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48시간이 남았다. 경고 3번을 받고 한 달간 이용 정지 통보를 전해 들은 지 어느덧 28일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48시간이 지나면 나는 이동권을 되찾는다.

나는 이 씁쓸한 ‘감동’을 나누고자 펜을 들었다.

이 씁쓸한 감동의 발단은 일차적으로는 부름콜 이용자인 나에게 있다.

이용자인 내가 부름콜을 예약한 것을 깜박하고 탑승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부름콜을 취소한 것에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실수는 충분히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해 보아야 할 지점이 만약 내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장애 당사자가 아니라 그냥 경산시에 거주하는 비장애인 택시 승객이었다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일상 속에 예약한 콜택시의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경고라는 조치를 주었을까?

그리고 그 경고의 누적으로 인하여 중증 장애인인 나에게 꼭 필요한 이동권 이용이 한 달이나 제한되는 경우가 발생하였을까?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분명 이용자인 본인인 부주의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증 장애인 이용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직 행정편의주의적인 부름콜의 운영규정 또한 반드시 바꾸어야 하며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번 상황을 가정해 보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만약에 비장애인 시민이 일반 콜택시를 예약해놓고 예약해놓은 걸 잊어먹어서 콜택시를 못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았을 때, 그 콜택시를 운전하는 노동자의 입장은 굉장히 화가 날 수도 있고 허탈함에 그 이용자분께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용자가 그 회사의 콜택시 이용에 특별한 제한을 받지는 않는다. 그런데 경산시에 살고 있는 장애인에게 이것이 징벌화되어야 하고, 그 징벌이 쌓이면 인간이라면 누구에나 주어지는 권리까지 박탈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우리 지역사회에서 이동권이 절실히 필요한 장애인들이 일상처럼 겪고 있는 차별 중 하나다.

사실 이번에 발생한 마지막 경고 사례야 이용자 본인의 실수라고 하더라도 애초에 경고 시스템 자체가 하루가 지나거나 단 며칠이 지나면 소멸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날짜와 시간에 상관없이 경고 3번이 누적될 때까지 계속 그 경고가 유지되는 강제적 시스템이라서, 부름콜을 이용하는 그 어떤 이용자라도 이런 시스템적 환경에 걸릴 수밖에 없다.

본인 또한 나머지 2번의 경고는 모두 작년에 발생한 것이며, 그 사유 또한 콜택시 탑승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갑자기 발생한 몸살과 배변의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간에 맞지 않게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고, 경고 2번을 받게 되었다.

그 경고가 1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이런 운영 시스템 때문에 사람이 어쩌다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조차도 장애인에게는 기본권의 박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 본인은 이동권이 박탈된 한 달간 출퇴근은 물론 주말의 나들이, 꼭 가고 싶었던 강연회도 갈 수가 없었다.

왜 내가 혹은 우리가 시민으로 살고 있는 이 경산시는 나의 권리를 ‘세 번의 경고’, 그리고 개인의 욕구가 아닌 ‘특정 집단의 복지’로만 여기는가?

그리고 경산시가 무책임하게 민간단체에게 승인해 준 이러한 반인권적 규정은 장애인의 이동권 침해뿐만 아니라 요즘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오줌권’에 대한 침해기도 하다. 오줌권이란 화장실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권리를 말하는데 앞서 밝힌 나의 두 가지 경고 사례가 나의 오줌권과 관련이 있다.

세상에 그 누가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하는데, 편하게 택시를 타고 바깥 외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것에 대한 양해를 구했을 뿐인데 지역 내 장애인 콜택시가 그 권리에 경고로 답한 것이다. 나는 왜 배탈이 나도 콜택시를 타야만 하는가? 이 말도 안 되는 규정을 승인해 준 경산시에 묻고 싶다.

또한, 부름콜은 오줌권뿐만 아니고 장애인의 건강권까지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본인의 지인 중에는 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진료가 밀리게 되어 나와 비슷하게 예약취소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급하게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부름콜은 여기에도 경고를 주었다.

지역 내의 장애인 콜택시 부름콜의 논리대로라면 부름콜을 부르는 장애인들은 갑자기 아플 수도 생명이 달려 있는 암 치료조차도 시간에 맞추라는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이 말도 안 되는 규정을 지켜볼 수 없다. 그래서 본인은 너무 억울한 나머지 시청에 관련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담당 공무원의 답변은 본인이 한 잘못만을 질책할 뿐이었다. 그리고 많은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수단인 만큼 나 자신이 주의해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비장애인들의 택시 이용을 예로 들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참 황당하였다.

그 답변은  비장애인의 택시 이용은 개인적인 욕구에 따른 것이고, 장애인 콜택시는 복지 혜택이니 같이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장애인 콜택시는 장애인들에게 복지가 아닌, 일상에서 필요한 권리이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혜택인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도 엄연히 개인의 욕구가 있다. 지자체와 국가는 그것을 보장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더 이상 우리의 이동권을 ‘복지 혜택’으로 제한하거나 집단화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권리라고 정의하지만 차별이라고 읽는 부름콜을 타고 지역사회 곳곳을 누비게 될 것이다.



ⓒ이종광<br>
ⓒ이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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