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포항시 최초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추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관련기사: 15일 포항시 최초 ‘장애인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 추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열려) 지난해 11월, 경주에서 ‘탈시설 권리 실현을 위한 경북지역 토론회’가 개최된 데 이어, 경북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열린 ‘탈시설’ 토론회이다. (관련기사: 경주서 열린 탈시설 토론회 “경북도, 사람보다 법인시설 살리는 데 주력” 비판)

이번 토론회는, 1부 기조 발제와 2부 패널 토론 및 전체 토론의 순서를 따라,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추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추진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

 

“탈시설은 권리, 이제는 단순한 탈시설 찬반론을 넘어서야 할 때”

이날 토론회의 인사말을 맡은 배예경 경상북도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센터장과 윤해수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발달장애인 부모와 최중증 뇌병변 장애 당사자로서 이번 토론회 개최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배예경 센터장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민을 사회로부터 격리해온 그동안의 장애 정책을 반성하며, 진정한 사회통합을 고민하는” 것이 이번 토론회의 근본 취지임을 밝혔다. 또한 “경산, 경주, 영덕, 영천, 포항 등 여러 경상북도 지역에서 끊임없이 시설 내 인권침해 사건이 일어나는 반면, 경상북도 및 지자체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않은 채 거주인보다 시설 운영자들을 더욱 보호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 왔다”고 지적하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얻은 배움과 성찰들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탈시설 정책의 귀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해수 소장은 “‘탈시설’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함께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권”이며, “이러한 기본권을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장애인에 대한 근본적인 차별”로 귀결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 소장은 “탈시설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단지 시설에서 범죄가 발생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많은 시설 종사자분들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시설 중심의 장애인 복지의 현실 속에선 사실상 장애인도 함께 살기 좋은 안전한 지역사회를 꾸리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며, 특별히 그러한 자립생활 정책의 부재는 “섬세한 활동지원이 보장되어야 하는 발달장애인들”과 “홀로 무거운 돌봄의 부담을 짊어진 부모”들의 심각한 피해와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포항시가 단순한 (탈시설) 찬반론을 넘어서서, 장애인 수용 중심의 시설정책을 바꾸고,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새로운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역설하였다.

 

(왼쪽부터) 배예경 경상북도장애인가족지원센터장, 윤해수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

 

‘장애인은 다른 삶을 살 수 없다’는 무력감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1부 기조 발제를 맡은 김정하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이사장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탈시설의 권리: 프리웰 법인 주도의 탈시설 추진”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이사장은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해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고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당사자들이 자기 옹호가 취약한 분들이기 때문에 국가의 공개적이고 노골적인 품질관리가 이뤄져야 하지만 그것이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라며, 우리나라 거주시설에는 (1) 집단성, 격리성, 권력불평등성, 비선택성, (2) 비인간적 생활환경 (3) 시설화로 인한 개인의 퇴행과 발달 지연과 같은 문제점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집단 서비스는 특히 개인별 맞춤 지원이 필요한 발달장애인게는 가장 안 어울리는 서비스이며,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에서 최근 자진 폐쇄한 ‘향유의 집’ 또한 2008년 당시 120명 가량의 장애인이 집단 거주했다. 그는 “한 방에 3, 4명의 장애인이 집단으로 생활해야 하는 집단적 생활환경은 현재도 높은 비율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집단적 서비스가 아닌 “개인별 지원체계”를 제공하자는 것이 곧 탈시설 정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약 650여 명의 시설 입소 대기자들이 있다고 하지만 (시설이 아닌) 지원주택과 같은 주거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적어도 24만 명 이상이다.”라며 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은 적어도 서른 살엔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24만 명 각각이 어디서 살 건지, 누구와 살 건지,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분석해서 (이들에게) 연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김 이사장은 많은 시설의 종사자들이 “장애인 복지의 변화된 발전 방향을 모르고 있다”라며 ‘장애 당사자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가치부여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시설 증후군을 과연 당사자가 갖고 있는가 아니면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부모님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그러한 무기력감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라고 성찰을 촉구했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이사장
기조발제 중인 김정하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이사장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

