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그대로 되돌려 주고 싶어요.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있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p82

친구들은 제가 역사랑 국어를 학교에서 제일 잘했다는 걸 기억하니까 저한테 그래요. “너는 나보다 한국어 잘하는데 왜 군대 안 가냐?” p159

 

이주아동과 이주인권활동가, 이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변호사의 인터뷰를 기록한 《있지만 없는 아이들》(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은유 지음)이 2021년 6월 출간되었다.

이 책은 보이는 이들과 없는 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든 마땅히 대접받아야 할 인간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삶의 옹호를 멈추지 않고 발굴하는 작가 특유의 힘이 함축되어 있다.

 

 

“당신이 다른 나라에서 합법적인 체류 기간이 끝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면?”

“종교적 이유로 하루아침에 난민이 된다면?”

“그 나라에서 태어난, 모국어를 모르는 당신의 자녀가 18살 이후 강제 추방된다면?”

 

먼저 인터뷰이의 사연을 물음으로 바꾸었다. 이 물음 뒤를 사유해 보면 무조건 추방하라는 말은 못 할 것이다.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나 그걸 둘러싼 담론이 고정관념 형성에 큰 역할을 해요.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애초에 법을 어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존재 자체가 불법이니까 또 다른 불법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죠. p96

 

우리는 누구든 만나보지 않고 이미지로 판단하기 쉽다. 부정적 인식은 강물처럼 흐른다.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언어의 선택은 젠더, 국가, 인종, 문화에 씌워진 프레임을 해체하는 작업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 책에는 여기저기 내포된 ‘시작’이란 단어를 볼 수 있다.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경계를 허물고 있는 ‘선주민’이 될 수 있다.

 

솔직히 엄마 아빠가 저를 키워준 게 아니고 제가 엄마 아빠를 키워준 거나 마찬가지예요. p50

다른 사람들과 동동하게 살 수 있는 것. 내가 나임을 인정받는 것.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최소한의 것들이에요. p58

 

마리나는 언어·청각 장애가 있는 몽골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기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한국을 떠나야 한다. 마리나는 몽골어를 할 줄 모른다. 마리나는 지난 4월 법무부 구제대책에 의해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수시 합격했다.

장애 부모를 둔 미등록 이주 아동은 저소득층으로 연결된다.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아플 때 치료받고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권리로부터 더 멀어짐을 의미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부모가 됐든 보호자가 됐든 사회가 됐든 국가가 됐든, 지원을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의무잖아요. 아이들은 보호받을 특권이 있어요. p213

 

영화 ‘가버나움’에서 주인공 자인은 레바논 빈민가에서 거리를 떠돌며 구걸한다. 그의 나이 12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출생신고조차 없다. 쓰레기를 뒤지고 구걸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부모는 어린 여동생을 성인 남자에게 팔아넘긴다. 자인은 말한다. ‘사는 게 개똥 같아요.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영화 가버나움 스틸컷

때로 삶이 개인의 의지와 마음을 배반한다지만, 국가와 주변을 이루는 사람들은 부모의 극한 상황(정치, 종교, 경제 등)이 아동에게 연결되는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우리는 레바논에 살고 있지 않다.

 

달리아가 좋아하는 백석 시집

 

저는 백석 시인을 좋아해요.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랑 되게 친했는데 그 선생님이 백석 시인을 좋아하셨어요. 한국말로 시 써요. p171

 

달리아는 우즈베키스탄 태생이다. 3살, 2003년도에 가족들과 한국으로 왔다. 부모의 체류 기간이 끝나고 정치적 이유로 난민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고등학교는 졸업했지만, 대학 진학은 할 수 없다.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좋아하고 한국말로 시 쓰기를 좋아하는 달리아는 국내에서 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에서 제외되었다.

 

우연인 것처럼 공공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이주민을 만났다.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가족을 초대할 수 있는 더 나은 단계의 비자를 취득하자면 200시간의 봉사활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장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정한 그는 삶의 개척자로 존중받아야 한다. 배우자와 어린 딸이 감내해야 할 제노포비아의 희석에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나는 많은 생각들로 착잡했다. 초면인 그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만나면 실수를 사과해야겠다.

 


〈서평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미등록 이주 아동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동과 부모를 추방하지 않고 교육권을 보장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통보 의무를 면제하는 것처럼 공무원의 신고 의무에서 교육과 보건의 예외라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법무부는 2021년 4월 미등록 장기 체류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에게 조건부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출생하고△15년 이상 국내에서 거주한 △신청일 기준 국내 중·고교에 재학 또는 고교를 졸업한 미등록 이주 아동을 대상으로 2025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 신청을 받는다. 이 세 가지는 다 충족되어야 혜택을 볼 수 있다. 정말 있지만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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