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소중한 것,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서

 

"레이디스 퍼스트-내일을 향해 쏴라" 포스터 이미지
영화 <레이디스 퍼스트-내일을 향해 쏴라> 포스터 이미지


1. 무대가 저문 뒤

 

말 많던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본래 2020년 예정되었던 올림픽은 코로나19 창궐로 1년 연기를 겪은 후 결국 무산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워낙 걸린 게 많은 IOC와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결국 무 관객으로 치러졌다. 코로나19 비상사태 확산에도 큰 사건 사고는 (다행히) 없었지만, 일본의 정치적 편의를 봐준 부분이 적지 않아 꽤나 논란이 남았다.

히로시마 피폭 헌화나 한국과 중국의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욱일기 도안의 은근슬쩍 사용 등이 행사 기간에 일어났고, 이는 IOC가 기존에 고수하던 정치와의 분리 약속을 상당 부분 훼손한 것으로 평가된다. 폐막식에서도 일본의 내부 식민지라 할 오키나와와 아이누 전통음악 연출 장면에 대한 비판이 등장했다. 러시아와 현재진행형인 북방영토 반환 문제를 환기하려는 의도를 눈감아준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반면에 군부 쿠데타 중인 미얀마의 민주화와 인권문제, 미군 철수와 함께 내전이 격심해진 아프가니스탄 관련 평화 분위기 조성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올림픽이 이제 그 출발 정신보다는 강대국의 국위 과시와 기업들의 스폰서 이해관계에 더 충실하다는 자조가 확인된 셈이다.

이런 일방통행식 올림픽 강행은 도쿄 올림픽 유치 당시부터 예측되어온 바이다. 일본의 올림픽 유치는 역사적으로 사연이 많았다. 최초 유치는 1940년이었으나 중일전쟁 발발로 국제사회 비판이 격화되자 개최권을 포기한 바 있고, 1964년이 되어서야 도쿄 올림픽 개최가 성사되었다. 전후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으로 부흥을 확인받은 계기라 할 도쿄 올림픽과 오사카 만국박람회는 재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재 일본 자민당 정권의 2020년 도쿄에서 2번째 올림픽 유치는 바로 그 기억의 AGAIN인 셈이다. 그만큼 많은 게 걸린 이번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치러낸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정부가 기대한 특수는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최국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버프’에 힘입어 좋은 성적을 거뒀고(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우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에 지친 시민들에게 숨 쉴 틈을 제공한 측면이 존재하지만,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올림픽 특수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등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가주의적 과시를 위해 17조가 넘는 재원을 투입했음에도 막대한 적자와 미지근한 운영 평가에 그쳤다. 일본 정부로선 썩 좋지 않은 성적표라 하겠다.

한편, 서울 올림픽 이후 과도한 국가주의, 속칭 ‘국뽕’ 자극에 활용된다는 비판을 들어온 한국의 올림픽 열풍은 이번에는 이전과는 좀 달랐다. 순위 경쟁보다는 젊은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냈다. 최선을 다했다면 아쉬운 패배에도 호응이 인색하지 않았다. 여자배구의 선전, 양궁에 대한 응원과 관심이 대표적 예시다. 반면에 올림픽 직전에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야구의 졸전에 대해선 매서운 비판이 쏟아졌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모 방송사 개막식 중계 과정 논란은 오히려 지구촌 상식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 여자배구 4강 진출전에서 맞붙은 터키에서 일어난 산불 재해 관련 묘목 기부 캠페인은 흐뭇한 풍경으로 기억에 남았다. 윗선은 몰라도 국민 대부분의 인식은 이제 ‘3S’로 상징되는 우민화 정책을 극복하고 ‘합리적 근대’에 도달한 셈이다.

 

2.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한 넷플릭스 다큐영화의 세계

OTT의 대명사 격인 넷플릭스는 방대한 영상물 목록을 자랑하지만,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 라인업이 의외로 만만찮다. 특히 이번에 소개하려는 다양한 단편 다큐멘터리 중에 국가주의나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는 스포츠 소재 작품이 적지 않다. 이중 이번 올림픽과 연관해 생각할 소재를 제공하는 3편을 소개해본다.

 

2_1. <레이디스 퍼스트-내일을 향해 쏴라>

: 인도의 현실을 뚫기 위한 여성 궁사의 도전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 중 여자 양궁의 안산 선수가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그녀와 8강전에서 맞붙은 ‘세계 여자 양궁 랭킹 1위’ 디피카 쿠마리는 뛰어난 성적과 실력에 비해 올림픽에서 실적을 못 내는 대명사처럼 알려졌는데, 이번에도 그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레이디스 퍼스트 - 내일을 향해 쏴라>는 그런 디피카 쿠마리의 삶과 과제를 기록한 작업이다.