 

“탈시설은 장애인이 받는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 아냐”

“오히려 서비스 총량을 늘리고, 부모가 아닌 국가가 장애인 돌봄 책임지는 것”

이날 1부 김 이사장의 발표가 끝난 직후엔 특별히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열띤 발언과 질의가 쏟아졌다. 자신을 최중증 발달·지체(중복)장애인의 부모라 밝힌 한 참가자는 “내 아들 나이가 스물 다섯이다. 그런데 지금도 말도 안 되고 의사소통도 안 된다. 장애 정도가 심해서 시설도 거부할 정도다. 그런 장애인을 어떻게 탈시설 하겠다는 거냐”라며, “탈시설 할 사람들은 하면 되지만 기존 시설을 다 폐쇄시키라는 것은 우리보고 죽으라는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참가자 역시 “내 아들은 나이가 마흔 일곱 살이지만 지능은 여섯 살 지능이다. 그런데 어떻게 탈시설해서 생활을 한단 말이냐”라며 “탈시설은 (필요한 사람에겐) 참 좋은 취지이지만, 왜 기존 시설을 없애느냐”라고 반문했다.

장애인 부모들의 이러한 반응엔 이유가 없지 않다. 사실상 포항시에 아직까지 장애인들이 탈시설하여 안전한 자립생활을 영위할 만한 제도적 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모들의 반응은 ‘탈시설 정책으로 인해 시설이 폐쇄되면 장애 당사자가 기왕에 받아오던 서비스에 대한 중단 내지 강탈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즉 ‘탈시설=(대책 없는) 시설폐쇄=부모의 돌봄 부담 증가’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더욱이 ‘비로소 안전한 시설에 자식을 맡겼다’고 생각하는 부모일수록 이러한 두려움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날 참석한 한 장애인 부모는 “지금 자식 맡긴 시설도 얼마든지 잘해준다. 수녀님들이 하는 시설이니까 믿는다. 내가 한 번 씩 ‘수녀님들이 때리드나?’ 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우리도 사십 칠 년 동안 그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걸 경험했다.”라고 호소했다.

부모들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김 이사장은 “‘탈시설’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다른 것 같다. (내가 소개하는 탈시설 정책의 목표와) 부모님이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다. 즉 최중증장애인인 자녀들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총량을 최대한 늘리자는 것이다. 탈시설은 (흔히 오해되듯이) 장애인 당사자가 받는 서비스의 총량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늘리자 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그는 “탈시설법이 제정될 경우 시설에 있는 분들에 대한 주거, 서비스 비용 등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감당하도록 하는 힘이 (우리에게) 생긴다”라며, 탈시설 정책은 “부모가 아닌 국가가 장애 당사자를 위한 질 좋은 서비스와 돌봄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통한 당사자의 ‘삶의 변화’. 부모가 아닌 정부를 비롯한 여러 책임 기관에서 당사자에게 주거서비스를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자료제공=사회복지법인 프리웰
탈시설·자립생활을 위한 정책적 과제. 중앙 및 지방정부가 최중증장애인 24시간 지원을 비롯한 “탈시설정착을 위한 탄탄한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료제공=사회복지법인 프리웰

 

‘패널 토론’ 통해 탈시설 정책의 가치와 필요성 관한 다각도 점검 이뤄져

위태로운 시설 내 장애인의 존엄, “종사자의 경건한 마음으로는 충분히 실현할 수 없다”

이어진 2부 패널 토론 순서에서도 앞서 장애인 부모들의 우려를 해소할 만한 실질적 대안과 더불어 탈시설 권리를 실현할 정책 방안의 가치와 필요성에 관한 모색과 고민이 이어졌다.

