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새잎꼬리풀 ⓒ이현정

열대야, 저번 주부터이다. 숲으로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보에도 없었던 소나기를 맞거나 흐리다고 했는데 빛은 강렬하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체감온도 35도에서 시작했다. 어제는 체감온도 37도. 여전히 폭염의 나날들이다. 내려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여름 숲속은 높은 온도에 걸맞게 높은 습도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찜질방 증기처럼 한 층 더 여름의 더위에 가세한 것이니. 막다른 골목을 만난 듯 숲이 제 기능하기에도 너무 뜨거운 여름이다. 데워진 숲의 열기들은 오히려 숲의 꽃들을 깨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니 어쩌면 잠들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폭염에 잠을 설치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여름 숲은 어둡고 칙칙하고 끈적끈적한 것이 오히려 매력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층층이 최대한 덜 겹치게 그러면서 빛을 나누어 갖는 나뭇잎들의 전략 아래 놓인 여름 숲속의 꽃들, 그중 작은 꽃들은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말이다. 눈앞에 선한 그 작은 꽃들. 작년에 봐둔 그곳의 가새잎꼬리풀(큰구와꼬리풀)은 여전하겠지 아직은.

 

가새잎꼬리풀 ⓒ이현정

서둘러 움직였지만 반짝거리는 태양의 빛이 야속하기만 하다. 여름의 달궈진 도로와 시멘트 길 위의 회색의 열기들은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는 검붉은 열기와도 같음이다. 좀 더 나에게 객기를 불어 넣는다면 내 가슴은 불구덩이가 된 것일 테지. 숲으로 가지 못해 속이 타들어 가는 것 말이다. 나를 타는 여름 숲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라고 할까. 숲으로 들어서기까지는 그야말로 지나친 호기가 필요한 것이었거든. 내 발로 몸을 이끌고는 이글거리는 그 딱딱하고 기름을 뒤집어쓴 검은 길을 지나 또다시 암울해 보이는 잿빛이 쭉 깔린 그 석회 길을 지나야 짙은 푸르름이 버티고 있는 곳으로 비집어 들어설 터이니 말이다.

이미 풀 조차 더위 타는 냄새로 진동하는 숲길이지만 더위를 한 풀 꺾어 주고 있었다. 길옆의 오랜 세월 불타는 더위를 수십 년 견디어 내었을 나무들 말이다. 나무들이 떡하니 서 있었다. 그들의 그림자는 첩첩하게 쌓여있는 나뭇잎들을 지나고 지나며 내리긋는 빛살들을 막아내고 막아냈던 전사의 방패와 같은, 아니 여름빛과의 싸움에서 이겨 그 전리품을 오늘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뽐내며 내어준다. 차갑게 식혀서 말이다. 바로 숲속 나무들의 그늘이 내가 믿는 구석이었던 것이다. 그리 믿었으니 여름을 닮은 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터질 것처럼 요동치지만 작은 꽃들이 숨어 피듯 피어있는 그 숲을 찾는 것이지. 행여나 심장이 쏟아지는 빛에 탈세라, 철통방어의 숲속 그늘이 내 호위무사다. 또한, 턱 위로 차오르는 숨 가쁨이 몰아칠라치면 내 무사를 찾는다.

 

좀싸리 ⓒ이현정
금불초 ⓒ이현정

그러하면서 숲을 어지간히도 올랐을까. 작은 꽃들은 내 작은 동공에서조차 한가득 상을 차지하고 있다. 좀싸리, 여름빛을 즐기듯 가는 꽃줄기를 가지런히도 올려놓았고 딱 이글거리는 해를 닮았다. 금불초를 바라보는 건 내 눈 속으로 해를 가둘 기세다. 그러니 어지간히도 흐른다. 땀방울이.

계속되는 숲행으로 제법 능선에 올랐다. 내 몸의 질기게 타고 흐르는 액체들은 마치 꿀물처럼 단물이 되어 모기와 앵앵거리는 조그마한 파리들을 불러 모으지만, 그 억척스러운 빛이 내리는 숲길 양옆은 장대냉이와 개곽향들이 피고 지고 한 참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듯 긴 장대처럼 서 있고 빛바랜 꽃잎들이 힘없이 늘어져 있다. 정상을 향해 힘이 빠진 나와 같이 말이다.

 

장대냉이 ⓒ이현정
개곽향 ⓒ이현정
개곽향 ⓒ이현정

여전하게도 등 뒤로 솟구치는 이 열대야와의 한판 승부를 겨루듯, 산 정상에 핀 작은 꽃들은 산 아래를 호령하듯 피어있었음이다. 바로 고대하던 가새잎꼬리풀들이 말이다. 그 작고 작은 꽃들이 모여 긴 꼬리가 되어 바람을 가르며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음이다.



가새잎꼬리풀 ⓒ이현정

 

글 /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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