남자들은 ‘레이디스 퍼스트’라고 점잔 빼며 말하지만 왜 교육이나 스포츠 분야에서는 그러지 않느냐며 그녀는 영화 속 인터뷰에서 질문을 던진다. 다큐는 22살까지 그녀의 인생을 통한 도전과 성취 그리고 시련을 담는다. 인도에서도 두 번째로 빈곤한 주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 형편은 물론 낙후된 환경과 부조리한 관습에 짓눌린 고향에서 태어났지만, 지역사회의 편견에서 벗어난 부모를 만난 건 디피카 쿠마리의 큰 축복이었다. 하지만 또래 대다수처럼, 12살 소녀는 공부나 취업에서 배제되어 18살에 조혼해야 하는 운명을 벗어나려 절박하게 시도한다. 그녀는 그 수단으로 낯설기만 한 양궁에 도전한다.

다행히 주인공은 숨은 재능을 발견한다. 또래 친구들이 결혼이라는 멍에에 묶이는 나이인 18살에 세계 랭킹 1위 스타가 된다. 고향에 새집을 짓고 가족을 걱정 없이 살게 했다. 명성과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여기까지라면 그저 방송 다큐멘터리 소재로 그쳤을 테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 올림픽 무대에 큰 기대 속에 출전하지만 제대로 된 지원과 관리가 없는 인도의 양궁 현실은 한계를 드러낸다. 올림픽 무대에 선 디피카 쿠마리의 심리가 불안정해도 (한국 양궁과 같은 체계적 관리체계의 부재로) 별다른 케어 없이 시합에 임한 그녀의 메달 획득은 번번이 좌절된다.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 졸지에 영웅에서 죄인 신세가 된 선수의 비애가 펼쳐질 시간이다. 주위에선 그녀를 두고 험담이 오간다. 이를 악물고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지만, 악재가 겹치면서 또다시 좌절을 맞는다.

스타플레이어 집중 지원과 실적 우선주의라는 엘리트 체육의 특징은 디피카 쿠마리에게 부와 명예를 안겼지만, 이제는 양날의 칼로 돌아온다. 올림픽 부진에 대해 참작할 이유는 많지만, 누구도 그 점을 이해하려 않는다. 오직 패배자의 낙인만 남을 뿐. 두 번째 도전 실패 후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버거워하며 우는 주인공을 보는 건 시청자로서도 퍽 힘든 일이다. 이제 22살 청춘인 그녀가 주변에 친구도 없이 오직 성공에 대한 강박으로 자신을 몰아치는 풍경은 안쓰러울 뿐이다. 그런 디피카 쿠마리의 비애를 통해 영화는 엘리트 스포츠의 한계를 그저 성별 역전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그 성과를 긍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를 선사한다.

강인한 주인공은 그 안타까움의 순간을 스스로 극복하려 다른 차원의 도전을 시도한다. 예전에 양궁은 그녀에게 ‘다른 삶’을 위한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 동아줄을 오르려면 성적을 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올바른 방법’으로 행해져야 함을 그녀는 잊지 않는다.

디피카 쿠마리가 고향을 ‘탈출’해 처음 해방구로 삼았던 지방 양궁교실의 후배들과 재회한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을 우상으로 환영하는 소녀들에게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 정보와 기술의 공유가 노력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의지 드립’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 순간 이전까지 잘 보여주지 않던 디피카 쿠마리의 밝고 씩씩한 표정이 강조된다. 물론 그녀가 일찍이 그랬던 것처럼 성공과 실적으로 (악명 높은 인도의 여성 인권 상황에서) 금단의 벽을 돌파해야 한다는 강박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디피카 쿠마리와 그 뒤를 이을 이들에게 무거운 짐이 될 테다. 하지만 그녀들은 선구자가 되기 위해 (적절한 환경이 조금만 더 갖춰진다면) 자신을 증명할 결의에 가득 차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13억 인도를 포함 31억 인구를 가진 개발도상국에서 올림픽 여자 금메달 배출 실적 전무’라는 FACT를 전하며 마무리된다. 전형적 구성의 스포츠 다큐멘터리임에도 막판에 보여주는 전망과, 무엇보다 어떤 픽션도 초월하는 인간-여성 드라마가 아쉬움을 메우는 작품이다.

 

2_2.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 산을 넘는 소녀의 질주

 

"로레나-샌들의 마라토너" 포스터 이미지
영화 <로레나-샌들의 마라토너> 포스터 이미지

멕시코의 최북단 치와와 지방 깊은 산림지대 한가운데 외딴 마을에서 대가족과 함께 사는 22살 원주민 여성 로레나는 얇은 샌들과 전통의상 치마 차림으로 평균 구간 100km라는 “울트라마라톤”을 제패하는 챔피언이다.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고 묵묵히 완주해 결승점에 다다르는 순간마다 매스컴과 관계자들의 환호성과 플래시가 폭발한다. 정비된 도로가 아니라 광활한 산길 비포장도로를 12시간 넘게 달리는 풍경을 영화는 드론 등 온갖 첨단 장비를 동원한 광각과 부감 샷으로 멋들어지게 담아낸다. 장대한 오지의 자연 속에서 개미처럼 작은 원주민 여성이 질주하는 이채로운 그림에 감각적으로 세팅된 배경음악은 흥취를 더한다. 그냥 한눈에 척 봐도 적지 않은 인력과 투자가 들어간 게 보인다.