김동화 경북행복재단 정책대응팀 선임연구원은 이미 ‘탈시설은 정책적 기조로 자리잡았다’고 밝히며, 실질적이고 안전한 장애인 자립생활을 가능케 하기 위해선 “경상북도 차원의 중장기 계획 수립, 탈시설·자립생활을 전담하는 담당 공무원들의 증원, 거주시설 내에서의 장애인 자립교육의 필수화, 탈시설·자립생활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별도의 센터 설치”와 같은 일련의 “공적인 지원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탈시설이 기존의 거주시설 ‘바깥’의 삶을 지원하고 가능케 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주거 지원 서비스 전문인력 양성 등과 같은 다양한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편 김 연구원은 노숙인 생활시설에 입소된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정책적 대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2020년 경북행복재단에서 제출한 연구(경상북도 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 현황 및 체계구축방안)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경북 내 노숙인 생활시설 총 4개소에 입소한 327명의 입소자 중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 절반에 다다른다.

특히 지적장애인 입소자는 115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어 정신질환 27명, 지체장애 24명, 언어청각장애 10명, 시각장애 2명 순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경북에서 시행하는 최소한의 장애인 자립지원책인 ‘자립정착지원금’의 지원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노숙인 시설이므로 장애인 입소자들이 장애 유형에 맞는 적절한 서비스도 받지 못할뿐더러, 시설에서 퇴소하여 자신만의 주거환경에 거주하고 지역사회 내 적절한 자립 지원을 통해 자립역량을 강화할 가능성이 이들에게 주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노숙인 생활시설에 입소된 장애인 현황. 이들은 ‘자립정착지원금’의 지원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어 더욱 심각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자료제공=경북행복재단

정의호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예우리 원장은 오늘날 탈시설이 요청되는 핵심 이유는 “아무리 시설을 잘 운영해도 장애인의 사생활 보호 등 기본 권리와 존엄한 삶을 위한 조건들이 시설에선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인의 자립은 “장애인이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장애인을 99퍼센트 지원할 수 있느냐’의 문제”임을 환기하며, 오늘날 거주시설은 “종사자들이 매일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야만 장애인의 최소한의 존엄이 실현”되는 구조에 놓여 있으며, 이것은 곧 시설의 “불안한 운영 상태를 드러낸다. (하지만 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종사자 개인의 도덕에만 기댈 순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 원장은 탈시설 정책에 있어 (1) 지적 약자를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할 안전망과 (2) 친족으로부터 금전 피해를 입는 장애인의 권리 구제책 (3) 장애인의 건강권, (4) 시설 종사자들의 고용승계 대첵, (5) 부모들에 대한 설득 및 불안요소 해결 등의 과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탈시설을 불안해하는 부모들의 반대 입장에 관하여, “그동안의 노력이 부정당한다는 불안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따라서 “제도권의 끊임없는 노력과 설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정의호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예우리 원장, 김동화 경북행복재단 정책대응팀 선임연구원 ©경상북도장애인가족지원센터

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은 “우리 사회에 등장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시설’이라는 제도가 마치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이토록 강력하게 인식”되는 현상이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이 무너진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시작으로 토론을 이어나갔다. 김 센터장은 시설 중심의 장애인 복지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권력의 비대칭을 낳고 이는 시설의 부패와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시설 복지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 뒤, “그러한 한계를 바로잡는 것이 탈시설 정책의 핵심”이지, “(특정 서비스가 필요한 당사자를) 길거리에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라며 탈시설 정책에 대한 일각의 오해를 바로 잡고자 했다.

