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집은 햇볕과 물과 바람과 흙과 나무와 쇠로 빚는 연금술이다. 바람길을 따라 창을 내고, 물길을 침범하지 않도록 비켜서고 햇볕이 지나는 길을 따라 앞마당과 뒤란을 내야 한다.

그런 집은 아침이슬에 젖은 지붕과 담벼락을 낮 동안 태양과 바람이 말려주면 곰팡이와 벌레들이 슬지 않는다. 창으로 볕과 바람이 들어와 집 안을 노닐다 가고 나면 하루가 지난다. 저녁엔 산과 내에서 일어난 시원한 바람이 뜨거움을 식혀준다. 물길은 누르고 밟지 않아야 강한 물기운에 가위눌리는 일이 없다. 단단하게 쇠와 나무로 땅에 뿌리를 박고 벽과 지붕은 비와 칼바람과 짐승들이 들이치지 않도록 막아준다. 실로 집은 자연과 인간의 삶을 연결해 주는 유기체이며 안전장치다.

집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를 피해 이불 보따리를 싸서 이집 저집 전전하다 뜻밖의 상황과 위험들로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거실과 홀에서는 OSB와 그 위에 바른 오일로 냄새가 나 깊은숨을 쉴 수가 없고, 벽과 천장 다락 모두를 OSB로 시공한 방에는 포름알데히드 측정기를 켜두자마자 삐삐 삐삐 경보음이 울린다.

마당 텐트에서 열흘, 이웃집에서 하루, 장마가 오고 관하에 집을 얻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천막을 쳤다. 태양의 열기로 포름알데히드가 많이 품어져 나오는 낮엔 마당과 밭에서 머물렀다. 집에서 지내며 몸이 상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과 밖에서 겪는 위험과 리듬이 깨어지는 데서 오는 몸과 마음의 상함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생명은 단축될 수 있겠지만… 해서 여름은 집에서 나기로 하고 천막에 모기장을 둘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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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가 그렇듯 고난 중에도 즐거움들이 있다. 7월의 온막리 집은 해가 서산으로 다 지기도 전에 보름달이 동산에서 떠오르고 달그림자가 소나무 아래로 길게 서면 북두칠성이 지붕 위로 뜬다. 밤낮으로 노루와 풀벌레와 새들이 미친 사랑을 노래하고, 비가 내리면 빗소리를 듣느라 벌레들도 노루도 고요해진다. 불을 끄고 마당에 서면 저만치 떨어진 마을의 등불이 우리 마당을 은은히 밝히고 건넛집에서 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손님처럼 찾아든다. 제법 밤이 이슥하면 위풍당당한 검은 고양이가 제집처럼 마당 한가운데 누워 별을 보다 ‘아르릉’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접선의 신호를 보낸다. 먹다 남은 닭다리나 생선대가리를 찾는 게다.

집에 머무르자 지지와 위로차 손님들이 찾아오고 마당엔 웃음소리와 이야기들이 쌓인다. 누가 와서 고난을 이기는 비법을 알려줬다. “집안이 위험하니 밭에서 일을 해라. 그리고 마당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고 매일을 축제처럼 지내라.” 했다. 우리는 그래 보기로 했고 격려와 안부를 물어오는 분들에게 집으로 오시라고 초대를 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사람 사는 집이 되어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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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했다. 그 말이 실감 나도록 이웃과 친구들의 존재가 귀하게 왔다. 10여 년 전 푸른평화에서 만난 자연요리 연구가이신 홍샘이 제일 가까운 곳에 살고, 간디문화센터에서 만났던 안샘과 남샘이 우리집 위쪽으로 10분 거리에 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든든한 응원군을 얻은 것 같았다. 정 많고 농사와 음식과 시골살이를 배울 선생님들을 찾은 셈이다.

우리밭에 20주 넘게 심은 고추는 아직도 모종 크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토마토와 오이도 모종값도 못 산 정도다. 남샘 덕분에 잎이 무성해서 선녀벌레들이 꼬일 대로 꼬인 대추밭이 훤해졌다. 나뭇가지를 베자 수백 마리 참새떼들이 몰려와 벌레 잔치를 벌였다. 요리 솜씨가 일품인 홍샘이 우리 집 사정을 애타하시며 직접 기른 닭으로 만든 백숙으로 복달임을 해주셨고, 직접 만든 빵과 블루베리 잼을 얻었다. 돌아올 때 밭에서 바질 잎을 따주셔서 잣과 마늘, 올리브오일을 넣고 갈아서 처음으로 바질페스토를 만들었는데 제법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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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서 친구가 해독에 좋다고 연근과 마 가루와 함께, 더위에 몸 상하지 말아야 한다며 고기와 과일을 챙겨 먹으라며 암 수술로 탄 보험금을 떼어 보내왔다. 사이코드라마티스트인 순섭샘이 블루베리를, 무빙서클을 하는 재은샘이 사포닌 머금은 버섯을, 70이 넘으신 차심 님이 연잎밥을 보내오셨다. 사이코드라마 덕분에 아들과 손주가 평화롭고 다정해져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감사하다. 지난 인연을 잊지 않으시고. 많은 분들이 집을 알아봐 주시고 집을 기꺼이 내주시고, 함께 분개하며 건강 해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가셨다. 대우샘은 불을 피우고 축제의 삶을 살라며, 씨앗을 가져다주시고, 수박 순을 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부모님과 언니들, 전화가 잦아진 아들까지 고난을 지혜와 용기로 안내해 주는 존재들이 있다. 집이 잘 되었으면 벌써 온막리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춤을 추고 노래를 했을 텐데……. 아니 집이 별문제가 없었으면 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못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6월 21일 업자를 사기로 고소를 했다. 6월 말 우리는 경찰 조사를 한 번 받았다. 상대도 조사를 받았다고 고소한지 한 달이 지나서야 경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가 벌레들의 습격과 물의 습격-지하수 모터 고장-과 인터넷이 끊기는 일들을 겪으며 한 달을 넘게 보내는 사이 업자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는 하던 집 공사는 버려두고 또 어디 가서 공익활동을 하는 협동조합에 공간 기부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가 각자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가야 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집을 잃고 헤매 다니며 집은 생명이라는 걸 알게 된다. 집은 우리 몸의 공간확장이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다.

 

- 7월 29일.

 

글 / 이은주(65년 성주 생, 동화작가, 여성주의 사이코드라마티스트, 이은주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경산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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