그런데 왜 로레나는 (저절로 후원 들어오는) 최첨단 기능성 의류와 전문 러닝 신발을 마다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어 뵈는 복색을 고수하는 걸까? 인상적인 마라톤 묘사 풍경에서 이제 로레나의 일상생활 배경을 확인할 시간이다. 오지에 동떨어져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는 그녀의 가족들은 교육이나 공공서비스의 이로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선 편도 5시간 이상 걸려야 통학할 수 있기에 결국 형제자매 중 로레나의 오빠만 정규교육의 혜택을 받았다. 로레나는 집안 일과 염소를 돌보느라 교육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당연히 대중교통이나 이동 수단을 취사선택할 여유도 없는 그녀의 가족은 집 주변 언덕과 구릉을 뜀박질하는 것으로 대안을 삼았다. 온 가족이 마라톤 경력자인 셈이다.(로레나의 아버지도 지역 육상계에서 명성이 높다고 한다)

 

영화 <로레나-샌들의 마라토너> 포스터 이미지

자신에겐 얇아 터진 샌들이 러닝화의 답답함보다 낫다며 로레나는 활짝 웃는다. 최첨단 장비를 과시하던 이들이 항상 먼저 나가떨어지더란다. 제작진은 그런 그녀에게 툭툭 유도 질문을 던져본다. 형편이 넉넉한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된다면? 거기에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할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달릴 때 ‘진지하게 임하냐’는 물음에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한다. 달리기는 산속 외떨어진 그녀의 가족들이 속한 작은 세계에선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달리기할 때 무슨 대단한 각오나 철학 같은 사변적인 것들은 끼어들 틈이 없다. 주어진 환경에 맞춰 그저 늘 달렸던 것뿐이다.

빈한하고 고립된 삶의 작은 대가로 얻은 그녀의 특출한 재능은 로레나와 가족들에게 약간의 금전적 이익으로 생계에 보탬을 주지만, 그것보다는 자부심, 그리고 바깥세상과 그/그녀들을 연결하는 통로로 활용되는 이점이 더 커 보인다. 그런 삶의 반대급부로 소박하게 달리기를 거듭할 뿐인 로레나 가족의 삶은 그저 존중해야 할지, 답답하게 지켜봐야 할지 보는 이로 하여금 의구심을 품게 한다. 로레나에게 기능성 쫄쫄이와 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러닝 신발이 전혀 안 어울려 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로레나-샌들의 마라토너" 포스터 이미지
영화 <로레나-샌들의 마라토너> 포스터 이미지

 

2_3. <작전명 서핑> : 복지정책으로서 스포츠의 효용

이제는 액션 히어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람보”는 원래 베트남 전쟁 참전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던 참전용사였다.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양면 전쟁을 벌였다. 수십만의 미군이 참전했고, 자체 공식 통계로 봐도 참전 미군의 2할은 PTSD를 앓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매일 22명의 참전 군인이 자살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게 정확하다면 미군의 전사자 수는 공식 발표보다 4~5배가 넘는 셈이다.

전쟁이란 극한의 폭력은 그렇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극단적 체험으로 돌아온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상이군인들 역시 사회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 현대 전쟁은 과거 전쟁과 비교하면, 전사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부상자를 낸다. 의료기술의 발전이 목숨 자체는 구하지만 온전한 회복이나 재생까지는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TSD 문제는 더 심각하다. 겉보기엔 건장한 참전 군인이지만 그 내면은 병들어 있다. 살인 병기로 훈련되고 실전을 치른 무적의 용사가 하루아침에 반사회적 범죄자로 돌변한다면 어떤 참사가 생길까? 이미 미국 사회에서 틈만 나면 터지는 총기 난사의 범인 중 다수가 참전용사 출신들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매일 6개의 안정제를 먹고 술에 취해야 겨우 잠들 수 있다고 한다. 파병 전문 부대인 스트라이커 여단 주둔지는 미국 내에서도 강력 범죄 발생률이 가장 높아 군인 가족 외의 민간인들이 이사하는 바람에 부동산 폭락이 심각하다 전한다. 이런 현실은 사회 전반에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우리는 전쟁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작전명 서핑>은 퇴역군인들에게 심리치료의 하나로 서핑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전직 해병대 참전 군인 보비 레인은 외상 후 후유증으로 매일 밤 위스키 1.75리터 병을 다 비워야 겨우 잠들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력성을 드러내는 일이 반복되자, 그는 자살을 위해 권총을 입안에 밀어 넣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 서핑 프로그램이 제안되자 문득 생각한다. 죽기 전에 해본 적 없는 서핑은 한 번 타보고 죽자고. 그날 이후 보비 레인은 서핑에 빠진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작전명 서핑" 포스터 이미지
영화 <작전명 서핑> 포스터 이미지