한편 김 센터장은 현재 탈시설 원칙에 있어 시설 종사자들의 ‘고용보장 원칙’이 충분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그는 프리웰 주도로 자진 폐쇄한 ‘향유의 집’의 사례에서 시설 종사자 고용승계율이 38%에 불과한 점을 들어, “종사자의 노동권이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와 같은 무게로 고민되지 않았”다며, “어떤 경우라도 노동권은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경북의 경우 1,547명의 장애인 거주시설 종사자가 근무 중이다(전국 기준 1만 7천 5백여 명). 즉 종사자들의 고용 승계 문제는 향후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실현 단계에서 “예외 없이 대두될 과제”로, “그 원칙과 후속방안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탈시설 정책이 이처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원칙을 제시하며 “사회적 연대의 틀”로 기능할 것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는 탈시설 정책이 ‘부모에 대한 연좌제’ 또는 ‘시설 종사자들의 집단 실직’을 불러올 거라는 일각의 비관 어린 확신을 잠재울 수 있다. 즉 탈시설 정책을 ‘장애인 당사자의 탈시설 권리’를 중심으로 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으로 이해할 경우, 장애인 부모와 거주시설 종사자 모두가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의 주요한 주체로 자리매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원하는 탈시설이란”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진행한 양희경 포항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센터장은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안심하고 동참할 수 있는 탈시설”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24시간 돌봄 체계 확립”을 의미하며, 그러한 돌봄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부모는 최종적으로 시설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며 포항시의 돌봄 현실을 꼬집었다. 특히 양 센터장은 “경상북도 내 발달장애인 40퍼센트가 포항시에 거주한다. 최중증장애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라며, 포항시에 “부모님들도 마음 놓고 찬성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탈시설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 센터장, 양희경 포항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센터장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 경상북도장애인가족지원센터

 

“사람 취급 안 했다...” 탈시설 당사자 증언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 통한 “장애인 자립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

이날 탈시설 당사자의 증언 또한 이어졌다. “포항지역 탈시설 당사자 증언”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김근태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자신이 2011년 사고로 인해 중도 장애인이 된 이후 시설과 요양병원을 거쳐 탈시설하기까지의 과정과, 약 3년간 머물렀던 포항의 모 장애인 거주시설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발표를 진행했다.

김 활동가는 먼저 “나는 운이 좋았다. 사고 이후 약 2년 정도 가족의 지원 아래 재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어느 정도 치료하다 집에 방치되거나 시설에 갔을 것”이라며, 당사자와 가족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존엄한 삶의 여부가 손쉽게 결정될 수 있는 장애인의 위태로운 현실을 고발했다.

그러나 2년간의 재활에도 불구하고 김 활동가는 2013년경, 포항시 청하에 위치한 모 장애인 거주시설에 ‘자진’ 입소하였다. 그는 “새어머니가 가톨릭 교인이셔서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시설 입소 권유를 받았다. 공기도 좋고 사람들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입소 안 하면 부모님께 온전한 짐이 될 거란 것을. 그래서 ‘당연히 시설에 가겠다’고 답했다.”라며 자신의 ‘자진’ 입소의 배경을 고백했다. 김 활동가의 이러한 증언은 자립을 포기하고 ‘좋은 시설’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도록 장애인을 내모는 강압적 사회구조가 어떻게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와 결정에 따른 시설 입소’라는 외피를 입어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가에 관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편 재활 이후 약 3년을 머문 모 거주시설의 삶에 관해 김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사고 나기 전까지)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으니 공장도 다니고 몇 년간 카페 알바도 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저를 그렇게 사람 취급 안 하시는 분들은 (모 거주시설에서) 처음 만났어요. 프라이버시 또한 굉장히 없습니다.”

“제가 대변관리가 안 돼요. 어쩌다가 자동으로 (대변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근데 그런 일이 자주 생기니까, 저더러 밥을 적게 먹으래요. 적게 먹었어요. 근데 또 똥을 싸니까 내 잘못이래요.”

“행사가 너무 많아요. 행사 때마다 부모님들한테 연락합니다. 참석해달라고. 그러면 부모님들은 빈손으로 옵니까? 당연히 돈 담은 봉투나 뭐라도 바리바리 싸들고 옵니다. 또 시설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집에 (일방적으로) 보냅니다. (가족들과) 관계를 잘 맺으라고. 맺을 수 있겠습니까? 강제적으로 보냅니다. (시설 운영자들이) 갑입니다, 갑. 하라면 해야 합니다.”

