미래 변화 양상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꼭 한번 보길 권하는 영화다.

특히 진보정당 당원이 아니라도 정치와 선거에 관심 있는 이라면 영화 속 제주 녹색당 사람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길 추천한다. 정치가 모든 걸 바꿀 수 없는 한계는 분명할지언정, 냉소만으로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음을 믿는 이에게 <청춘 선거>는 2022년 선거를 앞두고 다시금 사고의 지평을 넓혀볼 좋은 전환점이다.

 


작품 정보

 

청춘 선거 Vote Young Ones

2020, 한국, 다큐멘터리

2021.06.17. 개봉, 99분, 12세 관람가

감독 민환기

출연 고은영, 윤경미, 오수경

(故 김기홍 그리고 2018년 지자체 선거 제주 녹색당 선본 사람들)

제작 오프램프

배급 아이 엠(eye m)

2020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상영작

 

"청춘선거" 포스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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