해당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서퍼는 약물중독에서 재활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와 몇 명의 전문가들이 PTSD 위험성과 해당 프로그램의 잠재력을 전문용어를 구사해가며 열심히 언급하지만 역시 작품의 핵심은 내면/외면의 다양한 상처를 안은 퇴역군인들이 서핑에 도전하는 각자의 과정을 지켜보는 장면이다. 참전용사들은 서핑이 구원한 자신의 변화를 열성적으로 간증한다. 그 어떤 항우울증 약이나 심리치료보다 서핑이 유용했다는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전한다. 그런데 팔이나 다리가 없는 이들이 어떻게 보드를 타지? 시청자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물은 중력에서 자유롭게 해준다는 간단한 상식을 떠올린다면 서핑의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물론 실제 훈련과정에서는 애로가 꽃 피게 마련이다. 심리적 장애를 입은 이들은 바닷가까지 나오기가 두렵고,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은 균형을 잡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파도를 타기 위한 격렬한 운동 과정은 부정적 생각을 지우고 지금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게 해준다. 그리고 파도를 타는 데 성공하는 순간 이들은 크나큰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과 사회로부터 도망치기만 하던 심리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이제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내일 보드를 타기 위해 파도를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영화 속에서 말한다. 딱 그 말대로다. 서핑의 느긋한 풍경은 고스란히 해양 스포츠 다큐멘터리 영화의 감동적 이미지와 겹쳐진다.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은 실패한 전쟁과 관련한 몇 안 되는 좋은 프로그램임은 확실하다.

 

"작전명 서핑" 포스터 이미지
영화 <작전명 서핑> 스틸 이미지

3. 엘리트 체육의 굴레를 넘어 순수한 감동의 복원을 꿈꾸며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체육 교육은 시민 양성을 위한 주요 교과로 공인된 과목일 만큼 당당한 위상을 갖고 중시되었다. 올림픽이 그 시절 기원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 정신을 되살리고자 쿠베르탱에 의해 부활한 올림픽은 최소한 경기 기간에는 휴전이 지켜졌던 그리스 시절보다 퇴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대국들의 국력 과시 연장선 상이 되어버린 현대 올림픽은 마치 민생보다 위신에 집착하던 폭군들이 시도한 대규모 토목공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도쿄 올림픽을 위해서도 산마 지구로 대표되는 구도심의 빈민 밀집 구역이 강제 철거되는 등의 갈등이 존재했다. 누구를 위한 올림픽인가? 논란은 국위선양을 과시하려는 올림픽 개최국들에 늘 따라붙는 질문이다.

도쿄 올림픽은 곡절을 거듭하며 끝났지만 8월 24일부터 패럴림픽이 열린다. 이번 도쿄 올림픽 폐막식 생중계 중 KBS 아나운서가 ‘비장애인 올림픽의 종료’를 언급한 게 작은 화제가 되었던 기억처럼, 더딘 것 같지만 우리 사회의식 수준은 꾸준히 향상하는 중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 성적 지상주의의 엘리트 체육은 설자리를 잃어간다. 구시대의 망상에 사로잡힌 관료와 체육계 상층부의 아집일 뿐이다. 민주시민 교육에서 생활에 깃든 체육은 시민 양성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다.

올림픽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스포츠 정신의 순기능과 감동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이어질 것이다. 승자 독식 논리에 기반을 둔 억지 승리보다 순수한 노력과 열정이 예찬 되는 인간 드라마가 변치 않는 감동으로 기억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작품 정보

 

레이디스 퍼스트 - 내일을 향해 쏴라 Ladies First

2017|인도|다큐멘터리|39분

감독 우라즈 발

주연 디피카 쿠마리

제작 및 배급 넷플릭스 오리지널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Lorena, Light-footed Woman

2019|멕시코|다큐멘터리|28분

감독 후안 카를로스 룰포

PD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제작 및 배급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전명 서핑 Resurface

2016|미국|다큐멘터리|27분|15세 관람가

감독 조슈아 아이젠버그, 윈 패둘라

출연 보비 레인 외

제작 및 배급 넷플릭스 오리지널



"레이디스 퍼스트-내일을 향해 쏴라" 포스터 이미지
영화 <레이디스 퍼스트-내일을 향해 쏴라> 포스터 이미지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