“영화를 좋아하여 자주 보다 보면 선정적인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시설에서) 모니터 화면을 다른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내 컴퓨터 위치를 배정하여 프라이버시가 없었다. 이거에 대한 불만을 (시설 내) ‘대모와 대부’에게 직접 얘기하면 불화가 생길까 봐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인권위 위원들이 시설을 방문했을 때 (컴퓨터 위치 조정에 대해) ‘대모와 대부’에게 요구해도 괜찮은지 물어봤다. 타당한 요구라면 나 대신 말씀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시설 운영자들은)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호출해 ‘근태가 야동을 본다. 근태가 시설에 있기 싫어한다.’라고 말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시설에서 퇴소하게 되었다.”

그렇게 엉겁결에 모 거주시설로부터 탈시설한 김 활동가 앞에 순탄한 자립생활이 기다리고 있진 않았다. 전신마비가 있는 그는 24시간 활동지원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자립생활을 지탱할 수 있었지만, 포항시로부터 자립생활에 필요한 그 어떤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활동지원이란 서비스가 포항에 있는지 몰랐어요. 지역은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제가 아는 장애인들은 다 그렇게 수도권 올라가서 삽니다. 서울, 경기도권에 살고 있는 장애인분들에게 (제가 직접) 물어보고 찾아다니며 몰랐던 걸 알게 된 겁니다. 그치만 (자립할) 돈이 없었습니다. 집을 구하려 해도 보증금이 필요하고, 직장이라도 주면 일이라도 하고 싶은데 (저같은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처럼 장애인 자립생활을 알리는) 활동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자립이 필요한 분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없어서, (제가 자립하는 과정에서도) 포항시에 도움을 받은 게 없습니다. LH 아파트도 결국 어머니 명의로 대출받아서 집을 구했고, 모든 부분에서 부모님 도움이 없었으면 자립을 못했을 겁니다. 결국, 현실에서 장애인이 자립을 하는 것 역시 부모의 짐이 되고 있습니다.”

김 활동가는 자신 외에도 “자립이 필요한 많은 장애인들이 있다”며, 이들이 자립하는 과정에서 당사자 개인이나 그 부모의 ‘짐’이 늘어나지 않도록 ‘자립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자립하고 싶다고 연락 오는 분들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상담을 해준다 해도 (장애인 분들이) 돈이 없고 집을 못 구해서 현재도 고민 중입니다.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직장과 경제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탈시설 당사자 증언 중인 김근태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경상북도장애인가족지원센터

 

탈시설 당사자 증언 무력화하려는 시설장 발언 이어져

“시설 서비스 평가의 주체는 시설 운영자가 아닌 시민”

한편 김 활동가의 당사자 증언 이후, 자신을 김 활동가가 거주하던 “모 시설의 대표이자 가톨릭 사제의 한 사람”이라 밝힌 한 참가자의 발언이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해당 참가자는 김 활동가가 모 거주시설에서 겪은 일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김 활동가에게 “시설에서 담배를 태운 적 있습니까?”, “김 활동가로 인해 피해를 받았다는 분들도 계시고”, “주관적 사실들을 잘 확인해보겠다”와 같은 공격적 발언을 함으로써 당사자 증언을 무력화하려는 듯한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는 일부 시설 관계자들이 당사자 증언을 단지 ‘시설에 대한 공격 또는 훼방 놓기’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설’에 대한 책임 있는 시민적·공적 평가와 성찰의 단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주관적 사실들을 (자신이) 잘 확인해보겠다”라는 발언에서 나타나듯, 당사자의 입장은 ‘주관화’하고 자신은 그 “주관적 사실들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판관으로 자처하는 모습은 일부 시설 관계자들이 여전히 자신을 시민적 감시를 받아야 할 평가의 ‘대상’이 아닌 평가의 ‘주체’로만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날 김 활동가는 해당 참가자의 발언을 두고 “그 말(자신이 주관적 사실들을 잘 확인해보겠다라는 시설장의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일축했으며, 또 다른 참석자는 토론회 직후 “시설의 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종교인이라면 보다 책임 있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더군다나 증언에 나선 당사자에게 행한 첫 번째 응답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이제 다른 시민들이라도 책임과 겸손의 태도로 당사자들에게 응답해야 한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포항시 조례안, ‘탈시설’ 회피하고 임의규정 대부분, “자립생활 실현화할 가능성 낮아”

마지막 토론을 맡은 박충일 포항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포항지역 탈시설 및 자립생활 조례 제정의 필요성”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장애인의 삶을 책임지고 보호할 책임과 부담이 온전히 그 부모나 가족, 최종적으로는 시설에 떠맡겨진 현실은 근본적으로 “헌법 제10조가 충실히 지켜지지 않은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시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노동해서 국가와 지자체에 세금을 내고 권력을 위임한 것은, 국가와 지자체로 하여금 이 헌법 제10조를 책임있게 똑바로 실현하라고 한 것”이며, 최근 발의된 탈시설지원법 또한 “장애인을 그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고, “장애인도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불가침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언 중인 박충일 포항시민연대 집행위원장.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

이어 박 집행위원장은 정부와 포항시가 “(장애인의) 주거권, 노동권, 이동권, 교육권을 충분히 보장하면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라며, 포항시가 탈시설 자립생활 조례 제정을 통해 장애인 자립생활을 실현할 최소한의 토대를 세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포항시 중증장애인자립생활위원회(이하 ‘자생위’)의 위원이기도 박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현재 포항시가 작성한 ‘포항시 장애인 자립생활 조례(안)’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는 “포항시가 제출한 조례안은 대부분 임의규정이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해도 된다’가 대부분으로 강행규정을 회피했다.”라며 “조례가 제정되더라도 여전히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전면적으로 현실화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포항시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기본적 권리’ 즉 ‘포항시가 의무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항시는 토론회 이틀 후인 지난 17일 자생위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므로 ‘탈시설’을 조례안에 명시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임의규정’이 대부분인 기존의 조례안을 고수했다. 420포항공투단이 올해 초부터 포항시에 “포항시 장애인 탈시설·탈재가 및 자립생활 회복 지원 조례안”을 직접 작성·제출하여, 탈시설 및 탈재가(脫在家, 성인이 된 장애인이 ‘재가’ 환경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정책을 수립하고, 의무규정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포항시의 책임성을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해왔으나, 결국 포항시가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박 집행위원장의 지적처럼, 사실상 포항시가 지자체의 책임성을 무력화한 조례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에서 포항시에 제출한 “포항시 장애인 탈시설·탈재가 및 자립생활 회복 지원 조례(안)” 일부. 자료제공=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

 

‘시민들의 불안’… 대책 세우고 ‘사회적 합의’ 형성할 책임 “포항시의 몫”

시의원도 “의회 내 숙의 과정 있도록 역할을 다 하겠다” 약속

이날 전체토론 순서에서는 ‘탈시설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장애인 부모들의 열띤 발언이 다수 이어졌다. 다만 이날 토론회가 곧 그러한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기 위한 취지로 개최된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부모들의 이러한 목소리가 이후 장애인의 ‘탈시설’(권리)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공감대의 폭을 넓히는 데 소극적인 포항시의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리란 전망 또한 가능하다. 장애 당사자와 장애인 부모 모두의 삶을 행복하고 존엄하게 할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책임이 무엇보다 포항시에 있기 때문이다. 포항시가 시민의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 회복이라는 과제를 회피하기보다, 장애인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특히 토론회가 열린 날 포항시청 앞 광장에선 ‘포항시장애인복지시설부모연합회’가 주최한 ‘탈시설 입법 및 조례 제정 반대 집회’가 열렸으며, 집회에 참석한 한 당사자는 “노모가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기 힘들어져 시설에 입소하게 됐고, 가정에서 가지지 못한 여유를 갖고 글을 쓰며 평안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의 이러한 발언은 오히려 탈시설 정책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중앙 및 지방정부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책임짐으로써 ‘부모의 돌봄 부담을 완화’하고, 장애인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자립환경에서 ‘평안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탈시설 정책의 근본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탈시설 권리 및 정책’에 관한 포항시의 적극적인 설명과 공적 설득이 부재한 가운데, 탈시설 정책에 부합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역으로 탈시설 정책 반대의 논거로 활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탈시설’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를 바로잡아 시민들의 우려를 경감하고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야 할 포항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장애 당사자와 부모를 비롯한 ‘시민들의 불안’이 표출된다는 것은 이를 해소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포항시의 책임에 대한 요구가 표출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탈시설 정책에 그러한 대안적 요소와 가능성이 있다면, 이를 시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최소한의 몫을 포항시가 이제라도 감당하면 될 것이다.

포항시 최초로 열린 이번 탈시설 정책 토론회는 탈시설 정책의 당위와 현실에 관한 다양한 견해 속에서 ‘사회적 합의’ 형성의 첫걸음을 떼려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의지가 표출됐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 참석자는 “비슷한 견해를 갖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토론회에 참석했던 경험들을 언급하며, “반면 오늘(토론회) 같은 경우는 다양한 입장을 가진 분들이 참여했다”라며, “포항시에서 이런 토론회가 열렸다는 게 정말 의의가 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라는 소감을 나누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폐회 인사를 전한 김상민 포항시의원은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의회 내에서도 충분한 숙의 과정이 있도록 역할을 다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시민사회가 쏘아 올린 ‘탈시설’이라는 기본적 권리와 존엄한 삶을 위한 호소에 과연 시청과 시의회가 책임 있게 반응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마지막까지 남겨진 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한편 이날 토론회는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3시간에 걸쳐 포항예술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 진행되었다. 행사를 마치고, 참석한 패널들과 청중은 물론, 스태프들까지 해산한 뒤로도 다시 약 3시간이 지나 어두컴컴한 밤 8시가 되었을 무렵, 마지막까지 토론회 장소를 지키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앞서 탈시설 당사자 증언을 맡았던 김근태 활동가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포항시에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동행콜’)이 부족한 탓에, 예약을 하고도 무려 3시간 가까이 대기해야 했던 것이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현실이다.

수년째 420포항공투단을 비롯한 장애인 당사자들은 동행콜 증차 및 저상버스 전면 도입 등을 주장해왔다. 원활한 자립생활의 기초에 해당하는 이동권과 관련한 고질적인 차별적 현실을 시정하도록 포항시에 요구해왔다. “비장애인들이 별 어려움 없이 택시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듯, 장애인들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라는 주장에마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만큼, 포항시의 수준이 낮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 없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왜 수년째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가? 이날 토론회를 통해 ‘탈시설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해답을 얻어간 이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정작 수많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가로막아 온 것은 ‘합의의 부재’이기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묵인하는 ‘합의의 충만’에 가까울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동의’하지만, 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예산과 인력이 없다는 사실에도 ‘동의’하는 ‘합의’가 우리 사회에 짙게 깔려 있듯이 말이다. 그런 ‘합의의 충만’ 속에선 소수자들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 없는’ 영역에서조차도 여전히 많은 차별과 곤경 속에 허덕이게 된다. 마지막까지 홀로 남겨지게 된다.

이번 탈시설 토론회는,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는 자리는 아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방치와 무관심 속에서 ‘마지막까지 남겨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입장에 기꺼이 서보려 하는 시민들이 남아 있는 한, 격리되어 일상에서 마주할 일 없던 이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휘해볼 수 있는 우리의 책무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시민들이 남아 있는 한, 이번 토론회는, 작지만 귀한, ‘출발선’으로서의 의미를 잃지 않을 것이다.

 

토론회 행사가 마치고도 3시간 가까이 귀가하지 못한 김근태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김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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